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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종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신임 원장 

산업·통상 전문가의 설계도는 ‘초격차 촉진자’ 

조득진 선임기자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이다.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속에서 핵심 전략기술 등 국가 기술경쟁력 강화가 시급한 시점이다. 지난 9월 초 취임한 전윤종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장이 ‘초격차 촉진자’ 역할에 나섰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원장은 산업·기술, 통상 분야 전반에서 전문성을 갖추었다. 산업기술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국가 예산 3조원을 관리·집행한다.
지난 9월 초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하 KEIT) 인사가 산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자국우선주의’ 등 최근 글로벌 경제질서가 크게 변화하는 가운데 산업·기술·통상 패권 경쟁을 최일선에서 직접 경험한 전문가가 수장으로 취임했기 때문이다. 행정고시(36회) 출신으로 산업부 정책기획관, 통상협력국장 등을 거쳐 지난 6월까지 통상교섭실장을 맡았던 전윤종 신임 원장이다.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영국 리즈대에서 전자상거래(박사)를 전공했다.

산업부 산하의 KEIT는 국내 산·학·연에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하는 곳으로, 매년 3조원 규모의 국가 예산을 투자하고 관리한다. 반도체, 이차전지, 미래 모빌리티, 바이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등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산업 전 분야에 대한 R&D를 지원한다. 전윤종 원장은 “한마디로 기업이 리스크가 두려워 R&D에 주저할 때 시드머니(종잣돈)를 지원하는 일이 핵심이다. 주로 공공성 있는 기술개발을 심사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월 6일 전 원장을 만나 3년 동안 실천할 설계도를 함께 들여다보았다. 그는 “30년 가까이 글로벌 산업기술과 경제 흐름을 최일선에서 경험하면서 ‘산업과 기술을 전략 자원화하는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은 혁신적 기술 확보와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며 “핵심 전략기술,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한 R&D사업 지원에 최선을 다해 KEIT가 혁신 성장의 촉진자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시장의 혁신 주도하는 퍼스트 무버’ 강조


▎한국산업기술평가 관리원은 지난 10월 12일 산업부 주관 산업기술혁신펀드 조성 협약식에 관리기관으로 참여했다.
취임 한 달이다. 업무·조직 파악은 많이 했나.

최근 경제정책은 상당히 패셔너블하게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KEIT도 연구개발(R&D) 지원 역할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환경 변화와 새로운 정책에 맞춘 R&D 프로그램 기획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기업의 투자 여건과 프로세스, 해외 산업 동향 파악에 대한 역량을 좀 더 키워서 민간의 니즈를 먼저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과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KEIT 직원들의 기술 전문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파악했다. 이들의 기획력을 키우는 것이 내 역할이다.

산업·기술·통상 전문가로서 기대하는 시너지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에 이어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수급 문제도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원료를 수입해 공정기술을 바탕으로 최종 완성품을 만들어 수출하면서 글로벌 밸류체인의 최대 수혜국이었지만 지금 그 구조가 재편되고 있다. 원료·기술의 해외의존도, 시장의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자국중심주의’는 커다란 파고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핵심 전략기술을 확보하고, 수출을 다원화해서 산업경제 생태계를 자기완결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기술과 통상의 접목이 필요하다.

우리가 확보 가능한 핵심 전략기술은 어떤 게 있나.

대만의 TSMC가 시스템반도체 생산의 절대적 강자가 된 이유는 바로 핵심 전략기술 때문이다. 우리도 밸류체인상 핵심기술에서 초격차를 확보하게 되면 이것이 전략자원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부족한 원료와 범용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는 전기차용 중대형 이차전지, 자율주행차 상용화 플랫폼, 투명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콤팩트 초고압 전력 케이블, 사회적 약자 돌봄 로봇, 맞춤형 헬스케어 시스템, 시스템반도체용 소재·부품·장비 등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정부도 이 7대 초격차 전략기술 R&D에 예산 4조5000억원을 책정했다. 특히 이차전지, 미래 모빌리티, 반도체, AI는 글로벌 경쟁력을 기반으로 가장 먼저 초격차를 확보해야 할 분야다.

