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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양숙 글로벌인사이트포럼 대표 

인문학이 키워낸 한국의 젊은 리더들 

기업의 흥망은 전적으로 리더의 몫이다. 조직을 살리는 결정과 죽이는 결정이 모두 리더의 최종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배양숙 글로벌인사이트포럼 대표는 올바른 결정은 깊이 있는 인문학적인 바탕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한다.

“처참히 무너졌을 때 손 내밀어줄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가 진정한 성공을 가르는 차이예요. 성공의 끝에 다다랐다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겸손한 사람. 주변과 동료의 손을 잡을 줄 아는 리더가 결국 빅 이벤트를 만들더군요. 진짜 성공은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지지를 받느냐 아니냐로 갈리는 것 같아요.”

배양숙 글로벌인사이트포럼 대표가 전하는 성공의 정의다. 기업가, 정치인, 예술가, 석학 등 수많은 국내외 오피니언 리더를 만나며 교감해온 30년 세월에 쌓인 내공이 깊은 울림을 전한다. 글로벌인사이트포럼은 배 대표가 지난 2019년 창업한 회사다. 인문학 강연과 함께 국내외 리더들을 초청해 강연과 깊이 있는 토론을 기반으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젊은 리더들, 벤처·스타트업을 창업한 기업인들, 중견기업과 유니콘기업 CEO 등이 한데 어울리는 모임이 포럼의 요체다.

배 대표는 이미 지난 2011년부터 ‘YEF(Young Entrepreneur Friends)’이라는 타이틀로 포럼 행사를 조직했다. 당시는 삼성생명에서 최고 연봉을 받는 재무설계사(FC명예사업부장보 상무)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이다. 그녀는 지천명을 훌쩍 넘긴 2019년 들어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와 창업자의 길을 선택했다.

10억원이 훌쩍 넘는 연봉을 받던 스타 FC가 느닷없이 인문학에 꽂힌 건 왜일까? 배 대표는 “수십 년을 쌓아온 사회 전반의 네트워크와 그들을 통해 알게 된 리더의 역할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CEO의 결정과 삶을 대하는 철학이 기업은 물론 사회와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걸 스스로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됐다는 설명이다.

“2009년 서울대 미래지도자 인문학과정과 2012년 서울대 최고지도자 인문학과정을 수료했어요. 역사 속 많은 리더가 당대에는 고통스러운 일들을 겪었다는 걸 알게 됐죠. 공부를 하면 할수록 대한민국을 이끌 젊은 리더들에게 이런 교훈을 전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더군요. 이들이 성장통을 겪을 때 바르지 않은 길과 타협하지 않도록 돕고 싶었어요. 2011년 TF로 시작했고, 2세 경영인과 벤처·스타트업 CEO들을 조직해 3개월 과정의 포럼 YEF를 시작했어요. 반응이 어마어마하더군요. 이게 뭔가 싶었죠.”

오랜 세월 사회활동으로 축적된 네트워크가 탄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강사 섭외부터 멤버 모집까지 모든 걸 배 대표가 혼자 도맡았다. 2012년부터는 미중(G2) 시대를 맞아 중국을 깊이 있게 알자는 기획으로 ‘수요포럼 인문의숲’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기업가 45명을 모아 1년 과정의 정규 커리큘럼으로 확대해 중국 철학사 전반을 40강으로 세팅해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 경영은 물론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줄 스승에 목말라 있던 젊은 기업인들의 열광적인 호응 덕이었다.

인생의 스승에 목말라 있던 젊은 CEO들


인문학과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한 통찰에 목말라 있던 젊은 리더들을 모으는 일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다. 대신 강연자 섭외부터 커리큘럼에 이르는 모든 걸 배 대표 혼자 도맡았다. 행사에 소요되는 비용 역시 오롯이 자신의 사비를 털어 마련했다. 수입의 10분의 1을 반드시 기부하며 살겠다는 삶의 원칙 때문이었다.

“어릴 적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부모님과 동생들을 도와야 한다는 맘에 생활 전선에 뛰어든 거죠. 길거리에서 노숙인이라도 보일라치면 50원짜리 동전이라도 털어내야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었어요. 본격적으로 돈을 벌면서는 수입의 10분의 1을 사회·자선단체 등에 기부하는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수요포럼 인문의숲을 처음 시작한 2012년 한 해만도 1억5000만원을 자비로 충당했어요. 기존에 사회단체에 기부했던 돈을 저 스스로 조직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돌린 셈이에요.”

