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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31) 안현정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학예실장 

시간의 빗장을 여는 커넥터 

정소나 기자
한국의 전통을 고스란히 녹여낸 현대미술이 ‘K아트’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시대. 우리의 멋과 아름다움을 더 발전시키고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한국의 근현대 미술의 맥락을 연결하고, 새롭게 재발견된 한국미를 세계에 전하며 K아트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안현정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학예실장을 만났다.

▎전시 기획과 교육, 방송, 학술, 출판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한국의 미를 알리는 안현정 실장.
“한국미는 이 땅에 살며 스미듯 이어온 한국인의 독특한 활력이에요. 과거에 머물러 있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져 현재까지도 활발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어요.”

안현정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학예실장은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전통문화와 동시대 현대미술을 두루 아우르며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하고, 그 안에 탑재된 한국미를 널리 알리는 일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

K아트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고 있는 요즘, 한국 고유의 헤리티지와 현대미술을 연결하는 전시 기획과 교육, 방송, 학술, 출판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다.

안 실장은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석사와 예술철학 박사를 받았다. 국립민속박물관과 성곡미술관을 거쳐 현재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학예실장(1급 정학예사)으로 일하고 있다. 건국대, 서울예대, 고려사이버대 등에서 미술사와 예술경영을 가르쳤고, 현재 연세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KBS, SBS, EBS 등 대표 문화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했고, 2022년부터는 국악방송 라디오 [한석준의 문화시대]에 ‘안현정의 아트프리즘’이라는 코너를 맡아 고정 출연 중이다. 동아일보, 대한변협신문, 예술의전당 매거진 등에 다수의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근대의 시선, 조선미술전람회], [대중예술과 문화콘텐츠] 등이 있다. 현재 하인두예술상 심사위원, 신세계별마당도서관 공공미술자문위원, 아트스페이스서촌의 고문으로도 활동 중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학예실장이자 연세대행정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20년 차 큐레이터이자 미술평론가로도 활동 중이다. 스스로 ‘시간의 빗장을 여는 커넥터’라고 소개하곤 한다. 대부분의 큐레이터가 동시대 담론과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시를 기획하는데, 나는 시간의 층차, 즉 ‘한국미의 레이어’를 바탕으로 원형 발굴과 현재적 재해석을 하나의 흐름으로 두고 담론을 만든다. 마치 이우환 작가의 [관계항]이라는 작품처럼, 우리의 현재를 어느 시공간과 연결해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은 굉장히 다양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동시대 작가 450명의 평론을 진행했고, 20여 년간 대학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강의하며 시공간의 관계항을 통해 미술의 다양한 관점을 해석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 9월 [한국미의 레이어, 눈맛의 발견]이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현대 예술까지 이어진 ‘한국의 미’를 ‘K의 시대’ 속에서 서술한 책이다. 최근 K아트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프리즈 서울의 한국 진출이나 해외 주요 도시에서 한국 작가들이 주목받는 현실 속에서 한국미에 대한 정의가 K아트 발전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한국미에 대한 정의는 ‘과거’나 ‘전통’에 얽매여 있었다. ‘여백의 미’부터 ‘화려한 빛깔의 단청’, ‘오방색’ 등 모두 과거에 머무른 한국미에 대한 정의이다. 나는 이 부분이 아쉬웠다. 내가 정의하는 한국미란 ‘이 땅에 살며 스미듯 이어온 한국인의 독특한 활력’이다. 한국미를 떠올리면 전통(傳統)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묶이기 쉽지만 한국미는 역사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미는 과거에만 있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져 현재까지도 활발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한국미의 레이어]를 출간하게 됐다. 너무 감사하게도 초판 발행 3일 만에 1쇄가 끝났고, 한 달 만에 5쇄에 들어갔다.


▎정승우 이사장과 안현정 실장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한국미와 K아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의 층차를 바탕으로 현대 작가와 헤리티지를 매칭한 부분이 흥미롭다.

