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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요한 이마트 CTO 

이마트의 디지털 대전환 

김영문 기자
이마트가 플랫폼으로 거듭나겠다며 대변화를 선언했다. 단순히 전국 매장을 개보수하는 일이 아니다.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오프라인 매장을 소비자와 매장을 잇는 데이터 소통장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이마트 중심의 데이터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이다.

▎진요한 이마트 본부장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오감 체험을 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이 큰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경험 소비’는 분명 돌아온다”며 “우리가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하는 디지털전환에 주목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 사진 : 이마트
‘더 퍼스트(The First).’ 이마트 창동점 곳곳에 걸린 문구로, 실제 이곳은 1993년 국내 최초로 문을 연 대형 할인마트다. 이마트는 창동점을 시작으로 지난 29년간 신규 점포를 꾸준히 늘리면서 현재 전국에 140개 점,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까지 포함하면 160개의 대형 할인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움직이다 보니 다른 이커머스보다 가격 검색, 편리성, 민첩성 면에서 한 발 늦을 수밖에 없다. 최근 이마트는 점포 운영부터 상품 기획, 소싱 등 유통 과정 전반에 흐르는 데이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이마트에서 최고기술경영자(CTO) 격인 진요한 이마트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DT) 본부장이 서 있다.

“이커머스가 워낙 빠르게 발전하다 보니 오프라인 마켓도 앱 하나만 열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 디지털전환)을 한 게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소비자들이 물건을 살 때 오감을 동원해 체험하면서 쇼핑하는 걸 즐기고 원한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합니다. 어찌 보면 모바일 이커머스 업체들이 후기 모으기에 집착하는 이유일 수도 있겠죠. 코로나19 확산으로 오감 체험을 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이 큰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경험 소비’는 분명 돌아옵니다. 우리가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하는 디지털전환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진 본부장은 ‘이마트가 디지털전환에 나선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를 묻자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오프라인 매장은 이커머스가 할 수 없는 ‘경험 소비’를 제공하는 곳이지만, 고객 반응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며 “공급자 입장에서는 물류부터 진열까지 수많은 인력을 투입해 소비자 지갑을 열려고 공을 들였는데 우리가 손에 쥐는 건 구매 영수증뿐이라 오프라인 매장을 디지털 플랫폼화하는 게 우리 숙제”라고 덧붙였다.

이마트는 DT본부를 디지털전환의 첨병으로 삼고 있다. 이마트는 온라인 자회사 SSG닷컴, W컨셉을 보유 중이고, 지난해 6월 이베이코리아(현 지마켓글로벌)까지 품에 안으면서 DT본부의 발걸음도 한결 빨라졌다. DT본부의 중장기 방향성이 전사에 공유됐다.

실제 지난 5월 신세계그룹은 디지털 대전환을 통한 ‘신세계 유니버스’를 구축하기 위해 앞으로 5년간 20조원 규모의 투자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 중에서 이마트는 트레이더스 출점과 기존 점포 리뉴얼(재단장)에 1조원을 쓰고, 신세계 그룹이 온라인 사업 관련 물류센터 확대와 시스템 개발에 3조원 이상 투자할 예정이다.

사무실도 DT본부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SSG닷컴이 올해 센터필드로 옮길 계획이고, 성수 본사에 있던 DT본부 산하 마케팅부서는 이미 지난 4월 센터필드로 옮겨왔다.

진요한 본부장은 데이터사이언스에 능통한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서울대 생물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 주립대 (University of Texas, Dallas)에서 컴퓨터 비전·자연어 융합 기반 AI 관련 논문을 발표하며, 컴퓨터공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 1세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이스페이스에서 수석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실리콘밸리에 있는 세계 최대 모바일 광고 플랫폼 중 하나인 탭조이에서 부사장(VP, Data Science)으로 일을 했다. 탭조이는 지난 2014년 국내 데이터분석 스타트업 파이브락스를 인수하면서 국내에 알려졌다. 이후 그는 SK 텔레콤으로 자리를 옮겨와 AI 센터 내 AI·DT 기술 그룹과 MNO 사업부 DT 그룹장을 겸임했고, 데이터 플랫폼 클라우드 전환작업, AI 최적 요금제, 온라인 몰 배송·서비스 혁신, 국내 최초 통신사 무인매장 개발을 진본부장이 주도했다. 그가 맡은 DT본부도 이마트 온오프라인 통합의 중심에 선 만큼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이마트가 그리는 큰 그림이 무엇인지 진 본부장을 통해 엿봤다.

‘신세계 유니버스’ 구축에 5년간 20조원 투자


▎사진 : 이마트
SSG닷컴이 이마트 DT 전략의 일환이 아니었나.

