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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새봄 웅진 대표 

다시 일어선 웅진 

노유선 기자
웅진그룹이 달라졌다. 계열사 30여 곳을 절반으로 줄이고 디지털전환에 힘쓰며 글로벌 에듀테크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새 바람을 일으킨 윤새봄 대표는 그간의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올 초 지주사 대표에 올랐다. 새로운 수장이 되고서 첫 인터뷰를 포브스코리아와 가졌다.

2011년 재계 자산순위 32위(공기업 제외)였던 웅진그룹은 계열사 31곳을 거느린 명실상부한 대기업이었다. 1980년 윤석금(78) 회장이 설립한 웅진은 ‘손대는 것마다 성공한다’는 세간의 부러움 속에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교육사업(학습지)을 발판으로 식품, 화장품, 렌털 서비스 등에 진출했던 웅진은 2006년부터 태양광, 건설, 화학, 금융 등으로 뻗어나갔다.

하지만 웅진 역시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무리하게 자금을 조달하며 사업을 확장했던 웅진은 결국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2012년 10월 시작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는 2014년 2월에 마무리됐다. 알짜계열사 매각대금으로 부채를 정리한 결과, 2011년 약 8조710억원이었던 자산총액은 1조원대로 떨어졌다.

이후 8년이란 긴 시간이 지났다. ‘숙고의 시간’을 보낸 웅진이 마침내 재도약의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지난해 매출 약 1조498억원, 영업이익 약 423억원(연결기준)을 기록하며 법정관리 종료 후 처음으로 ‘1조 클럽’에 재진입했다. 실적 호조의 원동력은 ‘에듀테크’에 있었다. 웅진은 2010년대 중반부터 교육서비스의 디지털화에 힘써왔다.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오른 웅진이 더욱 새로워질 전망이다. 올 초 그룹 인사에서 윤새봄 대표(44)는 지주사 대표이사 겸 기획실장에 취임했다. 지난 3월에는 사내 이사에 신규 선임되며 그룹의 실질적인 수장으로 웅진을 이끌게 됐다. 이사회는 윤 대표를 사내이사로 추천하면서 “웅진그룹 주요 계열사에서 대표이사를 두루 역임하며 회사와 그룹의 경쟁력 강화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윤 대표는 웅진케미칼(현 도레이첨단소재)의 성공적인 매각과 미국 에듀테크 스타트업 기술이전, 키즈 액티비티 플랫폼 ‘놀이의 발견’ 성장 주도 등 주요 프로젝트를 차질 없이 수행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2016년 웅진씽크빅 대표를 맡아 에듀테크 사업의 토대를 탄탄하게 다졌으며, 2018년부터 그룹 내 사업운영총괄을 맡아 그룹 전반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

그가 처음으로 그룹 내 주요 보직을 맡은 것은 2014년이었다. 계열사의 리스크 헤지(위험분산·회피)를 담당하는 기획조정실 실장을 맡아 그룹의 경영 효율화를 꾀했다. 지난 5월 9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웅진역사관에서 윤 대표를 만났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남은 자금으로 웅진을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또다시 최악의 상황이 올까 봐 두려웠고요. 경영자라면 모름지기 가장 먼저 직원 밥그릇부터 챙겨야 하는데, 당시 급여 지급일 연기를 고려할만큼 고민이 깊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아들을 껴안고서 겨우 울음을 삼켰던 적도 있었습니다.”

1. 연속되는 위기와 극복의 순간들


웅진의 어두운 역사 현장에서 산증인이었던 그는 대부분의 2~3세 경영자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왔다. 위기와 역경 속에서 쉼 없이 달려왔다. 그와 ‘격변의 역사’ 웅진의 지난한 여정을 되짚어봤다.

2000년대 초반 문어발식 사업 확장으로 몸집을 키운 웅진은 마치 그리스신화 속 인물 이카루스 같았다. 이카루스는 태양 가까이 다가가려는 욕심을 이기지 못한 채,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서 하늘 높이 날아간다. 결국 이카루스는 바다로 떨어진다.