새롭게 정의한 한국미는 ‘실제 작품’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이미 잘 알려져 친숙한 문화재 26점과 현대 작가 26명을 매칭해 한국미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분청사기부터 달항아리·고려불화·달마도·창령사터 나한상·미인도·창덕궁 인정전 등 26점 문화재를 김근태·최영욱·신제현·한상윤·신미경·김미숙·하태임 등 유명 현대 작가 26명과 연결했다. 주제, 개념, 가치 등 어떤 요소가 닮아 있는지 차근히 설명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분청사기와 김근태 작가를 함께 소개하며 ‘담백한 중도(中道)의 자유’를 풀어낸다거나 달항아리와 최영욱 작가를 엮어 ‘세련된 자연미감’을 소개하는 식이다. 이 밖에도 순청자 다완과 김택상 작가의 ‘맑은 비색’, 상감청자와 박종규 작가의 ‘한국적 융합미감의 발현’ 등도 소개했다. 실제로 이들 도자와 추상을 연결한 전시를 성균관대학교 박물관과 주홍콩한국문화원 공동으로 ‘아트바젤 2024’ 기간에 선보여 호평을 받기도 했다.

프리즈가 한국에 진출한 지 3년이 되었다. 이번 프리즈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나 나아가야 할 방향이 뭘까.

전 세계 유수의 미술 기관들이 양혜규, 서도호, 김윤신 등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에 주목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들의 작품 세계에는 ‘한국미’가 내재한다. 미술 현장마다 전례 없이 해외 갤러리스트와 주요 인사들이 함께하는 등 한국 미술계에 정말 중요한 시기인 것 같다. 이러한 스포트라이트가 지속되도록 민관의 꾸준한 관심과 투자가 이어져야 한다. 비약적으로 성장한 한국 미술이 홍콩, 상하이, 도쿄 사이에서 아시아 변방의 로컬시장이 아닌 주류 시장으로 성장하기 위한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물론 이번 프리즈에 대한 반응이 첫해에 비해 축소됐다고는 하지만 실제 미술품을 구입하는 컬렉터들의 증가세는 청신호로 보아야 한다. 최근 국제적인 전시나 이건희 컬렉션 이후 진정한 미술 애호가들이 늘어난 것도 고무적인 일이다. 결국 프리즈와 공동 개최를 해온 키아프가 어떤 방식으로 다양한 해외 갤러리를 수용할 수 있는지가 숙제가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프리즈 같은 글로벌 문화 행사를 통해 한국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보인다.

재능 있는 신진 작가들에 대한 평론과 홍보에도 열심이다.

다음카카오에 ‘청년타임스’라는 채널을 운영한 지 벌써 4년 가까이 되었고, 매주 2명씩 지금까지 작가 400여 명을 소개했다. 좋은 작가가 많은데도 이들이 미술 현장의 시스템으로 들어오는 것은 바늘구멍으로 낙타가 들어가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다양한 청년 미술지원 프로젝트가 늘어나고 있지만, 공모전 위주의 작가와 시장에서 찾는 작가는 크게 다르다. 미술은 아트페어, 비엔날레, 미술관이라는 거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인다. 젊은 작가들이 각 시스템 사이에서 연동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획이 요구된다. 그들을 한 명이라도 더 소개하기 위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최근 눈여겨보는 한국 작가가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 9월 발간된 안현정 실장의 신간 『한국미의 레이어, 눈맛의 발견』. 문화재 26점과 현대 작가 26명을 매칭해 더 많은 사람이 한국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
눈여겨보는 작가를 딱 꼬집어 얘기하는 것은 공익적 활동과 맞지 않기 때문에 말을 아끼게 된다. 다만 내가 한국 작가들에게 희망을 거는 부분은 해외 작가들과 차별화한 완벽한 마감, 자유로운 사유, 표현의 재해석이 이미 글로벌한 시각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국적인 에너지를 단순한 소재 위주가 아닌 자신만의 관점으로 해석해서 글로벌 시장에 내놓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어 고무적이다.

강의할 때 특별히 강조하는 내용이 있다면.

박사과정 2학기였던 지난 2005년부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대부분 인문학에 기반하되 현장과 어떻게 연동될 것인가를 중점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전시기획와 비평’이라는 수업에서는 이건희 컬렉션, 김환기 최고가 작품, 프리즈의 한국 진출, 달항아리의 유행, 미국에서의 한국 전시 등 다양한 이슈를 던져놓는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이루어진 ‘현상 분석’과 이를 토대로 확산된 다양한 반응, 향후 리스크와 발전 방향들을 마치 피카소가 다시점으로 현상을 재해석하듯 해체와 재해석 등의 방식으로 열띤 토론을 벌인다. 내가 중점을 두는 강의 방식은 다양한 시각으로 나만의 주체적 사유를 하는 것이다. 이는 창작과 감상 모두에 통용된다. 우리는 이미 ‘본캐’, ‘부캐’라는 말이 익숙해질 만큼, 정체성의 다양화 속에 살고 있다. 이 안에서 자신의 생각과 명분을 정확하게 개진할 수 있는 아티스트와 감상자, 컬렉터를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발간한 책의 부제가 ‘눈맛의 발견’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기의 취향을 정확히 알고, 자신만의 테이스트를 발견하라는 뜻이다.

