디지털플랫폼을 통한 온라인 수업으로 교육계는 극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동시에 교사와 학생, 부모들도 고민이 많아졌다. 과연 학교교육이 기존 역할을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됐다. 채드윅 국제학교는 오히려 모범 사례를 이어가는 중이다.
▎테드 힐 채드윅 국제학교 총괄교장은 “채드윅 스쿨을 설립한 마거릿 리 채드윅 여사는 ‘학교가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재능을 찾아서 발전시키는 데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고 말했다. / 사진:채드윅 국제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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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는 한국에서 코로나19 이후 발 빠르게 원격 수업을 도입한 학교 중 하나다. 인천 송도에 자리한 채드윅 국제학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채드윅 스쿨의 유일한 아시아 캠퍼스로 2010년 설립했다. 채드윅 스쿨은 1935년 마거릿 리 채드윅 여사가 전인교육 철학으로 설립한 비영리 사립학교로 깊은 전통을 자랑한다. 채드윅 국제학교의 테드 힐(Frederick T. Hill) 총괄 교장은 송도 캠퍼스 설립을 주관한 멤버다. 1975년부터 교육자의 길을 걸은 그는, 20년 넘게 채드윅에 몸담아 미래 교육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현재도 교내 라크로스(Lacrosse) 클럽 코치로 활동하고 윤리학을 직접 가르치는 등 학생과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자다. 10월 14일 인천 송도 채드윅 국제학교에서 만난 테드 힐 교장은 오랜만에 교정에서 앙상블 연주를 하는 학생들을 향해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오늘 처음 연주를 맞춰보는 게 틀림없어.”채드윅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된 후 하이브리드 원격 수업으로 학년별 통학 중이다. “채드윅은 팬데믹을 겪으며 학교의 강점을 확신했다. 학생들에게 늘 목적의식, 독립심, 협업을 강조해왔고, 이들의 유연하고 강한 도전 정신은 새로운 환경에서 잘 대처할 수 있게 했다.” 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채드윅 국제학교의 원격 수업은 일반 교실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게 특징이다. 교육 환경의 변화를 완전히 받아들인 결과다. 테드 힐 교장이 강조하는 것은 “수업 경험을 이어가는 일관성 있는 교육 환경”이다. 코로나19가 중요한 기폭제가 된 것은 맞지만 ‘학교’의 정의가 “확장되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학교가 ‘교실’이란 장소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온라인 수업이 기존 교육의 임시방편으로 그칠 것으로 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수업 방식의 변화는 모든 교육 과정 테두리에 포함돼 있다”며 설명을 이었다. “좋은 교육을 구성하는 요소에서 방식만 약간 수정하면 된다. 교육 철학은 학생들을 참여시키고, 자율성을 부여해주는 것과 관련이 있다. 학생의 ‘삶’과 관련돼야 한다. 온라인 수업은 좋은 교육을 구성하는 요소를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기틀이 마련돼야 한다.”채드윅은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이전보다 세심하게 구성한 온라인 학습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원격 수업으로 소통 방식이 달라졌지만, 커리큘럼을 대폭 수정하기보다 전통적인 방식을 택했다. 예컨대 저학년 수학 수업에서 부엌 서랍에서 수저와 젓가락을 가져오게 해 수업 도구로 활용하고 화상수업의 소그룹 기능을 활용해 원할한 협업을 유도했다. 그룹 활동을 장려하려는 방법이다. 특히 소속감과 친밀감을 유지한다는 원칙은 채드윅학교 모든 커리큘럼에 해당한다. 테드 힐 교장은 “학교의 목적은 동일하기 때문에 변화에 발맞춘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했다”고 말한다.의외의 긍정적인 변화도 드러났다. 학생들이 등교 수업 때보다 교사들과 더 강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점은 테드 힐 교장에게도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그는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일부 학생들이 온라인에서 교사와 1:1로 있을 때 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며 “이들은 오프라인 수업보다 온라인 수업에 더 활발하게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녹화된 수업은 공유 플랫폼에서 내려받아 복습도 할 수 있다.그는 채드윅 학생들이 더욱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로 ‘준비’를 꼽았다. “무엇보다 우리 학교의 교육 방식은 학생들을 의도적으로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한다.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오르고 하고, 야외 교육을 하는 등 그동안 해보지 않은 다양한 활동에 도전하는 시도를 해왔다. 온라인 수업도 학생들에게 ‘또 하나의 시도’였고 학생들은 준비돼 있었다.” 테드 힐 교장은 실수도 교육이라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채드윅은 학생들에게 솔선수범과 협력, 창의력 등을 강조해왔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교육의 기초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완벽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새로운 시도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실수도 교육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초반의 여정이 그려지는 대목이다.