하지만 다행히 웅진은 여러 계열사를 매각하며 약 1년 4개월 만에 법정관리를 조기종료하는 등 기업경영 방식을 개선해나갔다. 덕분에 웅진은 다시 부활의 날개 짓을 할 수 있게 됐다.

윤 대표는 그룹이 존폐의 기로에 있었던 만큼 지난 8년이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고 회고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자 “법정관리 개시를 앞두고 아버지께서 대국민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이셨을 때”라고 답했다.

2012년 10월 윤석금 회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경영 실패를 인정하는 내용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윤 회장은 무리한 사업 확장에 대해 “정말 많은 반성을 하고 있다”며 “채권단과 법원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장에 함께 있었던 윤 대표는 “사업 실패가 이토록 크나큰 잘못인가 싶어 감정이 북받쳐올랐다”며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운 회사를 정리해야 하는 아버지께서는 심정이 오죽하셨겠냐”고 털어놨다.

‘방문판매업계 신화’로 불렸던 윤 회장의 실패는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윤 회장은 1990년대 학습지와 식음료, 화장품, 정수기 등을 방문판매 형태로 선보이며 웅진의 위상을 크게 끌어올린 인물이다. 1997년 불어닥친 IMF 외환위기로 영업이 어려워지자 이듬해 국내 최초로 렌털 서비스를 도입해 위기를 극복했다. 하지만 성공한 창업가이자 혁신과 도전의 대명사였던 윤 회장은 경영 실패와 동시에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부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당시 회사에 손해를 끼치며 1000억원대 기업어음(CP)을 발행했다는 것이 검찰의 논리였다.

“억울할 따름이었죠. 제 감정은 아버지 10분의 1도 못 따라갈 겁니다. 아버지께서는 계열사가 어려워지자 우선 사재를 털어서 투자금을 마련했던 분입니다. 그래도 경영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그룹 차원에서 투자를 진행한 거예요. 그룹 투자가 사재 회수 목적으로 이뤄졌다는 오해가 생기면서 배임이란 오명을 쓰게 된 것이었죠.”

그해 10월 시작된 지주회사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는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돼 2014년 2월 종료됐다. 웅진은 채권단 요구에 따라 2013년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웅진코웨이(현 코웨이·1월)와 웅진식품(9월), 웅진케미칼(11월)을 연이어 매각했다. 특히 현금 창출력 1위로 꼽혔던 웅진코웨이는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에 약 1조1915억원에 넘겨졌다.

이후 웅진은 패배의식에 빠져 있기보다 조직문화를 재정비하는 데 힘썼다. 윤 회장은 사내에 [나의 신조]라는 명언 카드를 배포하고 웅진의 실패에 실망한 직원들을 다독였다. [나의 신조]는 긍정적인 자세를 강조한 문장으로 가득하다. ‘나는 어떠한 어려움이나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 ‘나는 늘 시작하는 사람으로 새롭게 일할 것이다’, ‘나는 나의 잘못을 항상 고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등이다. 웅진은 지금도 사내 행사가 열리면 다 같이 [나의 신조]를 낭독한다.

오뚝이처럼 일어난 웅진은 2014년 교육 서비스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에 착수해 국내 최초로 태블릿 기반 학습 프로그램 ‘웅진북클럽’을 출시했다. ‘4차 산업혁명’이나 ‘코로나19 팬데믹’이란 용어가 나오기 전부터 웅진은 디지털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교육사업에도 번질 것으로 내다봤다.

웅진은 이와 함께 사업다각화에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고 교훈을 얻는 쪽을 택했다. 그 결과물이 웅진역사관이다. 지난해 6월 개관한 이곳은 1100㎡(약 332평) 규모로, 웅진의 43년 발자취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1980~90년대 교육용 카세트테이프와 학습지, 출판도서 등을 전시하고, 창업 당시 윤 회장 집무실이 재현된 공간으로 구성된 아날로그 아카이브다.

