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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규 메일팩 대표 

펄프로 만든 진짜 에코백 

신윤애 기자
친환경 제품이 진짜 친환경적일 수는 없을까? 이 물음에서 시작한 브랜드가 있다. 친환경 소재인 펄프 원단으로 가방을 만드는 메일팩이다.

2007년 6월 20일 오전 6시 30분. 영국 런던에 있는 세인즈버리 슈퍼마켓 앞은 가방을 사기 위해 수백 명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슈퍼마켓에서 나오는 이들의 손엔 ‘I’m not a plastic bag’이란 문구가 큼직하게 적힌 저렴한(한화 약 7000원) 캔버스 가방이 들려 있었다. 2만 장 한정판매를 실시한 이 가방은 몇 시간 만에 매진됐다.

이 가방의 정체는 영국의 유명 디자이너 ‘안야 힌드머치(Anya Hindmarch)’가 한 환경 자선단체와 만든 친환경 가방, 즉 ‘에코백’이다. 화학 처리 같은 가공을 하지 않은 환경 친화적인 캔버스 가방을 비닐봉지 대신 사용해 환경을 지키자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셀럽들까지 캠페인에 동참하며 가방의 인기는 전 세계로 확산됐고, 에코백 유행의 시초가 됐다.

14년이 흐른 지금, 에코백의 인기는 여전하다. 다양해진 디자인 덕에 패션 아이템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친환경’이란 에코백의 원래 취지는 퇴색한 듯하다. 친환경을 내세워 우후죽순으로 생산하다 보니 재사용은 차치하고 한두 번 사용하고 방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기에 ‘에코백이 진짜 친환경적일까?’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실제 영국 환경청과 덴마크 환경식품부에서 ‘에코백의 환경보호 효과’를 연구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영국 환경청(2011)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면으로 만든 에코백은 131번 이상 사용해야 환경보호 효과가 있고, 덴마크 환경식품부(2018)의 연구 결과에서도 면으로 된 가방은 최소 7100회, 유기농 면화를 이용한 천 가방은 2만 회를 사용한 뒤 버려야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오염을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에코백은 대부분 면으로 만드는데, 목화를 재배하고 가공하기 위해선 막대한 양의 화학물질과 물이 사용될 뿐 아니라 제조·유통 과정에서 비닐봉투의 약 150배에 달하는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11월 10일 서울 성수동 메일팩 본사에서 만난 조민규(31) 대표가 설명했다. 그는 “많은 기업과 브랜드가 환경보호에 동참한다는 증표(?)로 에코백을 제작·판매하고 있는데 이 상황이 오히려 환경에 악영항을 미친다고 본다”며 “에코백의 아이러니를 담론화하고 싶어 ‘진짜 에코백’ 브랜드를 만들게 됐다”고 덧붙였다.

메일팩은 펄프 원단으로 가방을 만드는 친환경 가방 브랜드다. 의도적으로 면 대신 펄프(종이)만 사용한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관리 인증을 받은 삼림에서 자란 나무를 사용하고, 한정된 수량만 채취해 법적으로 인증받은 가공·유통 과정을 거친다. 화학 코팅을 하지 않는데도 방수 기능과 내구성이 뛰어나다. 그는 “성인 남성의 완력으로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며 시간이 흘러 사용감이 더해지면 자연스러운 주름이 생겨 빈티지한 매력까지 느껴진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모두 사각 모양으로 디자인된 메일팩 가방들.
메일팩의 시작이 궁금하다.

메일팩을 설명하려면 먼저 므티리얼을 소개해야 한다. 메일팩은 가방·굿즈 컨설팅 회사인 므티리얼이 기획, 디자인, 생산을 도맡아 운영하고 있다. 디자인학부생 시절 플로리스트를 위한 플라워 백(꽃을 담는 가방)을 만들고 싶어 제작업체를 수소문하다가 므티리얼의 대표님을 알게 됐고 여러 가지 조언을 들었다.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함께 일해보자’는 말을 종종 하셨는데 현실이 됐다. 5년 전 므티리얼에 입사해 각종 제품의 디자인을 맡아 하다가 현재는 경영 일선에 뛰어들어 대표님과 함께 므티리얼을 이끌고 있다. 메일팩은 므티리얼에서 내가 직접 기획하고 만든 브랜드다. ‘진짜 에코백’을 제작하는 게 브랜드의 시작점이자 목표점이다. 친환경 소재를 정말 까다롭게 선별해서 쓴다.

어떤 제품들을 생산하나.

