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강호의 생각 여행(45) 서울에서 글로벌로 

 

서울은 세계 어떤 대도시보다 아름다운 산을 품은 도시다. 초고층 건물과 깨끗하고 안전한 거리는 메가시티의 품격을 더한다. 이제 한국인이 서울을 넘어 세계를 누빌 차례다.

▎범바위에서 바라본 인왕산 정상과 산성. 서울의 파수꾼으로 장중하며 묵묵하게 자리하고 있다.
나는 서울에 산다. 서울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산과 더불어 살고 평생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큰 행운이다. 신선한 공기와 싱그러운 숲, 나무와 풀과 꽃이 어우러진 아름다움까지 선물해주는 서울의 산이 너무나 고맙다. 온갖 꽃이 피어오르는 봄, 짙푸른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 낙엽이 떨어지는 쓸쓸한 가을에 이어 흰 눈 내리고 추운 바람에 벌거벗은 겨울의 외로움과 덧없음까지도 느끼게 해주는 존재가 바로 산이다. 계절의 변화를 통해 인생이라는 학습을 이어가게 해주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황사와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는 계절에도 산은 우리에게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는 산소 공급기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산속을 홀로 걸으며 자연과 대화를 나눈다. 봄에는 칙칙하고 메마른 겨울 외투를 벗어버리고 가볍고 싱그러운 녹색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와 대화한다. ‘야~ 나무야, 너 참 멋지다! 싱그럽게 힘이 솟아오르는구나. 자주 만나서 맑은 산소로 서로 호흡하자꾸나.’ 회색빛 겨울을 떠나보내고 피어오르는 노란 개나리, 분홍빛 진달래, 품격 있고 우아한 목련화와 화사한 벚꽃이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준다.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도 귀엽기만 하다. 산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자연의 변화를 선물할 수 있을까?

여름이 되면 짙은 녹음이 모든 산을 뒤덮는다. 숲속 벤치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높게 자란 나무의 푸른 잎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고, 갖가지 모습의 구름이 요술을 부린다. 새처럼 생긴 구름이 뭉게구름이 되기도 하고 가끔 용같이 생긴 구름도 보인다. 때로는 양떼구름이 지나가기도 한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마스크를 써야 했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자유로이 만나지도 못했다. 하지만 산길과 숲속을 걸으며 시원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웠다.

아름다운 사계가 담긴 서울의 산


▎커다란 멋진 구름 아래 펼쳐진 서울 강북 전경. 멋들어진 고층 건물들이 남산을 둘러싸고 있다.
어려서는 남산 밑자락 퇴계로에 있는 남산초등학교(예전에는 국민학교라 했다)에 다녀서 매일 남산을 볼 수 있었다. 당시는 KBS 라디오 방송국이 학교 위 남산에 있어서 어린이 방송국에서 하는 노래자랑 시간에 나간 적도 있었다. 물론 ‘땡’ 소리와 함께 낙방했다. 인생 최초의 NG 경험이라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어린 시절 불렀던 남산초등학교 교가를 검색해보았다. 1절 가사다. “반만 년 긴 역사에 옳고 그름을 남산아 물어보자. 너는 알리라 언제나 우리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고 나가시는 고마운 남산. 남-산 남산은 우리들의 아버지. 그렇다 우리들은 남산 어린이.” 윤석중 작사, 라운영 작곡이다. 교훈은 ‘착하게 자라자, 튼튼하게 자라자, 알차게 자라자’였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초등학교 교가가 생생히 기억난다. 중년이 된 지금 자문한다. 착하게 살았는지? 튼튼하게 살았는지? 알차게 살았는지? 강북으로 이사해 남산 자락에 살면서 가장 자주 오르는 곳 역시 남산이다. 여러 갈래 코스를 따라서 남산타워가 있는 정상에 오른다. 북쪽 방향으로 왼쪽부터 안산·인왕산·북악산·북한산·도봉산이 있고 멀리 불암산에 이르는 산줄기가 마치 서울 강북을 둘러싼 병풍처럼 보인다. 그리고 아름다운 강북 중심지에 하늘 높이 솟은 고층 건물들이 시내를 꽉 채워 세계적인 도시의 위용을 자랑한다. 옛날에는 15층 건물도 없었던 서울 시내가 이제는 어마어마한 세계적 메가시티로 거듭났다.


