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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 

딥테크 강국의 꿈 

신윤애 기자
한 번은 실패했고 한 번은 성공했다. 두 번의 창업에서 얻은 교훈으로 ‘공돌이’ 후배들을 돕겠다고 나선 물리학 박사가 있다. 2014년 액셀러레이터를 차려 지금까지 255개 딥테크(deep-tech) 스타트업에 투자한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다. 한국 제조업의 제2의 도약을 이끌 기술 기업에 투자를 집중했을뿐더러 투자한 스타트업들의 5년 생존율이 80%를 넘어섰다는 것이 포브스코리아가 그를 커버스토리로 다룬 이유다.

고등학교 2학년 땐 미술을 하고 싶었다.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다. 물리를 비롯한 과학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수험생이 된 어느 날, 그는 평소처럼 건성으로 넘기던 물리 교과서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사진 한 장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세상이 박살 나는 것 같았다. 또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곧바로 진로도 결정했다. 물리학도가 되겠노라고. 그렇게 그는 카이스트에 진학해 물리학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모두 밟고 물리학 박사가 됐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다. “쌍생성이었어요.” 19살 소년의 마음을 홀린 주인공은 이름조차 생소했다. “쉽게 말하면 빛에서 입자가 생기는 장면을 포착한 겁니다. 빛의 실체는 전자기파잖아요. 그래서 빛에서는 입자들이 생겨요. … 이를 활용한 의료기기도 있습니다. 암이 있는 부위를 찾아내는 PET(양전자 단층촬영)죠.” 쌍생성을 설명하는 내내 그의 눈은 호기심 많은 19살 소년으로 돌아간 듯 반짝였다.

“제가 호기심도 관심사도 많습니다. 별명이 ‘다람쥐’예요. 대학원에 다니면서도 계속 딴청을 부렸어요. 창업을 두 번이나 했고 중간중간 음악 동아리 활동을 하고 미술학원도 다녔죠. 다큐멘터리 PD가 되어보려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미국 동부에 있는 미술대학에 편입하려고 알아보기도 했었네요.”

쌍생성 사진을 처음 발견한 지 30여 년이 흐른 지금, 이 대표는 물리학자가 아닌 ‘딥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액셀러레이터의 대표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무엇이 그를 이 자리에 있게 했을까.

그는 “첫 번째 창업은 실패했고, 두 번째 창업은 성과를 냈지만 12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며 “과학자들이 비즈니스 문법을 잘 몰라 나처럼 애를 많이 먹는데 내 경험담을 토대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는 대답을 내놨다. 실제로 이 대표는 기술력을 가진 ‘공돌이 출신’ 후배들이 기술을 상용화하고,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공대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대표의 첫 번째 창업은 1997년 카이스트에서 물리학 박사과정 재학 중 실험 조교를 하던 시기에 이뤄졌다. 해외에서 들여온 실험용 기자재가 고장이 잦았는데 본사가 해외에 있으니 수리를 받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교수님께 “앞으로 커질 R&D 시장을 고려하면 우리가 직접 국산 장비를 만드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제안했더니 “그럼 네가 만들어보라”고 한 게 시작이었다. 이 대표를 필두로 교수 다섯 명이 모여 회사를 만들었다. 수익모델, A/S, 제조물류 등 사업화에 대한 고민 없이 시작한 터라 곧바로 위기를 맞았고 2년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두 번째 창업도 박사 과정 중에 시작됐다. 사명은 ‘플라즈마트’로, 이 대표의 플라스마 관련 특허 기술을 활용해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요한 플라스마의 발생·측정 제어장치를 제공하는 회사였다. 이번에도 기술에만 매몰돼 수익모델을 고려하지 않은 게 페인포인트(pain point)로 작용했다. 가치 있는 기술력을 가졌지만 완제품을 만들지 않으니 반도체 장비 기업의 하도급 업체에 지나지 않았다. 6년 넘게 지속된 정체기를 겨우겨우 버티던 중 주변에서 단비 같은 조언을 들었다. 플라스마의 전원 및 제어장치, 즉 완성품을 만들어 양산하라는 것이었다. 곧바로 신제품을 개발한 그는 삼성전자를 고객사로 확보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 해외 유수 기업에서 M&A 제안이 쏟아졌고, 공개입찰 끝에 2012년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MSL인스트루먼트에 30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이 대표는 두 번의 창업에서 ‘팀빌딩의 중요성’과 ‘사업화 전략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했다. 탄탄한 기술력이 있었지만 실무를 담당할 ‘손발’이 없어 고생했고, 돈 버는 법을 몰라 긴 시간을 낭비했다.

