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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의 무역이 바꾼 세계사(26) 중국(中國)이라는 도그마_2: 세상의 도도한 흐름에 올라타자 

 

유라시아 대륙의 장대한 역사에서 촘촘하게 연결된 그물망 같은 실크로드에서 한반도의 역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중국의 닫힌 정주민 프레임이나 200년 동안 세계를 지배한 서구중심주의적 세계관이 아니라, 유라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우리의 시각으로 우리의 역사와 세계사를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어렸을 때 무협지를 꽤 많이 읽었다. 일본에는 발을 붙이지 못한 무협지가 1970~80년대 한국을 풍미했던 것은 한국의 역사적 현실과 중국의 치욕이 묘하게 같은 맥락 안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 중장년층은 1970~80년대 무협지를 읽으며 암울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고, 열패감을 잊으려 했을 것이다. 한국의 군사정권 시대를 함께 풍미했던 권위주의의 망령은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3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한국 사회를 떠돌아다니고 있다. 조선 후기에 소중화사상(小中華思想)에 빠진 조선 엘리트들은 세계 최고 문명국이라는 자만심에 빠져 제국주의 시대의 냉정한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애써 앞선 청나라와 유럽의 문물을 오랑캐의 것이라고 해서 배우려고 하지 않다가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중국 한족문명을 표준으로 삼고 조선을 소중화라고 간주했던 조선 후기 지배층은 오랑캐가 세운 청나라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문명의 표준이 조선으로 넘어왔다고 생각했다. 청이 지배하는 대륙을 “비리고 더러운 원수의 땅”(정조 시대 성리학자 김종후)으로 규정하고, 대외관계에서는 “오랑캐에게 머리를 숙일 수 없다”(대한제국 학부대신 신기선)고 선언했다. 조선 후기 사대부들의 ‘혐청’은 중국에 대한 일반 조선인들의 무지를 양산했고, 이는 다시 오늘날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의식으로 발전했다.

나는 수직적 질서를 강요하는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1990년대 10년간 8번이나 직장을 옮겼다. 권위적인 상사들이 장유유서 같은 수직적인 위계질서를 강요하는 것에 순응하지 못했다. 주위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회사를 세운 게 더 좋은 선택이었다고 이야기하며, 만약 직장생활을 계속했다면 인생 낙오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효율과 성과를 중요시해야 할 회사에서 위계질서와 의전 때문에 일이 제대로 안 되었던 것이다. 기원전 6세기에 통치 이데올로기로 만들어진 유학이 20세기 말 내 직장생활을 어렵게 만들었다.

철학자 최진석 교수는 “유학은 인문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이다”라고 설파했다. 또 인문학의 기본은 주체성인데 유학에는 주체성이 없고 고전 해석을 중시한다. 그나마 중국에서는 생산력이 커지고 경제가 복잡해지니 주자학이 명나라 때 양명학으로 발전했고, 그 이후에는 고증학으로 발전해갔지만 지식 수입자로서 지식을 생산해본 경험이 없는 조선은 1320년에 받아들인 이데올로기인 주자학에서 멈추고 말았다. 그 후 200년간 국가의 비효율 때문에 국가 재정이 바닥나자, 1592년 임진왜란 때 일본군들이 걸어서 한성으로 올라올 정도로 국력이 쇠퇴했다. 1876년 일본이 중국과 조선을 떼어놓으려고 강화도조약에 “제1관 조선은 자주국가로서”라는 조항을 넣었다. 1885년 청나라의 이홍장과 맺은 텐진조약 1조에 “조선은 독립국이다”라는 조항을 넣었다. 주자학적 가치에 함몰되어 소중화를 자처하던 조선의 후진적 식자들을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했을 때 그 행렬을 일본군들이 호위해줬다.