규칙보다 원칙이 있는 학교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는 채드윅 국제학교의 교사. / 사진:채드윅 국제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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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 원격 수업 도입은 채드윅 학교에도 큰 도전이었다. “아마 교육계뿐 아니라 모두가 직면한 과제와도 같다”고 말한 테드 힐 교장은 ‘온라인이 과연 오프라인 활동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도 의구심이 들었다고 했다. “우리의 교육 모델은 코치, 담임제 등 학생을 다방면으로 알아가도록 격려하는 매우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데, 스크린이 유일한 상호작용이 됐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며 “유례없는 실험이자 도전이었다”고 회고했다.모든 학년에게 적용이 쉬웠던 것도 아니다. 그나마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온라인 수업에 접근하기가 쉽지만 이를 적용하기 어려운 유치원과 초등부 학생들도 있다. 활동과 체험 위주의 수업 방식에서 스크린으로 소통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몇 시간 동안 화면 앞에 앉아서 몰입하는 게 가능할까? 스스로 시간 관리를 체계화하거나 독립적이지 않은 건 어린이들의 보편적인 본성이다. 그 긴 시간 앉아 있으라고 하면 얼마나 고역이겠나.”(웃음)보호자인 부모들도 원격 기술을 익혀야 하는 번거로움도 생겼다. 부모들 걱정은 커리큘럼뿐만 아니라 ‘케어’에도 있었다. 교사가 수업 태도를 물리적으로 자세히 관찰할 수 없다는 점은 어느 학교에서 건 공통된 이슈였다. 테드 힐 교장은 오히려 이 부분에 자신 있게 답했다. “채드 윅 교사들은 학생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비디오 수업뿐 아니라 꾸준히 학생들의 모든 과정을 체크한다. 구글 드라이브 문서에 학생의 모든 일지와 과정을 적고 학생들의 이해 정도를 꼼꼼히 추적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부모들의 염려를 해소하기 위해 소통 창구도 늘렸다. “우리는 학부모 설문을 진행하고, 이메일, 줌, 유튜브 라이브 세션 등을 사용해 학부모들과 미팅을 한다. 오히려 대면 미팅에 참석하기 어려웠던 부모들의 참여 비율이 크게 늘면서 만족도도 높아지고 있다.”
채드윅 졸업생들의 강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테드 힐 교장은 다섯 손가락을 펼쳐가며 설명했다. “우리는 5대 핵심 가치 존경, 책임, 정직, 공정, 배려를 지닌 학교다. 많은 규칙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단지 원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책임이 있다. 우리 졸업생들은 창의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한다. 특히 구술과 글로 의사소통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수업은 토론 위주이기 때문에 좋은 의사소통자로서의 역량을 갖출 수 있다.”
▎채드윅 국제학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사진:채드윅 국제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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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덧붙인 건 무엇보다 인성이다. “대부분 채드윅 학생은 자신감이 있다. 거만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일을 헤쳐 나가는 데 용기가 있다는 뜻이다. 인내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테드 힐 교장은 최근 졸업생 얘기를 꺼냈다. “아주 수줍고 조용했던 졸업생 중 한 명이 군 복무를 위해 최전방(GOP)으로 자원입대해 부모를 놀라게 했다.(웃음) 이유를 묻자, ‘학교에서 늘 자신에게 도전해보라고 하지 않았나’고 답했다고 한다. 우린 이런 모범 학생들을 배출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테드 힐 교장은 한국 학생들에게 남다른 애정도 드러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학생들을)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며 극찬했다. “남부 캘리포니아 학생들보다 스웨그가 덜하고(웃음) 조용하지만 한국 학생들은 굉장히 성실하고, 헌신적이고, 사려 깊다.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성숙함도 갖췄다.”아시아 최초 캠퍼스가 송도에 자리 잡으며 그가 마주한 한국 교육 환경도 인상 깊어 보였다. “실제 한국 부모와 학생들은 매우 야심 차고 열망이 강하다.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는 사회이고, 교육의 가치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나라라고 본다. 그러면서도 한국 교육은 결과 지향적이고 평가하는 가치가 달라 성과나 결과에 대해 정의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교육에 대해 비판한 문구를 예로 들어 물었다. “20세기 교사들이 19세기 교실에서 21세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테드 힐 교장은 이 부분에 크게 동의했다. “맞다. 코로나19 이전 상당수 교실은 내가 학교를 다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교육도 100년간 큰 변화가 없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며 많은 산업은 어떤 형태로든 바뀌는데 오히려 교육은 1950년대와 많이 닮아 있다.” 그는 교육의 변화가 “이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그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지를 함께 고민하면서 이뤄져야 한다”며 교육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20세기에 태어나고 훈련받은 교사들은 이미 익숙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가르쳤다. 이제 2000년대에 태어나 성장하는 학생들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만큼 훨씬 더 숙련되고, 훌륭한 교육자의 자질에 기댈 수밖에 없다. 앞으로 교사는 디지털이 활성화될수록 학생의 경험과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성장 과정을 완벽히 이해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미래 교육이 오히려 더 많은 능력을 요구하는 셈이다. “학생들은 미래에 진정한 창의성과 유연한 사고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물을 보고 연결하는 능력, 협동심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교육도 앞으로 점점 더 강조될 것이다. 교육자와 부모인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 이 모든 자질은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교육은 학생들의 인생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팬데믹(대유행)처럼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빠르게 창의적이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말이다.”테드 힐 채드윅 국제학교 총괄교장은 교육자로서의 비전을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과거 나와 함께 일했던 교장은 ‘세상은 학생이 운영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나는 평생 이를 명심하고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상황이 바뀔 때마다 그럭저럭 넘어가는 건 교육자 신념에도 어긋난다. 교육자라면 최고의 학습 방법이 무엇일지를 고민해야 한다. 신념과 원칙만 있으면 어떤 변화도 우린 이겨낼 수 있다.”-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