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발이 빨라 ‘바람의 아들’이라 불렸던 이종범 코치의 아들인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선수가 ‘포브스코리아 파워 셀러브리티 40’에 포함됐다. 이제 그를 ‘바람의 손자’라고 부르는 것은 실례다. 5년 연속 골든글러브에 2년 연속 타격왕까지, 그가 세운 기록은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한 업적이다.
‘야구계의 전설’이라 불리는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자신을 따라 야구선수의 길을 걷겠다고 말하자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됐을 무렵이었다. 야구선수의 삶이 무척 고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들만큼은 자신과 같은 고생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터였다. 자신과 비교하는 말들 때문에 아들이 겪을 부담감과 스트레스도 염려됐다. 국내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 외야수 이정후(25) 선수는 당시를 회상하며 아버지 이종범(53) 코치를 설득하기가 녹록지 않았다고 털어놨다.“당시 아버지는 이미 야구계에서 최고의 슈퍼스타셨습니다. 그런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면 주변 사람들의 기대가 높을 수밖에 없죠. 저는 솔직히 말해 야구계에서 잘해봤자 본전이었어요. 아버지께선 ‘그 길을 택하면 길을 걷는 내내 나와 비교당하며 심적으로 많이 힘들 텐데 괜찮겠냐’며 ‘(차라리) 다른 길을 가라’고 고집스럽게 저를 말리셨어요.”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오늘날, 이 코치는 이제 ‘이정후의 아버지’로 불린다. 이 선수가 ‘이종범 아들’이었던 시절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 선수는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갔다. 올해는 ‘포브스코리아 파워 셀러브리티 40’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 선수는 “확실히 예전에 비해 길거리에서 알아봐주는 사람이 많아졌다.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더 잘해서 계속 ‘파워 셀럽 40’에 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이 선수는 2017년 KBO(한국야구위원회) 신인상을 수상한 이래 KBO 시상식에 초청받지 못한 해가 단 한 번도 없었다. 5년 연속 ‘골든글러브 외야수상’을 수상한데 이어 2019년 ‘플레이오프 MVP’, 2021년부터 2년 연속 ‘타격왕(정규리그 타율 1위)’을 거머쥐었다. 지난해에는 장타율·출루율·안타·타점 등에서 1위를 휩쓸며 MVP 자리에 올랐다.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실력으로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났다.
아버지의 반대, 세상의 비교… 아랑곳하지 않았다지난 4월 14일 오후 1시,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은 적막했다. 조명 없이 어둑어둑한 운동장에서 선수들이 하나둘 몸을 풀고 있었다. 5시간 30분 후에 기아 타이거즈와의 경기가 열릴 예정이었다. 당시 3승0무6패로 정규 리그 8위에 머물던 키움 히어로즈였다. 하지만 이 선수의 표정에서는 초조와 긴장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주색 유니폼에 어울리는 핑크색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양 귓볼에는 작은 골드볼 귀걸이를 걸고 있었다. 앞서 가벼운 부상으로 한두 경기를 쉬었던 그에게 마인드컨트롤 방법을 물었다.“시즌 경기 때는 좀처럼 긴장하지 않는 편입니다. 물론 경기 직전에는 조금 긴장이 돼요. 그럴 때마다 최대한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계속 이런 생각을 되뇝니다. 그리고 단체 연습에 들어가기 30분 전, 혼자 연습할 때는 특정 상황을 설정해놓고 연습하는데 이때 계속 공을 치다 보면 걱정, 불안, 초조 등 잡생각이 사라지곤 합니다.”쉽사리 두려워하지 않는 강심장, 천생 선수의 면모였다. 그는 “‘멀리 보기보다 당장 처해 있는 상황에 집중하자’, ‘현재에 충실하자’, ‘순리대로 살자’, 이 세 가지가 좌우명이다”라며 “마냥 멀리 본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강한 정신력은 아버지 이 코치에게서 물려받았을까. 