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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열 메드트로닉 아태지역 총괄사장 

혁신과 성장의 원천은 ‘행복한 일터’ 

장진원 기자
이희열 메드트로닉 아태지역 총괄사장은 한국인 중 몇 안 되는 글로벌기업의 최고경영자 중 하나다.
이 사장은 그 비결로 일하는 사람, 즉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려는 노력이 바탕이 됐다고 말한다.


▎메드트로닉이 개발한 마이크라를 손에 든 이희열 사장. 마이크라는 전선이 없고 무선으로 작동하는 심박동기로, 소형 건전지보다 작은 크기다.
1957년 세계 최초 배터리 작동 방식의 외장형 심장박동기 개발 생산, 1977년 인공판막 출시, 2016년 세계 최소 크기의 심장박동기 출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휴대용 인공호흡기 설계 사양 공유. 의료기술 분야 글로벌 선도기업인 메드트로닉(Medtronic)이 걸어온 발자취다. 1949년 창립 이래 메드트로닉은 ‘고통 경감, 건강 회복, 생명 연장’이라는 미션 실현을 위해 힘써왔다. 현재 메드트로닉은 아일랜드 더블린 본사를 비롯해 150개국에서 9만 명에 달하는 임직원이 심혈관기기, 로봇수술, 인슐린펌프, 수술기구,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 등으로 70여 가지 질병 치료에 기여하고 있다. 메디테크(의료기술) 분야의 명실상부한 글로벌 톱기업다.

지난 2000년 출범한 메드트로닉코리아 역시 국내 환자와 보건의료 전문가들에게 선진 의료기술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메드트로닉코리아를 이끄는 이희열 사장은 한국뿐 아니라 20개국 1만여 명의 직원이 함께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중국 제외) 총괄사장이다. 글로벌 선도기업 가운데 한국인이 핵심 보드멤버로 일하는 몇 안 되는 사례다. 이 사장은 아태지역 총괄사장을 맡기 전에도 메드트로닉의 Greater China(GC) 지역 총괄사장을 역임했다. 재임 5년간 GC 지역은 5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을 달성했고, 직원 5000명이 일하는 20억 달러 규모의 사업장으로 확장됐다.

블라인드 선정 ‘재직자가 행복한 회사’


이 사장은 글로벌 헬스케어 분야에서 한국인으로선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글로벌 리더로서 활약해왔다. 메드트로닉 이전에는 바이엘 헬스케어(Bayer HealthCare)의 아시아태평양 총괄사장을 역임했고, BMS(Bristol Meyers Squibb)와 머크(Merck & Co.)에서도 고위 임원직을 역임한 글로벌 헬스케어 분야의 손꼽히는 전문경영인이다.

검증된 경영 능력은 메드트로닉 아태지역의 성장세에도 가속도를 붙였다. 이 사장은 “현재 메드트로닉의 전 세계 4대 지역군 중 아태지역의 실적이 가장 좋다”고 자랑했다. 이러한 성과는 특히 이 사장 특유의 감성경영 리더십이 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이 사장은 ‘행복한 직장 만들기’ 분야의 선구자로 꼽히며 감성경영과 마케팅에 관한 두 권의 베스트셀러를 펴내기도 했다.

실제로 이 사장 취임 이후 메드트로닉 싱가포르·호주·일본 및 한국은 ‘일하기 좋은 기업(Great Place to Work)’ 인증을 받았다. 메드트로닉 APAC은 헬스케어 기업 중 ‘싱가포르에서 일하기 좋은 기업’ 1위를 차지했고, ‘아시아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이 사장은 2019, 2020년 2년 연속 Great Place to Work Korea가 발표하는 ‘가장 존경받는 CEO’에 선정됐다. 싱가포르 Business Review가 선정한 ‘2021 올해의 경영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 사장의 감성경영은 아태지역은 물론 한국에서도 특유의 호응을 얻고 있다. 직장인들의 대나무숲이라 불리는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가 4800개 기업, 5만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재직자가 행복한 회사 톱 10’에 2년 연속(2019~2020) 이름을 올리면서다. 메드트로닉코리아는 구글코리아를 제외하면 해당 순위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외국계 기업이다. 블라인드 설문조사에서 메드트로닉코리아는 ‘기업복지’ 부문에서 1위에 올랐고, 업무 자율성 및 업무 중요도 항목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아 상위 1%의 재직자 만족도를 자랑했다.

