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이 젊은 시절, 한 즉흥 연주 세션에서 겪었던 일이다. 연주 도중 허비가 형편없는 코드를 쳤다. 연주를 망치기 딱 좋은 코드였다. 허비가 민망함과 당혹감에 괴로워하는 순간, 마일스 데이비스가 마법을 부렸다. 허비가 쳤던 ‘틀린’ 코드를 순식간에 음악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버리는 연주를 한 것이다. 훗날 허비 행콕은 그날 어떤 일을 재앙이나 실수가 아니라 자신이 책임을 다해 개선해야 할 현실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고 신영복 선생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글씨를 쓸 때 모든 획과 모든 글자를 완벽하게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한 획의 과오를 다음 획으로 보완하고, 한글자의 부족함을 다음 글자로 채우는 것뿐이라 했다. 그렇게 부족한 여럿이 모여 아름다운 하나의 글이 되는 것이 본인이 생각하는 붓글씨의 미덕이라는 선생의 글에서 큰 위로와 힘을 얻었던 기억이 있다.사업을 하다 보면 지금의 팀, 아이템, 시장에 회의감을 품게 될 때가 있다. 아예 팀을 새로 꾸리면, 제품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면, 신사업을 벌리면 모든 게 잘 풀릴 것 같은 ‘리셋 증후군’에 시달릴 때도 있다. 나만 이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멈춰야 할 때와 계속 나아가야 할 때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리셋이 옵션으로 고려될 때, 스스로에게 다음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하나, ‘나는 이 문제의 층위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는가?’ 둘, ‘리셋이 매력적인 이유가 나의 무지에 기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어떤 동료가 실수를 너무 자주 해서 고민이라고 치자. 리더 입장에선 ‘담당자를 바꿔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이 정도의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거라면? 이 문제의 층위는 ‘담당자’가 아닐 수 있다. 업무의 결과물이 담당자의 꼼꼼함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는 구조 때문일 수도 있고, 기계가 해야 할 일인데 사람이 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즉, 문제의 층위가 사람이 아닌 것이다.리셋의 유혹은 아는 게 없을 때 더 달콤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잘 모르면 괜히 다른 길이 근사해 보이기 마련이다. 만약 지금 걷고 있는 길보다 다른 길에서 더 큰 매력을 느낀다면, 혹시 내가 그 길보다 이 길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