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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 가을의 전설이 되다 

 

정소나 기자
찬 바람 부는 가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이템을 꼽자면 바로 트렌치코트가 아닐까. 영화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 영화 [애수] 속 로버트 테일러가 입었던 낭만과 우수가 깃든 트렌치코트는 가을이라는 계절에 가장 사랑받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가을이 트렌치코트의 계절이라면 트렌치코트를 대표하는 브랜드는 바로 ‘버버리’다. 버버리는 어떻게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이자 트렌치코트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모던하게 변주된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로 가을 룩을 완성한 배우 박성훈.
전설이 된 클래식과 혁신의 아이콘

‘지상, 공중, 해상에서의 안전에 있어 버버리코트를 능가하는 것은 없다’는 토마스 버버리의 말처럼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는 스타일을 초월한 스테디셀러이자 카테고리를 넘나드는 범용성 좋은 아이템으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기를 얻고 있다.

방수 코트를 판매하는 작은 상점에서 시작한 버버리는 이제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넘어 기성복, 가방, 신발, 액세서리, 시계, 코스메틱 등을 제작· 판매하는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로 성장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버버리의 역사는 1856년 토마스 버버리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포목상 견습생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1세 어린 나이에 자신의 이름을 건 의류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사람들이 착용했던 무겁고 불편한 아우터 대신 새로운 원단을 개발해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돕겠다는 비전을 품었다. 그는 영국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적합한, 비바람에 강하고 통기성이 뛰어난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고, 마침내 버버리 설립 23년 후인 1879년, 우수한 방수 기능의 천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며 그의 비전을 실현했다.

최상급 이집트면을 사용한 ‘개버딘’이라는 이 혁신적인 소재는 센티미터 단위로 100번 이상 짜인 촘촘한 공정으로 만들어져 통풍성이 좋으며, 치밀하게 짜인 조직은 비가 스며드는 것을 막아준다. 개버딘 소재가 발명되기 이전의 레인코트에는 방수를 위해 고무를 입히거나 왁스처리를 해 장시간 착용하기에 무겁고 불편했다. 가벼우면서도 방수와 통풍이 잘되는 개버딘 소재로 만든 레인코트는 개발과 동시에 영국뿐 아니라 다른 유럽 지역으로 수출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개버딘 소재의 레인코트는 뛰어난 방수성과 내구성, 보온성으로 전장의 군인들 사이에서도 애용됐고, 1899년 발발한 영국과 남아프리카의 보어전쟁 당시 영국 육군과 해병대의 공식 방수복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방한·방수 기능을 갖춘 아우터, 스포츠웨어 등 남극 탐험가들의 기능성 의류를 만드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는 버버리의 개버딘 소재 레인코트를 즐겨 입었는데, 그가 코트를 찾을 때면 늘 “내 버버리를 가져오게”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버버리는 레인코트를 대표하는 하나의 패션 용어가 되었고,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도 버버리는 ‘가벼운 레인코트’라고 등재되며 대중의 인기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

