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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출 엔젠바이오 대표 

암 잡아내는 빅데이터 엔지니어 

김영문 기자
스티브 잡스, 앤젤리나 졸리 두 사람 모두 유전자 정보를 해독해 암 치료용 표적 유전자를 잡아냈다. 미국에서는 암 동반검사가 항암 치료 전 필수 검사로 자리 잡았다. 한국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이 검사를 ‘선별’에서 ‘필수’로 볼 가능성이 커졌다. 국내 최초로 유전자 검사 키트와 자동분석 소프트웨어까지 내놓은 엔젠바이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2015년 설립된 엔젠바이오는 2010년 KT 사내 벤처로 시작해 KT의 빅데이터 기술과 정밀진단 플랫폼 기술을 융합해 국내 최초로 ‘대용량 유전체 플랫폼’을 만들었다. 최대출 대표는 “엔젠바이오는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유방암, 난소암, 혈액암, 고형암 등 다양한 암종의 NGS 진단 제품을 허가받은 기업이자, 정밀진단 선도 기업”이라며 “우리의 연구개발 역량을 기반으로 동반진단, 액체생검 등 확장된 진단 영역에도 진출해 누구나 정밀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암을 진단할 때는 영상 진단검사, 조직검사 등을 기본적으로 시행하는데, 여기에 더해 유전자 검사도 중요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환자의 암이 유전성 암이어서 다른 암에 걸릴 위험이 높을 때, 자손에게 암이 유전될 위험이 높을 때, 유전자변이에 따른 맞춤형 치료가 가능할 때 유전자 검사를 시행합니다. 특히 유전성 유방암과 난소암 환자의 경우 암 발병 원인인 BRCA 1, 2 유전자변이를 NGS 검사로 확인하고 치료 방향을 결정합니다.”
-김명신 서울성모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2021년 12월 8일 엔젠바이오 기자간담회-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3명 중 1명은 암에 걸린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표적·면역 항암제 등 치료 효과가 좋은 약들이 나오면서 5년 이상 생존하는 말기 암 환자가 크게 늘었다. 대형 병원들도 NGS(Next Generation Sequencing, 차세대염기서열 분석) 기술을 가지고 암과 희귀질환 관련 개인별 유전체 정보를 파악해 치료에 나서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2년 9월 기준으로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강남성모병원, 충남대병원, 화순 전남대병원 등 전국 64개소에서 NGS 기반 유전자 패널 검사를 실시한다. 사실상 국내 대형 의료기관은 거의 다 도입했다고 보면 된다.

NGS가 뭘까. 코로나19로 PCR(유전자증폭)검사는 많이 알려졌다. 최근 정밀진단 시장에서 주목받은 이 기술은 한 번의 검사로 한두 개의 바이오마커(세포나 혈관 단백질, DNA, 대사물질 등으로 몸 안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지표)를 확인하는 식이다. 하지만 NGS는 유전체를 수많은 조각으로 분해해 각 조각의 염기서열을 데이터로 변환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검사 한 번으로 대부분의 바이오마커뿐만 아니라 고형암, 혈액암, 유방암, 희귀질환 등 다수 돌연변이까지 확인할 수 있다.

“글로벌 NGS 시장이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있어요. 유수 기관도 2024년엔이 시장이 약 10조원 이상으로 커질 거라고 내다봤습니다. 국내에서도 2017년 보험수가 적용이 시작된 후부터 NGS 기반 유전자 패널 검사를 받는 환자가 매년 3배씩 늘고 있어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에도 2만5000여 명이 넘는 환자가 NGS 검사를 받았습니다.”

지난달 서울 구로 엔젠바이오 본사에서 만난 최대출(50) 대표는 NGS를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미 자사 제품인 ‘브라카아큐테스트(BRCAaccuTest)’, ‘힘아큐테스트(‘HEMEaccuTest)’, ‘솔리드아큐테스트(SOLIDaccuTest)’가 각각 유방암, 난소암, 혈액암, 고형암을 진단하고 환자에게 맞는 치료법을 알려줄 목적으로 병원에서 사용된다”며 “국내에서 NGS 기반 정밀진단 패널(시약)과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갖춘 기업도 엔젠바이오가 유일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전 세계에서 패널과 소프트웨어를 다 가진 곳은 소피아 제네틱스, 아처Dx, GenDX 등 3~4곳 정도가 전부다. 엔젠바이오는 2017년 아시아 최초로 NGS 진단 패널에 대해 유럽 체외진단 의료기기 인증(CE-IVD)을 받았고, 지난해 싱가포르 의료기관에서 실시한 혈액암 정밀진단 제품 성능평가 결과에서 글로벌 경쟁사를 제치고 엔젠바이오 제품이 선택되기도 했다.