내가 경험한 중국


▎필자가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무협지 『사조영웅전』
1990년대에 중국에 가면 한국 사람들은 대접을 잘 받았다. 필자도 1990년대 후반 희토류에 투자하려고 중국을 방문했는데 가는 곳마다 중국 기업들이 극진하게 대접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원탁 테이블에 중국 기업의 고위 간부들이 참가해 돌아가면서 백주를 권해 대낮부터 인사불성이 되었던 추억도 몇 번 있다. 2000년대에 WTO 가입 이후 중국이 급격히 부상하며 한국인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특히 대도시 지역인 상하이, 베이징, 선전 등에서 한국인들에 대한 대우는 예전과 천양지차이다. 하지만 개발이 덜 된 2선도시나 동북지방에서는 여전히 한국인에 대해서 상당히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한국이 역사적으로 수천 년간 중국에 핍박을 받아왔다가 최근 몇십 년간 경제발전으로 중국보다 잘살게 되면서 현대 한국인들의 중국관에는 부정적인 요소가 꽤 많았다. 다시 중국이 부상하면서 사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자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공부 없이 미국 언론의 중국관과 한국 보수 언론의 중국 혐오를 부추기는 뉴스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지나치다. 중국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이다. 파트너와 잘 지내려면 좋든 싫든 파트너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

지난 30여 년간 만난 중국의 사업가들은 활력이 넘쳤다. 우리 고객사 중에는 중국 경제의 성장과 더불어 무섭게 성장한 회사가 많은데, 서구적 자본주의에 익숙하지 않아 불편한 경험도 많았다. 특히 정부의 불합리한 절차를 따라야 하거나 불투명한 거래 관행 등이 힘들었다. 중국에서는 ‘ 시(관계)’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여러 기업과 일을 해본 결과 시가 생각보다 덜 중요했다. 우리 회사에서 제공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솔루션이 있으면 손쉽게 시를 만들 수 있었다. 경쟁사들이 시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때 고객 솔루션 강화에 투자했더니 우리에게 더 많은 기회가 찾아왔다. 큰 틀에서 보면 다른나라 사업가들과 중국 사업가들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중국에도 똑같이 신뢰할 만한 고객과 그렇지 않은 고객이 있다. 우리가 봤을 때도 실력 있었던 중국 사업가들은 대부분 회사를 잘 키웠다. 우리가 신뢰할 수 없고 불편했던 사람들은 중국에서도 그리 잘 풀리지 않았다. 중국 장사꾼들의 강점은 돈에 대한 집중력, 유연한 사고, 협상에 강하다는 점이다. 중국 기업들이 지금까지 잘해왔던 것은 ‘샤오미’와 같이 가성비 높은 제품을 싸게 만들어내는 기술이었다. 이런 가성비 상품들은 품질에 문제도 많아 Made in China가 조롱하는 뜻으로 쓰이기는 했지만, 결국 중국 경제를 일으켰고 지난 몇십 년간 세계 물가를 안정시켰다. 중국인들의 유연한 사고는 제품을 싸게 만들어내는 기술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현장 여러 곳에서 발휘된다. 특히 협상 기술은 중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한 수 위다. 그래서 중국 기업들과 사업을 할 때는 항상 Plan B를 준비해서 협상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아직도 냉전시대, 군사독재 시절의 극단적 사고 패러다임, 심지어 소중화사상의 주자학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휘날리는 한국 어르신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불과 몇십 년 중국보다 잘살았을 뿐이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11억(실제는 14억) 거지떼’ 운운하면서 중국을 무시하는 철부지 엘리트들의 태도는 경악스럽다. 역사에 대한 섣부른 지식으로 환단고기류의 위대한 상고사를 주창하는 국수주의도 똑같이 위험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일본에서는 혐한서적이 판을 치는데 한국에는 혐일서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세계관과 역사관 없이 급변하는 세상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21세기 한국이 취해야 할 입장은