“플라즈마트를 운영할 때 사업적인 조언을 해줄 조력자를 일찍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현실적으로 연구실에 박혀 연구만 하던 과학자가 갑자기 시장의 니즈를 파악하기는 어렵죠. 그 중요성도 잘 모르고요. 이를테면 자동차 엔진 기술을 보유한 회사가 자동차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술자는 알 턱이 없는 거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사업 초기부터 완제품을 만들 겁니다.”

회사를 성공적으로 매각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공대 출신 후배들이 조언을 해달라며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업을 하고 싶다’, ‘여러 기술이 있는데, 어떤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면 좋을까’,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익이 잘나지 않는다’ 등 고민은 다양했다.

“그들을 만나면서 예전의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공돌이들의 흔한 실수, 즉 기술을 상용화하기만 하면 무조건 잘될 것이라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이랄까요. 결국 시장을 잘 모르는 거죠.”

이 대표는 안타까운 마음에 후배들에게 뼈와 살이 되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선뜻 에인절투자자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후배들의 스타트업은 대다수 성공하지 못했다.

“덕분에 아주 비싼 수업료를 냈습니다.(웃음) 그래도 조언하는 과정은 재미있었어요.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조력자 역할을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어서 뿌듯했고요. 아예 회사를 차려 이 일을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2014년 7월, 액셀러레이터 블루포인트파트너스가 출범했다.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딥테크 스타트업을 발굴해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 Market Fit)’을 높여줄 수 있는 종합적인 컨설팅을 제공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게 설립 취지였다. 사명 또한 ‘블루오션의 출발점’이라는, 창업 여정을 시작부터 함께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그는 “단순히 자본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초기 스타트업이 겪는 어려움을 풀어주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기술의 당위성과 경제성의 간극을 줄여주는 솔루션’이라고 했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주로 정보통신기술, 전기·기계·장비, 화학·소재 등 ‘딥 테크’를 다루는 기술 창업자, 그중에서도 시장 진입 전에 있는 극초기 단계 스타트업을 발굴해 육성한다. 지금까지 디지털(24%), 산업기술(20%), 데이터·인공지능(18%), 헬스케어(16%), 바이오·메디컬(10%), 친환경·클린테크(8%)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했다. 운영 방식은 주로 시드 단계에서 소액 투자를 진행하고 이후에 본격적인 성장을 앞둔 시리즈 A나 B에 진입하게 되면, 이 단계에서 투자에 나서는 벤처캐피털 등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구주 매각 및 M&A를 통해 투자 차익을 거두는 방식을 택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의 운영 전략은 성공했다. 지금까지 투자한 스타트업 255개의 기업 가치를 모두 합하면 4조원이 넘는다. 기업들의 생존율 또한 압도적이다. 지난 5년간 투자한 기업 중 85.8%가 ‘데스밸리(창업 3~5년 차에 맞는 죽음의 계곡, 많은 스타트업이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한다)’를 넘기고 살아남았다. 일반적인 기술 스타트업의 5년 내 생존율이 평균 20%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4~5배가량 높은 비율이다. 후속 투자도 9000억원가량 이끌어냈다(누적 금액). 이런 성과에 힘입어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올 하반기, 액셀러레이터로서는 처음으로 코스닥 시장 상장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블루포인트파트너스가 문을 연 2014년은 이미 시장에 스파크랩, 퓨터플레이 등 액셀러레이터가 등장한 시점이었다. 다소 출발이 늦은 후발 주자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블루포인트파트너스가 업계에 던진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첫째 ‘하이 리스크(high risk)’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액셀러레이터는 수익화하기 어려운 구조다. 주로 소액을 투자해 평균 7% 지분을 취득하는데, 이마저도 기업이 성장해 엑시트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 게다가 그 길엔 수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이 대표는 “1년 차 미만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게 가장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통계가 있다”며 “초기에 투자-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순환 주기를 짧게 가져가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밸류 애드(value-add)를 하는 등 여러 실험을 통해 액셀러레이터도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고 싶었다”며 “솔직히 어느 정도 증명한 것 같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의 매출액은 꾸준히 상승 중이다. 연도별 매출액은 2019년 137억6000만원(영업이익 71억9000만원), 2020년 186억5000만원(영업이익 72억3000만원), 2021년 385억3000만원(영업이익 241억7000만원)으로 매년 높은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2018년 8월에는 스틱벤처스, KB인베스트먼트, 삼성벤처스 등에서 90억원을 투자받았으며, 2020년 2월 IBK기업은행, 소프트뱅크벤처스, 퀀텀벤처스코리아, 키움투자자산운용, 한국투자증권 등으로부터 110억원을 추가 유치하기도 했다.

