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선율을 쉽게 만드는 방법 (1) - 사상(寫像) 

아름다운 선율은 사람들의 귀를 간질이고, 유혹하고, 감동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충만하게 해준다. 대단한 천재들이 불멸의 선율을 만들겠지만, 평범한 이들도 몇 가지 방법만 알면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만드는 방법들이 있고, 배울 수 있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포스터. 탈북한 수학자 리학성은 서울의 한 명문 사립고등학교에서 수학을 잘하지 못하는 학생을 가르친다. 와중에, 본문에서 언급한 ‘파이송’을 피아노 앞에서 연주해 보인다. / 사진:배급사 쇼박스
올봄에 개봉한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는 배우 최민식이 분한 탈북인 수학자가 ‘원주율의 값으로 만들어진 선율’을 피아노로 치는 장면이 있다. 원주율(圓周率)은 원의 지름에 대한 둘레의 비율이다. 그리스 문자 π(파이, pi)로 표기하는 이 값은 수학과 물리학의 여러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수학 상수이고, 다음과 같이 끝이 없다. “3.1415926535897932384626…”

영화에서 최민식은 문제를 빨리 푸는 것에 몰두한 어린 학생들에게 수학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주문을 자주 한다. 그러던 그가 학생들을 피아노 앞에 오게 한 후 원주율 값으로 선율을 연주하겠다며 한 여학생에게 선율의 반주를 해보라고 한다. 최민식이 분한 리학성은 원주율의 각 수를 음고에 대응시킨다. 1은 도, 2는 레, 3은 미…, 7은 시, 8은 한 옥타브 위의 도, 9는 한 옥타브 위의 레, 이런 식이다. 이런 대응에 따라 원주율 값은 ‘미-도-파-도-솔-(한 옥타브 위의) 레-(한 옥타브 아래의) 레-라-솔-미-솔-도…’의 선율이 된다. 최민식이 이 선율을 피아노로 치고, 여학생이 선율에 맞추어 화음 반주를 연주한다. 영화 속 두 사람의 연주는 어느덧 오케스트라가 반주하는 웅장하고 감미로운 음악이 된다. 인터넷에서 ‘파이송’을 검색하면 이 장면을 볼 수 있으며, 댓글들은 “진짜 너무 좋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소름 돋는다” 등 환호 일색이다.

파이송은 이 영화의 배경음악을 작곡한 이지수가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 최민식은 ‘수학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려고 이 선율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의 이런 접근은 참신하다. 이 선율은 그것을 만들어낸 어떤 ‘원리’를 만들어낸 인간 뇌의 창조성의 증거다. 이런 (수학적이자 음악적인) 창조성은 일부 수학자들과 작곡가들에게 꽤 익숙하다. ‘3.14159…’를 구성하는 각 수를 피아노 건반 위의 음에 대응하는 것이 파이송을 만들어낸 원리다. 이 대응의 원리는 수학에서의 사상(寫像, mapping/ morphism)이다. 하나의 값을 다른 값에 대응하는 작업이다.

‘3.14159…’는 위 영화 속 파이송으로만 대응될까. 그렇지 않다. ‘3.14159…’의 수들은 영화에서는 파이송을 구성하는 도, 레, 미, 파 등의 음으로만 대응되는데, 그렇게 대응하는 전제가 있다. 각 수를 평균율상의 다장조 음계를 구성하는 음들에만 대응하라는 전제다. 이 전제를 통해 도와 레 사이의 도 , 레와 미 사이의 레 등 피아노 건반상의 검은 건반들이 대응과정에서 제외되었다. 이 반음들을 대응 과정에 포함하면, 즉 앞에서 말한 전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전제를 깔면, ‘3.14159…’는 위 영화 속 선율과 전혀 다른 것이 된다. 1은 도, 2는 도 (혹은 레♭), 3이 레…, 7은 파 (혹은 솔♭), 8은 솔 등의 대응이 있을 것이고, 이에 따라 위 원주율 값은 ‘레-도-미♭-도-미…’라는 선율이 된다.