윤 대표는 “이곳에는 웅진의 영광만 있지 않다. 흥망성쇠의 역사가 모두 담겨 있다”며 정수기와 비데, 화장품 등을 가리켰다. 웅진역사관은 한때 ‘아픈 손가락’이었던 웅진의 옛 계열사 제품군도 품고 있다. 또 한 귀퉁이를 할애해 좌우 벽면과 천장을 온통 검은색 페인트로 칠한 뒤 웅진의 흑역사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웅진의 성쇠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윤 대표에게 웅진의 패인을 물었다. “여러 계열사의 매각 절차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사업다각화에 실패한 이유를 면밀하게 분석했어요. 우선 웅진은 그룹 내에 불합리한 결정을 걸러내는 자정 기능이 없었습니다. 새로운 사업의 타당성을 합리적으로 분석하는 시스템도 갖추지 못해 멘토그룹이나 컨설팅업체의 조언에 의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어요.”

웅진의 구체적인 상황을 모르는 외부인이 건네는 조언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리스크 헤지 실패가 거듭되자 웅진은 제2금융권을 찾아다닐 정도로 혹독한 재정난에 시달렸다. 경영자 한 사람이 전체를 주도하는 ‘톱다운(top-down) 리더십’이 낳은 부작용이었다. 윤 대표는 “아버지께서 ‘돌다리도 한 번 더 두드려봤으면 웅진이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이었을 텐데’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하신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윤 대표는 “웅진을 두고 무리한 M&A(인수합병)의 실패작이라고 비판하지만 인수합병 자체를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라고 지적했다. 그는 “웅진은 기업문화가 서로 맞지 않는 회사를 인수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며 “극동건설의 경우 교육사업이 모태인 웅진의 문화와 출혈성 경쟁이 짙은 건설업의 영업 문화가 상호 보완하지 못하고 충돌했다”고 설명했다.

2. 계승과 혁신 통한 뉴리더십


윤 대표가 웅진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2009년이었다.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윤 대표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귀국해 곧바로 웅진씽크빅 교문 사업기획팀으로 출근했다. 그는 “5월 29일 유학을 마치자마자 다음 달 1일에 출근할 만큼 엄격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20대 초반 일주일 용돈은 단 7만원이었다. 교통비를 포함한 금액이었다. 통금 시간은 밤 12시. 돈이 한 푼도 없을 때 어머니께 택시비를 부탁드렸다가 윤 회장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다. “능력이 없으면 걸어 다녀라”라는 윤 회장의 말에 그는 한밤중에 영동대교를 건너 삼성동집까지 걸어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친구들은 우스갯소리로 “정말 윤 회장 아들이 맞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윤 대표는 웅진 법정관리 후 2014년 처음 기획조정실장을 맡으면서 아버지로부터 ‘어른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물론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우선 ‘3자 의사결정 체제’를 구축했다. 윤 회장과 계열사 대표가 결정한 사안을 기획조정실이 재검토해 리스크를 줄이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변화는 쉽지 않았다. 기획조정실이 신설됐지만 웅진은 관습대로 윤 회장과 계열사 대표, 둘만의 결정으로 굴러갔다. 윤 대표가 반대했던 사업 아이템이 기획조정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진행돼 결국 실패로 끝난 경우도 있었다. 윤 대표는 “회장실에 찾아가 ‘이러면 기획조정실이 있을 이유가 없다. 제3자의 시각이 필수적이다’라고 말씀드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전까지 웅진의 의사결정은 거의 아버지 주도하에 이뤄졌습니다. 마치 장수 한 명이 전체를 이끄는 군대와 같았죠. 과거엔 경영자가 방향을 잘못 잡아도 업무 분담과 조정만 잘 이뤄지면 기업이 평탄하게 운영됐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어요. 오늘날 필요한 리더십은 강압적 지시보다 유연한 소통에 가깝습니다.”

