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사고력의 진화] 사고력과 콘텐트 혁명 

 

텍스트 추종에 익숙해지면 기존 질서와 권력체계에 순응하게 되며, 자신이 그 권력을 획득하면 자신의 텍스트를 추종하기를 요구한다. 그 텍스트를 깨뜨리는 것이 우리에게 현재 요구되는 사고력이고 그것이 바로 콘텐트를 생산한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2021년 7월 2일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열린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는 제 68차 무역개발이사회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공식 결정해서 통과시켰다. 1964년 유엔 무역개발회의가 설립된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만큼 발전했으니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비록 1997년 외환위기에서 비롯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강제적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었고, 그 역동성이 추동력이 되어 더 강한 경쟁력을 갖게 돼 지금까지 계속해서 발전했다. 그래서 드디어 ‘대망의 선진국’ 대열에 공식적으로 진입한 것이다.

자본도 자원도 없었던 대한민국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는 교육과 잘살겠다는 욕망이었다. 20세기는 ‘속도와 효율’의 시대였다. 전반기의 전쟁은 도덕·인격·문화 등을 살펴볼 수 없는, 무기·군사·병참의 경쟁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세계는 산업화가 지배했다. 산업화란 입력(input)과 출력(output)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동되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인 주입식 교육은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20세기 속도와 효율의 구조에서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개발도상국 대한민국은 속도와 효율로 무장해서 추격사회에서 살아남았고 성공했다. 그러나 선진국 대한민국은 더는 누군가를 추격하고 베끼며 여전히 속도와 효율로 살아갈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탈(脫)추격사회에서는 베끼고 따라가는 습속을 버려야 한다.

탈추격사회에서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혁신·융합·창조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단순히 공학·과학·경영 등에서의 혁신과 창조가 아니라 전 존재적으로 혁신하고 더 높은 가치를 창조해야 하는 시기이다.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어떠한 보편적 가치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지, ‘세계시민’으로서 지금 우리가 당면한 것은 무엇인지 등을 읽어내야 한다. 그게 바로 시대정신의 바탕이다. 그게 있어야 비로소 미래 의제를 도출하고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콘텐트의 힘’은 단순한 스토리텔링 수준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더 큰 힘을 이끌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생각이 바뀌어야 삶도 미래도 바뀐다. 우리가 지금까지 수행해온 교육 방식은 철저한 텍스트 추종의 유형이었다. 텍스트는 가장 안정되고 인정된 지적 축적물이다. 그것을 수용하고 실천하며 응용하는 것은 분명 유용하다. 그러나 확장성이 부족하거나 창의적 사고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텍스트 추종에 익숙해지면 기존의 질서와 권력체계에 순응하게 되며 자신이 그 권력을 획득하면 자신의 텍스트를 추종하기를 요구한다. 그 텍스트를 깨뜨리는 것이 우리에게 현재 요구되는 사고력이고 그것이 바로 콘텐트를 생산한다. 텍스트를 깨뜨리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콘텍스트(context)로 확장하는 것이다. 탈추격사회는 바로 그런 콘텍스트의 접점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내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콘텍스트로 확장하고 콘텐트의 힘을 길러내기 위해 어떤 사고력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나는 『인문학자 김경집의 6i 사고혁명』이란 책에서 여섯 개의 ‘i’로 시작하는 개념을 정립하고 설명했다. 그것은 기존의 지식 영역을 넘을 수 있는 탐구, 직관, 영감통찰, 상상력, 나/개인이다. 여섯 개의 ‘i’, 즉 탐구·직관·영감·통찰·상상력을 통해 확장된 사고의 영토가 ‘나’로 귀결되고 주체적이고 창의적으로 발상하고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과정을 통해 콘텍스트로 확장되며 콘텐트의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진다. 주어진 지면의 한계 때문에 여러 가지 전략 가운데 하나의 실용적인 방법을 사례로 들어보겠다. 바로 ‘꾸러미 독서’이다.

책은 지식과 정보의 일차 관문이며 가장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의 산물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는 편리함에 빠져 책을 외면하지만, 책은 한 주제를 포괄적이면서 동시에 세밀하고 체계적으로 전개하는 문화의 결정체이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를 통찰하고 체계와 논리로 소화해 나의 삶으로 전개하려면 일차적으로 독서가 필수적이다. 책은 대개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여러 해 혹은 심지어 평생 연구한 것을 최대한 사실에 근거해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완성한 지적 산물이다.

‘꾸러미 독서’는 책을 통한 자기 진화와 사고력 증진에 크게 도움이 된다. 특히 이것이 유용한 건 이미 우리가 한 가지 직업 또는 관심사에 종사하며 살 수 없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에 태어난 사람은 평생 적어도 여섯 번 직업이 바뀐다고 미래학자들이 진단한다. 만약 다른 분야로 이직하거나 전업할 경우 먼저 시간 여유를 갖고 그 분야에 대한 책을 ‘꾸러미로’ 열 권쯤 읽어보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책 열 권을 읽고 난 뒤에 ‘전문분야 저널’을 읽어보라는 것이다. 책은 이미 ‘과거’의 것이다. 현재 그 분야에서 생산되는 최신 지식과 정보는 바로 저널에 있다.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전문 저널이 별로 없다. 다행히 영어로 된 저널은 많고 인터넷만 뒤적여도 찾을 수 있다.

어느 분야건 처음 만나면 용어도 낯설고 개념도 막연하다. 그러나 한두 권 읽으면 각 분야의 특징과 핵심을 이해할 수 있다. 네댓 권 읽으면 큰 윤곽을 읽어낸다. 열 권을 읽으면 시야가 크게 트이고 전문가의 어깨쯤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냥 막연하게 생각이 바뀌는 게 아니고, 설령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나의 논리와 체계로 소화해내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속도와 효율에 맞춰 주입식 교육과 전문화 학습에 몰두했기 때문에 유연성과 응용력, 확장성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몇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보고 듣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한 분야의 책 열 권을 읽으면 큰 흐름을 읽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같은 점과 다른 점까지 논리적이고 실증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런 사고의 근육들이 조금씩 단단해지면 저절로 사고력이 확장되고 강화된다. 처음에 버거우면 전반기에 다섯 권을 읽고 후반기에 나머지 다섯 권을 읽으면 될 것이다. 이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계속해서 여러 분야로 확장해볼 수 있다. 그렇게 10년이면 열 개 분야에 대한 전문가적 지식과 이해가 쌓이고 그 조각들이 스스로 결합하고 융합해 어마어마한 힘과 놀라운 폭발력을 갖게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자꾸 ‘말과 경주’하라고 강요한다. 어리석은 일이다. 내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말을 이길 수 없다. 말 타는 법을 배워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기계와 기술의 혁명이 아니라 사고의 혁명이다. 생각이 바뀌어야 삶이, 미래가 바뀐다. 그게 바로 사고혁명이다.

- 김경집 인문학자

202203호 (2022.02.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