므티리얼은 주로 굿즈나 판촉물을 제작한다. 의뢰가 들어오면 상품의 기획·디자인·생산까지 담당한다. 블랭크 코퍼레이션, 아시아나항공, 세그웨이 등 다양한 국내외 기업과 작업했다. 기획·디자인·생산을 모두 우리가 담당하기 때문에 기획 단계부터 생산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또 디자인에 새로운 도전을 많이 한다. 단순히 ‘라벨갈이’를 하는 천편일률적인 판촉물이 아니라 그 회사만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다. 손잡이를 위아래로 달아 실용성을 높인 여행용 캐리어 ‘Parity’가 대표적이다. 이 제품은 하루에 1억원어치씩 팔려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 메일팩은 펄프로 에코백을 만드는 브랜드다. 현재 가방 네 가지, 지갑류 세 가지, 에어팟 케이스 등 액세서리류가 일곱 가지를 만든다.

메일팩 제품들은 100% 친환경이라고 할 수 있나.

무엇을 만들든 100% 친환경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종이도 나무를 파괴해야만 만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친환경을 추구한다. 접착력이 약해도 본드 대신 천연 라텍스를 사용하고 금속 종류는 납이 검출되지 않은 것을 선별해 쓴다. 또 메일팩 제품은 모두 사각형으로 디자인돼 있는데, 가방을 잘라 펴보면 우유곽처럼 직사각형 형태가 된다. 직사각형이 가장 원단 로스가 적은 형태이기 때문에 그렇게 디자인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자투리 원단은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자투리 원단으로 지갑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해 소비한다.

원래 친환경에 관심이 많았나.

대학생 때부터 하위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동물보호, 기후변화뿐 아니라 페미니즘, 젠더 감수성까지 모두 나의 관심 분야다. 또 채식주의자고 독립서점을 좋아한다. 평소 좋아하던 인덱스라는 독립서점과 컬래버레이션을 할 기회가 생겨 개인적으로 신나 있는 상태다. 단순히 제품을 전시하는 팝업스토어를 넘어 종이를 활용한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 책갈피, 북파우치 등을 만드는 행사를 기획 중인데 생각만 해도 기쁘다. 요즘은 저작권에도 관심이 생겼다. 최근에 피아니스트 이루마의 악보집 커버를 우리가 제작했는데, 데뷔 20년 만에 처음으로 악보집을 냈다고 하더라. 시중에 나와 있는 건 모두 2차 창작물이라고 해서 놀랐다.

‘친환경’이란 단어에 피로감을 느끼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우리는 대놓고 ‘저희는 친환경입니다’라고 광고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보며 자연스럽게 느끼길 바란다. 소재나 디자인 외에도 패키지에 신경 쓰는 이유다. 우린 종이봉투와 실이 들어간 종이테이프(잘 찢어지지 않는다)로 포장해 제품을 배송한다. 상품의 기획 단계부터 고객이 받아볼 때까지 모든 순간에 친환경이란 메시지가 녹아 있다.

대중적이기보다는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 원해

디자이너에서 경영인으로 변신했다. 어려움은 없나.

처음 므티리얼에 왔을 때 대표님은 생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서비스를 홍보하는 방식이 서툴렀다. 내가 나서서 웹사이트 만들고, CRM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리를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50억원대 계약이 성사됐으며 대기업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도 늘었다. 하지만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은 데다 경험도 없다 보니 공부가 필요하더라. 주변 지인들에게 정말 많이 물어봤다. 소비자에게도 피드백을 꾸준히 받고 있다. 매장 체류 시간이 유독 긴 소비자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께 조심스럽게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하곤 한다. 손잡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어떤 아티스트와 협업하면 좋겠다는 등 솔직한 의견을 준다.

어떤 브랜드, 회사로 키우고 싶나.

환경, 인류에 관심 많은, 소위 ‘의식 있는’ 셀럽이 많지 않나. 그런 분들이 선택하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 예를 들어 배우 류준열씨가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배우 류준열이 전시를 여는데 소품으로 메일팩을 선택했다는 등의 소식을 손꼽아 기다린다. 또 하나 원하는 건 모든 이에게 사랑받기 보다는 우리가 타깃으로 하는 고객층에게 진한 사랑을 받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하류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타깃층이다. 회사는 건강한 기업문화를 가진 곳이면 좋겠다. 직원들의 안녕을 위해 ‘조직문화-세이프티·헬스’ 체크를 자주 한다. ‘동료에게 의견을 제시할 때 얼마나 불편한지, 얼마나 즐겁게 회사를 다니고 있는지’ 등을 물어본다. 평소보다 점수가 낮다면 면담해 직원들의 애로 사항을 듣고 함께 개선점을 찾아간다. 다소 번거롭더라도 모든 직원이 행복하게 다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사진 이원근 객원기자

202112호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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