윤 대표의 건의를 받아들인 윤 회장은 사업승인 절차의 마지막 단계에 기획조정실을 추가했으며 3자 합의 체제에서 결정된 사안을 사장단 회의에서 공식화했다. 기획조정실의 판단 덕분에 사업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사례가 차츰 쌓이기 시작했다. 기획조정실의 역할도 늘어났다. 윤 회장이나 계열사가 먼저 기획조정실에 조언이나 제안을 요구하는 경우도 빈번해졌다. 자칭 ‘평화주의자’인 윤 대표는 각 계열사와 얼굴을 붉히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은 경영에도 적용됩니다. 자칫 말 한마디를 잘못하면 제 의견이 계열사 직원에게 일종의 강압으로 여겨질 수 있어요. 만약 손익 분석에 오류가 있다면 ‘다시 하라’고 일방적으로 지시하기에 앞서, 어떤 계산 방식을 거쳤는지 물어봅니다. 직원들이 일에서 재미를 느껴야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데, 제 의견이 직원들에게 스트레스나 불만이 되면 안 되겠죠.”

윤 대표는 영업 중심의 기업문화가 두드러지는 웅진에서 영업 외 부서의 위상과 역할을 중시했다. 그는 “웅진은 그룹 모태인 영업부서의 영향력이 상당히 크다”며 “하지만 영업 외 부서와 격차가 너무 크면 리스크를 헤지할 수 없다. 이는 최신 경영 트렌드와도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그룹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혁신팀을 해체했다. 혁신팀이 혁신을 방해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당시 혁신팀은 혁신경영대회를 열어 계열사별로 한 달에 30건씩 혁신적 아이디어를 제출하도록 했다. 계열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보여주기식 혁신 아이디어가 난무했다. 윤 대표는 이를 “돈 낭비”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물론 혁신이란 개념은 중요하죠. 하지만 저는 혁신이란 단어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혁신 전담팀이 그룹 전체를 자극해야만 혁신이 이뤄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혁신은 각 계열사, 각 부서, 각 팀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톱다운 방식으로 변화를 지시하고 명령하는 순간 혁신은 멈춥니다. 직원이 일에서 흥미를 느끼며 계속 질문을 던지다 보면 스스로 답을 찾기 마련이에요.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혁신입니다.”

2년간 몸담은 기획조정실에서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윤 대표는 2016년 윤 회장에게 웅진씽크빅 대표를 맡겠다고 자청했다. 윤 회장은 장고 끝에 그를 웅진씽크빅 대표로 발령했다. 윤 대표는 “아버지께서 나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며 “먼저 자신감을 내비치면 상대방으로부터 신뢰를 얻는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3. 승부수로 던진 에듀테크의 성공


웅진씽크빅은 윤 대표에게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앞서 2010년 웅진씽크빅에서 과장으로 일했던 그는 6년 후 대표이사 직함을 달고 아버지가 되어 돌아왔다. 육아를 직접 경험해봤기에 이전보다 사업 타당성을 판단하는 안목이 생겼다. 그는 교육 서비스 디지털화 작업을 더욱 강화해 AI(인공지능)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2018년 국내 경쟁업체 다수가 오프라인 지점 확대에 나설 때 그는 미국 실리콘밸리로 건너가 에듀테크 스타트업 ‘키드앱티브(Kidaptive)’에 500만 달러(약 60억원)를 투자해 AI 엔진을 이전 받았다.

에듀테크에 대한 그의 확신은 적확했다. 그는 “입시교육보다 창의력 증진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진행했다”며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선호도가 높아지자 2014년 웅진씽크빅도 국내 최초로 태블릿 기반 학습 프로그램인 ‘웅진북클럽’을 론칭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웅진씽크빅이 저작권을 소유한 출판물을 모두 디지털화한 후 AI 추천 서비스를 접목했다”며 “연령대별 선호 도서를 제안하는 단순한 큐레이션이 아니라 개인 맞춤형 AI 북 큐레이션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2018년에는 국내 최초로 AI 학습 코칭 서비스를 선보였다. 투자은행(IB)업계는 AI 기반 교육 서비스 분야에서 웅진씽크빅을 국내 1위로 보고 있다.

“웅진씽크빅의 에듀테크 기술력은 경쟁사에 비해 최소 5년은 앞서 있다고 자부합니다. 디지털화는 따라잡을 수 있어도 AI 교육 서비스는 이미 격차가 상당하게 벌어졌기 때문이죠. 아이들에게 공부는 당연히 재미없고 지루합니다. 공부를 조금이라도 덜 지루하게,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 웅진씽크빅의 역할이에요. 공부가 재미있을수록 효율적인 지식 습득이 가능합니다.