바이오 기업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엔젠바이오는 사실 KT에서 스핀오프(spin off, 사내벤처 분사)한 1호 사내벤처다. 최 대표는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PCS 통신회사 한솔엠닷컴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2002년 한솔엠닷컴이 KT 자회사였던 KTF에 인수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신사업팀을 맡으란 특명이 떨어졌고, 이때 내놓은 서비스가 지금 모바일뱅킹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M파이낸스’, 통화 중 걸려온 전화번호를 문자로 알려주는 ‘캐치콜 서비스’였다. 최 대표는 “월정액 500원짜리 유료서비스인 캐치콜은 순식간에 가입자 300만 명을 넘겼고, 서비스 출시 후 회사 수입이 급등했다”며 “이유가 궁금해 가입자 70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캐치콜 가입자는 통화량이 배로 늘어 휴대폰 요금을 더 냈다”고 설명했다. 데이터분석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계기였다.

이게 최 대표의 길이었는지 KT에서도 신사업전략팀을 맡았다. 클라우드 기반사업 아이템을 고민하던 중에 유전체 데이터분석 사업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최 대표는 “한 사람의 유전체 데이터가 100기가바이트(GB)에 이르는데, 클라우드 인프라를 활용하면 방대한 유전체를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실제 2014년 국내 최초로 클라우드 기반의 유전체 데이터분석 서비스를 출시해 국내 바이오연구소, 의과대학 등에서 반향이 컸다”고 말했다.

그에게 한 번의 기회가 더 찾아왔다. 2014년 내부 NGS 사업팀을 눈여겨본 황창규 전 KT 회장이 최 대표를 불러 “도와줄 것이 없냐”고 물은 것이다. 최 대표는 곧바로 “독립해서 NGS 기술에 진단을 더한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고 답했다. 이후 ‘독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곧바로 체외진단 바이오벤처 젠큐릭스와 KT가 관련 사업법인에 각각 15억원을 출자했고 사내 소프트웨어 개발자, 데이터분석 전문가 등 4명이 합류했다. 엔젠바이오는 2015년 10월 KT 1호 사내벤처가 됐다. 독립회사가 된 엔젠바이오는 당장 시장에 선보일 제품이 필요했다.


KT에서 나와 가장 먼저 한 일이 뭐였나.

우리 제품이 있어야 했다. 당시는 NGS 진단이란 말조차 생소할 때였다. 클라우드 기반의 데이터분석 기술을 보여주려고 출발했는데, 국내에 테스트 키트조차 변변치 않았으니 말이다. 당시엔 스위스 소피아 제네틱스 제품 정도만 구할 수 있었는데 가격이 무척 비쌌고 분석 기간도 오래 걸렸다. 우리는 기존 검사 비용을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추고, 며칠 걸리던 검사 기간도 30분 내로 끝내자는 목표를 세웠다. 가장 먼저 BRCA 1, 2 유전체 두 개로 진단이 가능한 유방암을 타깃으로 삼아 제품 개발에 매달린 끝에 목표에 근접할 수 있었다. 다행히 시장도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2013년 미국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이 유전자 검사로 유방을 절제하고 난소를 적출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관련 제품을 개발했다.

그렇다. 2016년 유전성 유방암·난소암을 진단하는 ‘브라카아큐테스트’를 출시했는데, NGS 기반 진단 패널로는 첫 제품이다. 이듬해 6월 아시아 기업 최초로 유럽에서 체외진단 의료기기로 인증(CE-IVD)을 받았고 같은 해 12월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도 획득했다. 이 외에도 혈액암 5종을 정밀진단할 수 있는 ‘힘아큐테스트’와 위암·폐암·대장암을 진단할 수 있는 ‘솔리드아큐테스트’도 국내 최초로 의료기기 인증을 받았다. 지난해 11월에는 골수 또는 장기 이식 전에 조직 적합성을 검사하는 ‘에이치엘아큐테스트 올(HLAaccuTest All)’도 유럽 의료기기 인증을 받았다. 이 제품은 이미 20여 곳이 넘는 국내 대형 의료기관에서 사용하고 있다. 일동제약 자회사 아이디언스, 제일약품 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 오토텔릭바이오, 피로스아이바이오 등과 함께 신약과 동반진단법을 개발하는 데도 쓰인다.

관련 시장도 없다시피 했는데, 빨리 개발했다.

NGS 진단에서 핵심인 데이터분석 능력 덕분이다. 어차피 진단 패널로 취합된 데이터를 분석해야 진정한 결과물을 낼 수 있다. 거꾸로 데이터분석에 최적화된 진단패널을 설계하는 건 좀 더 수월했다. 사실 진단 패널 출시보다 바이오기술(BT)과 정보기술(IT)을 융합한 분석 소프트웨어까지 결합한 정밀진단 제품이 상용화됐다는데 의의가 있다.

NGS 기반 진단 패널 하면 표적항암제 얘기도 많이 나오던데.

이유가 있다. 다국적 제약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알렌 로즈 박사가 이런 말을 남겼다. “모든 사람에게 유효한 약은 없다. 90% 이상의 약이 단지 30~50% 사람에게만 유효하다.” 생사가 걸린 암 환자에게는 어떻겠는가. 암이란 게 참 고약하다. 특정 기관에 정상세포가 있는데 정상적인 유전자 중 한 유전자가 갑자기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암세포 조직을 떼어내 NGS 기술로 어떤 돌연변이가 생겼는지 분자 단위로 분석한다. 보통 폐암에는 A라는 돌연변이 인자가 작용했다고 알려졌는데, 어떤 사람은 B가 요인일 수 있다. 통상 쓰는 항암 치료가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낭패다. 처음부터 B라는 요인을 확인하고 B 타깃 표적치료제로 항암 치료를 했어야 한다.