▎알리바바와 샤오미는 중국 태생의 글로벌 기업이다.
식당에서 떠들고 매너 없다며 중국인을 경시하고, 미국 사람들을 지나치게 떠받드는 우리의 근거 없는 우월감과 사대주의도 바뀌어야 한다. 미중 무역전쟁을 바라보는 한국 사람들 중에는 미국 유태계 언론들과 일본 극우파의 논리를 아무런 여과 없이 받아들이면서 중국을 폄하하는 사람이 많다. 장사를 하면서 역사를 공부해온 필자가 볼 때는 21세기에는 미국은 쇠락해갈 것이고, 중국과 인도의 영향력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중국과 인도 사람들에게는 열정과 활력이 느껴지지만, 미국 사람들에게는 부잣집의 편안함과 안일함이 느껴진다. 불과 100여 년 전에 소중화를 자처하며 망해서 사라져버린 명나라를 흠모했던 사대주의자들이 나라를 망쳤다면, 21세기 초반에는 구시대적 냉전 프레임에 갇혀버린 낡은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이 나라를 또 망가트릴 수 있다. 요즘의 세상은 예전 세상과는 다르다.

10년 전의 세계 시가총액 10대 기업과 오늘날 시가총액 10대 기업을 비교해보면, 천지가 개벽한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알리바바, 탄센트, 바이두, 차이나모바일은 무섭게 커왔고, 앞으로도 중국 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 우리의 무서운 경쟁자가 될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넓게 보고 다원화, 네트워크화되는 세상의 도도한 흐름에 올라타야 하는데, 근거 없는 우물 안 개구리식 문화적 우월감과 기묘한 대미 열등감, 대중 우월감을 가진 한국의 기득권 엘리트들의 편협한 세계관이 우리나라를 더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얼마 전 필자는 미국의 유명 정치경제학자와 이메일 대담을 했다. 그의 최대 관심사는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의존하고 정치군사적으로는 미국에 의존하는 한국이 미래에 어떤 스탠스를 취할 것인가?”였다. 한국,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는 이때 G2라는 미중 간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이 될지, 동북아의 균형추가 될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좌우될 것이다.

해방 이후 70여 년간 전 세계 유일한 분단 국가인 우리는 섬나라 아닌 섬나라로 살아가고 있지만 구석기시대부터 이어져 온 북방계 샤머니즘, 백두산의 흑요석,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 청동기시대의 세형동검, 선사시대부터 이어온 남방계 농경문화의 유입, 신라 고분의 북방계 유물, 로마·페르시아·인도계 문물, 소그드상인과 아랍상인의 발자취에서 한반도는 유라시아 동쪽 끝의 고립된 작은 땅덩어리가 아니라 수만 년간 유라시아 대륙과 폭넓게 교류해온 유라시아 역사의 주역이었다.

중국 대륙에 붙어 있는 반도의 작은 땅덩어리로 보이지만 동아시아 역사는 한반도를 빼놓고 결코 이야기할 수가 없다. 한반도와 만주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전쟁과 교류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한민족은 동아시아 역사의 종속변수가 아닌 중요 변수로서 대륙과 해양으로 활짝 창을 열어 세계사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미중 무역전쟁은 앞으로 수십 년, 아니 100년을 갈 것이라는 말도 있다. 미국과 중국은 우리에게 한쪽 편에 서라고 강요할 것이다. 한국은 중간재 수출이 많아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고차원방정식과 같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선택지도 좁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방과 포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 나름대로의 주체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려운 고차방정식을 풀어나갈 수 있다.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정웅 대표는…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약 30년간 4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 2000년 기업 간 전자상거래회사인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반도체 중고장비 분야 세계 1위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2년 발달장애인의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자폐전문 박람회 Austism Expo 조직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2015년 6월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 10월 무역의 날 대통령상 수상, 2018년 9월 Forbes Asia 200대 유망 기업에 서플러스글로벌이 선정됐다. 2015년부터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간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와 인류 무역사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들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202204호 (20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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