▎북한산 보현봉과 대남문의 단청, 그리고 성벽의 아름다운 조화.
서울은 자랑스러운 국제도시다. 1000만 인구가 사는 거대 도시인 서울은 아름답고 무엇보다 깨끗하고 안전하다.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부러워하는 이유다. 강남 쪽으로 눈을 돌리면 한강이 보이고, 50년 전에는 집 한 채 없던 강남에 수많은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 위용을 자랑한다. 여의도에도 고층 건물들이 밀집해 금융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국회의사당이 자리 잡고 있는 정치의 중심지기도 하다. 멀리 청계산과 관악산도 보인다. 짬이 날 때마다 남산에 오르고 싶다. 나무도 크고 숲도 깊어 도시의 열기를 막아주는 산길을 걸으며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건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서울 한복판에 남산이 자리 잡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지 모른다.

중앙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서대문구로 이사했다. 방과 후에는 항상 인왕산 서쪽 자락에서 놀았다. 아마도 청소년 시절인 그때 인왕산으로 놀러 다닌 덕분에 평생의 기초 체력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요즘은 인왕산 동쪽인 성곽 안쪽에서 시내를 바라보며 종종 산을 오른다. 여러 루트로 인왕산 약수터를 지나 범바위까지 가거나 발걸음이 내키면 인왕산 정상에도 오른다. 성곽을 따라 내려오면서 북악산과 청와대, 경복궁과 서울 도심 풍광을 감상한다. 서울내기라 어릴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울 시내 이곳저곳을 누볐던 추억을 떠올린다. 고교 시절에는 산악반 친구들을 따라 도봉산 쪽 선인봉에 오르는 암벽 클라이밍을 하며 고생한 추억도 있다. 그 뒤로 암벽을 오르는 산악인들이 가장 용감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에는 가까이 있는 불암산을 오르며 드높은 기상을 느끼곤 했다. 아침마다 기상해 대오를 정비한 후 멀리 우뚝 솟은 인수봉과 백운대를 바라보며 상큼한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가슴 터져라 힘차게 구령 조정도 했다. 장교 임관 후에는 전방 근무를 마치고 경복궁 안에 있는 부대에서 2차 소대장을 역임했다. 특히 북악산 정상에서 소대장을 했던 때가 기억에 남는다. 얼마 전 개방한 북악산 정상에 올라 경복궁과 청와대를 내려다보며 당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경복궁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역사적 궁궐이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궁은 지금도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실로 자랑스러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역사 유산이다.

글로벌 무대를 누빌 한국의 저력


▎시원한 북한산 계곡. 맑은 물·푸른 나무·바위가 절로 시상을 떠올리게 한다.
뉴욕에서 현지법인장으로 주재 근무를 마친 후 귀국해서는 강남에서 30년 넘게 살았다. 그때는 주로 청계산에 올랐다. 구룡산과 대모산도 가끔 다녔다. 청계산을 너무 좋아해서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을 들고 산에 오를 정도였다. 근래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남산과 인왕산을 오르고 가끔 북한산도 찾는다. 가까이 있어 잘 느끼지 못해서일 뿐, 북한산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산이다. 서울의 금강산이라고 생각한다. 엄청난 규모의 암석들이 멋지고 웅장하며 아름답다. 서울의 산소 공급기인 아름답고 고마운 산에 언제나 고마운 마음을 품는다.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에 진입했다. 독일이나 덴마크처럼 세계시장의 여러 분야에서 1등을 하는 히든챔피언이 많이 나와야 한다. 어떻게 하면 한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글로벌 1등 기업이 탄생할 수 있을까? 60개국에 83개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펌프 산업 1위 기업인 덴마크 그런포스그룹에서 25년 동안 세계 경영에 참여했던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글로벌기업의 경영 일선에 동참하며 세계 무대에서 1등은 아무나 할 수 없음을 체득했다. 글로벌 1등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확고한 경영이념의 정립과 실행이 바탕이 돼야 한다. 특히 인류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가치관을 견지하고 이를 실천해나가야 한다.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메가시티다! 롯데월드타워·한강· 남산·고층건물 그리고 산·산·산.
그런포스의 경영이념(Mission)은 “고품질의 펌프 및 펌프 시스템을 연구개발하고 생산·판매함으로써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건강한 환경보전에 이바지한다”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동네마다 우물을 파고 거기서 나오는 지하수를 두레박으로 끌어올려서 물을 길었다. 그러고는 물지게 양쪽에 물통을 달아 멀리 집까지 날랐다. 그다음 조금 발전해선 피스톤펌프에 마중물을 한 바가지 넣고 긴 손잡이를 위아래로 열심히 움직여 물을 퍼올렸다. 지구 어딘가 낙후된 지역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하루 종일 물을 길러 가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지금은 중진국에 이르기까지 기계·전기·전자·컴퓨터 기술이 융합된 자동 펌프가 개발돼 손가락으로 스위치만 누르면 어디서든지 물이 콸콸 쏟아진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123층 빌딩에서도 편리하게 물을 사용한다. 즉, 기술개발과 더불어 인류의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향상됐다. 또 고효율 펌프를 개발해 괄목할 만한 전기 절약을 이뤄냈다. 이를 통해 엄청난 양의 CO2를 절감함으로써 지구 환경보존에 기여하고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경영 철학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30년 후 수명이 다한 펌프를 폐기 처분할 때를 고려해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로만 부품과 제품을 만든다. 재활용이 어려워 지구 환경에 피해를 주는 부품이나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ESG의 중요성이 강조되지 않았던 30~40여 년 전부터 그런포스가 실천해온 기업 철학이다. 이런 경영 철학이 글로벌 1등 기업이 되기 위한 기본이다.