영화 속 장면을 소름 돋게 만든 원인


▎구이도 모나코 다레초(Guido Monaco D’Arezzo, 992/995~1033/1050)가 작곡한 ‘성 요한 찬가’ 악보. 악보 밑 라틴어는 가사이며, 붉게 표시된 음들은 ‘도, 레, 미, 파, 솔, 라’로서, 이 음들은 이 음들이 노래하는 가사의 음절(syllable) 그 자체이다. ‘Ut’는 오늘날 ‘도(Do)’로 불리는 음에 대한 중세 표기다. 구이도 모나코 다레초는 다레초 지역의 구이도 모나코라는 뜻인데,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역에 있는 다레초시는 구이도 모나코가 활동했던 도시이자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1997)의 배경이었다. / 사진:위키피디아
이 새로운 선율을 피아노로 쳐보면 좀 이상하게 느낄 수 있다. 별로 안 좋으니 이 대응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리하여 영화 속 선율이 좀 더 적절한 대응일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수학이 아니라 미학이 되는 건가? 미학이라는 영역을 고려해야만 어떤 수학적 대응이 적절한지를 평가할 수 있다면 영화 속 대응은 엄밀한 것이 되기 어렵다. 먼 훗날, 미학의 모든 영역을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는 있겠다.

그런데, ‘레-도-미♭-도-미…’라는 새로운 선율을, 그 선율에 어울리는 좀 더 복잡하고 세련된 화음 진행 위에서 노래하게 하면 얼마든지 멋진 음악이 된다. 영화 속 ‘미-도-파-도-솔…’은 선율만 놓고 보면 단순하다. 패턴도 없다. 대부분의 아름답고 흥미로운 선율에서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 ‘3.14159…’를 구성하는 각 수에도 패턴은 없다. 이 사실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패턴 없는 선율은 재미없을 수 있다. 영화 속 ‘미-도-파-도-솔…’의 패턴 없는 선율이 사용된 음악은 괜찮게 들린다. 어떤 이들은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영화 속 장면을 소름 돋게 만든 원인은 패턴 없는 선율이 아니라 그 선율을 받쳐주는 예쁜 화음 진행과 그 진행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다채롭고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이다. 강약이나 리듬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화음 진행과 (선율의 어떤 음을 어떤 악기로 연주하게 할지를 결정하는) 오케스트레이션, 강약, 리듬 등은 원주율 값에서 도출된 것이 아니다. 파이송을 듣고 감동할 수 있지만, 그 원인은 원주율에 있지는 않다.


▎‘원주율 두루마리(The π-Scroll)’ 원주율은 오늘날 컴퓨터를 통해 계속 계산되고 있다. 원주율 연산 세계기록이 경신되는 이유다. 현재 2016년에 105일 동안 계산한 세계기록이 있다. 입자물리학자 피터 트루비(Peter Trueb)은 홈페이지에 자신이 계산한 원주율을 공개했는데, 그 용량이 무려 9테라바이트에 이른다. 10테라바이트는 미국 의회 도서관의 모든 컬렉션을 보유할 수 있는 용량이다. 사진은 피터 트루비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가상의 두루마리로서, 그가 계산한 원주율 숫자들을 돌려가며 보여주고 있다. 이 숫자 모두를 음에 대응하면 어떤 선율이 나올까. / 사진:피터 트룹(페터 트뤼프?)의 홈페이지
‘3.14159…’를 구성하는 각 수를 음악의 다른 요소에 대응하게 할 수 있다. 학생들과 같이 작업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식은 서로 다른 리듬 10개를 만들어낸 후 각 리듬을 10개 수에 대응시켜서 만들어낸, 리듬으로만 된 곡을 연주해보는 것이다. 서로 다른 리듬들의 각각을 손뼉으로 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손뼉을 ‘짝 짝’ 치는 것을 1에, ‘짝짝 짝’ 치는 것을 2에, ‘짝짝짝’ 치는 것을 3에, ‘짝짝짝짝’ 치는 것을 4에, ‘짝짝 짝짝’ 치는 것을 5에 대응하는 식이라면, ‘3.14159…’는 ‘짝짝짝, 짝 짝, 짝짝짝짝, 짝 짝, 짝짝 짝짝…’과 같은 연쇄적인 손뼉 치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손뼉 대신 탬버린이나 작은 북을 칠 수도 있으며, 손뼉과 탬버린 등을 섞는 것도 가능하다. 탭댄스도 가능하다. 어떤 동작을 손뼉과 탬버린 등에 섞는 것은 어떨까. 확실히, 파이송은 우리에게 -영화 속 최민식이 말했듯이 수학에 대해서, 더 나아가 음악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준다.