“37조원(2019년 기준) 규모의 메드트로닉 글로벌 매출 중 아태지역이 4조원 정도를 차지하는데, 시장 성장세와 매출 규모 증가세가 가장 두드러진 지역입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메드트로닉은 해마다 두 번 사업 지역군별로 직원참여도와 조직만족도를 조사합니다. 최근 아태지역의 수치가 가장 빠르게 올라가고 있어요. 제가 부임한 직후에는 꼴찌 수준이었죠. 지금은 회사 만족도, 소속감, 주인의식이 가장 투철한 지역으로 바뀌었어요. 제품은 전 세계가 다 똑같고, 심지어 경쟁사 제품도 비슷하죠. 변화는 결국 직원들의 마음에 달린 거예요.”

이 사장은 자신을 필두로 메드트로닉 아태지역 리더십팀이 가장 집중하는 부문이 기업문화와 소속감, 주인의식 등이라고 소개했다. 제품 연구개발(R&D)과 영업·마케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기본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기업문화를 제대로 정착시키는 것이 지속가능한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한다는 의미다. 이 사장은 “경영자의 조직관리 능력에 따라 같은 직원이라도 소속감을 갖는 정도가 달라진다”며 CEO의 소프트스킬을 강조했다.

“코로나19 초기만 해도 직원 중 1명이라도 확진자가 나오면 비상이었습니다. 아태지역에서도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했고요. 확진자 현황을 매일 모니터링해서 확진된 직원에게는 제가 직접 손편지를 썼습니다. 회복을 기원하는 선물 박스도 보냈고요. 이후 확진자가 수백 명씩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편지 한 통이 대수겠습니까? 회사가 당신을 이만큼 지지하고 있다는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게 더 중요하죠.”

임신한 여직원들을 위해 직접 방석을 전달하고, 코로나19로 격리된 직원에게 즉각 배달 쿠폰과 방역 세트를 보내준 조치, 크리스마스와 설날, 추석 같은 명절에 CEO가 직접 직원의 가족에게 편지를 전하는 일 등 작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배려는 직원들의 마음 깊은 곳에 닿아 감동을 주는 촉매가 됐다. 모두 이 사장 취임 이후 달라진 풍경이다.

CEO여, 직원의 마음을 얻어라

이 사장이 말하는 경영의 제일 원칙은 ‘직원들이 행복해야 회사가 성장한다’는 믿음이다. 그는 평소 “직원이 회사를 떠나려는 마음을 품었을 때는 이미 늦다”라고 자주 말한다. 직원들이 기대하는 것 이상을 회사가 제공해줘야 한다는 목표 때문이다. 메드트로닉은 업무 과정에서도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근무 방식을 적극 권장, 실현하고 있다. 이 사장 취임 이후 메드트로닉코리아는 직원들과 함께 경영 목표를 정하고, 성과를 낼 때마다 1시간씩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제도를 시행해오고 있다. 현재 메드트로닉코리아는 오전 9시 출근을 기준으로 평일에는 매일 5시에 퇴근하고, 수요일에는 4시에 퇴근한다. 금요일에는 오전 근무가 자리 잡았다. 주 4.5일제를 실현한 셈이다. 고객과 약속이 있거나 긴급한 일이 생기면 업무를 우선시하지만, 직원 개개인의 선택에 따라 탄력 근무도 가능하다.

“회사에 오면 돈 쓸 일이 없게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식사를 회사가 책임지고 커피나 음료도 사내 전문 바리스타가 제공해요. 케이크와 디저트도 모두 무료입니다. 일본에 갔더니 직원 몇 천 명에게 돈 받고 커피를 팔더군요. 한국처럼 싹 바꿨습니다. 베트남과 싱가포르도 마찬가지고요. 회사 입장에선 1년에 수십억원이 드는 일이지만, 그 비용보다 회사로 돌아오는 긍정적 효과가 훨씬 큽니다.”

혁신 DNA를 갖춘 인재 개발도 이 사장이 강조하는 경영지표 가운데 하나다. 메드트로닉은 이를 위해 자체 혁신 프로그램 외에도 대외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2019년부터 시행된 ‘메드트로닉 스파크(MDT Spark)’ 사업이 대표적이다. 아태지역 직원들이 대담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이를 실현에 옮길 수 있는 코칭과 금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이다. 지금까지 매출 신장과 시장점유율 확대, 업무 간소화를 통한 비용 절감 등 직원들이 새로 제안한 아이디어가 53건 이상이고, 이 중 24개 아이디어가 투자를 받아 1년 차에 누적 매출 700만 달러를 달성했다. 이는 한국을 비롯한 아태지역의 미래 신성장동력이 되어 비즈니스 성장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드물게 다국적기업 최고경영진의 일원인 이 사장은 한국인을 포함해 아시아인이 글로벌 커리어를 더 많이 쌓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긴다. ‘eTalent X’는 여행이 불가능한 코로나19 시대에도 직원들이 원격으로 다른 국가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새로운 업무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팬데믹 전에 국가 간 전근 기회를 제공하던 인재 교환 프로그램 ‘Talent X’를 뉴노멀 시대에 맞게 바꾼 프로젝트다.