이 선수의 야구 인생 전반부가 궁금했다.그는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유치원 들어가기 전부터 항상 장난감이 아니라 야구공, 야구배트를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늘 야구공, 야구배트와 함께였다”며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사촌 형을 따라 거의 매일 야구를 하기 시작했다”고 떠올렸다.그러다 예기치 않은 장벽에 부딪쳤으니 바로 아버지 이 코치의 반대였다. “원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야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만류로 2년이 미뤄졌다”며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께서 해외 캠프로 훈련을 가시면서, 어머니의 지원 덕분에 아버지 몰래 야구부에 들어가게 됐다”고 회상했다.현재 LG트윈스 1군 주루코치로 활동 중인 이종범은 1990년대 이른바 ‘야구천재’라고 불리며 KBO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다. 1994년 타율 0.393, 196안타, 84도루, 113득점, 출루율 0.452 등을 기록해 전 부문 1위를 차지했다. 1997년에는 타율 0.324, 30홈런, 64도루로 ‘30-30 클럽’에 가입한 동시에 KBO 역대 최초로 트리플 스리(30홈런, 30도루, 3할 타율을 동시에 기록한 경우)를 달성했다. 개인 통산 기록은 510도루로, KBO 역대 2위다. 워낙 발이 빨라 순식간에 1루에서 2루를 거쳐 3루까지 달렸던 그의 별명은 ‘바람의 아들’이었다.이정후 선수는 자연스럽게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 코치와 비교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단번에 “괜찮다”고 답했다. 아버지와의 비교가 워낙 오래된 일이기에 이골이 났을 법도 하다. 지난해 KBS 예능 프로그램 [우리끼리 작전:타임]에 아버지와 동반 출연을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선수는 “(비교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에 이젠 부담스럽지 않다”며 “오히려 부자간에 추억을 쌓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미소 지었다. 이 코치는 평소 아들에게 야구에 대한 조언은 일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방송 출연을 계기로 부자간에 대화의 물꼬가 터진 셈이다.이 프로그램에서 이 선수는 카리스마 이면에 있는 허당미로, 이 코치는 ‘아들 바보’ 면모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묻자 이 선수는 “예전에는 식당이든 어디든 가면 항상 아버지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며 “그런데 이제는 아버지보다 나를 먼저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수줍게 답했다.그에게 조금 더 수줍은 질문을 이어갔다. 야구선수로서 자신만의 강점 두 가지를 꼽아달라고 하자 그는 “다른 선수에 비해 공을 방망이에 더 정확히 맞출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며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실제로 그는 2021년 타율 0.360, 2022년 타율 0.349로 2년 연속 KBO 타격왕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타율보다 타고난 성격을 더욱 강조했다. 야구와 그의 성격은 사뭇 닮았다.“다른 스포츠와 달리 야구는 거의 매일 경기를 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어요. 설사 오늘 성적이 별로라고 해도 내일의 건승을 기약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항상 방심할 틈이 없어요. 오늘 성적이 좋아도 내일 부진할 수 있는 게 야구예요. 오늘의 승리에 들떠 있을 여유가 없는 겁니다. 내일이라는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니까요. 제 성격이 야구와 비슷해요. 일희일비하지 않아요. 오늘 조금 못했더라도 실망감이나 안타까움을 길게 끌고 가지 않아요. 반대로 잘했을 때도 기쁨에 한없이 도취해 있지 않습니다. 야구장에서 있었던 일은 야구장에서 끝내자는 생각입니다.”
