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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한계를 깨뜨리는 혁신의 법칙 

장진원 기자
창업 이후 R&D 투자액 1조원 이상, 보유 특허 2900개 이상, 세계 최초 개발 기술·제품 19개. 1993년 주성엔지니어링을 창업한 황철주 회장이 거둔 혁신의 열매들이다. 30여 년간 스스로 세워온 올곧은 경영 철학은 기업가와 리더가 이끌어야 할 혁신의 교과서나 다름없다. 그의 혁신 에너지가 응축된 주성엔지니어링은 포브스코리아가 선정한 ‘파워 혁신기업 TOP 100’에서도 쟁쟁한 대기업·기술기업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올랐다.

“R&D 부문에 고졸과 인문계 출신을 본격 채용하고, 향후 전체 채용 인원의 절반까지 늘리겠다.”

반도체를 비롯해 디스플레이, 태양광 제조 장비가 주력인 기술 기업 CEO의 선언은 ‘파격’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이하 주성) 회장의 폭탄선언이다. 그는 지난해 말 이 같은 내용의 신입사원 채용 계획을 밝히며 업계를 놀라게 했다.

황 회장은 1993년 주성 창업 이후 줄곧 국내를 대표하는 ‘벤처 1세대’로 명성을 이어왔다. 창업가이자 무역협회 부회장,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등을 역임한 존경받는 CEO의 느닷없는 각오는 그만큼 폭발력을 더하며 세상에 파문을 던졌다.

실제로 황 회장은 올 2월 진행한 신입사원 공채에서 성별과 학력, 전공, 경력을 묻지 않는 열린 채용에 나섰다. 주성은 전체 임직원 500여 명 중 연구개발(R&D) 부문의 인력이 65%에 달할 만큼 기술 개발과 혁신에 올인한 기업이다. 학점 좋은 명문 공대생을 모셔 와도 시원치 않을 판에 파격적인 인사 실험에 나선 건 기업가로서 평생을 이어온 그만의 ‘혁신론’이 바탕이 됐다.

“대학 다닐 때 뭘 배웠는지 제대로 기억하시나요?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사실 고졸 사원을 뽑기 시작한 지 몇 년 됐습니다. 막상 보니 대졸 사원과 별 차이가 없어요. 오히려 열정적인 자세와 결과물은 더 낫더군요. 그럼 왜 굳이 대졸이나 이공계 졸업자라고 선을 그어야 하죠? 유명 대학 출신 박사 학위자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는 건 아닙니다.”

채용 실험 배경을 묻는 질문에 황 회장은 뜬금없이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부터 물었다. 머뭇거리는 사이 그의 입에선 ‘고정관념’이나 ‘변화에 대한 두려움’ 같은 진단들이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나왔다. “기업가들이 공부와 학습의 차이를 모른다”거나 “용기 있는 리더십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선문답 같은 진단이 계속 이어졌다.

황 회장은 고졸과 인문계 졸업자를 R&D 부문에 투입하지 않는 것 자체가 변화를 싫어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기업과 리더의 사고방식은 50년 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를 모방경제 시대의 유물이라고 표현했다.

“지식의 원천이 대학에만 있을까요? 스마트폰으로 10초만 검색하면 웬만한 자료, 즉 지식이 다 공유되는 세상입니다. 최근까지 한국의 기술산업에는 진정한 기술자, 즉 혁신가가 없었어요. 선진국 기술을 따라 하거나 따라잡기에만 급급했죠. 이제 모방으로 먹고사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엄청나게 오른 노동 코스트를 모방만으로 감당할 수도 없어요. 그러니 답은 혁신밖에 없습니다. 혁신을 이룰 인재 역시 과거처럼 지식만 달달 외운 사람은 필요 없어요. 공부를 넘어 학습하는 사람이 바로 혁신의 주인공이 될 수 있죠.”

