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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에 구현한 리얼 라이프 | 유태연 유티플러스 인터랙티브 대표 

크리에이터가 꾸미는 메타버스 세상 

장진원 기자
국내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베테랑 개발자가 내놓은 메타버스 플랫폼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메타버스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누구나 놀 수 있는 놀이터’를 꿈꿔온 결실이다.

▎유태연 대표는 ‘디토랜드’로 국내에 본격적인 메타버스 플랫폼 시대를 열었다.
‘뼛속까지 개발자’라는 말은 유태연 유티플러스 인터랙티브(이하 유티플러스) 대표에게 딱 들어맞는다. 콘솔게임 개발사 판타그램의 MMORPG 대작 ‘킹덤언더파이어’ 메인 프로그래머, 엑스박스 게임 ‘코프더크루세이더’ 메인 프로그래머, ‘커프히어로즈’ 서브디렉터를 거쳐 블루사이드 창립 멤버 겸 수석개발자까지. 지난 2006년 유티플러스를 창립한 유 대표는 2019년 MMORPG ‘탈리온’의 글로벌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1995년부터 게임 개발자로서 커리어를 쌓아온 유 대표는 스스로를 “게임 프로그래머 1.5세대”라고 불렀다. 윈도(Window) 운영체제가 보편화되기 전부터 도스(DOS) 프로그램으로 개발에 나섰던 베테랑 개발자다.

유 대표는 2021년 5월 게임 개발사로 알려졌던 유티플러스의 진가를 알리는 대형 사고를 터뜨렸다. “게임업계는 물론 엔터테인먼트, 통신사, 플랫폼사, IT 업체, 심지어 이쪽과는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대기업에서도 미팅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3월 메타버스 플랫폼 ‘디토랜드(DITOLAND)’를 선보이면서다.

샌드박스게임 플랫폼이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tvN의 ‘즐거운랜드’ 행사에 활용된 디토랜드 이미지(위). MZ세대 입맛에 맞춘 디토랜드 이미지와 아바타.
페이스북이 사명을 아예 메타로 바꿀 만큼 대세로 떠오른 메타버스라지만, 국내 기업이 메타버스 플랫폼을 내놓은 건 유티플러스가 최초였다. 그만큼 메타버스에 관심 있는 사람과 기업, 기관들의 이목이 쏠렸다.

게임 개발에서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선회한 건가.

현재 가장 핫한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통하는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포트나이트 등이 모두 원래 게임 플랫폼이다. 다만 게임을 만드는 방식이나 릴리스하는 방식이 기존과는 전혀 달랐다. 이른바 샌드박스게임 장르다. 말 그대로 모래 놀이터를 생각하면 쉽다. 아이들은 별게 없어도 모래밭 안에서 하루 종일 논다. 이처럼 유저들이 직접 개발하고 자유롭게 창작할 수 게임이 바로 샌드박스다. 게임 플랫폼에서 여러 기능과 환경이 더해지면서 메타버스라는 유니버스로 확장된 사례다.

유티플러스의 디토랜드도 비슷한 콘셉트인가.

25년이 훌쩍 넘게 게임 개발을 해왔다. 어느 순간부터 개발이 너무 힘들더라. 유저들의 콘텐트 소비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몇 달을 죽어라 밤을 새가며 개발을 완료해도 유저들은 곧바로 ‘다음 스테이지’를 찾는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다.(웃음) 그러다 유저들이 직접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 자기가 만들고 자기가 즐기는, 로블록스 같은 샌드박스게임이었다. 메타버스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게 2020년 11월이었지만, 우리는 이미 2019년부터 디토랜드 개발에 나선 상황이었다.

샌드박스게임 플랫폼 개발이 메타버스라는 화두와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맞다. 메타버스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샌드박스게임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디토랜드도 그렇게 만든 플랫폼이다. 디토랜드를 설명하는 거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2020년경부터 어느 순간 메타버스가 이슈가 되더니 로블록스의 나스닥 상장이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2년 전만 해도 “뭔 소리야” 하던 반응이 요즘은 “아! 로블록스?”로 바뀌었다. 시가총액을 보면 한 번 더 놀란다. 불과 2~3년 사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시장 트렌드를 실감하고 있다.