바람의 손자? 나를 키운 건 ‘루틴’이 전부이 선수는 지난해 유난히 성적이 좋았다. 장타율·출루율·안타·타점 등에서 1위를 차지했고 골든글러브 외야수상과 함께 MVP도 거머줬다. 비결에 대해 그는 “지난해가 프로 6년째 시즌이었다. 경험이 쌓이다 보니 나만의 노하우와 함께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며 “소위 말하는 ‘전성기의 나이’에 들어가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욕심도 슬쩍 내비쳤다. “야구와 관련한 모든 것을 잘하고 싶다”며 부단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아버지만큼 발이 빨랐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할 때도 있어요. 아버지는 현역 때 정말 발이 빠르셨거든요. 저도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아버지께서 워낙 빠르셨기 때문에, 저런 발을 가졌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합니다.”스포츠 선수의 숙명과도 같은 부상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물었다. 당시 그는 연습 중 가벼운 부상을 겪은 상황이었다. 이 선수는 “몇 년 전 크게 다쳐서 수술한 적이 있다”며 “그 후 다쳤던 상황과 비슷한 일이 생기면 무의식적으로 움직임을 주저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역시 강한 멘털이 한몫했다.“계속 이렇게 가다간 제가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겠다 싶었습니다. 부상이 두려워서 잡을 수 있는 공을 놓치거나 거뜬히 할 수 있는 것을 해내지 못하는 일이 빈번해졌어요.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죠. 사실 과감하게 시도하면 오히려 다치지 않을 수 있어요. 움직일까 말까 머뭇거리다가 다치는 경우가 허다해요. 이제는 고민의 순간이 오면 더욱 과감하게, 더욱 자신 있게 움직이려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트라우마가 없어졌어요.”5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받은 그의 ‘롤 모델’은 과연 누굴까. 이 선수는 “아버지를 제외한다면(웃음),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라는 선수가 롤 모델이다”라고 밝혔다. 스즈키 이치로(Ichiro Suzuki·50)는 1991년 일본 프로야구에서 경력을 시작해 2001년 미국 메이저리그의 시애틀 매리너스(Seattle Mariners)로 옮겨 한 시즌 최다 안타(2004년 262안타)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3000안타-500도루-골드글러브 10회 수상’을 달성한 선수이다.이 선수는 “그가 선망의 대상인 이유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보다도 자기 관리 능력과 프로선수로서의 마인드를 본받고 싶기 때문이다”고 고백했다. 스즈키 이치로는 ‘루틴’을 중요시하는 선수로 손꼽힌다. 그는 ‘제가 일본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에서) 저보다 많이 연습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저 자신과 맺은 약속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라는 어록을 남겨 주목을 받기도 했다. 롤 모델과 닮기 위한 이정후 선수의 노력에 대해 물었다.“저도 항상 루틴을 잘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수면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오전 1시쯤 잠들어서 오전 10시쯤 기상), 출근 후에는 반복되는 훈련 스케줄에 성실하게 임합니다. 매일 일상이 똑같아요. 시즌이든 비시즌이든, 스케줄이 조금씩 다를 뿐이지 루틴이라는 규칙성을 지키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비시즌에도 6, 7년간 매일 똑같은 개인 훈련 스케줄을 지켜왔습니다.”아무리 강심장에 철저한 자기 관리 능력을 지녔다 해도 스트레스는 풀어야 하지 않을까. 그는 “가끔 쉬는 날, 친구들과 맛집에 가는 걸 빼면 특별한 취미생활은 없다”며 “물론 놀면 재밌고 즐겁지만 없는 시간을 억지로 쪼개서 노는 스타일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야구를 잘했을 때 느끼는 희열이 친구들과 놀면서 얻는 즐거움보다 크다”며 “쉬는 날 잘 쉬어야지 다음 일주일 동안 경기에 잘 임할 수 있기 때문에 쉬는 날도 어떻게 보면 ‘경기의 연속’이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그의 올해 목표는 키움 히어로즈 팀 우승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들을 하나둘 이룬 것 같다”면서도 “다만 아직 팀이 우승을 하지 못해서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 선수는 “오늘 하루 열심히 살고, 또 내일을 성실하게 보낸다면 그 하루하루가 쌓여 나와 팀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이 선수의 출중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이종범 코치의 아들, 바람의 손자’로 일컫는 사람들이 있다. 이 선수에게 어떤 선수로 대중에게 기억되길 원하는지 물으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바로 ‘야구선수’로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것. 그의 얘기에 더 귀를 기울였다.“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슈퍼스타여서 알게 모르게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이를 감사히 여기고 저 또한 주변에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떤 선수였는지보다는 그냥 좋은 사람이고 싶습니다. 솔직히 운동장 밖으로 나가면 저 또한 군중 속에서 똑같은 한 사람일 뿐이니까요.”-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사진 최기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