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10년 묵힌 '오징어 게임' 시나리오, 15년 묵힌 '발퀴레' 악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80여 개 국가에서 한 달 가까이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이런 성공 이야기의 이면에는 생각할 거리가 있다.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내부 모습. 독일 바이로이트시에 있는 이 극장은 4~5시간이 소요되는 바그너의 거대한 오페라들을 연주하기 위한 ‘오프라인 플랫폼’이다. / 사진:바이로이트 축제극장 홈페이지
[오징어 게임] 시나리오는 2009년에 이미 완성되었지만, 작품으로 제작되기까지 10년 넘는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촬영과 제작을 위한 투자자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시청자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 판단이 옳았을 수 있다. 2009년의 소비자들에게 [오징어 게임]은 감독의 말대로 “무척 살벌하고 낯설며 난해한 것”이었으리라. [오징어 게임]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그 10년 동안 [오징어 게임] 속 등장인물의 삶을 살았다. 막다른 길로 내몰리는 바람에 목숨을 건 게임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삶. 그가 원망하는 인생을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런 삶을 살아왔다면 원망해야 할 최종 대상은 그의 작품을 제때에 알아주지 못했던 시청자여야 할까. 시대를 만나지 못한 예술가가 원망해야 할 상대는 따로 있지 않을까.

몰이해와 몰인정에 맞선 위인들


▎[오징어 게임] 속 게임이 이루어지는 건물의 내부 모습. 네덜란드 판화가 마우리츠 에셔(1898~1972)의 판화 [상대성](Relativity)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황동혁 감독은 건물의 내부를 만들 때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 사진:위키피디아
만들어지고 나서 한참 후에야 발표된 예술 작품들과 그 작가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든다. 주로 공연 혹은 촬영이 필요한 예술의 경우다.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오페라 [발퀴레]의 대본을 1852년에 완성했고, 대본에 붙일 음악은 1854년에 작곡했다. 연주 시간이 네 시간에 이르는 이 대작은 1870년이 돼서야 공연되었다.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710쪽짜리 악보는 작곡가의 집에서 먼지에 덮여 있었다. 울분에 찬 바그너는 [발퀴레]의 후속작인 [신들의 황혼]에서 ‘라그나뢰크’를 표현했다. 라그나뢰크 혹은 라그나로크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미래에 닥칠 세상의 파멸, 즉 종말 시나리오다. 이를테면 세상이 온통 타버리거나, 물에 잠기거나, 골육상쟁으로 모두가 죽거나 전염병으로 인류가 멸종한다. 고대 북유럽 사람들은 이런 종말을 두려워했거나 두려워하면서도 기대했었나 보다. 어쩌다 인간을 사랑하게 된 전쟁의 여신 발퀴레인 브륀힐데는 사랑하는 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세상, 특히 신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홀라당 태워버린다. [신들의 황혼]의 마지막 장면이다. 바그너가 실제로 하고 싶었던 바로 그 행위였을 것이다. 이 부분의 음악은 강렬함에 있어서 비교할 대상이 없다. [신들의 황혼]은 [발퀴레]보다 더 불운한 작품이었다. 1848년에 대본이 완성었지만 1876년에야 공연되었다. 최고의 낭만주의자를 사무치게 했던 라그나뢰크 개념은 오늘날 한국과 일본의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모바일 게임의 이름이 되었다.

몰이해와 몰인정은 모든 분야 위인들의 숙명인 것 같다. 학문의 역사에서도 몰이해와 몰인정에 분노했던 학자들이 있었다.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1844~1906)은 1906년에 목을 매 자살했다. 25세에 교수가 되고 44세에 대학 총장이 되는 등 나름대로 성공 가도를 달려왔지만, 학계에서의 반대 의견은 그를 힘들게 했다. 볼츠만의 자살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논리실증주의자들의 득세가 그를 힘들게 했을 거라는 추측이 지지를 얻고 있다. 20세기 초반 이래 한동안 빈과 유럽 학계를 지배했던 에른스트 마흐 같은 학자들은 이 세계가 감각으로 주어진다고 보았고, 그런 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에 형이상학적인 것이 설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마흐는 이렇게 말했다고 알려져 있다. “(보이지 않는) 원자가 실재하는 것을 믿어야 한다면(그렇게 형이상학적인 추론과 가설의 세계에서 연구해야 한다면) 차라리 물리학자가 되기를 포기하겠다.” 이런 생각은 통계열 역학의 전제를 마련하기 위해 원자와 분자를 실재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볼츠만에게 위협이 되었다. 오늘날, 원자와 분자에 관해서는 볼츠만의 생각이 옳았다는 인식이 압도적이다. 원자보다 더 작은 소립자들의 존재를 추론하거나 실제로 발견하는 물리학자들이 노벨상을 받는 실정이다.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공격당하는 학자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최악의 상황은 수업에 학생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1820년에 베를린대학교에서 철학 강좌를 열었다. 그의 강의를 수강한 학생은 다섯 명쯤이었다고 전해진다. 학생들은 출석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한 명도 출석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텅 빈 강의실에서 쇼펜하우어는 깊은 자괴감을 느꼈다. 그의 수업에 학생이 없었던 것은 사실 그 자신의 무모함 때문이었다. 당대 최고 인기 철학자 헤겔이 같은 대학교의 철학 교수였는데, 어리석은 쇼펜하우어는 헤겔의 수업이 열리는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강좌를 개설했다. 정반합의 변증법적 세계관을 제시하며 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한 헤겔의 명성에 맞서고자 했던 쇼펜하우어의 도전은 성공할 수 없었다. 평생 별다른 인기를 누리지 못했지만, 치기 어린 이 은둔형 철학자가 나름의 학문적 공헌을 했다는 데 이견은 없다. 당대의 주류 철학자들과 달리 이성보다 직관력, 창조력, 비합리적인 것에 주목했고, 이러한 그의 철학은 이후 니체, 키르케고르, 베르그손 등 철학자에게,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사무엘 베케트, 토마스 만, 카프카, 헤르만 헤세, 마르셀 프루스트와 같은 문인들에게, 바그너 같은 작곡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심지어 찰스 다윈과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중 역자 홍성광의 해제, 을유문화사).

