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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박사의 ‘창조적 불만’ 

 

아모르 보스 박사는 MIT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64년 자신의 이름을 딴 오디오 업체 보스를 설립했다. 2013년 생을 마감하면서 보스의 주식 지분 대부분을 MIT에 기부하면서 또 다시 화제가 됐다. 생전에 돈이 목적이 아니라 흥미로운 것을 해보려 사업을 했다는 그의 자취를 따라가본다.

▎1964년 MIT에서 강연 중인 아모르 보스 박사 / 사진:보스
보스사(Bose Corporation)는 오디오 제품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는 글로벌 기업으로, 미국 매사추세츠주 프레이밍햄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일반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진 보스 스피커와 헤드폰은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보스사는 스피커와 헤드폰뿐만 아니라 전문 오디오시스템, 자동차 오디오시스템, 항공기 소음 제거 장비, 공연장 음향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등 다양한 음향 관련 제품을 생산한다. 2021년 기준으로 직원 7000명에 매출액은 32억 달러(약 3조 8000억원)이며, 포천 500대 비상장 기업 중 220위에 오르기도 했다.

보스사는 1964년 MIT 전기공학 교수였던 ‘아마르 보스 박사(Dr. Amar G. Bose, 1929~2013)’가 설립했다. 오디오 분야 혁신의 아이콘인 보스사의 출발과 이후 집착에 가까운 끊임없는 혁신을 이해하려면 창업주 보스 박사를 알아야 한다.

보스 박사는 영국의 인도 식민지 시대 독립운동을 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인도인 아버지와 필라델피아에서 교사로 일했던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1929년 태어났다. 보스 박사는 어려서부터 전기기술에 호기심이 많았다. 어린 아마르가 라디오를 잘 고친다는 소문에 동네 사람들은 고장 난 라디오를 들고 왔고, 아마르는 완벽하게 수리해 용돈을 벌었다. 10대 시절 아마르는 친구와 함께 라디오, 모형 기차 등 전기제품 수리 가게를 실제 운영했는데, 이때 번 돈은 아마르 가족의 재산 형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아마르는 전기 분야의 소질을 학업으로 이어갔고, MIT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MIT에서 석사와 박사학위까지 받은 보스 박사는 1959년부터 MIT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보스 박사의 음향학(Acoustics) 수업은 MIT 학생들에게 큰 인기가 있었다. 수많은 방정식으로 표현된 음향의 원리를 실제 생활 속에서 찾고 적용하는 수업 내용이 학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학생들은 학기 말 보스사 공장을 견학할 수 있다는 점과 오픈북 기말시험 시간 중간에 아이스크림이 제공되는 것에 더 매료되기도 했다.

보스 박사의 연구는 음향심리학(psychoacoustics)과 정신물리학(psychophysics) 분야에 걸쳐 있었다. 음향심리학은 사람이 인지하는 소리에 대한 탐구이고, 정신물리학은 인지와 측정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보스 박사는 이 두 분야에 걸쳐 많은 연구를 수행했는데, 실험을 위해서 산 스피커의 소리가 문제가 되었다. 보스 박사의 연구용 스피커에 대한 불만은 제대로 된 스피커 아이디어로 이어졌고, 그의 MIT 지도교수이자 멘토였던 중국계 리육윙 교수(Lee Yukwing, 1904~1989)의 조언과 자금 지원으로 보스사를 설립했다.

보스사는 처음에는 미 국방부에 앰프 장비를 납품하는 사업을 했지만, 1968년 일반 소비자용 제품으로 ‘보스 901 스피커’를 출시했다. 보스 901은 20세기 최고 혁신 제품 중 하나라는 찬사와 함께 보스사를 단숨에 음향기술 분야 선도 기업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혁신 제품도 창업 때처럼 보스 박사의 불만에서 시작됐다. 콘서트장에서 청중이 듣는 소리의 80% 이상이 벽, 천장, 바닥 등에 반사되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모든 스피커가 직선적인 소리만 전달하는 것에 실망한 보스 박사가 반사음에 기반한 스피커 개발에 나선 것이다.

보스 901은 9개 유닛(unit)으로 구성된 스피커인데, 전면에 1개 유닛을 두고 후면에 8개 유닛을 두는 방식을 적용해 소리가 큰 공간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하여 마치 콘서트장에서 음악을 듣는 것처럼 생생한 음질을 제공했다. 보스 901 시리즈는 1968년 출시한 이후 2016년까지 무려 48년 동안 생산돼 보스사의 대표적 제품이 됐다.

이어 보스사는 ‘음향 도파관 기술(acoustic waveguide technology)’ 개발에 몰두했다. 이는 소리가 파이프오르간처럼 긴 관을 통과할 경우 볼륨감 넘치는 사운드로 재생되는 원리를 작은 스피커로 옮겨온 기술이다. 이것도 보스 박사의 불만에서 시작됐다. 그는 ‘좋은 사운드를 감상하려면 꼭 크고 복잡한 스피커가 필요한가?’라고 생각했고 여기에서 출발한 개발 노력으로 작은 스피커를 통해서도 압도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기술이 완성됐다. 이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 1984년 출시된 보스의 스테디셀러 ‘웨이브뮤직시스템(Wave Music System)’이다.

요즘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개발도 보스 박사가 비행기 여행 중 느낀 불만에서 출발했다. 1978년 유럽 출장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당시 기내에 처음으로 비치된 헤드폰을 사용해본 보스 박사는 그 음질이 비행기 엔진 소음과 섞여 너무 거슬려 크게 실망했다. 보스 박사는 바로 노트와 펜을 꺼내 방정식을 써 내려갔다. 보스톤에 착륙할 즈음, 소음을 또 다른 소리로 지워버리는 노이즈 캔슬링 기술에 대한 개념을 세웠다고 한다. 당시 군장비 소음으로 군인들의 청력 상실 피해를 고민하던 미국 정부와 협력해 보스사는 8년의 연구 끝에 이 기술을 완성했다.

이 외에도 보스사의 혁신은 아주 많다. 모두 보스 박사의 불만에서 출발했고 그 전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보스 박사의 불만을 필자는 ‘창조적 불만’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주변 소리에 대한 불만이 기술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데 집착하게 함으로써 보스만의 초격차 혁신 제품이 창조된 것이다.

보스 박사는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2011년 자신이 보유한 보스사의 과반지분을 그가 회사를 운영하면서 2001년까지 교수로 봉직했던 MIT에 기부했다. MIT가 보스사의 주인이 된 것이다. 보스 박사는 주식 매각 불가, 의결권 행사 불가를 조건으로 달았다. 자세한 기부 내용을 공개하는 것도 금지했다. MIT는 보스사에서 받은 배당금을 연구와 교육에만 사용할 수 있다.

기부 이후 보스사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공개된 자료가 없다. 회사 본부는 매사추세츠주 프레이밍햄에 있지만, 법인등록지는 델라웨어주이기 때문이다. 델라웨어 등록법인(Delaware Corporation)의 경우 차등의결권이 인정되며, 경영진 구성 등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한 사항들을 철저하게 비밀로 할 수 있다. 그의 ‘창조적 불만’이 승계에도 적용된 것이다. 그는 자신과 보스사를 키워준 MIT와 함께 보스사가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계속 이어나갈 방안을 찾아냈고, 이를 실행하고 세상을 떠났다.

- 이성봉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

202203호 (20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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