공부를 넘어 학습하는 사람이 혁신의 주인공


공부가 아닌 학습을 해야 한다니, 갈수록 듣는 귀가 꼬여온다. 공부와 학습이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황 회장은 ‘지식과 터득’의 차이라고 정의했다. 공부는 외우는 것, 즉 다른 사람이 이뤄놓은 과거의 지식을 기계적으로 외워서 알게 되는 것을 이른다. 그의 말대로라면 지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잊어버리는 게 당연하다. 이에 반해 학습은 지식이라는 기본에서 출발해 스스로 진화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황 회장은 “스스로 터득한 건 웬만해선 잊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모방경제 시대 우리의 교육이 지식의 습득(공부)에 그쳤다면, 이제는 학습을 통해 혁신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굳이 왜 고졸이나 인문계 전공자를 R&D에 투입할까요? 공부만 한 사람이 혁신을 이루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학습은 철저하게 강의실이 아닌 현장에서 이뤄집니다. 안타깝게도 공부와 학습의 차이가 뭔지 모르는 리더가 태반이에요. 그러니 기존 관행을 뒤엎고 완전히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깨달음도 용기도 없죠.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바로 용기인데 말이죠.”

파격적인 인사 실험 배경이 리더의 용기라는 설명이 그제야 조금씩 머리에 박힌다. 현대 기업의 생존 요건이 ‘업종 불문 혁신뿐’이라고 명토 박은 황 회장의 일갈은 창업 이래 30년을 한결같이 달려온 삶의 궤적과 맞물려 있다.

1993년 주성을 설립한 황 회장은 당시까지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반도체 제조 공정의 핵심 장비를 세계화하는 데 성공했다. 1995년에는 반도체 D램 제조의 핵심인 커패시터 전용 증착장비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반도체 제조 장비에 들어가는 장비라 곤 나사 하나 못 만들던 한국이 핵심 제조 장비 생산국으로 발돋움한 쾌거는 곧 주성의 역사나 다름없다.

이후로도 주성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광 및 LED·OLED 제품의 전(前)공정 핵심 장비를 독자적으로 기술개발해 국산화해왔다. 현재 반도체 등 제조 장비 영역에서 주성이 세계 최초로 선보인 제품과 기술만 19개, 특허는 무려 2900여 개가 넘는다. 그야말로 한국 장비산업 혁신의 요람이다.

주성을 창업하기 전 그의 이력 역시 알을 깨고 나오는 고난과 이를 뛰어넘은 혁신의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경상북도 고령 빈농 집안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황 회장은 상경을 결심한 아버지와 가족을 따라 초등학교 시절 서울에 적을 뒀다. 멍에처럼 짊어졌던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으로 공업고등학교 전자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엔 울산에 있는 섬유 공장에 들어갔다. 고졸사원이라는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며 낙담하던 차에 공고 졸업자 대학 특례입학 기회를 살려 인하공업전문대학에 진학했다. 내친김에 인하대학 전자공학과에 편입하며 학력 차별이 주는 설움을 씻어냈다.

쌀밥 구경조차 어려웠던 빈농의 아들이 스스로의 깨달음과 노력 끝에 대졸 신입사원 딱지를 받은 건 1985년 들어서다. SK하이닉스 전신인 현대전자에 입사하면서 반도체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됐다. 공고 시절 익힌 지식과 현장에서 얻은 실무 기술이 더해지자 곧 실력 있는 사원 소리를 들었다. 현대전자 입사 이듬해 스카우트 제안을 받고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으로 이직했다. 당시 경력은 그의 인생 역정에 또 다른 전기가 됐다. 1993년 ASM는 느닷없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안정적인 삶에 만족하던 월급쟁이에게 닥친 위기는 외려 벤처창업가로 도전과 모험에 나서라는 독려처럼 들렸다.