전혀 다른 문제다. SSG닷컴은 이마트를 DT했다기보다는 신세계 차원에서 이커머스를 빠르게 출범시키고자 시작한 독립사업부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에 이마트 인프라가 활용된 것은 맞지만 이마트가 주축이 돼 DT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은 사실상 지난해 초라고 봐야 한다.

이마트가 DT를 추진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오프라인 매장을 재해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소비자들이 오감을 동원해 체험하고 물건을 사는 곳은 오프라인 매장인데, 늘 데이터분석의 화두는 이커머스에서 찾았다. 이커머스는 직접 체험을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어 소비자가 잘 아는 상품, 더 싼 상품 광고에 주력했다. 물론 여기서 소비자 후기를 공유해 소비자가 간접 체험하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이커머스는 또 온라인 기반임을 잘 활용해 소비자가 선택하는 과정에서 쌓인 데이터를 따라가며 다각도로 분석했다. 하지만 온갖 체험을 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은 정작 소비자 피드백을 받을 수 없었다.

왜인가.

현실적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소비자 행태를 분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영수증에 적힌 구매 기록이나 재고 상황을 토대로 어떤 물건이 얼마나 팔리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프라인 매장을 DT화하는 건 꽤 난도가 높은 과제다. 이커머스는 온라인·모바일 구매 기록 데이터를 분석하며 경쟁하지만, 우리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데이터를 취합하는 것부터 기술적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이커머스가 한손잡이라면 우리는 양손잡이가 돼야 한다.

분석해볼 데이터가 무궁무진하겠다.

그렇다. 매월 이마트를 찾는 소비자가 500만 명이 넘고, 취급하는 상품만 수백만 개에 이른다. 우리가 늘 하는 얘기지만, 우리나라 가정의 식탁에 오르는 식자재 중 50%는 이마트에서 나온다고 할 정도로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지만, 오프라인은 말이 없다. DT를 추진하는 이유는 우리가 오프라인에서 뭔가 마케팅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찾고, 소비자가 좋은 제품을 더 쉽고 빠르게 살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한다.

DT를 적용할 범위가 넓겠다.

맞다. 오프라인 매장 말고도 물류·유통 시스템 인프라를 개선하는 것도 우리 과제 중 하나다. 오프라인 매장을 유지하는 비용이 있다 보니 이커머스보다 고정비가 꽤 많이 드는 편이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나가는 비용을 줄이고 최적화를 이뤄내는 것도 시급하다.

오프라인 매장이 플랫폼화되면 어떤 이점이 생기나.

소비자와 기업 고객, 두 가지 측면에서 보면 이렇다. 일단 소비자 측면에서는 개인화해 정밀한 혜택을 줄 수 있다. 지금 오프라인 매장은 같은 제품을 대량으로 들여와 대대적으로 할인해 공급하는 식이다. 마케팅 자금을 모아 이마트 앱과 디지털 매장에서 소비자마다 다른 취향에 맞춘 할인과 적립을 적시에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매장과 소비자가 상호작용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또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마케팅 창구가 될 수 있다. 구글, 페이스북 등 SNS 마케팅이 주를 이루는 시장에서 오프라인 매장은 직접 지갑을 열기 직전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칠 기회를 얻게 되는 셈이다.

새로운 마케팅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유튜브에서는 어떤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보기 전에 4초 정도 광고가 뜬다. 직접 구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무작위로 광고를 내보낸다.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의 광고 노출 경험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은 차가 막혀도 물건을 사겠다는 의지를 가진 소비자가 오는 곳이다. 꼭 필요한 상품이든 그렇지 않든 구매 의지가 강한 고객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해볼 수 있다. 특정 브랜드가 충성고객을 따져볼 때도 오프라인 매장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다만, 매장에서 데이터를 뽑아내려면 기술적 인프라가 매장에 깔려 있어야 한다.

이마트에 합류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인가.

먼저 데이터 인프라를 바꾸는 일부터 착수했다. 현재 이마트의 대부분 시스템은 온프레미스상에서 운영된다. AWS상에서 구동되는 SAP ERP(전사적 자원 관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고, 기존 데이터 인프라를 클라우드 기반으로 바꿔 클라우드 환경에서 직접 분석하고 개발 속도를 더 빠르게 할 계획을 세우고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개발 인력을 내재화할 수 있었다. 보통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개발업체에 외주를 주는데, 개발하고 시험·운영하면서 1~2년을 보내게 된다. 그동안에도 시장은 계속 변하고 결국 구세대가 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우리 ERP를 클라우드 위에 올려 자체 개발 인력이 계속 이마트에 맞게 개선해야 하는 이유다.