배 대표는 단순히 기부금을 전달하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이면서도 사회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늘 고민해왔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대학교 인문학과정에서 공부하며 얻게 된 인사이트는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리더들로 시선을 돌리게 만들었다.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통해 만든 네트워크를 활용해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2012년 말 첫 1년 과정을 마친 후 포럼 관계자들과 식사를 했는데, 항상 열심히 공부했던 기업인 한 분이 제 손을 덥석 잡으며 ‘상무님 덕분에 1년을 살아냈다’고 하시는 거예요. 대형 건설사에서 독립해 매출 5000억원의 건설사를 일군 분이셨는데, 알고 보니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부도를 맞았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품었다고 하시더군요. 번개탄을 손에 쥔 순간 ‘요즘 힘드시다면서요? 함께 공부하시죠’라는 제 전화를 받으셨다고 해요.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서 한 줄기 빛을 보셨다고 하시더군요. ‘딱 한 번만 수업을 들어보자’ 결심했던 게 1년으로 이어졌고, 결국 다시 시작할 용기와 희망을 얻으셨다며 눈물을 흘리셨어요. 큰 규모의 비즈니스와 포럼을 병행하는 여정이 만만치 않았었기에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제게 그분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가르침을 주신 거죠.”

수요포럼 인문의숲 2년차였던 2013년에는 포럼의 질과 내용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서울인문포럼 개최를 위한 사전 준비로 마이클 샌델 교수 섭외 차 하버드대학교를 찾았고, 로스쿨 수업을 견학하며 ‘토론의 힘’을 깨닫게 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조찬모임’으로 대표되던 한국의 포럼 문화는 일방적인 강연과 몇 차례 질의응답이 오고가는 빤한 스테레오 타입이 대세였다. 하지만 세계의 지성들이 모인 하버드에선 모든 수업이 열띤 토론 그 자체였다. 배 대표는 한국으로 귀국한 즉시 2014년 강연부터 토론 주도 모임 세팅에 나섰다. 그 결과물이 바로 ‘YEF(Young Entrepreneur Friends)’다. 젊은 기업가 24명이 매주 주말 아침 7시에 모여 멘토의 강연을 듣고 함께 토론에 나섰다. 정오에 마치기로 한 토론 스케줄은 늦은 저녁까지 이어지기 일쑤였다.

“처음 시작한 토론식 포럼이었는데 멤버들의 열띤 반응에 크게 놀랐어요. 창업주인 아버지, 창업 공신인 임원들, 투자금을 댄 벤처캐피털(VC), 내부고객(직원)들과의 관계에서 갈등과 어려움을 겪던 이들이 서로의 고충을 털어놓으며 더 나은 길을 위해 치열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감동적이기까지 하더군요. 젊은 2세 기업인들과 스타트업 CEO들이 이런 자리에 얼마나 목말라해 왔는지 알 수 있었죠.”

2014년 당시 YEF 포럼에 참여했던 멤버들은 현재 어떻게 성장했을까. 배 대표는 “당시 YEF를 비롯해 수요포럼 인문의숲에 참여했던 청년 창업가와 2세 경영인들이 어느덧 한국의 벤처·스타트업과 기업 생태계를 이끄는 리더들로 성장했다”며 흐뭇해했다. 이들이 현재 글로벌인사이트 포럼의 멤버들로 연결되고 있다.

최혁재 스푼라디오 대표,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 대표(당시 아이디인큐 대표), 손태희 퍼시스홀딩스 사장, 강상우 CTR 사장, 김서준 해시드 대표, 김준영 베이글코드 대표, 김민철 야나두 대표, 박재욱 쏘카 대표, 조성우 런드리고 대표, 박성호 위시컴퍼니대표, 박태훈 왓챠 대표 등이 YEF와 수요포럼 인문의숲을 거쳤거나 연결된 쟁쟁한 젊은 리더들이다.