디토랜드에선 샌드박스게임만 운용할 수 있나.

메타버스는 기본적으로 물리적 공간의 디지털 확장이다. 디토랜드 안에는 게임뿐만 아니라 미팅룸, 전시장, 사무실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툴이 있다. 샌드박스게임을 넘어 메타버스 시대에 걸맞은 플랫폼으로 확장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하다. 우리는 디토랜드를 ‘UGC(User Generated Contents)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규정했다. 유저 스스로가 개발자가 돼서 나만의 콘텐트를 선보일 수 있다. 어려운 개발 프로그램을 손쉽게 바꾸어 누구나 멀티플레이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유저들은 그 안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수익을 얻는다. 우리는 디토랜드를 게임 플랫폼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게임이라는 말이 붙으면 바로 규제 대상이 되버리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산업이 발전하는 속도를 관련 규제가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 5월에 열렸던 인디크래프트 행사로 디토랜드가 널리 알려졌다.

디토랜드 알파버전을 내놓은 게 지난해 3월이었는데, 인디크래프트는 불과 두 달 뒤에 열렸다. 세계적인 인디게임 개발 박람회로, 우수한 인디게임을 전시하고 상도 주는 큰 행사다. 오프라인 행사가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디토랜드 플랫폼을 활용했다. 디토랜드 툴로 만든 가상공간에서 글로벌 게임 행사가 열린 것이다. 유저들은 자기 아바타로 직접 행사에 참여해 기업별·게임별 부스를 방문했다. 게임기업, 개발자, 바이어 등 다양한 사람이 디토랜드로 만든 인디크래프트 행사장을 가득 채우며 북적거렸다.

3년여간 공들여 개발한 플랫폼이 첫선을 보인 자리였다.

유저 수만 명이 동시에 접속하는 MMORPG도 만들어왔지만, 디토랜드와 게임은 완전히 달랐다. 보이스 채팅 기능을 지원해 사람들이 가상공간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고 네트워킹하는 장면이 놀라웠다. 나 역시 처음 느끼는 경험이었다. 디지털과 현실이 완전히 섞여버리더라. 게임 개발 역량이 있으니, 행사장 곳곳에 미니게임을 만들어 참여율을 높였다. 별을 모으면 기프티콘을 주는 이벤트도 열었다. 가상공간에서 열린 인디크래프트는 지난해가 두 번째였는데, 첫 행사를 연 해외 기업의 플랫폼보다 디토랜드의 반응이 훨씬 열광적이었다.

샌드박스게임을 위해 개발한 플랫폼이 예상치 못한 대박을 낸 셈이다.

너무 특이한 경험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서 메타버스의 가능성에 확신을 갖게 됐다. 디토랜드를 아예 가상 전시 솔루션으로 사업화해 발전시켜야겠다고 생각했고, 두 번째 결과가 tvN과의 협업이었다. tvN은 잘 알려진 것처럼 CJ ENM의 종합 버라이어티 채널이다. 해마다 ‘즐거운랜드’라는 오프라인 행사를 열어왔는데, 역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최가 힘들어졌다. 프로그램별 부스를 해당 연예인들이 직접 찾으며 인기를 끌었는데, 지난해 10월 디토랜드 솔루션을 이용해 온라인에서 개최됐다. tvN 프로그램 [대탈출]을 모티브로 방 탈출 게임을 만드는 등 여러 게임적 요소를 가미했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다. tvN 프로그램을 주제로 만든 가상공간 속 테마파크라 이해하면 쉽다.

수많은 크리에이터가 양질의 콘텐트 쏟아낸다

유 대표는 “PC용 알파버전이라는 틀을 뛰어넘는 것이 디토랜드의 숙제”라고 말했다. 초기 알파버전 서비스만으로 시장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낸 모습을 보면서 메타버스 서비스로서의 가능성을 다시금 확신하게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로블록스 같은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과 차별점이 있나.