강력한 헤리티지, 트렌치코트의 탄생


▎1, 3, 4, 6. 코트에 중점을 두고 몰스킨 소재의 트렌치코트부터 더플코트, 그리고 필드재킷까지 다채로운 아우터 룩을 선보인 버버리의 2024 겨울 컬렉션. 다양한 실루엣과 원단으로 따뜻하면서도 우아한 멋이 담긴 컬렉션을 완성했다. / 2. 버버리의 트레이트 마크가 된 체크무늬와 버버리의 혁신의 정신을 담은 기마상 디자인 엠블럼. / 5. 영국 캐슬퍼드 지역에서 제작되는 트렌치코트. 모든 디자인 요소와 디테일은 장인들의 수작업으로 완성된다. / 7. 버버리의 상징, 체크무늬의 우산과 트렌치 코트로 멋을 낸 커플이 등장한 1975년의 버버리 캠페인.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는 본래 영국의 변덕스러운 날씨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제작되었으며,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클래식한 스타일과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트렌치코트(Trench Coat)의 기원은 타이로켄(Tielocken)에서 시작된다. 1912년 버버리가 특허를 취득한 이 코트에는 설립자 토마스 버버리가 발명한 개버딘 소재가 사용되었으며, 단추 대신 벨트로 앞을 여미는 혁신적인 디자인이 특징이다. 이 코트는 제1차 세계대전이 장기화되면서 참호 속에서 추위와 비바람에 떠는 영국군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영국군뿐만 아니라 연합군 병사와 장교들에게까지 사랑을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쟁이 지속되면서 타이로켄도 진화했다. 어깨에 D자형 고리를 부착해 수류탄, 칼, 탄약통, 지도 등 무기나 장비를 달 수 있도록 했고, 장총을 사용할 때 마찰이 많은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오른쪽 어깨에서 가슴까지 단을 덧대 내구성을 강화했다. 또 활동하기에 편안한 래글런 형태의 소매에 비바람을 막아주는 손목 벨트를 부착했다. 이렇게 전쟁에서 꼭 필요한 기능을 넣어 만든 타이로켄이 훗날 ‘트렌치(Trench·참호)’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버버리의 시그니처 아이템인 트렌치코트가 됐다.

전쟁 이후에도 트렌치코트는 고급스러운 원단과 편안함, 시대를 초월하는 디자인 덕분에 일상복으로 유행을 이어갔다. 버버리 트렌치코트 스타일은 왕실, 영화배우, 예술가 등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에게 사랑받으며 브랜드의 상징적인 아이템이자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세련된 차림으로 유행을 선도했던 에드워드 7세, 최고의 멋쟁이라 불렸던 윈저 공, 영원한 패셔니스타 다이애나비 등 영국 왕실이 선택한 버버리는 영국 정통 귀족 패밀리의 이미지와 잘 어우러지며 브랜드에 럭셔리한 이미지를 부여했다.

특히 영화 [카사블랑카] 속 험프리 보카트, [한밤의 암살자]의 알랭 드롱, [딕 트레이시]의 워런 비티, [페어웰 마이 러블리]의 로버트 미첨, [애수]의 로버트 테일러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선보인 클래식한 트렌치코트는 버버리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남성들의 로망’이 되었다.

진화하는 클래식 아이콘

버버리의 클래식한 스타일을 고스란히 담은 헤리티지 트렌치코트 컬렉션은 첼시, 켄싱턴, 워털루, 캠든 등 총 네 가지 시그니처 핏으로 구성되어 있다. 헤리티지 트렌치코트 스타일은 런던의 자치구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각 지역의 특징을 담고 있다. 첼시는 1960년대 런던의 젊은 감각을 담은 가장 슬림한 핏이며, 워털루는 초기 버버리 트렌치코트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래글런 소매 디테일을 자랑한다. 싱글 브레스트가 특징인 캠든은 조금 더 캐주얼한 룩에 어울리는 스타일이며, 켄싱턴은 전통적이고 클래식한 스타일이다.

모든 헤리티지 코트는 영국 캐슬퍼드 지역에서 제작되며, 트렌치의 모든 디자인 요소는 장인들의 기술로 완성된다. 칼라의 정교한 스티칭은 마스터하는 데 1년이 걸리며, 8개 개별 부품과 200개 스티치가 유려한 곡선을 만들어 칼라가 목에 완벽히 밀착된다. 단추와 벨트 고리 등 모든 디테일은 수작업으로 완성된다.

현재까지도 버버리에서 생산하는 트렌치코트는 54장의 조각, 36개의 단추, 4개의 버클, 4개의 금속 고리 등 재단에서부터 디테일까지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만들었던 트렌치코트와 거의 같은 구조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소재와 컬러, 디자인을 적용하여 매 시즌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아이템을 선보이고 있다.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는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됐다. 버버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리는 아카이브에 보관된 개버딘 원단을 분석하고 탐구하여, 버버리의 상징적인 소재를 한층 발전시켰다. 특유의 질감이 있는 트윌로 ‘구조화된 개버딘’을 새로 제작했다. 또 매 시즌 런웨이 컬렉션에서는 새로운 실루엣과 컬러, 소재의 트렌치코트를 선보이며 클래식한 스타일에 모던함과 혁신을 곁들인다.