둘째,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기술 스타트업을 세상에 소개한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이용관 대표는 디지털 홀로그램을 활용한 3D 현미경, 레이저로 점을 찍어 피부암을 진단하는 장치, 멸균용 포장 패키지 등 일반인들에게는 생경한 기술들을 상용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줬을뿐더러 시장의 언어로 소개하는 역할도 했다. 그는 “기술이 상용화되기까지 적어도 2~3년은 걸린다”며 “우리는 그 기술을 선행해서 경험하는데, 최근엔 우주여행, 다크웹, 신약 개발 알고리즘 등을 다루는 흥미로운 스타트업들을 만났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창의적이고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이가 생각보다 많다. 2020년 기준, 국내 R&D 인력은 55만여 명으로 세계 5위 수준이다. 하지만 ‘공대형’ 이 대표는 이 부분에서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그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데 반해 상업적으로 성공한 케이스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기업가치가 1조원이 넘는, 이른바 유니콘 기업 명단에는 딥테크 스타트업이 하나도 없다. 쿠팡, 우아한형제들, 야놀자, 비바리퍼블리카 등 콘텐트와 이커머스(전자상거래) 분야를 융합해 태생부터 시장친화적인 기업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건,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딥테크스타트업의 숫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통계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2021년 연간 창업기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정보통신업, 전문과학기술업 등의 창업 건수가 역대 최초로 23만 건을 돌파했다. 이들은 블루포인트파트너스와 같은 액셀러레이터의 도움을 날개 삼아 유니콘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날개를 단다고 모두 유니콘이 될 수는 없는 법. 이 대표는 수많은 딥테크 스타트업 중에서 유니콘이 될 팀을 어떻게 가려내고 있을까. 그가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팀 구성이 잘돼 있는 곳입니다.” 이는 두 번의 창업에서 얻은 교훈에 따른 것이다.

“투자처를 발굴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콜드 콜, 지인이나 기관의 추천, 혹은 우리가 전략적으로 찾아가는 경우예요. 투자 여부를 결정짓는 건 결코 ‘기술력’이 아닙니다. 초기엔 아무리 사업 모델이나 기술을 엄밀하게 따져도 결과적으론 투자가 실패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시장에 나가기까지 많은 부분이 수정, 보완되고 피벗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높은 점수를 받았던 기술력이 그 과정에서 없어지기도 해요. 그래서 시장 상황이 변했을 때, 얼마나 잘 대응할 수 있는가를 많이 봅니다. 다시 말해 엔지니어뿐 아니라 마케팅, 세일즈 등 다른 분야 전문가가 섞여 있으며, 다른 이의 의견과 조언을 유연하게 수용하는 팀이면 ‘베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역설적이지만 기술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는지를 가장 많이 본다”고 덧붙이는 이 대표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그는 “아직 기술력을 맹신하는 이가 많다”며 “전문가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의 함정에 빠진 이들은 아무리 조언을 해도 수용하지 않으며, 비즈니스 전문가를 팀에 투입해줘도 결국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했다.

이 대표가 전문가의 함정 외에 경계하는 또 다른 요소는 팀원 간의 갈등이다. 딥테크가 아니어도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흔히 겪는 문제다. 그는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또한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갈등을 알기 위해선 솔직한 속내를 듣는 게 우선일 터다.


“갈등이 생겨도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르니까요. 하지만 말이 쉽지 투자자에게 모든 걸 말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저도 처음엔 투자자들이 무서웠어요. 최대한 잘 보이고 싶기도 했고요. 그 마음을 잘 이해하기에 말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무실을 정원이 있는 북카페에 차렸습니다. (현재 본사는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있다.) 편안한 공간에서 자상한 공대형 이미지로 접근했더니 많은 분이 속내를 털어놓더군요. 들어보니 생존을 좌우하는 문제의 절반 이상은 ‘사람 문제’가 맞더라고요.(웃음)”

오랫동안 공대형 역할을 자처한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의 인기는 이제 하늘을 찌른다. 지난해 1600건이 넘는 투자검토 의뢰가 들어왔고, 올해는 그 숫자가 두 배가량 늘었다. 이 대표는 “요즘 들어 우리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이가 많다는 걸 느낀다”며 “심사역이나 포트폴리오사의 말을 빌리면, ‘블루가 투자했으면 기술적으론 검증된 것’이라며 우리가 주주명부에 있으면 다른 투자기관들이 한 번 더 검토한다고 하더라”며 웃어 보였다.