로블록스는 이미 17년이나 된 플랫폼이다. 당연히 플랫폼 구성과 기능 면에서 엄청난 강점을 가지고 있다. 디토랜드는 아직 이것저것 붙이고 보강해야 할 기능이 많다. 로블록스의 경우 12~15세가 타깃이다. 우리는 12~20세를 타깃으로 정했는데, 알파버전부터 과감하게 먼저 공개한 데는 이유가 있다. 1990년대부터 게임을 만들어온 아재 개발자들이 타깃 연령대 유저들의 감성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더라. 유저와 개발자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큰 거다. 고민하느니 하루라도 빨리 오픈해서 단점을 드러내자고 결론 냈다. 대신 유저 피드백도 실시간으로 받아 수정도 빨리 끝내는 식이다. 그게 우리의 개발 원칙이고, 오픈 플랫폼이라는 메타버스의 성격과도 맞는다. 무엇보다 시급한 건 모바일 버전 개발이다.

모바일 버전은 언제 나오나.

요즘엔 MMORPG도 모바일로 즐기는 시대 아닌가. 젊은 유저들은 마우스보다 터치에 익숙한 세대다. 인디크래프트나 tvN ‘즐거운랜드’ 모두 PC 기반이었다. 행사 기간 내내 ‘모바일 서비스였다면 파급력이 엄청났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올해 모바일 버전이 나오면 디토랜드의 폭발력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길 기대하고 있다. 유티플러스뿐만 아니라 메타버스업계 전체적으로 올해부터 흥미진진한 프로젝트들이 봇물 터질 듯 나올 거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시장을 누가 선점하고 강력한 기능을 선보이느냐에 따라 소수만 선택받는 시장이다. 소수의 승자가 살아남는 격전지에서 디토랜드가 유리한 출발을 한 건 맞다.

다양한 기업에서 협업 제안이 들어온다고 했는데.

처음 디토랜드 개발에 뛰어든 건 샌드박스게임 플랫폼을 만들자는 생각에서였다. 지금도 메타버스 플랫폼과 게임 간 차이가 크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게임업계는 이미 MMORPG라는 가상 세계를 성공적으로 구현해왔다. 기반 기술이 있기에 그만큼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에도 유리하다. 반면 게임 개발이 철저히 개발자들의 영역이라면, 메타버스는 혼자서는 못 한다는 인식이 이미 업계 전반에 깔려 있다. IT, 통신, 유통, 금융, 엔터테인먼트 등이 모두 같이 가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 자체가 너무나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수익화 모델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유저들이 자신이 만든 콘텐트를 다른 유저와 거래하고, 거래가 일어날 때마다 발생하는 수수료가 주수입원이 될 것이다. 가상의 머니를 현금화하는 것도 게임업체들의 기본 모델인데, 게임은 개발사나 퍼블리싱 업체가 유료화 모델을 관리한다. 디토랜드는 다르다. 철저하게 유저와 크리에이터들에게 이런 권한을 위임하려 한다. 모바일 버전을 내놓고, 아바타 옷이나 액세서리를 사는 등 간단한 결제 모듈부터 준비 중이다. 디토랜드 안에는 루아스크립트라는 프로그래밍(코딩) 언어도 탑재돼 있다. 처음엔 간단한 오브젝트만 배치하고 놀던 유저들이 따로 배우지 않아도 어느 순간 코딩을 이해하고 게임을 만들더라. 코딩 강사들이 실제로 디토랜드를 수업에 활용하고 있고, 정부 공인 민간자격증인 디토랜드 자격증도 있다. 코딩 강사들의 반응이 뜨겁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메타버스는 어떤 양상으로 발전해갈 거라 보나.

유튜브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방송은 이제 더는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다. 개인이 재미로 만든 콘텐트가 엄청난 수익으로 돌아온다. 즉, 자발적 참여다. 메타버스 플랫폼도 그렇게 갈 거다. 수많은 크리에이터가 양질의 콘텐트를 쏟아낼 것이다. 개인이 오프라인에서 대규모 전시를 여는 건 어렵지만, 메타버스 안에선 얼마든지 가능하다. 친구 몇 명이 우리만의 전시회를 열 수도, 개인 사무실과 쇼핑몰을 만들 수도 있다. 세상이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정준희 기자

202201호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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