버버리의 상징, 버버리 체크


▎‘It’s Always Burberry Weather’라는 슬로건과 함께 브리티시 스타일의 정수, 버버리 코트와 재킷을 선보이는 아우터웨어 캠페인. 아카데미상 수상 배우 올리비아 콜먼, 배리 키오건, 장징이를 비롯해 모델 카라 델레바인, 축구선수 콜 파머와 에베레치 에제, 뮤지션 리틀 심즈 등 다양한 분야의 셀럽들이 함께했다.
1924년 5월, 버버리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체크무늬가 등장했다. 오렌지, 브라운 패턴에 버버리의 중세 기사 문양을 넣은 체크무늬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전통 문양인 타탄에서 영감을 얻었다. 버버리 체크는 버버리 레인코트의 안감으로 처음 사용된 이후, 버버리 체크 디자인을 찾는 고객들이 늘어나며 다양한 아이템에 적용해 활용도를 넓혀나갔다.

1967년, 영국 대사를 위한 의상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던 프랑스 파리 버버리 매장의 담당자는 체크 안감을 다채롭게 활용해보기로 결심했다. 코트의 버버리 체크 안감을 사용해 여행용 가방의 겉면을 장식하고, 우산 커버를 만들었다. 이로써 첫 번째 버버리 체크 액세서리가 탄생했다. 1970년대에 첫선을 보인 버버리 체크 스카프는 액세서리 중 가장 사랑받는 아이템이다.

영국 문화에 뿌리를 둔 버버리 체크는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문화 트렌드에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까지 여전히 중요한 브랜드의 상징이자 유산이다.

진취적 정신을 담은 기마상 디자인

오리지널 기마상 디자인(Equestrian Knight Design, EKD)은 1901년경 새로운 버버리 엠블럼을 찾기 위한 공모전에서 우승한 작품이다. 기마상 디자인의 기사, 창, 방패는 각각 명예, 개혁, 보호를 상징하며 깃발에 적힌 ‘Prorsum’은 라틴어로 ‘전진’을 의미한다. 이러한 요소가 어우러진 기마상 디자인으로 버버리의 진취적인 정신을 표현하고자 했다.

기마상 디자인 엠블럼은 매장 실내 장식, 캠페인, 컬렉션 등에서 버버리가 지닌 혁신 정신을 표현한다. 기마상 디자인(EKD)은 브랜드의 창의적인 진화를 반영하는 참나무 잎사귀 크레스트를 적용하는 등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변화를 거듭해왔다. 다니엘 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션 아래 다시 한번 새로워진 기마상 디자인은 프린트, 가방 하드웨어, 주얼리의 모티프로 거듭나며 여전히 중요한 영감의 원천으로 자리하고 있다.

디지털 혁신으로 위기를 기회 삼다

트렌치코트를 앞세워 범접할 수 없는 인기를 누리던 버버리는 1990년대 들어 명성이 점점 퇴색했다. 또 급변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따라가지 못해 올드한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트렌치코트의 안감으로 처음 사용되어 버버리의 상징으로 여겨진 노바 체크는 너무 쉽게 카피되었고 버버리의 고급스럽던 이미지도 한순간에 추락하고 말았다. 추락하던 브랜드를 되살리기 위해 투입된 구원투수는 1998년 새로운 CEO가 된 로즈마리 브라보이다. 뉴욕의 메이시와 삭스피스의 CEO이자 유통업계의 여왕이라 불렸던 그녀는 버버리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 포토그래퍼 마리오 테스티노와 톱모델 스텔라 테넌트, 케이트 모스, 보그 파리의 편집장 카린 로이펠트 등 당대 최고의 패션 피플들을 영입해 광고를 통한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또 1998년에는 질 샌더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로베르토 메니체티를 영입하여 새로운 컬렉션 라인 ‘버버리 프로섬’을 론칭하며 올드한 느낌에서 벗어나 모던 럭셔리 브랜드로 거듭나고자 했다. 2001년에는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베일리를 파격적으로 기용했다. 그는 혁신적이고 모던한 스타일을 전통과 접목해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탈바꿈시켰고, 놀라운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엠마 왓슨을 버버리의 새 얼굴로 발탁하며 젊고 럭셔리한 브랜드 이미지 굳히기에 성공했다.