수십 년 동안 연주되지 못했던 바그너의 작품들은 1876년부터는 매년 연주될 수 있었다. 바그너의 열혈 팬이었던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2세가 바그너 오페라를 전용으로 연주할 오페라극장을 지어준 덕분이었다. 1876년 독일 중남부에 있는 바이로이트라는 작은 도시에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이 건립되었다. 이 극장은 오늘날까지 ‘바그너 작품의 연주를 위한 오프라인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공연예술을 위해서는 연주회장이라는 플랫폼이 있어야 하며, 드라마나 영화의 송출 및 그에 대응하는 관람을 위해서도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 [오징어 게임]을 전 세계 수십 개 국가의 시청자들에게 방영하는 넷플릭스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플랫폼(platform)은 기차나 고속버스 등을 탈 수 있는 승차장을 뜻하는 단어인데, 오늘날 IT 시대에는 콘텐트나 애플리케이션을 공급·생산하는 공급자와 생산자가 모여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또 그들이 만든 콘텐트 등을 소비하는 장소를 의미하기도 하다. 공급자/생산자를 통제하고 소비자에게 소비를 위한 규칙을 따르게 하는 플랫폼 소유자 역시 이 가상 공간에서 활동한다. 바이로이트 축제극장과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없었다면 [신들의 황혼]과 [오징어 게임]은 큰 성공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없었다면 BTS 같은 K-pop의 큰 성공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모든 상품의 생산자는 어떤 플랫폼에 올라타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SNS상의 맛집 정보 같은 것도 플랫폼이다.

[오징어 게임]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던 2009년에도 넷플릭스는 서비스를 제공했었다. 물론 오늘날처럼 대중화되지는 않았었다. 당시에 넷플릭스 가입자가 지금처럼 많았다면 [오징어 게임]은 그때 제작되어 성공했을까? 당시의 투자자가 [오징어 게임]의 이야기를 무척 살벌하고 낯설며 난해한 것으로 보았다고 했다. 감독의 전언이다. 그러니까, 플랫폼이 있었다고 해도 투자자가 거부하면 끝이다. 투자자가 거부할지 투자할지는 시청자/ 소비자의 수준 혹은 취향의 상태를 고려해 결정된다. 어떤 상품, 어떤 콘텐트, 어떤 학설, 어떤 수업의 소비 여부를 결정하는 최종 플랫폼은 소비자의 마음이 아닐까. 쇼펜하우어에게 주어진 플랫폼은 베를린대학교 강의실이었다. 볼츠만에게 주어진 플랫폼은 당시 존재했던 물리학자들의 공론장이었다. 인류에게 플랫폼이 없었던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선사시대 인류에게는 동굴이 플랫폼이었고 당시 인류는 그곳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각각의 플랫폼에서 소비자의 마음이 문제였다. 유튜브가 있는 세상에서 K-pop은 크게 성공하지만, 한국의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실험적 현대음악은 성공하지 못한다. 강의실은 넘쳐나지만, 학생의 관심 밖에 놓인 강의는 폐강되어야 한다. 학생이 없는 시대에, 취업이 무척 어려워진 시대에, 학생들의 관심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런 그들을 만족하게 하지 못하는 수업은 실용주의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시대를 만나지 못한 예술가가 원망해야 할 상대는 따로 있다고 했다. 어차피 예술이든 뭐든 소비자가 있게 마련이고, 소비자는 늘 어떤 플랫폼에서 대기 중이다. 소비자는 어떤 이유에서든 어떤 상품은 소비하지 않으며, 어떤 상품은 소비한다. 2009년에 사는 [오징어 게임] 시나리오 작가와 1848년에 사는 [신들의 황혼] 작곡가에게 우리는 “기다리세요, 세상은 원래 그런 법입니다”라고 말해야만 할까? 시대를 만나지 못한 예술가가, 소수 의견을 내는 연구자가, 학생을 만나지 못한 교수가, 혁신적 상품을 팔지 못하는 사업가가 도움을 청할 상대가 있다고 생각한다. 선하며 현명한 공동체로서의 국가. 예술가 혹은 그 어떤 상품의 생산자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했을 때 미력이나마 도와줌으로써 미래의 번영을 위한 씨앗을 보살피는 국가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112호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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