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아트페어로 손꼽히는 프리즈가 아시아 최초로 선택한 도시는 서울이다. 오는 9월 2일부터 5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리는 ‘프리즈 서울’을 앞두고 대한민국 미술계가 또 한 번 들썩이고 있다.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이 주목하는 프리즈 서울을 통해 많은 한국 작가가 세계시장에 진출하고, 더 나아가 서울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지가 되기를 꿈꾸는 권민주 프리즈 VIP 아시아 총괄을 만났다.
글로벌 아트 마켓을 주도하는 프리즈의 아시아 진출을 예측하며 지난 몇 년 동안 미술계에서는 이런저런 풍문이 나돌았다. 많은 전문가가 예상했던 홍콩이나 상하이를 제치고 마침내 서울이 프리즈의 아시아 첫 진출지로 최종 낙점됐다. 지난 8월 17일 유중아트센터에서 만난 권민주 프리즈 VIP 아시아 총괄은 “세계 일류 아트페어의 아시아 진출지가 서울로 정해져, 유수의 해외 갤러리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컬렉터들과 큐레이터들이 유망 작품을 찾아 한국을 방문하는 기회가 드디어 만들어졌다”며 “이왕이면 한국의 좋은 콘텐트들도 이 플랫폼을 통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정승우 이사장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아트페어를 준비하며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권민주 총괄을 만나 한국과 해외 미술시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만에 뵙는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올해로 10년째 아트페어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2012년 한국의 로컬 아트페어에서 시작해 10년이 지난 올해, 프리즈 서울을 론칭하게 되어 더욱더 감회가 새롭다. 학부 때는 경영학을 전공했고, 석사 과정으로 예술기획을 공부했다. 학부 시절에 공부한 경영학은 아트페어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데 실제적인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아트페어 일을 한 지 5년 차가 되었을 때 미술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예술 전공자가 아니기에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용감하게 부딪힐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나를 더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아트부산을 거쳐 부산화랑협회 디렉터로 일한 경험은 지역 미술에 애정을 갖는 계기가 됐고, 나아가 고미술과 우리나라 전통문화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올해 프리즈 서울을 론칭하면서 글로벌 미술시장을 국내에 소개하는 동시에 국내 미술과 지역 미술, 더 나아가 한국의 훌륭한 전통문화를 전 세계에 소개하는 플랫폼을 기획하고 있다.
프리즈에 합류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입학 예정이던 미술 대학원의 학기가 9월부터 시작이었다. 마침 봄부터 업무적으로도 여유가 있어 당시 미술시장의 50%를 차지했던 뉴욕에서 몇 달 지내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짧은 뉴욕살이가 시작됐다. 뉴욕은 멋진 미술관과 갤러리가 워낙 많은 도시라 배울 점이 많았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제프 쿤스(Jeff Koons) 설치작품 앞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았다. ‘설마 진짜 제프 쿤스 작품일까?’ 싶어 앞쪽에 세워진 작품 캡션을 확인했는데 제프 쿤스의 ‘오리지널’ 작품이 확실했다. 언젠가는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바람에 비를 피해 근처에 있는 조형물 밑으로 뛰어 들어가 비가 멎기를 기다린 적이 있다. 어쩐지 장 뒤비페(Jean Dubuffet)의 작품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 주변을 살펴 캡션을 확인해보니 정말 그가 만든 약 12m 높이의 나무 모양 설치작품이었다. 이후 맨해튼의 설치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뉴욕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이런 문화 혜택을 누리고 사니 얼마나 좋을까?’ 하는 동경심이 생겼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쭉 뉴욕에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일단 뉴욕에 살려면 직장부터 잡아야 했다. 당시 아트페어에서 일한 경력만 있던 터라, 뉴욕 하면 떠오르는 프리즈(Frieze) 아트페어와 아모리쇼(Armory Show) 오피셜 웹사이트에 무작정 이력서를 등록했다. 운이 좋았는지 두 기관 모두와 인연이 닿아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다 결국 프리즈 아시아 개발팀의 한국 담당 VIP 컨설턴트로 최종 오퍼를 받았다. 애석하게도 비자 문제로 뉴욕이 아닌 서울에서 일하게 됐지만, 지금 생각하면 운명이 아니었나 싶다.