단순한 사상을 통해 선율을 거의 자동으로 산출해내는 원리는 음악 역사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근대적 음악이 바로 이런 사상 원리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도 있다. 최초의 사상을 사용한 이는 중세 이탈리아의 음악이론가였던 구이도 다레초(Guido D’Arezzo, 992/995~1033/1050)였다. 베네딕토회 수도사로 활동했던 구이도는 주어진 가사의 어떤 구성 요소를 선율의 각 음에 바로 대응하는 무척 단순한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가 작곡했다고 여겨지는 ‘성 요한 찬가(Ut queant laxis)’는 예수에게 세례를 해준 덕에 ‘세례자 요한’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요한을 찬양하는 찬송가였는데, 이 찬송가의 라틴어 가사는 다음과 같다. “Ut queant laxis, Resonare fibris, Mira gestorum, Famuli tuorum, Solve polluti, Labii reatum, Sancti Iohannes.” 이것은 “당신의 종이 당신의 업적의 훌륭함을 목소리로 편안히 함께 노래할 수 있도록 우리 입술의 죄를 씻어 주소서, 성 요한이여”로 번역된다. 위 라틴어 가사에서 각 단어의 첫 음절만 고려해보자. 밑줄이 쳐진 부분들만 모아보자. ‘Ut, Re, Mi, Fa, Sol, La, S-I.’ 여기서 ‘Ut’는 나중에 도(Do)가 된다. 결국, 이것은 ‘도, 레, 미, 파, 솔, 라, 시’가 된다. 구이도는 위 라틴어 가사 “Ut queant laxis, Resonare fibris…”에 ‘도…, 레…, 미…, 파…, 솔…, 라…, 시…’의 선율을 붙였다. 도로 시작하는 선율이 이어지는데, 이 선율은 “Ut queant laxis”를 노래하며, 그다음에 레로 시작하는 선율이 이어지는데, 이 선율은 “Resonare fibris”를 노래한다. 이런 식으로 각 가사에 미로 시작하는 선율, 파로 시작하는 선율 등이 차례로 제시된다. 이 작업은 한편으로 일종의 단순한 사상에 따른 작곡이며, 동시에 근대적 계명창(Solfège), 즉 계이름에 따라 소리의 높이를 나타내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계명창, 즉 음들을 ‘도-레-미-파-솔-라-시’라고 읽는 방법을 처음 고안한 구이도 다레초는 음악 교육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현대에 와서 어떤 음악가들은 인간의 뇌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인 세로토닌의 A-C-G-T 염기서열을 짤막한 노래로 바꾸기도 했다(샘 킨(Sam Kean),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 해나무, 2014, 104쪽). A-C-G-T에서 A는 아데닌, G는 구아닌, T는 티민, C는 시토신이다. 이것들은 DNA의 화학적 구성 요소들이다. 우리의 손가락이 다섯 개여야 하고 눈은 두 개여야 한다든지, 피부색이 흰색이거나 검은색이어야 한다든지 등을 지시하는 유전정보는 A, G, T, C 네 개의 문자가 임의로 뒤섞이는 방식을 통해 표현된다. 음악가들은 A, G, T, C 문자를 각각 A, G, E, C(라, 솔, 미, 도)의 음으로 바꾸었고, 상술한 세로토닌의 A-C-G-T 염기서열을 선율의 각 음으로 바꾸었다. 결과는 들어줄 만한 노래가 되었다.

일상에서 어떤 정보의 요소를 확인한 후 각 요소를 음계의 도, 레, 미, 파 등에 대응해보자. 쉽게 선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만든 선율을 피아노 앞에서 쳐보거나 노래해본다. 만약 이상한 결과가 나오면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고민하고, 대응 방식을 바꾸어볼 수 있다. 대응 행위 저변에 어떤 전제조건이 주어져 있는지 확인해보고, 그 조건을 바꾸면 대응 방식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대응 방식을 계속 바꾸다 보면, 괜찮은 선율이 나올 수 있다.

김진호는…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209호 (2022.08.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