둘째,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적 혜안이다. 여러 분야에서 이런 사례를 찾을 수 있으나,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자 구성원인 핵심 인재를 선발하고 육성해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을 알아본다. 그런포스는 글로벌 인재 프로그램(Global Talent Program)을 운영하며 전 세계 자회사에서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선발된 후보자들을 덴마크 글로벌 인재 평가센터로 초대한다. 평가 과정을 거쳐 최종 선발된 글로벌 인재들은 여러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추가 교육도 받는다. 때로는 지름길로 진급하면서 그룹의 미래 경영을 주도한다.

글로벌 인재는 인종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능력과 리더십을 갖춘 이들 중에서 선발한다. 참고로 전 세계 각 지역에서 일하는 CEO(사장)들은 모두 그 나라 사람들로 선발한다. 즉, 글로벌화(Globalization)를 넘어서서 지역화(Localization)까지 완성해야만 초일류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당장 성과를 내는 것뿐 아니라, 수십 년 후를 내다보는 미래 전략까지 두루 갖춰야만 세계 챔피언을 넘볼 수 있다.

셋째, 혁신성을 갖춰야 한다. R&D센터에서는 매년 이 세상에 처음 출시되는 신제품을 개발해냄으로써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레드오션에 빠지지 않는 블루오션을 창출해낸다. 이렇게 늘어난 이익으로 또다시 신제품을 개발해내는 선순환이 이어진다. 지속적으로 혁신적이고 선도적인 기술을 개발해내는 기업만이 세계시장에서 지배력을 가질 수 있다.

글로벌기업의 한국 시장 창업 CEO로서 25년간 일했다. 그런포스 타이완 회장, 그런포스 일본의 보드멤버(등재이사)도 겸임했다. 중국과 연계된 비즈니스에서도 여러 협업을 진행하며 글로벌 경영에 참여했다. 참으로 보람된 시간이었다. 국내에서는 그린필드 투자(Green Field Investment)를 위해 공장 부지를 매입하고 4차례에 걸쳐 공장을 신축했다. 또 M&A를 통해 국내 회사 두 곳을 인수했다. 무에서 시작해서 3개 회사와 3개 공장을 설립하고 경영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소중한 결실이었다.

글로벌 평가자로서 세계의 인재를 선발하고 평가하는 프로그램을 처음 계획할 때부터 참여한 것도 보람찬 경험이었다. 이를 통해 세계의 많은 인재를 선발하고 평가하며 글로벌 인재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1년에 한 번 전 세계에 있는 자회사를 순회하는 세계 사장단 회의가 열리는데, 각 국가나 지역마다 다른 문화와 사업 방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글로벌 무대를 보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펩시, 마스터카드 등 수 많은 세계적 기업의 CEO들이 모두 인도계다. 우리나라도 우수한 인재들이 글로벌 무대를 넘나드는 CEO로 많이 선발돼 주인공 역할을 해야 할 때다. 이러한 글로벌 경영을 통해서 거대한 가능성이 있는 세계시장에서 블루오션을 창출해내야 한다. “Why not Korean?” 우리 한국인들이,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의 주인공이 되자!

※ 이강호 -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309호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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