“경영을 몇십 년씩 한 CEO, 책임지는 매출이 수십조원에 달하는 기업이 많습니다. 그런데 매출에 비해 직원복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아요. 한국 기업들은 특히 더하죠. 다른 곳엔 수십억원을 펑펑 쓰면서 왜 직원들에겐 그렇게 아끼는지 모르겠어요. 말로는 가족같이 생각한다면서 말이죠. 모든 걸 투명하게 실적과 연동하면 되지 않겠어요? 직원의 마음을 얻는 것이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게 돌아오는 긍정의 반대급부가 훨씬 크다는 걸 경영자들이 잘 몰라요.”

혁신과 성장의 비결도 역시 사람

메드테크(MedTech) 분야에서 리더십을 강화하는 전략은 개방형 혁신, 즉 오픈이노베이션으로 추진 중이다. 이 사장은 의료기술 분야의 리더로서 아태지역의 헬스케어산업과 기업 간 네트워크 구축에 힘쓰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머신러닝과 관련한 기술 역량 개발을 지원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Open Innovation Platform, OIP)’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지난 2021년에는 OIP의 일환으로 스타트업 대상 아태지역 혁신 챌린지(Medtronic APAC Innovation Challenge, MAIC)를 개최해 ‘삶을 변화시키는 기술, 모두를 위한 더 나은 결과, 사람 중심의 기술, 인사이트를 통한 맞춤 의료’ 등 4가지 주제로 상위 5개 기업을 선정했다. 이들에겐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 상용화를 위한 파일럿 기회가 제공된다.

한국 내 의학 발전 및 술기 향상에도 꾸준한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2017년 국내 최초의 의료기기 연구개발 및 의료술기 교육훈련센터로 개관한 메드트로닉 이노베이션 센터(Medtronic Innovation Center, MIC)가 그 산실이다. 이 사장은 지난 4년간 MIC에 총 150억원을 투자했고, 메드트로닉의 코비디엔 인수를 계기로 매년 투자액을 총 50억원으로 늘렸다. 이와 함께 심혈관, 재건, 당뇨치료, 체외 임상시험까지 지원 분야를 넓혔다. 충북 오송 첨단의료복합단지에 자리한 MIC는 전 세계 7개국 8개 이노베이션 센터와 폭넓은 네트워크 시스템을 바탕으로 국내외 의료진에게 의견 교류 기회를 제공하며, 다양한 연구기관 및 대학과 함께 공동연구와 신제품에 개발에 힘 쏟고 있다.

이 사장이 직원들의 마음을 얻는 일만큼이나 강조하는 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다. 메드트로닉은 외국계기업이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 안에서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2018년에는 코트라(KOTRA)와 공동으로 국내 의료기기 업체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2018 메드트로닉 아시아 혁신 콘퍼런스’를 개최해 한국 의료 발전의 조력자로서 실체적인 동반성장 기회를 마련했고, 이후로도 전문 인력 육성과 네트워크 확장에 힘쓰고 있다.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의 수술을 돕기 위해 ‘300의 기적(Miracle of 300)’이라는 사회공헌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지금까지 직원-회사 매칭 펀드를 통해 심장병 어린이 20여 명에게 수술을 지원했다. 이 외에도 ‘베풀고(GO) 나누고(GO) 베나실’ 캠페인을 펼쳐 저소득층 하지정맥류 환자들의 진단과 치료를 지원했으며, 지역사회와 환자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6(Project 6)’를 이어오고 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를 치료하는 의료진을 위해 방호복을 기부했으며, 이후 강남구의 독거노인 및 저소득층 가정에 코로나19 예방 위생 키트와 점심 도시락을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다국적기업들이 자주 욕을 먹곤 하죠. ‘다른 곳이 하니 우리도 마지못해 하자’가 아니라 다른 기업이 우리를 따라오게 해야 합니다. 선도기업은 제품만 앞선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고객과 직원, 지역사회가 모두 인정하는 품격과 자세가 곧 글로벌기업의 자격입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2205호 (202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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