KEIT는 이를 위해 2년여의 시범사업 끝에 올해 ‘산업기술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를 출범했다. 중장기 도전·혁신형 R&D로서 초고난도 목표를 위해 실패도 용인하는, 기존에 없던 연구개발 지원체계다. 우리나라가 여러 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정상에 올라선 만큼 이제 더는 ‘패스트 팔로워’로서는 경쟁우위를 점할 수 없다는 인식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배경이다.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는 기획, 평가·관리, 성과확산 단계로 나눠 각각 4대 추진 전략으로 운영된다. 특히 기획 단계에서는 기술·인문사회·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모인 그랜드챌린지위원회 집단지성이 활용된다. 성과확산 단계에서도 시장 및 수요자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 위해 기존의 공동 연구개발기관 개념과는 차별화된 기업 멤버십 제도를 운영 중이다.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로 기대하는 성과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도전·혁신형 R&D로, 중장기 미래 산업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혁신적 핵심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장 및 산업 영역을 창출하는 것이 사업의 목적이다. 특히 기업 멤버십 제도는 시범사업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데, 지난해 시범사업 종료시점 기준 89개 멤버십 기업을 확보하고 170억원이 넘는 민간 후속 투자를 유인했다. 올해는 시범사업에서 선발된 4개 테마 3단계(본연구)가 지원된다. 매년 40억원씩 5년간 총 200억원 규모의 연구가 진행되는데, 그 과정에서 발생되는 파생 기술 등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미국과 중국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기업의 장점은 이노베이션(혁신)에 있다. 과학이나 기술을 시장, 즉 상품으로 연결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 미국과 중국이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시장화, 상품화에 나서면서 우리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이노베이션에서는 아직 우리가 탁월하다. 우리 기업은 전기차 시장에 늦게 뛰어들었지만 대량화와 디지털화를 통해 테슬라를 따라잡고 있고, 백신 생산에서 밀리자 진단키트 개발로 글로벌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다. 누가 더 크리에이티브하고 도전적인가 하는 문제다. 산업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서비스를 빨리 만들어내는 기업이 바로 ‘퍼스트 무버’라고 할 수 있다.

“직원 전문성 강화로 고부가가치 낼 것”


▎전윤종 원장은 취임 후 ‘청렴 소통 및 화합을 위한 캠페인’에서 KEIT 전 직원과 함께 청렴 실천 서약을 1 2 진행했다.
전 원장은 KEIT 자체 경쟁력 강화에도 나섰다. 지난 3년 동안 전략기술 확보, 탄소중립 대비 등 R&D를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늘면서 KEIT 예산은 두 배 정도 증가했다. 하지만 서비스 제공자인 직원 수는 그대로다. 규모가 늘어난 만큼 KEIT가 예산을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해졌다.

‘Inside Out’ 전략을 강조하시던데.

Inside out 전략의 핵심은 내부에서부터 조직문화와 인력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찾아낸 핵심 역량을 조직의 주요 사업과 연계함으로써 지속적으로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국내외 정세 및 환경이 급변하는 시기에는 Inside out 전략이 중요하다. 우리가 처한 환경과 문제점을 돌아보고 이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KEIT가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사업과 연계해 향후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고, 혁신적 기술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업무 자동화 적용, 기획 고도화도 같은 맥락인가.

업무 자동화(RPA)를 통해 정형화된 업무는 로봇이 대체하고, 직원들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활동에 몰입할 수 있도록 업무 환경을 만들고 있다. 직원들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에서 벗어나 기획 기능, 고객 컨설팅 업무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산업기술 R&D 멀티 플랫폼(ROME+)’ 구축도 마찬가지다. 데이터 기반 선진형 산업기술 R&D 기획시스템을 활용해 기획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임기가 끝나는 3년 뒤 받고 싶은 평가는.

직원 교육, 전문성 강화에 공들인 원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우리나라 기업의 크리에이티브한 능력을 한껏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 직원들도 혁신적인 자세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직원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KEIT가 안팎에서 최대의 부가가치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조득진 선임기자 chodj21@joongang.co.kr·사진 박종근 기자

202211호 (202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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