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수많은 식당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치열한 외식업계에서 손대는 브랜드마다 ‘줄 서는 맛집’으로 만드는 기획자가 있다. 미각 만족을 넘어 새로운 문화 코드를 만들고 있는 정동우 미트포포 대표를 김지원 대표가 만났다.
▎패션업계를 대표하는 김지원 대표가 외식업계를 대표하는 정동우 대표를 만나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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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서 외식 경영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때 여러 레스토랑의 재무제표를 비교하며 분석했는데, ‘외식업은 관리가 더 어려운 사업’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정동우 대표는 이런 외식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획자 중 한 명이에요.” 김지원 대표는 정동우 대표를 이렇게 소개했다.식당 한 개를 맛집으로 만들기도 쉽지 않은 요즘, 정 대표는 ‘몽탄’, ‘양인환대’, ‘청기와타운’, ‘고도식’, ‘카린지린가네스낵바’, ‘산청숯불가든’ 등을 기획해 모두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핫한’ 식당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맛집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정 대표는 학부생 시절부터 필명 ‘바비정’으로 맛집 블로그를 운영했다. 외식 전문 잡지사 월간외식경영에서 기자와 컨설턴트로 활동했고, ‘희스토리푸드’에서 마케팅 팀장을 거쳤다. 현재 다양한 외식업체의 브랜딩과 컨설팅을 담당하며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 ‘미트포포’의 대표이다.정 대표는 단순히 맛에만 집중하는 식당이 아니라 독창적인 콘셉트, 대중의 소비성향과 문화적 욕구를 정확히 꿰뚫는 예리한 기획력으로 기존 식당들과 확실히 차별화함으로써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다.
처음 외식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경영학과에 입학해 광고마케팅을 전공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던 대학교 2학년 무렵, 당시 하버드대학교 교수였던 하워드 가드너가 쓴 열정과 기질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한 분야의 업을 하루에 3시간씩 온전히 해내는 과정에서 10년이 흐르면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다”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었다.나도 한 분야의 마케팅에 집중해 전문가가 되어보자고 생각하고, 평소 관심이 많던 음식과 외식업에 전문성을 지닌 외식 마케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블로그였다. 2012년, ‘바비정’이라는 필명으로 나름의 기준에 따라 식당들을 선정하고 분석해 소개하기 시작했다. 블로그가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면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도 늘었다. 외식업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월간외식경영 인턴기자가 되어 본격적으로 외식업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바비’라는 닉네임이 꽤 잘 어울린다.어린 시절부터 대중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식당을 기획하거나 작명을 할 때도 영화나 음악 등에서 영감을 받는 편이다.국내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다이나믹 듀오’인데, 그들의 첫 앨범 ‘택시 드라이버’에 수록된 ‘불면증’이라는 노래를 특히 좋아했다. 이 노래를 가수 ‘바비 킴’이 피처링했는데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열창하며, 장난 삼아 앞으로 나를 ‘바비정’으로 부르라고 했다. 그 후 주변에서 하나둘 나를 ‘바비’라고 부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본명보다 더 많이 불리는 친근한 예명이 됐다.
몽탄, 청기와타운, 고도식, 산청숯불가든 등 화제의 식당이 모두 대표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외식 컨설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잡지사에 입사 후 한식 중에서도 고깃집에 대한 기사를 집중적으로 썼고 인터뷰를 위해 전국에 있는 고깃집을 다녔다. 그중 전국의 돼지고깃집을 따로 모아 소개하는 ‘바비정의 포크볼’이라는 코너를 만들었다. 그 코너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며 바비정은 ‘고기 좀 아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내가 다녔던 잡지사는 당시 식당 컨설팅도 같이 했었다. 팀의 일원으로서 식당 창업부터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미리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이직을 거치며 블로그를 통해 몇몇 고깃집과 관련한 컨설팅 의뢰가 들어와 오픈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경력을 쌓은 후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외식 컨설팅 회사를 독자적으로 운영 중이다. 지금까지 전략 컨설팅, 리브랜딩 작업을 포함해 약 20개 브랜드의 외식 컨설팅을 진행했다.
지금껏 컨설팅한 브랜드 중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는 곳은.짚불구이 전문점 ‘몽탄’을 꼽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이 라운지바나 파인 다이닝은 힙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반면 대중 식당을 찾을 때는 빈티지한 노포를 선호하더라. 젊은 기획자의 장점을 살려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공간 기획을 어필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른다’거나 ‘장사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는 등 회의적인 의견이 많았다.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역사적 관점에서 문화를 차용해 색다른 노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음식 문화와 관련된 역사적 뿌리를 찾다가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에 들렀다. 이곳에는 추수 후 마을의 번영을 위해 남은 짚불로 숭어를 구워 먹던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숭어가 잘 잡히지 않자 돼지고기로 대체했다고 한다.
▎대중의 소비성향과 문화적 욕구를 꿰뚫는 기획력으로 사람들이 열광하는 외식 브랜드를 만드는 정동우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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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100년이 넘는 적산가옥을 개조해 고풍스러움을 살리고, 고기를 짚불로 훈연해 고유의 향을 살리는 ‘짚불구이’를 뿌리 삼은 몽탄이 탄생했다. 오픈 이후 전국 웨이팅 시간 1위라는 타이틀이 붙을 정도로 폭발적인 호응 덕분에 짧은 시간에 명성을 얻으며 삼각지 맛집으로 자리 잡았다.