그러다 보니 쏟아지는 투자 건에는 블루포인트파트너스에게도 생소하고 어려운 기술 기업이 많이 포함돼 있다. 이 대표는 최대한 많은 기술을 커버하고자 사내 액셀러레이팅 본부에 시장을 잘 아는 도메인 엑스퍼트(domain expert)를 영입했다. 바이오, 로봇, 데이터, ICT 등 딥테크라고 불리는 산업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춘 심사역이다. 이들은 부문별로 나눠 여러 기업에 심층적인 컨설팅을 제공한다. 아울러 다른 VC들과 협업하며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분야는 빨리 검토할 수 있지만, 생소한 분야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이때는 해당 분야의 로직을 잘 알고 있거나 경험이 많은 전문가를 찾아 컬래버를 하죠. 반대로 저희가 다른 VC에게 우리 전문 분야에 대한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하고요. 우린 메디컬 관련 디바이스, 바이오, 소재, 에너지, 환경 관련 기술에 특화돼 있습니다.”

이 대표는 자기객관화를 잘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가장 경계하는 ‘전문가의 함정’에 자신 또한 빠질까 우려한다. 이 걱정은 기술을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심사역만 있으면 모든 관점이 기술 부분에만 매몰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이어졌다. 그는 다른 관점에서 ‘고 투 마켓(goto-market)’을 도울 수 있는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마케팅, 인사, 홍보, 행정, 전략, 법무와 관련된 일을 지원하는 ‘미들오피스’와 ‘백오피스’를 강화했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피투자사마다 차별화된 맞춤형 보육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일률적인 서비스를 만들어 대량 생산하는 것이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결국 맞춤형 시스템이란 블루포인트파트너스에는 비효율적이고 위험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효율성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액셀러레이터가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스타트업에 들어가는 경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갖추고 있지 않으니까 처음부터 다 지원해줘야 하죠. 하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성공적인 모델은 이미 시장에 나와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액셀러레이터인 ‘와이 콤비네이터’가 제시하고 검증한 모델이에요.”


와이 콤비네이터는 2005년에 설립된 미국의 시드 액셀러레이터다. 초기 스타트업에 시드머니와 자문, 인맥을 제공한다. 폴 그레이엄 등이 설립하고 샘 올트만이 이끌고 있으며, 유명 유니콘 기업에 다수 투자해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했다.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스트라이프, 레딧, 쿼라 등에 투자했다. 투자 외에도 기업문화, 경영전략, 투자전략 또한 업계 선도자로서 주도하고 있다. 이 대표의 말처럼 스타트업에 들어가는 경비를 줄이기 위해 만든 ‘배치(batch processing)’, ‘커뮤니티 시스템’이 특히 주목받는다.

“배치는 한마디로 공개 모집을 뜻하는데, 심사역이 피투자처를 일일이 찾아 다니면서 만나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습니다. 와이 컴비네이터에는 수백 개, 수천 개 스타트업이 몰리기 때문에 한자리에서 소개를 듣고 일정 숫자만큼만 선정하면 되죠. 그다음엔 클래스를 만들어 한 번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요.일대일로 진행하는 것보다 시간과 인력, 비용을 줄일 수 있죠. 또 클래스에 소속된 기업들은 ‘동료’가 돼 서로의 학습을 돕습니다. ‘peer learning’이에요. 추후엔 데모데이를 열어 투자자 연결도 도와주죠. 그리고 ‘북페이스’라는 커뮤니티도 만들었는데 여기에 3000개 넘는 회사가 소속돼 있어요. 서로 노하우만 주고받는 게 아니라 구매를 해주기도 하고 아예 회사를 인수하기도 해요.”

블루포인트파트너스도 이를 벤치마킹해 배치와 데모데이를 주기적으로 진행한다.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배치는 ‘함께 시작한다’는 의미의 ‘동창(同創)’이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노하우를 활용해 아이템이 명확하지 않거나 비즈니스 모델은 검증되지 않았지만 역량 있는 초기 멤버를 갖춘 팀의 창업과 성장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자금뿐 아니라 사업 방향성 제고를 위해 다양한 영역을 지원하며 올해 4기째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선정된 스타트업들은 하나의 커뮤니티가 돼 이상적인 peer learning을 구현한다. 지난 해엔 300여 곳, 올해는 400여 곳이 지원했다.