한 해 두 해 포럼 개최와 진행에 대한 노하우가 쌓이자 업계를 놀라게 한 대형사고(?)도 터졌다. 지난 2015년, 2016년 두 차례 연 서울인문포럼이다. 특히 2016년에는 E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의 구범준 대표 등과 함께 철학, 역사, 교육을 주제로 쟁쟁한 석학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화제를 뿌렸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학교 석좌교수, 길희성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장석주 시인, 진 블록 UCLA 총장, 이언 밀러 하버드대학교 교수, 안드레아스 트람포타 뮌헨철학대학 교수, 프랑수아 슈네 소르본대학교 교수 등 내로라하는 국내외 석학들이 ‘인간다운 삶’이라는 대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변변한 홍보도 없었는데 수요포럼 인문의숲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포럼에 참여하고 싶다는 청년 리더들과 스타트업 CEO들의 요청이 쏟아졌죠.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를 외면하기 어려웠어요. 결국 아침부터 밤늦도록 꼬박 하루 동안 대규모 인원이 모여 인문학잔치를 벌여보자 기획했죠. 실제로 호텔 전체를 빌리다시피 해 2015년 700명, 2016년에는 1000명이 참여했어요. 연사로 참여한 해외 석학들이 그러더군요. ‘전 세계 유수 포럼에 가봤지만 늦은 저녁까지 이렇게 초롱초롱한 눈빛들은 처음 봤다’고요.”

수억원이 넘는 행사 개최 비용, 장소 대관, 석학 28명과 참석자가 1000여 명이 점심과 저녁을 함께 먹으며 인문학을 논한 축제는 2011년 첫 포럼과 마찬가지로 온전히 배 대표 혼자만의 힘으로 열렸다. 직업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배 대표는 당시만 해도 ‘정신이 육체를 컨트롤한다’고 믿었다 한다. 하지만 7~8년째 스스로가 선택했던 큰 열정은 결국 몸에 이상신호를 보내고 말았다.

샌프란시스코, 런던에서도 포럼 연다

“좋은 뜻으로, 순전히 제 힘으로 시작했지만 중간중간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많았어요. 심지어 ‘배양숙이 정치를 하고 싶어 저런다’는 음해까지 받았어요. 결국 제 몸이 반란을 일으키더군요. 2016년 서울인문포럼 개최를 앞두고 두 번이나 응급실에 실려 갔답니다.”

감당하기 버거운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낸 대가는 혹독했다. 수십 명이 해도 어려운 일을 혼자 해내야 했으니 번아웃이 온 것도 당연했다. 때마침 터진 북핵 위기는 배 대표의 본업인 재무설계 분야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심지어 포럼에 함께했던 사람 가운데서도 손을 내밀기는커녕 뒤에서 수군덕대는 이들까지 나타났다. 젊은 경영자들을 자식 같은 마음으로 대했던 진정성은 점점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으로 번져갔다.

“억울하고 분했어요. 공익을 위해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왜 내게 이런 일들이…’ 싶었죠. 점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겼어요. 하지만 분노가 잦아들자 또 다른 목소리가 제 안에서 들려오는 것을 느꼈어요. 다른 이를 돕는 일엔 안간힘을 쥐어짜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돌보지 않았다는 깨달음이었어요.”

에너지가 고갈돼 겪은 심신의 고통은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다. 하지만 ‘강제 멈춤’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억울함과 분노는 평안함과 통찰의 시간으로 바뀌어갔다. 의도치 않았지만 관계의 폭이 좁고 깊게 재정립됐다. 완전히 무너진 이에게 꾸준히 손을 내미는 지인들이 남았고, 결국 소진된 에너지에서 작은 불씨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배 대표는 결국 2년여의 고통을 이겨내고 2019년 새로운 출발대에 다시 스스로를 던져 세웠다. 서울인문포럼 이사장에서 글로벌인사이트포럼 대표로 직함과 적(籍)도 바뀌었다. 현재 글로벌인사이트 포럼은 차세대 기업가들이 유니콘의 꿈을 꾸도록 돕는 ‘COSMOS & Be’ 과정, 업종을 선도하는 창업가와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경영인들이 모인 ‘인사이트 36h’ 과정이 1년 정기 과정으로 개설돼 있다. 그녀가 품었던 젊은 리더들 못지않게 혹독한 성장통으로 몇 배 더 단단해진 배 대표는 “새롭게 축적한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부을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다.

“10여 년의 경험이 결국 씨앗과 거름이 돼 오늘의 저를 있게 했어요. 팬데믹 이후 찾아올 초연결 글로벌 시대에 제가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가 창업가와 젊은 기업인들을 위해 쓰이길 바랍니다. 내년 하반기에는 샌프란시스코 포럼, 2023년 봄에는 런던 포럼을 기획해 준비 중이에요. 우리 기업인들과 비슷한 컨디션에 있는 현지 기업인들이 만나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 인사이트를 주고받게 될 거예요. 입체적이고 긍정적인 자극으로 더 성장해 결국 K브랜드가 세계로 뻗어나가길 기대합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박종근 기자

202108호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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