남보다 늦은 혁신은 모방일 뿐


탄탄한 기술력과 열정으로 무장한 뉴플레이어의 등장은 창업 초기부터 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 시장의 새 장을 열었다. 창업 3년 만에 개발해낸 반도체 증착장비는 당장 내수시장의 95%를 장악하며 벤처 신화를 써 내려갔다. 1997년 국내 기업 최초로 반도체 전(前)공정 장비 수출이라는 금자탑도 쌓았다. 1998년에는 세계 최초로 ALD 양산에 성공했으며, 1999년 들어선 IPO 최고가로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핵심인 증착은 반도체가 원하는 전기적인 특성을 갖도록 분자·원자 단위의 물질을 얇은 박막 두께로 촘촘히 쌓아 올리는 과정이다. 증착 물질 결합 방식에 따라 화학적 증착(CVD), 원자층 증착(ALD)으로 나뉜다. 주성은 창업 5년 차인 1998년 세계 최초로 ALD 양산화에 성공했다. 이후 디스플레이와 태양광 제조 장비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한국 장비업계를 대표하는 퍼스트무버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개에 달하는 세계 최초 기술과 제품을 내놓기까지 황 회장이 단 한순간도 놓지 않은 화두는 바로 혁신이다. 창업 이후 현재(2021년 3분기 기준)까지 R&D에 쏟아부은 금액만 1조1423억원(인프라 포함)에 달한다. 순수 R&D 비용으로 좁혀도 8000억원을 훌쩍 넘긴다. 매출 규모 3000억원대 중견기업이 투자한 금액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수치다. 황 회장은 2021년 3분기 기준 매출의 15% 이상을 R&D에 투자했다. 이 모두가 30년을 오롯이 현장에서 깨우쳐온 그만의 혁신 철학 덕분이다.

“고졸과 인문계 전공자를 R&D에 투입한다 하니 우려의 시선도 있을 겁니다. 세상이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고 말만 할 뿐, 그게 뭘 의미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겠죠. 제아무리 능력이 있다 해도 한 사람이 모든 걸다 해낼 순 없어요.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여야 살아남는 시대에는 결코 맞지 않는 패러다임이에요. 반면 분야별로 세분화하면 어떨까요. 100명이 1%씩만 잘해도 합치면 100을 만들어냅니다. 혼자서 하는 것보다 속도도 훨씬 빠르죠. 이런 인프라와 시스템이 갖춰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어요. 30년 전 중학교 나온 사람이 하던 일을 지금은 대학 나온 사람이 하고 있습니다. 업무 효율이 얼마나 떨어진 겁니까. 일의 시스템을 완전히 재정립해야 합니다.”

황 회장은 “아무리 혁신에 성공해도 남보다 늦으면 더는 혁신이 아닌 모방에 불과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항상 프로세스에 투입되는 인력의 세분화·전문화를 최우선 순위에 두는 이유다. 황 회장은 업무, 즉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그 일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내리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며 또 다른 그만의 철학을 꺼냈다.

혁신의 가치가 100이면 기술의 가치는 10


▎용인 R&D센터에는 회장실이 따로 없다. 연구실과 실험실 등 황철주 회장이 업무를 보는 곳이 곧 그의 자리다.
“기준과 표준을 명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적습니다. 대개는 개념적으로 이해하고 있죠. 기준은 일의 시작을 잘하기 위함이고, 표준은 일의 결과물을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겁니다. 업무 목표를 위한 기준점을 확고히 잡은 후, 실제 일을 해나가는 과정을 표준화해서 관리해야 선진국형 결과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일을 대하는 목표와 시대 환경, 경쟁력은 그때그때 달라집니다. 그럴 때마다 기준과 표준을 정하는 사람이 바로 리더예요. 지금이 바로 이런 리더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한국 경제는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이 극대화된 모델이다. 글로벌 선두 기업의 트렌드와 제품, 전략을 모방해 이를 더 값싸게 내놓으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1960년대 이후 매진한 공업화 정책은 정부의 지원과 몇몇 대기업이 주도한 모방경제를 통해 선진국의 문턱을 넘을 수 있게 해줬다. 황 회장은 “우리 경제에서 패스트팔로어의 효용가치가 사라진 지 오래”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기준과 표준을 제때 제시하지 못하는 리더의 부재도 마찬가지다.

“모방으로 먹고사는 시대는 이미 끝났어요. 우리나라도 노동 코스트가 엄청나게 올라 인건비를 감당하기조차 어렵게 됐습니다. 결국 혁신을 통해 살아남는 수밖에 없게 됐죠. 교육 수준이 높은 특정층에만 정보가 국한됐던 시대에는 지식 수준이 곧 성장의 조건이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지식은 이제 독점이 아닌 공유의 대상이 됐어요. 그것도 빛의 속도로 공유돼죠. 학위나 학벌은 더는 혁신의 조건이 될 수 없어요.”