공공기관 자문활동도 하고 있다. 아쉬움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

국토교통부의 다양한 건축 자문과 국립현대미술관 근대 전시, 각 지역 공공미술이나 실감형 콘텐트 사업,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자문에 응하고 있다. 장애인 예술지원의 경우에도 점차 지원 규모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연결하는 아티스트 프로그램이 부족한 실정이다. 또 미술이나 관광 등 문화 활동이 도시개발이나 지자체의 자금에 따라 아직도 차이가 크다는 사실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현재 성북구 문화도시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실제 서울에서 가장 큰 단위의 공공시설과 자치활동 예산이 전체 예산의 2% 이상이다. 그 결과 구민들의 문화 수준도 높고 청장년층 문화 지원활동도 다양하다. 대도시뿐 아니라 문화에 소외된 지방 곳곳의 시민들에게도 이러한 활동들이 지원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문화체육부, 외교부, 국토교통부 등 부처별 지원사업은 공동의 네트워크와 컨소시엄을 조성해 전문적 노하우를 연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통합 시스템을 마련해 정치 혹은 이슈가 바뀌더라도 이전에 결정된 지원 정책이 계속해서 발전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좀 더 세심한 리더십으로 전 국민이 다양한 문화 혜택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

소장하고 있는 미술 작품이 있나.

20여 년간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전시 기획을 하고, 작가들의 평론을 쓰다 보니 다양한 관계를 맺은 작가들의 드로잉이나 소품이 많다. 직접 구매한 작품들은 주로 ‘저평가’되어 있는 근대미술 작품들이다. 한국 미술의 기초를 획과 여백에서 찾다 보니 주요 소장품은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눈이 되어준 위창 오세창 선생님의 1920년대 전서 작품이다. 일본 경매에서 1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돈으로 구매했고, 재표구해서 우리 박물관 전시에도 출품한 적이 있다. 석남 이경성 선생님의 회고록 [어느 미술관장의 회상]의 표지 그림과 같은 ‘인간군상’ 그림은 고(故) 황창배 선생님의 사모님이자 전각의 대가인 철농 이기우 선생님의 따님이신 이재온 황창배미술관 관장님께서 ‘평론가로서의 마음’을 다지고 활동하라는 의미에서 선사해주신 작품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의미를 지닌 훌륭한 작품이 다수 있다. 향후 대부분의 근대미술 작품들은 박물관에 기증할 예정이다.

평론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달라.

나의 평론은 젊은 작가 혹은 작가의 아카이브에 초점을 둔 중견 이상의 작가가 대다수이다. 기존의 평론과 굉장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는데, 결국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향후 우리 미술의 미래이기 때문에 ‘작가 발굴’과 ‘미술사에 남는 중견 이상 작가들의 아카이브’라는 두 관점에서 글을 쓰고 있다. 후배들이 자본보다 가치 있는 글을 쓰는 평론가가 되기를 바란다. 과거 여러 선배님의 평론을 보면, 작가가 다른데도 비슷한 글쓰기 형태를 갖춘 ‘인상 비평’인 경우가 많다. 평론은 감상문이 아니라 작가의 현재를 진단하고 과거와 연결해 다음 작업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어야 한다. 각 시점에 맞는 평론도 존재하지만 결국 작품은 작가의 현재이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알기 쉬운 언어와 깊이 있는 가치로 풀어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미술계의 조력자로 활동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목표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미술은 수많은 인구와 막대한 사회자본을 운용할 수 있는 경제 대국을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이제는 거대한 문화 용광로 속 제3국 혹은 소수의 독창성이 더 인정받는 시대가 됐다. 전통예술의 풍부한 내용과 다양한 표현 형식은 현대예술로 이어져 ‘한류’ 혹은 ‘K컬처’, ‘K아트’라는 용어로 대체돼 세계화를 이뤄내고 있는 시기이다. 헤리티지가 담긴 전통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한국 미술 모두를 가리지 않고 사랑해주시면 좋겠다. 또 오늘 인터뷰어 정승우 이사장님처럼 아무런 대가 없이 오랜시간 묵묵히 젊은 작가와 예술가들을 지지해주는 병풍같은 역할을 감당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 정승우 -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리=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_ 사진 최기웅 기자

202410호 (202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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