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이슈는 각국 정부의 최우선 과제이며 각국의 기업/기관이 에코이노베이션(친환경 혁신기술)을 개발하고 채택하도록 엄격한 목표를 설정했다. 특허 데이터는 특정 기술지식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므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해나갈 혁신기술을 분석하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다. 글로벌 지식재산권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는 일본의 아스타뮤제가 국가별·산업별·조직별 특허정보를 기반으로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국가별 경쟁력을 탄소저감효과지수로 수치화했다.
전 세계적으로 탈탄소 에너지 기술 관련 특허의 수가 2017~19년 기간 동안 연평균 3.3% 증가했다고 유럽특허청(EPO)과 국제특허청(International Patent Office)이 최근 밝혔다. 이는 2015년 이후 화석 연료 관련 특허가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탈탄소기술 중 일부는 이미 산업에 활용되지만 나머지는 아직 개발 또는 배포의 초기 단계다. 특허정보를 중심으로 에코이노베션을 가늠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향후 탈탄소기술의 흐름을 앞서 파악할 수 있다.우선 탈탄소기술을 평가하기 위해 40개 기술영역으로 세분화했고 산업별로 5개 대분류와 13개 소분류로 묶었다.[표 1] 기술영역별로 해당 국가 소속의 기업/기관의 탄소배출량 정보와 관련 기술특허 정보를 기반으로 탄소저감효과지수를 추출했고, 이를 합산해 각 산업의 국가별 순위를 산출했다.국가별 탄소저감효과지수를 비교한 결과, 한국 에코이노베이션의 경쟁력·잠재력을 산업별, 기술영역별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한국은 자동차부문에서 2위에 올라 가장 높은 순위를 보였고, 대부분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문은 기계(5위), 정보통신(6위) 등으로 나타났다.[표 2]
기술영역을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한국은 에너지 관련 기술영역 11개 중 해양에너지 부문에서 주요 특허를 보유하고 있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에너지 관련 11개 영역 전체 평균으로는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4위에 랭크됐다. 한국의 해양에너지 부문 탈탄소경쟁력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인진, 삼성중공업, 한국에너지기술원, 현대건설, 포스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포항공과대, 한국조선해양 등이 주도했다.공공사업 관련 기술영역에서는 토양·해양의 탄소 저장과 폐기물·하수 슬러지 처리 부문에서 주요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다. 공공사업 분류에서도 한국은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4위에 랭크됐다. 토양·해양의 탄소저장 부문의 주요 특허출원 조직은 하나환경, 한국이엠, 고등기술연구원, 팜한농, 이화여대 등이었다. 한편, 폐기물·하수 슬러지 처리 부문의 주요 특허출원 조직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자동차연구원, 하나테크, 포스코 등이었다.
화학 관련 기술영역에서는 한국이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연료전지, 배터리 부문에서 탈탄소기술 관련 특허를 상당수 보유하고 있었다. 화학 분류에서도 한국은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4위에 올랐다. 연료전지와 배터리의 경우 주요 특허출원 조직은 현대차, 기아차, LG화학,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삼성전자, 포스코,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이었다.
자동차 관련 기술영역에서 한국은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연료효율성(엔진효율성, 소형화, 경량화 등), 전기 자동차 등 세 부문 모두 강세를 보였다. 이 분류에서 한국은 일본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높은 평가를 받은 주요 특허출원 조직은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삼성중공업, 한국조선해양,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다원시스, 한온시스템, 한화솔루션, 현대위아, 만도, 삼성SDI, 삼성전자, LG전자, 엘에스 등이었다.교통 관련 기술영역에서 한국은 모달시프트(대중교통, 커뮤니티버스 주문형 교통, 트럭에서 철도·선박으로 전환) 부문에서 강세를 보였다.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4위에 올랐다. 모달시프트 부문에서 LG전자, 네이버, 카카오모빌리티, 롯데카드, 삼성전자, LG전자, 코아시스템즈, KT 등은 대중교통 이용의 편의성을 높이는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스마트농업, 대체육, 파워반도체 부문에 취약한편, 상대적으로 한국이 탈탄소기술에 취약한 부문은 스마트농업, 배양육·대체고기, 파워반도체였다. 스마트농업 부문에서 한국은 글로벌 6위에 올랐다. 이 부문에서 선진 기술특허를 다수 보유해 글로벌 상위에 오른 조직은 미국 디어앤컴퍼니(Deere & Co.)와 네덜란드 CNH인더스트리얼(CNH Industrial NV) 등 세계적인 농기계 제조업체와 더불어, 지난 2018년 몬산토테크놀로지를 인수한 바이엘(Bayer AG)이었다. 일본의 농기계 제조사 쿠보타, 이세키, 얀마 등도 상위에 포함됐으나 국내 기업은 찾기 힘들다. 현재 한국 농업은 농기구와 종묘에서 해외 의존도가 높은 까닭으로 분석된다.
배양육·대체고기 부문에서 한국은 글로벌 7위에 머물렀다. 글로벌 상위에는 네덜란드 바이오기업 코비온 NV(Corbion NV)와 스위스 네슬레(Nestle) 등 유럽 식품제조사와 빠르게 성장 중인 미국 임파서블푸드(Impossible Foods)가 올랐다. 이 기업들의 특허기술은 식물이나 미세해조류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생산한 인공고기에 대한 것이 다수다. 국내 기업으로는 CJ제일제당이 식물단백질에 대한 특허를 보유해 글로벌 7위에 올랐지만 다른 기업의 존재감은 보이지 않았다. 배양육·대체고기 기술은 현재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채식주의자의 증가세와 미래식품에 대한 우려로 중요도가 높은 부문이라고 할 수 있다.파워반도체 부문에서 한국은 글로벌 6위에 그쳤다. 파워반도체는 기존 실리콘(Si)반도체 중심에서 차세대 소재인 탄화규소(SiC)로 전환해 고전압, 고내열 물성을 이용해 에너지 절약을 겨냥하는 첨단기술이다. 글로벌 상위 기업은 독일 인피니언 테크놀로지AG(Infineon Technologies AG)와 미국 알파앤드오메가반도체(Alpha & Omega Semiconductor Ltd), 일본 미쓰비시전기, 르네상스테크놀로지 등이었다. 반도체 관련 탈탄소 혁신기술 특허를 다수 보유한 일본 기업들이 글로벌 10위권에서 절반을 차지했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삼성전자가 21위에 올랐다. 파워반도체는 제조하는 데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고 다품종 소량생산이 필요한 분야이므로 진입장벽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진원 기자 lee.zinon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