2006년 버버리의 새로운 수장이 된 안젤라 아렌츠는 디지털 혁신을 이끌었다. 명품 브랜드 최초로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고, 패션 브랜드 최초로 3D 패션쇼를 시도해 실시간으로 캣워크를 감상하며 오더를 받아내는 등 패션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컬렉션 모습을 인터넷으로 공유한 것은 폐쇄적인 명품업계 최초의 시도였다. 또 존 더글러스 CTO(최고기술책임자)를 새롭게 임명해 전 세계 IT 조직·인프라를 통합해 물류부터 매장 판매에 이르는 모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SNS· 모바일 분석 조직을 신설해 디지털 역량을 강화했다. 이런 버버리의 디지털 혁신은 실적을 견인했다. 2007년 8억5000만 파운드(약 1조2000억원)였던 매출은 2017년 27억3300만 파운드(약 3조9000억원)로 급증했다.

브랜드의 르네상스 재현을 꿈꾸다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았지만 퇴색되어 묻힐 뻔한 버버리는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추구하며 고비를 넘겼고, 여전히 젊고 감각적이면서도 정통 영국 귀족 패밀리 이미지를 간직한 럭셔리 브랜드로 찬사를 받고 있다.

1856년 설립 이후 변덕스러운 기후변화에 견딜 수 있는 아우터웨어 디자인에 전념해온 영국 아우터웨어의 선구자 버버리. 매 시즌 혁신적이고 기능적인 아우터웨어를 선보이기 위해 168년 동안 이어온 혁신과 장인정신을 담은 아우터웨어를 끊임없이 연구하며 진화시키고 있다.

이번 시즌에는 버버리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It’s Always Burberry Weather’라는 버버리 의류의 견고함과 영국 날씨의 변덕스러움이 동시에 드러나는 슬로건을 앞세운 아우터웨어 캠페인을 선보였다. 대표 아이템인 트렌치코트를 시작으로 영국 서브컬처의 상징인 해링턴 재킷, 클래식한 퀼팅 재킷과 패딩, 파카, 항공 재킷, 더플코트 등 7가지 대표 스타일을 다니엘 리의 독보적인 감각을 담아 새롭게 재해석해 선보이며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 7월 ‘버버리의 새 역사를 쓰겠다’는 포부를 밝힌 조슈아 슐먼(Joshua Schulman)을 새로운 수장으로 영입해 또 다른 변화와 혁신을 통한 성장과 도약을 선포한 버버리의 장밋빛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박스기사] 버버리를 이끄는 사람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리(Daniel Lee)

2022년 10월 3일 버버리에 합류했다. 영국 브래드퍼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니엘은 디자이너로서 다양한 수상을 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는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브랜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 전에는 2012년에 셀린느에서 레디투웨어 디렉터로 활동했고 메종 마르지엘라, 발렌시아가, 도나 카란에서도 경력을 쌓았다.

과거의 영광과 찬란한 유산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복각한 새로운 버버리 스타일을 만들어낸 그는 버버리의 클래식한 아이덴티티와 현대적인 감각을 버무르며 젊고 힙한 이미지를 세련되게 풀어내고 있다.

-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_ 사진 제공 버버리

202411호 (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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