암 동반진단 얘기로 이어지는 이유인가.

그렇다. 동반진단은 항암제를 투여하기 전에 환자의 유전자를 분석해, 항암제의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하고 환자에게 맞는 최적의 항암제를 선별하는 과정이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암 환자들에게 항암제를 투약하기 전에 의무적으로 동반진단 검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동반진단으로 약효가 있을 바이오마커를 확인해 환자를 선별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분석 소프트웨어도 자체 개발했다고 들었다.

유전체 빅데이터 자동분석 소프트웨어인 ‘엔젠어날리시스(NGeneAnalySys)’다. 패널로부터 생산된 데이터를 분석하고 문서로 내놓는 일련의 과정을 책임진다. 진단시약 패널과 함께, 분석 속도와 정확도 등에서 다른 업체와 차별화된 유전체 데이터분석 기술을 제공한다. 지난해에는 분석 알고리즘도 특허를 냈다. 암 발생 관련 유전자의 변이 타입 중 CNV(복제수 변이) 검출을 용이하게 하는 알고리즘 기술로, 머신러닝 기법을 적용해 유전자 복제수 변이 분석에 최적점을 정한 후, 여러 오류 요인을 자동으로 제거한다. 특히 CNV 검출이 까다로운 유방암, 난소암 진단에서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경쟁사도 있지만, 대형 의료기관에서 엔젠바이오를 선호한다고 들었다.

시약(진단 패널)을 만드는 회사는 우리 말고도 몇 군데 더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의 최대 강점은 엔젠어날리시스다. 보통 분석 소프트웨어가 있어도 결과 데이터를 다시 일일이 문서화해 고객에게 전달하는 식이지만, 우리는 리포트 작성까지 기계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유전체 데이터분석 결과 항목도 국내 최다다. 대형 의료기관이 우리 시약을 사용하면 소프트웨어는 무료로 공급하는 전략도 주효했던 것 같다.

한동안 국내에서 유전체분석 서비스가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소비자가 직접 의뢰하는 유전체분석(DTC) 서비스 얘기다. DTC는 병원을 거치지 않고 직접 업체가 유전체 검사 서비스를 시행한 뒤 고객에게 분석 결과를 보내준다. 예를 들어 유전체분석을 통해 탈모나 고혈압 가능성은 얼마나 되고, 비만에 걸릴 유전적 확률은 어느 정도인지 등 수십여 가지 분야에 대한 유전적 정보를 알려준다. 반면 우리는 환자용에 집중해왔다. 진단시약 생산부터 식약처의 인허가를 받아야 하고, 병원에 출하하기까지 상당히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해 기술·시장 진입장벽이 높다.

DTC 시장도 유망해 보인다.

그렇다. 우리도 DTC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KT, 세라젬과 손잡고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식이·운동요법) 서비스, 개인 유전체분석 정보 저장·관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5월에 등록된 빅데이터 관련 특허 기술인 ‘통합적 건강정보를 이용한 식단 및 운동 추천 서비스 시스템’ 기술을 적용해 개인용 맞춤 정보가 훨씬 풍성해졌다. 내친김에 올해는 빅데이터 기반 건강 큐레이션 플랫폼 자회사 ‘웰핏(Welfit)’을 설립해 개인 맞춤형 건강 큐레이션 플랫폼 서비스도 직접 제공할 계획이다.

미국에서도 통할 것 같다. 비록 사기극으로 끝났지만, 손가락 끝에서 채취한 혈액 몇 방울만으로 여러 질병을 알아낼 수 있는 진단 기기를 개발했다던 테라노스의 기업가치가 01조원을 넘기도 했다.

한국과는 좀 다른 상황이지만, 같은 맥락에서 미국 진출을 꾀하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는 병원에 우리 키트를 직접 팔지 않고, 병원에서 검사를 의뢰받은 수탁 검사기관에 우리 제품과 소프트웨어를 넘기는 식이다. 미국에도 클리아랩(CLIA Lab)이란 수탁 검사기관이 수만 개가 있는데, 분자진단 분야에 특화되어 있거나 NGS 임상검사 서비스를 하는 곳은 몇 군데 없다. 그래서 우리가 이곳 중 하나를 인수해 미국 시장에 뛰어들 계획이다.

올해 세운 목표가 있다면.

지난해 매출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국내외에서 정밀진단과 개인 유전자 검사 매출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제 NGS와 정밀진단 플랫폼 기술이 조금씩 시장에 알려졌다는 의미다. 물론 번 것보다 쓴 것이 많긴 하다.(웃음) 빅데이터 플랫폼 고도화나 액체생검 진단 개발, 미국 실험실표준인증(CLIA LAB) 투자, 유럽 및 아시아 제품 수출을 늘리려다 보니 투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에서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 병원 및 국가 모두가 이 기술의 혜택을 누릴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볼 작정이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신인섭 기자

202203호 (20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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