지난해 그룹 매출 1조498억원에서 웅진북센을 제외한 교육사업 비중은 약 73.3%에 달한다. 웅진씽크빅 매출 비중은 61.6%(개별기준)이며 ‘웅진컴퍼스’, ‘놀이의 발견’이 각각 1.6%, 0.1%를 차지한다. 영어 교재와 콘텐트를 개발하는 웅진컴퍼스와 키즈 액티비티 O2O 플랫폼 놀이의 발견, 도서 유통·물류업체 웅진북센은 웅진씽크빅 산하 계열사다. 웅진북센을 제외해도 웅진씽크빅이 웅진 그룹의 캐시카우임은 분명하다.

웅진씽크빅은 크게 씽크빅(태블릿 기반 스마트 씽크빅, 종이 학습지) 부문과 미래교육(북클럽, 스마트올) 부문, 신사업(딸기콩, 유데미) 부문으로 나뉜다. 효자상품은 단연 AI 학습 플랫폼 ‘스마트올(SmartAll)’이다. 웅진씽크빅은 2019년 기존에 확보한 학습 빅데이터를 토대로 초등학생에게 전 과목 AI 맞춤학습을 제공하는 스마트올을 출시했다. 이듬해 유아에서 중학생으로 서비스 대상을 넓히며 더 많은 회원을 확보했다. 지난해 스마트올 매출은 전년 대비 40% 증가한 약 2341억원이며 누적 회원 수는 이미 23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국내 교육시장에서 2022년 매출 기준으로 웅진은 교원(1조37억원)과 메가스터디(메가스터디교육 포함 9576억원)에 이어 점유율 3위에 그쳤다. 4위는 대교(6831억원)가 차지했다. 뜨거운 교육열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입시 교육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웅진씽크빅이 선방했다는 평이 우세하다. 경쟁업체인 교원은 1조 클럽에 가입한 2017년(1조193억원)과 비교해 오히려 매출이 하락했고, 메가스터디는 입시 교육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웅진씽크빅의 에듀테크 사업의 성장성은 밝은 편이다. 한국무역협회는 ‘에듀테크 시장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세계 에듀테크 시장 규모는 2025년 3420억 달러에 이르고 시장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에듀테크 상장기업 수가 100개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웅진씽크빅이 현재 보유한 에듀테크 특허는 40여 개에 달한다.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세계 최대 가전제품 전시회인 CES에서 국내 교육 서비스 기업 최초로 ‘혁신상’을 수상했다. AR(증강현실) 기술과 독서를 접목한 인터랙티브북(양방향 독서) ‘AR피디아’ 덕분이다.

“그룹 전체적으로 AR피디아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웅진이 글로벌로 진출하는 데 단초가 될 거예요. 이미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요. 모든 연령대의 사용자에게 능동적인 독서 습관을 길러준다는 호평이 나옵니다. 조만간 글로벌 애니메이션 기업의 IP를 AR피디아 콘텐트로 활용하는 협업이 진행될 거예요. 미국에 이어 대만, 베트남, 일본, 중국 등에서도 러브콜이 오고 있습니다.”

2021년 론칭한 ‘스마트올 메타버스’와 오디오북 플랫폼 ‘딸기콩’, 글로벌 성인 온라인 교육 플랫폼 ‘유데미(Udemy)’도 전망이 밝다. 스마트올 메타버스는 어린이가 교실과 도서관, 미술관 등 가상 공간을 찾아가 미술·과학·사회문화 등을 배우는 몰입형 학습 콘텐트다. 웅진 관계자는 “정부의 디지털 교과서 보급에 따라 스마트 러닝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스마트올 메타버스 이용자도 증가 추세”라고 밝혔다. 최근 누적 회원 수 40만 명을 돌파한 딸기콩도 영유아 조기교육 확대 분위기에 따라 성장 궤도에 올랐다. 웅진씽크빅의 대표적 플랫폼 사업인 유데미와 놀이의 발견의 매출 기여도도 증가할 전망이다. 지난 4월 기준 놀이의 발견 누적 회원 수는 140만 명에 달한다.