몽탄의 인기에는 ‘고깃집 인테리어는 다 똑같다’는 편견을 깨는 아이코닉한 공간 연출도 한몫한 것 같다.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음식 사진을 찍거나 공유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SNS에 공유되는 사진 한 장에도 음식점의 아이덴티티가 확고히 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노포다운 빈티지한 멋을 살리기 위해 당시 즐겨 찾던 ‘엔트러사이트’, ‘어니언’ 등 카페에서 영감을 얻어 재생 건축의 개념을 도입했다. 또 고깃집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는 불판부터 집기, 후드까지 공간과 어울리도록 새로 제작했다. 짚불구이 전문점임을 한눈에 알 수 있게 접시 밑에 짚을 깔아 서빙해 장식성과 아이덴 티티를 살렸다.외식 브랜드를 컨설팅할 때는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식탁에 앉고, 어떤 음악을 들으면 더 좋아할까’를 상상하며 공간과 디테일을 계획하고 연출하는 편이다. 식당으로서 기능적인 요소에만 집중하는 대신 감성적인 접근으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자 했다.
그러고 보니 주로 고깃집 컨설팅에 참여했다.앞서 언급했듯 잡지 기사나 블로그 포스팅을 보신 분들이 나를 ‘고기 전문가’로 인정해주신 것 같다. 곰탕·맥주·라면 전문점 등도 진행했지만, 비율로 따지면 7대3 정도로 고깃집 컨설팅 의뢰가 많다. 특히 ‘몽탄’의 성공 이후 컨설팅 제안이 쏟아졌는데 대부분이 고기 전문점이었다.
이곳 ‘산청숯불가든’도 몽탄만큼이나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은데.매출 규모만 따지면 산청숯불가든이 더 크다. 2023년 2월 처음 오픈한 마곡점은 월 매출 약 6억원을 기록 중이며, 반응이 좋아 7개월 후 을지로에도 진출했다. 개업 두 달 만에 하루 300팀이 줄을 서는 맛집으로 성장했고, 약 7억원에 달하는 월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24년에는 인근 작은 골목에 이곳 을지로 2호점을 오픈했는데 월 매출이 약 4억원 정도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돼지고깃 집으로는 손에 꼽는 매출이지 않을까 한다.이곳은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경남 산청 지역의 맑고 청정한 자연의 이미지를 담고자 했다. 산청 흑돼지와 숯가마, 지리산의 식재료, 산청의 정취가 느껴지는 러스틱한 인테리어로 차별화했다.
가게 한 군데가 잘될 수는 있지만, 기획하는 아이템마다 웨이팅을 부르는 곳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비결이 뭘까.우선 식당의 입지를 정할 때 유동인구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 낮 시간대에는 직장인, 밤 시간대에는 거주인을 유동인구로 생각할 때 7대3 정도를 이상적인 구조로 본다. 큰 회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배후 상권으로 정하고, 직장인들을 타깃으로 어느 정도 수요가 있는지를 제일 민감하게 보는 편이다.‘대로변 전략’으로 매장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도 중요하다. 고정 고객들이 생기고,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리면 10분이라도 웨이팅이 형성된다. 그 모습만으로도 바로 광고 효과가 생기는데, 이를 마케팅에 활용한다.
트렌드를 꿰뚫는 차별화된 기획도 돋보인다.컨설팅을 할 때 특정 문화의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기보다 하나의 문화와 또 다른 문화를 뒤섞어 색다른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코리안 BBQ 레스토랑인 ‘청기와타운’은 한국과 미국, 두 문화의 교차점에서 생성되는 독특한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식당의 기본이 되는 맛과 서비스를 챙기면서 LA한인타운을 떠올리게 하는 인테리어로 색다른 분위기 연출에 신경 썼다. 단순히 독특한 콘셉트와 맛있는 음식을 내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감각을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
패션처럼 외식업도 트렌드가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의 외식업 트렌드를 전망한다면.경기 불황과 매년 오르는 인건비 탓에 식당의 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다. 요즘 고깃집은 스테이크처럼 두툼한 고기 대신 냉동 삼겹살처럼 얇은 고기가 대세다. 손님이 직접 구워 먹기 힘든 두꺼운 고기는 직원이 구워줘야 하는데, 그럴 경우 인건비가 5%에서 많게는 10%까지 올라간다. 인건비는 적게 들면서도 소비자에게 각인되기 위해 치열하게 브랜딩하는 시대가 오는 것 같다.
경기가 좋지 않아 올해는 코로나 때처럼 비장한 마음을 갖게 된다. 새해 목표가 궁금하다.특별한 스타일로 주목받기보다는 집밥처럼 만만하게 즐길 수 있는 한식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그동안 많은 고깃집을 기획하며 쌓은 노하우를 모두 담은 한우 등심 전문점을 계획하고 있다. 누구나 한 끼 식사를 위해 가볍게 들러, 한우를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식당을 오픈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 김지원 - 한세예스24홀딩스의 자회사인 한세엠케이를 이끌고 있는 김지원 대표는 대학에서 심리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뉴욕 International Culinary Center와 르 코르동 블루,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대학원, 요리 아카데미 츠지원에서 요리를 공부했다. 이후 예스24에 입사하여 경영훈련을 받은뒤 2019년 한세엠케이 대표직에 올랐다. 한세엠케이는 현재 모이몰른, 나이키 키즈, 버커루, NBA 등 유아부터 성인까지 전 연령대 라이프웨어를 선보이며 패션을 넘어 문화와 라이프스타일까지 아우르는 비즈니스로 나아가고 있다.-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_ 사진 지미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