황 회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결국 혁신으로 귀결됐다. 혁신을 이뤄내는 방법 역시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으로 풀어냈다. 지식과 기술을 갖췄다는 것만으로는 진짜 혁신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지식에 오감(五感)을 더하면 기술이 되고, 기술에 영감(靈感)을 더하면 비로소 혁신이 이뤄진다는 게 그가 말하는 혁신의 과정이자 요지다.

“오감은 말 그대로 몸으로 느끼는 모든 감각을 말합니다. 오감을 통해 얻는 건 결국 생각이죠. 지식이 지식에서 끝나지 않고 오감, 즉 생각이 들어갔을 때 기술로 바뀝니다. 기술이 있다고 다 되는 건 아니에요. 기술에 자기만의 영감을 더해야 비로소 세상을 바꿀 혁신으로 이어지는 거죠. 스마트폰에 담긴 기술은 특별한 게 아니에요. 어떤 영감을 담아 모아냈느냐가 혁신의 절정으로 이르게 한 거죠. 혁신의 가치가 100이라면 기술의 가치는 10이에요. 다른 사람이 기술로 10을 만들 때, 한순간에 영감을 넣어 100을 만들면 그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혁신입니다.”

황 회장에게 혁신을 향한 열정은 단순한 사업적 구호에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삶의 지표나 신념에 가깝다. 2020년 1200억원을 투자해 세운 용인 R&D센터에는 회장 집무실이 따로 없다. 회의실 등 그때그때 필요한 장소에서 업무를 보고 결재한다. 회장이 그러하니 임원들도 제 방을 가졌을 리 만무하다. 창립 이래 지금까지 매일 아침 7시 30분에 열리는 기술회의를 멈추지 않는 건 혁신에 목맨 의지를 드러내는 단면이다. 7시 이전에 출근해 회의를 준비하는 건 30년 된 루틴이다. 그렇다고 CEO와 임원진만 참석하는 무거운 자리도 아니다. 연구개발 성과를 자랑하고 싶거나, 반대로 도움을 받으려는 직원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평균 20~40명이 참여하는 아침 기술회의는 지금도 회사가 이뤄낸 기술혁신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기술회의를 마치고 나면 발걸음은 으레 연구실과 실험실로 향한다. 회장실이 따로 없으니 그가 서 있는 곳이 곧 집무실이다. 기술회의에서 공유한 내용을 현장에서 점검하고 연구개발 과정과 기준, 표준, 방향을 필요할 때마다 즉석에서 다시 설정한다. ‘혁신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는 황 회장의 지론 덕에 회의실과 실험실에서 결재와 보고가 이뤄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황 회장은 이런 과정 모두를 리더의 몫이라고 말했다.

“주성이 세상에 내놓은 혁신 기술 중 제가 관여하지 않은 게 거의 없습니다. 가장 절실한 사람이 바로 저니까요. 다른 사람 것을 가져다 결과만 내려는 건 리더가 아니라 보스죠. 저 역시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으면 물러날 때가 올 겁니다. 하지만 저 없이도 문화와 철학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만 주성이라는 이름이 지속할 수 있어요. 혁신으로 지속성장하고, 일하는 사람 모두가 잘살고 행복해지자는 게 주성과 제 삶의 목표입니다.”

사업가가 아닌 기업가가 되라


황 회장은 인터뷰 내내 리더의 역할을 강조했다. 30년 기업가의 길에서 스스로 깨쳐 정의한 철학은 결국 혁신과 리더라는 두 개의 화두로 집약됐다. 부단한 혁신을 위해 기준과 표준을 세우는 일, 지식에 오감을 더하고 기술에 영감을 불어넣는 일이 모두 리더가 제시해야 할 비전이라는 뜻이다. 황 회장은 한국 경제를 현재의 반석에 올려놓은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의 실종을 특히 안타까워했다.

“자본주의 체제를 선택한 이유가 뭘까요? 모두가 더 잘살고 행복해지기 위해서죠. 더불어 약자와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함께 잘살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기업이 창업해서 성공에 이르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모두가 행복한 삶을 이끌어냈는지, 아니면 대주주 등 특정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갔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게 기업가와 사업가의 차이예요. 기업가는 다른 이를 행복하게 만들면서 회사를 키워가는 사람이고, 사업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원하는 리더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사업가만 득세한다면 남는 건 결국 전쟁뿐입니다.”