4. 윤 대표가 그리는 새로운 미래


윤 대표는 웅진의 새로운 수장이 된 소감을 묻자 “평소 직원들과 친밀하게 지내는데 관계가 소원해질까 우려된다”며 “최고 강점인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경영학은 결국 사람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더라”라며 “대리든 과장이든 팀장이든, 누구나 편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통로를 뚫어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소통은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영 포인트입니다. 소통이 원활해야 리스크 헤지가 가능합니다. 웅진은 지주사 대표가 아닌, 각 계열사 대표가 사업을 직접 책임지는 체제예요. 그룹은 개괄적인 부분만 관리합니다. 리스크 헤지를 위해선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가 중요해요.”

창업주 윤 회장의 경영 DNA도 시대에 맞게 현대화해야 한다. 윤 대표는 급격한 변화를 지양하는 성향이었다. 그는 “아버지께서 해온 톱다운 방식의 혁신과 기업 운영 방식을 무조건 비난할 순 없다. 효율적인 측면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톱다운 방식의 리더십은 마치 스펙트럼의 변화처럼 서서히 사라지고 유연하고 개방적인 리더십이 웅진을 이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원 승진 인사에서도 실적보다 상사·부하 평가와 동료 평가 등 다면 평가를 토대로 리더로서 자질이 있는지 판단할 방침이다.

윤 대표가 최대주주로서 그룹 전반의 실권을 쥐면서 웅진은 한동안 과도기를 겪을 전망이다. 윤 회장과는 의견 대립이 없느냐는 질문에 윤 대표는 “모든 사안에서 조율을 기대하긴 어렵고 갈등은 필연적이다”라며 “아버지께서 오래도록 지켜온 신념을 한 번에 무너뜨릴 순 없기에 신뢰를 바탕으로 설득해나가겠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아버지께서 그동안 지켜온 신념으로부터 조금 벗어난다 해도 회사 운영에 문제가 없다는 걸 입증해 보일겁니다. 웅진은 영업, 방문판매 역량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사실 이 외에도 뛰어난 역량이 많아요.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죠. 교육사업 쏠림현상이 더욱 심해지면 그룹 전체의 리스크 헤지도 불리해집니다.”

활동적인 성격의 윤 대표는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지 않고 현장에 나가 신사업 가능성을 타진할 계획이다. 그는 “시야를 넓힌 후 한 분야를 심도 있게 파고들고 싶다”며 “웅진이 잘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찾아보겠다”라고 밝혔다.

그가 고려 중인 사업은 의료·제약 분야다. 웅진은 이미 도서물류·유통을 담당하는 웅진북센의 업종에 의료기기 도매업과 의료용기구 소매업을 추가한 상태다. 이를 토대로 3자 물류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포석이다. 윤 대표는 “그린필드 투자(Green Field Investment·회사가 직접 새로운 시장에 자금을 들여 투자하고 운영하는 형태)를 하기보다는 관련 업체를 인수해 웅진의 경영노하우를 접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지나친 사업다각화로 그룹 명운이 흔들렸던 웅진이다. M&A에 대한 두려움 또는 거부감에 대해 윤 대표는 “이종결합은 리스크를 헤지하는 장점이 있다”며 “(물류사업에 앞서) 의료·제약업은 B2B 형태로 약국이나 병원 대상 영업이 가능하다. 웅진의 모태는 영업이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인터뷰 말미, 신임 대표는 “은퇴 전까지 웅진을 법정관리 이전으로 돌려놓겠다”며 “웅진이란 이름이 결코 사라지지 않도록 잘 경영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직원들에게는 “많이 부족한 경영자이지만 믿고 도와달라”며 “무엇이든 열심히 배울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다.

“최소한 물려받은 자로서 역할을 다할 생각입니다. 웅진을 법정관리 이전으로 돌려놓는 일은 제 숙명입니다. 저는 창업주가 아니라 전달받은 사람이기 때문이죠. 기업은 한순간에 무너지지만, 또 성장하기 시작하면 무섭게 치고 올라갑니다. 웅진의 재도약을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박종근 기자

202306호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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