프리즈의 서울 진출 배경은.프리즈는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아트페어로, 뉴욕과 LA에서도 진행되며, 세계적인 퀄리티를 자랑한다. 그런 프리즈가 올해 처음으로 아시아, 그것도 한국의 서울에서 열리게 됐다. 사실 아시아 시장은 2000년 이후 세계 미술시장에서 아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13년부터 아트바젤이 홍콩으로 들어왔고, 이후 상하이에서 ART021과 웨스트번드 아트페어가 열리고 타이페이에서 타이페이 당다이 등 각종 아트페어가 성황리에 진행되면서 아시아 시장이 더욱 다채로워졌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인 미국을 제외하면 아시아가 유럽보다 더 큰 시장이 됐다. 프리즈 역시 아시아 시장에 관심을 쏟으며 진출 도시를 물색하던 중 서울이 여러모로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미술시장은 경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한국 미술시장은 최근 몇 년간 급격하게 성장했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전반적인 경제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장 규모가 작아 성장잠재력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미술관과 갤러리도 많고, 미술작가와 작가를 배출하는 학교 등 기본적인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시라는 점도 한몫했다. 코로나 시국 이후 지난 몇 년 동안 아시아에서 가장 큰 미술시장이었던 홍콩, 상하이 등에 여행 규제가 강력해지며 현장에서 아트페어에 참여하는 기회가 현저히 줄었다. 올가을,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의 한국 상륙은 아시아 컬렉터들, 더 나아가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이 아주 오랜만에 미술 축제의 장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각기 다른 로컬 아트페어에서 일한 경험이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아트부산은 아무것도 모르던 내게 아트페어 일을 맡겨준 소중하고 감사한 곳이다. 일반적인 아트페어와 달리 아트페어만을 위해 설립된 회사로, 전문적으로 아트페어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곳이었다. 물론 론칭 초창기에는 일을 배우면서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했기에 너무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매해 거듭할수록 해외 콘텐트가 늘어났고, 지금은 부산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딛고 국제아트페어로 성장 중이다. 반면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AMA)는 부산화랑협회에서 진행하는 행사다. 실질적으로 부산 지역의 갤러리가 모여 만든 협회이기 때문에 부산 지역의 미술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아트페어이기도 하다. 한 도시에서 두 개 아트페어를 모두 진행해본 경험은 각 아트페어 특유의 장점을 온전히 체득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제는 두 아트페어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부산 지역 전체의 미술시장이 더욱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라며 응원하고 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기꺼이 돕고 싶은 마음이다.
한국 미술을 해외에 알리는 데도 열심이다.2018년 초, 프리즈 팀에 합류했다. 물론 로컬 아트페어에서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해외 협력 관련 업무를 담당해온 덕분에 해외 주요 아트페어를 방문해 갤러리와 VIP를 유치하는 일은 익숙했다. 하지만 막상 해외에 거점을 둔 아트페어팀에 합류해 바라보는 세계 미술시장과 한국 미술시장의 괴리감은 생각보다 커 한동안 고민에 빠져 지냈다. 프리즈 런던이나 뉴욕 등 유명 아트페어에 가보면 참여한 한국 갤러리는 기껏해야 2~3곳 정도였다. 한번은 한 해외 아트페어에 팀원들과 함께 방문했는데, 4개로 늘어난 한국 부스를 보고 한국 미술계가 정말 많이 발전했다며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200여 개 갤러리가 참여한 행사에서 고작 4개뿐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아는 한국의 수많은 갤러리나 작가들이 떠올라 너무 속상했다. 한국 작가들의 뛰어난 수준에 비해 그들의 콘텐트를 홍보할 수 있는 판로가 크게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한국 미술을 알리는 일에 관심을 갖고 국내 원로 작가는 물론, 중견 작가에서 신진 작가와 작품들을 홍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많이 기획하고 진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국내 작가들이 해외 진출을 하는 데 가장 큰 문제는 언어의 장벽이다. 작가의 작품이 너무 좋아 해외시장에 소개하려고 해도 작품의 이해를 돕는 영문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 그래서 주목할 만한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는 영문 자료를 만들어 홍보하는 일도 관심을 쏟게 됐다. 정기적으로 작가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칼럼도 기고 중이다. 물론 내가 한국 미술과 작가들을 잘 알아서라기보다는,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휼륭한 분들을 만나 함께 공부하고, 그들을 널리 알리는 계기로 삼고 싶어서다. 앞으로도 기고 또는 강연 기회가 있으면 최대한 참여해 한국 미술을 알리고 싶다.