황 회장은 파격적인 인사 실험에 나선 것 역시 기업가, 즉 회사와 사회를 이끄는 리더십의 발로라고 고백했다. 주성 임직원의 65%를 차지하는 R&D 인력은 철저히 신입사원 채용이 원칙이다. 지식은 과거이고, 혁신은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라는 그의 원칙 때문이다.


▎2020년 경기도 용인에 신축한 R&D센터. 1200억원을 투자해 반도체·디스플레이·태양광 제조 장비 개발을 한 공간에서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했다
“경력자는 수가 정해져 있어요. A회사가 경력자를 채용하려면 B회사에서 데려와야만 합니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B회사는 또 다른 기업에서 사람을 찾게 되죠. 무한반복이에요. 얼마나 비효율적입니까. 사회 전체적으로 업무 효율이 극도로 저하될 뿐 아니라 혁신경제를 무너뜨리는 좋지 않은 관행이에요. 말로는 ‘우리가 세계 1등이고 혁신기업’이라 외치면서도 계속해서 경력자를 찾고 있습니다. 즉, 혁신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점과 사회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경영 전반을 전 직원에게 공개하는 것도 황 회장이 오랜 기간 지켜온 경영 원칙이다. 주성은 매년 회사 이익의 20%를 직원들과 공유하고, 나머지 20%는 주주에게 돌린다. 이익을 어떻게 나눌지 고민하고 다툴 필요가 없다. 시스템이다. 황 회장은 “백이면 백 모두를 100% 인재로 키울 순 없다”면서도 이해관계자 모두의 행복한 삶을 위해 혁신을 주도하는 게 기업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잘살고 행복해지자가 답입니다. 그럼 어떻게요? 답은 ‘일’밖에 없습니다. 일은 가치를 창출하는 모든 것을 뜻해요.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일은 고통일 뿐이죠. 고통은 줄이고 가치를 키워야 합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구분하는 것, 그게 바로 기준이에요. 서울로 가야 하는 사람이, 부산으로 200km로 달리면서 10km로 서울을 향하는 사람과 비교합니다. 속도가 아닌 방향이 중요한 데도 말이죠. 기준과 표준을 명확히 하고 업무 혁신을 통해 더 잘살고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게 바로 리더의 숙명입니다.”

※ 황철주의 정의(定義)
■ 지식을 독점하는 시대는 끝났다. 지식은 이제 공유물이다.
■ 공부는 지식을 외우는 것이고, 학습은 지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다.
■ 분업적 협력을 통해 100명이 1%씩 빠르게 해내는 게 더 효율적이다.
■ 기준은 일의 시작을 잘하기 위함이고, 표준은 일의 결과를 효율적으로 얻기 위함이다.
■ 지식에 오감(五感)을 더하면 기술이 되고, 기술에 영감(靈感)을 더하면 혁신이 된다.
■ 혁신은 강의실이 아닌 현장에서 이뤄진다.
■ 기술과 혁신을 이끌어내는 이가 바로 리더다.
■ 사업가는 돈을 벌고, 기업가는 행복을 만든다.




※ 주성엔지니어링이 걸어온 길
1993 주성엔지니어링 설립
1995 Warm Wall Type UHV-CVD 장비 개발 완료(세계 최초)
1997 반도체 전(前)공정 장비 국내 최초 수출
1998 세계 최초 공간분할 ALD 개발 완료
1999 코스닥 상장(IPO 최고가)
2002 TFT LCD용 CVD 장비 개발 완료
2006 OLED 증착장비 개발 완료
2007 박막형 태양전지장비 개발 완료
2012 SDP ALD 장비 개발 완료(세계 최초)
2014 TSD ALD 장비 개발 완료(세계 최초)
2017 대한민국코스닥대상 ‘대상’
2020 주성 용인 R&D센터 신축
2021 ‘소부장 으뜸기업’ 반도체 증착부문 선정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신인섭 기자

202203호 (20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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