GS, 한솔 등 대기업과 배치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자본과 인프라를 가진 대기업이 제공할 수 있는 혜택을 제시하자 많은 스타트업이 몰렸다. 대기업에서 직접 투자받는 사례로도 이어졌다. 데모데이 또한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의 첫 데모데이는 2016년에 열었는데, 카이스트 출신이 차린 ‘기술 잘 보는 회사’라는 소문이 퍼져 많은 업계 관계자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이때 참여한 스타트업 대부분이 시리즈 A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당일에도 회사에서는 데모데이가 진행되고 있었다.

딥테크 스타트업의 곁을 10년간 지켜온 이 대표. 그가 느끼는 최근의 변화에 대해 들어봤다.

“예전엔 ‘융복합’이라는 개념 자체가 억지스럽다고 느꼈지만 이제는 스타트업을 어느 카테고리에 분류해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자연스럽습니다. 어젠다도 기술도 모두 합쳐져 있어요. 스타트업이 가야 할 올바른 방향으로 잘 성장하고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스타트업은 명확한 한 분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경계선에 존재해야 하니까요. 명확한 카테고리에 속하면 이미 강자들이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주도권을 쥐기 어려워요. 어설프고 좀 덜 가졌어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건 어느 누구도 아직 하지 않았던 이상한 경계선에 있는 영역들입니다.” 더불어 그는 “이런 의미에서 앞으로 스타트업의 기회는 아직 비어 있는 시장, 즉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장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특히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같은 분야”라고 귀띔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전인 2019년 블루스퀘어에서 개최된 제4회 블루포인트 데모데이. 이날 행사에는 업계 관계자 1500여 명이 참석했다.
뛰어난 안목과 전략으로 자신만의 성공 방정식을 써 내려가고 있는 이 대표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그는 “투자자가 차린 투자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당시의 VC, CVC 형태로는 극초기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어려워 보여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길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뉴 룰 메이커(new rule maker)’라고 불러요. 기존의 룰을 고집하기보다는 미션에 도달하기 위해 더 적합한 방식이 보이면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룰을 만드는 게 더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올해는 창업 이래 최고라고 할 정도로 시장에 자금이 메말랐다. ‘캐시버닝(의도적인 출혈경쟁)’을 벌이며 승승장구하던 많은 스타트업이 한순간에 돈줄이 말라 도산 위기에 처했다. 실제로 스타트업 민관협력 네트워크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올해 7월 국내 스타트업들이 유치한 투자 금액은 8368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72.7%나 줄었다고 한다. 이 대표에게 딥테크 스타트업들의 사정도 비슷한지 물었다.

“2000년 초반, 플라즈마트를 운영할 땐 투자사들이 B.E.P(손익분기점)를 빨리 넘기라고 압박했습니다. 투자금을 받자마자 ‘언제 B.E.P에 도달할 수 있냐’고 묻더군요. 시장에 모험자본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당연한 일로 여겼습니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를 창업했을 무렵엔 B.E.P 압박이 거의 없다고 느꼈어요. 오히려 성장률이나 시장점유율 등에 더 높은 관심을 두더라고요. 하지만 요새 들어 다시 B.E.P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하네요. 딥테크 분야도 마찬가지예요. 확실히 찬 바람이 불고 있나 봅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기술 상용화까지 최소 2~3년이 걸리는 딥테크의 특성상 자본이 조금만 더 인내해주길 바란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신약 분야를 보면 신약이 개발되고 매출이 나고, 다시 R&D에 재투자하고 사이클을 타야 하는데 (여러 이슈가 있지만) 성과가 안 나온다는 이유로 시가총액 상위권을 점령했던 신약 회사들이 많이 미끄러졌다”며 “과도하게 수익이나 성장을 펌핑하지 않고 산업 특성에 맞게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긍정적인 건 자본이 완전히 얼어붙었다기보다는 다른 분야로 이동한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이커머스 플랫폼은 어렵지만 2차 전지나 반도체 소재 등을 취급하는 스타트업은 인기가 좋아요. 공모주 청약에서도 경쟁률이 엄청나다고 합니다.”

이 대표는 과학자로서의 삶을 살지 않는 데 후회는 없는지 묻는 마지막 질문에 주저 없이 답을 했다. “아니오. 적성에 너무 잘 맞아요. 스타트업을 다시 하기엔 이제 힘에 부치거든요. 근데 또 궁금하고 잔소리도 하고 싶어요. 지금의 위치, 즉 후배들과 너무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적절한 ‘거리감’이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사진 최영재 기자

202210호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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