글로벌 아트페어와 국내 아트페어를 비교한다면.먼저 물리적·문화적·역사적으로 전혀 다른 배경과 환경을 갖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아트페어는 1967년 시작된 아트 쾰른이다. 유럽에서 아트페어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고대 유물부터 중세시대를 거쳐 근대, 오늘날까지를 아울러 미술이라는 장르가 가장 먼저 활성화된 곳이 바로 유럽이기 때문이다. 많은 국가가 몰려 있어 교류가 잦을 수밖에 없는 유럽에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됐고, 미술품 역시 가치를 인정받으며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모든 환경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혀 생긴 해외의 아트페어와 달리 한국에서의 미술은 오랜 기간 동안 왕실 또는 양반의 고유 문화였다. 일반인들은 향유하기가 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해외 교류 또한 오랫동안 막혀 있던 터라 미술품을 사고파는 시장이 생기기도 힘들었다. 현대사회에 들어 국제 교류가 활발해지고 짧은 시간 내에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한국 미술시장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문화라는 것은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볼 수 있어야 하는 일이다. 단기간에 몸집이 커진 국내 미술시장에서 아트페어가 하나의 문화로서 건강하게 뿌리내리기 위한 기초 작업과 원활한 운영을 함께해나가는 것이 국내 아트페어에 주어진 당면 과제인 것 같다.
한국과 해외 컬렉터들의 차이점도 궁금하다.한국과 해외 컬렉터들 간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그중 내가 생각하는 주된 원인은 오늘날 문화 공헌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관점인 것 같다. 단편적으로 미국에는 아트 컬렉팅 작품을 기부하거나 미술관에 대한 기부를 장려하는 국가제도가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확장 리노베이션을 계획할 때 뉴욕의 유명 컬렉터 부부인 스티브 코헨과 알렉산드라 코헨은 모마에 50밀리언 달러(한화 약653억원)를 기부했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미국은 장기특별공제 또는 기부금 공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금부담을 줄여준다. 문화에 대해 공헌하는 것을 국가적으로 장려할 만큼 가치 있는 일로 여긴다. 반면 한국에서 아트 컬렉팅 또는 미술관 기부는 아직은 특정 계층만의 문화인 양 곱지 않은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아트 컬렉팅이 건전한 방식으로 자리 잡아 전반적인 문화 공헌에 대한 관점이 바뀌기를 기대한다.
프리즈를 고대하는 한국 컬렉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개인적으로는 먼저 전시를 많이 보고 자신의 취향을 찾길 권한다. 취향에 맞는 작가를 찾았다면, 그 작가에 대해 공부를 해보면 좋겠다. 물건을 구매할 때 제품 정보를 찾아보고, 이것저것 비교하고 선택하듯, 미술작품에도 더 관심을 갖고 작가와 작품을 탐색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조금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말씀드린다면 한국인으로서 먼저 한국 미술과 한국 문화에 애정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프리즈 서울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거대한 해외 아트페어가 모처럼 호황을 맞은 한국 미술계를 위협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하지만 한국 컬렉터들의 우리 문화 사랑이 발판이 되어 준다면 프리즈는 한국의 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막바지 점검 중인 프리즈 아트페어가 서울에 성공적으로 안착해 한국이 아시아 미술시장을 선도하는 중심지가 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 정승우는…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리=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사진 최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