통신사에서 유통기업인 이마트로 자리를 옮겼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15년 정도 미국에서 근무하고 한국에 와서 지금까지 DT 업무를 주로 해왔다. 대기업 DT는 굉장히 힘들지만, 마치 회사 안에서 새롭게 창업한다는 느낌으로 시작할 수 있는 매력적인 업무다. 물론 유통사가 DT를 추진하면 통신사보다 챙겨야 할게 훨씬 많아 힘들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을 떠올리니 DT가 잘 안 되어 있어 오히려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법이 열려 있고, 데이터를 쌓아 분석하면 디지털 마케팅도 상상력을 담아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 합류하게 됐다.

“오프라인 매장은 거대한 DT 실험장”

힘든 점은 없었나.

다들 그룹 내 SI 업체인 신세계아이앤씨와 관계가 민감하지 않냐고 묻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SSG닷컴이 출범하고 자리 잡으면서 신세계아이앤씨도 나름대로 영역을 확장하고 경험을 쌓은 터라 이마트 DT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도 영역 다툼보다는 협업 포인트를 찾는 데 머리를 맞댔다. 실제 SAP ERP를 클라우드상에 올리는 건 DT본부가 맡았다면, SAP 개발을 맡거나 운영하는 개발 요소는 신세계아이앤씨가 맡는 식으로 두 회사가 새로운 클라우드 경험을 쌓는 기회로 삼았다.

신선식품이 제대로 유통되지 않아 많이 버려진다고 알고 있다. DT 관점에서 해결한다면.

실제 관련 파일럿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채소, 과일 등을 비롯해 각종 신선식품이 버려지는 걸 최대한 줄이면 더 싼 가격에 소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그래서 먼저 고객 선호도를 조사해 제품 재고를 맞추고, 그래도 잘 팔리지 않아 버려지는 신선식품은 이 제품을 선호하는 고객에게 할인쿠폰을 보내 더 싸게 살 기회를 주는 식이다. 결국 데이터가 관건이다.

DT본부가 더 커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개발자 채용은 수월한가.

쉽지는 않다. 면접 봤던 몇몇 개발자는 이렇게 묻더라. “이마트가 IT 회사인가요?” 하지만 이커머스 분야보다 훨씬 더 많은 도전 과제가 있다며 개발자를 설득한다. 아직 개척되지 않은 시장이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개발자들은 오히려 이렇게 가슴 뛰는 일에 설렌다. DT본부 캐치프레이즈가 ‘라이드 온 DT(Ride on DT)’인 이유다. DT 세계를 항해하는 배에 올라타 미지의 세계를 개척한다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었다. 개발자 채용도 중요하지만, 기존 인력과 잘 융합하는 것도 굉장한 미션이다. 이런 과정을 보면 IT 플랫폼 회사가 훨씬 더 안정적인 듯하다. 현장을 누비던 인력과 개발자가 만나 소통하고 아이디어를 좇다 보면 새로운 것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마트 내부에서도 DT에 의지가 있고, 타부서 구성원들도 합류할 기회를 주는 이유다. AWS와 협업해 사내에서 데이터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AWS와 다양한 부분에서 협업하는 것 같다.

그렇다. 실제 DT본부는 AWS와 전방위적으로 협업해 DT 관련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AWS는 워낙 개발 능력이 탄탄하고, 각종 솔루션을 유통 분야에 적용해본 경험이 많기 때문에 다각도에서 조언을 구하고 있다. SAP 인프라를 클라우드에 올리는 일은 아마 AWS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했을 정도로 난도가 높은 미션이었다.

이마트도 아마존이 될 수 있을까.

소비자가 좋은 물건을 값싸고 빠르게 받을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두 회사의 지향점은 같다는 말로 답을 대신하겠다. 아마존은 혁신 성장의 비결로 ‘투 피자 팀(two pizza team)’ 법칙을 자주 꺼낸다. 피자 두 판을 시켜 먹는 정도의 작은 조직 규모라는 뜻인데, 수천 개 조직이 독자적으로 모든 의사결정을 해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전략의 대명사로 꼽힌다. 개발 조직에는 좋아 보이지만, 이마트에는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회사마다 성장하는 기술적 배경이나 비결은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마트는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지난해 초 합류하고 나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ERP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단번에 결정했고, 주로 외주를 줬던 IT 인력도 대대적으로 내재화했다. SSG닷컴, 지마켓글로벌과도 데이터 협력에 나서면서 각종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만큼 소비자의 오감 체험에 디지털 요소를 결합해 라이프스타일을 바꿔보겠다는 그룹사의 의지가 대단하다. 당장 한두 달 내에 눈에 띄는 실적을 내겠다거나 보여주기식 IT 쇼는 지양하려고 한다. 오프라인 매장을 진정한 플랫폼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는 현장 곳곳에서 데이터를 촘촘히 쌓아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뼈대를 세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마트가 수익성과 지속가능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여정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2207호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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