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미술 하나로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이 성황리에 폐막했다. 내로라하는 메이저 아트페어뿐만 아니라 국내 미술시장의 흥행을 말해주듯 최근 부쩍 늘어난 신생 페어까지 합하면 국내에만 100여 개에 이른다. 그야말로 아트페어 전성시대를 맞았다. 크고 작은 아트페어에서 수많은 미술작품이 쏟아져 나오는 이때, 편견 없는 평론을 하며 실력 있는 작가들이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주는 김종근 미술평론가를 만났다.
▎오랜 시간 미술계에서 활동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김종근 미술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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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화폭에 옮기거나 조각으로 빚어 표현한다. 평론가는 작품의 예술성뿐만 아니라 사회적ㆍ문화적 의미에 대한 논의와 분석을 더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이해를 돕는 통역 역할을 한다. 미술시장이 전례 없이 확장되면서 작가와 작품을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해석하는 미술평론가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정승우 이사장이 이달에 만난 주인공은 35년 넘게 평론가이자 전시기획자, 대학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김종근 미술평론가다.김 평론가는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한 후,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 DEA 과정을 마치고, 동 대학원에서 현대미술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호암예술상 특별 추천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대아트갤러리 관장과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겸임교수를 지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평론학술분과 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여전히 다양한 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대학에서 20년 넘도록 미술이론과 미술평론을 가르쳤다. 지금은 강의는 다 접어두고 책을 쓰고 있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천재 화가들의 비밀 등에 대한 특강을 하면서 경험적으로 스타 작가가 되는 비결을 알게 됐다. 모든 작가가 스타를 꿈꾸지만 모두가 스타가 되는 건 아니다. 유명 작가가 되는 노하우들을 쉽게 풀어내 작가들에게 들려주고자 다른 무엇보다 집필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지난 5월에는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 전문기업 시크릿타운과 함께 ‘한국의 현대미술을 말하다-김환기부터 하태임까지’라는 주제로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32인의 전시를 기획했다.10월에 열릴 ‘K 아티스트 프라이즈’라는 미술 공모전을 기획해 출품을 받고 있고, 11월쯤에는 ‘평론가가 선정한 40인전’이라는 주제의 전시도 기획하고 있다. 또 그 이후에 조선 팰리스 호텔에서 진행될 아트페어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자신을 C급 컬렉터로 소개하기도 하는데.국내에서 손꼽히는 컬렉터 중 한 명인 (정승우) 이사장님의 컬렉션은 작품 전체가 고르고 탄탄하고, 퀄리티도 아주 좋다. 나는 그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특정 장르나 주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예를 들면 데이비드 호크니,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등의 드로잉 작품만 모으고, 피카소부터 젊은 작가까지 판화만 수집하고 있는데 대충 헤아려도 몇백 점은 되는 것 같다. 춘화에도 관심이 많아 250여 점을 소장 중이다.매릴린 먼로 컬렉션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앤디 워홀의 매릴린 먼로 작품 10장부터 매릴린 먼로를 그린 작가들의 그림, 매릴린 먼로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스커트 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의 전신상부터 흉상, 두상 등 조각작품과 앨범까지, 매릴린 먼로에 관한 작품이라면 가리지 않고 열심히 수집 중이다.A급 작가의 작품 중 대중에게 덜 알려진 C급 작품들에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스스로를 C급 컬렉터로 소개하곤 한다.
올해 프리즈와 키아프는 역대급이었다는 평가가 전반적이다.개인적으로는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올해도 외국 유명 갤러리가 많이 참여해 쿠사마 야요이, 제프 쿤스 등 거물급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며 컬렉터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다소 비싼 입장료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공식적으로 8만 명 넘는 인원이 입장했는데, 가까운 아트바젤 홍콩만 해도 보통 9만 명 이상이 운집하곤 한다. 입장료를 조금만 낮춘다면 홍콩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작품을 감상하고, 미술시장이 좀 더 대중화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또 해를 거듭할수록 특정 외국 작가의 유명 작품에만 치중하는 행사가 아닌, 많은 한국 작가가 해외시장에 소개되고 글로벌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평론가가 된 계기가 있나.미대에 진학해 그림을 그렸는데 워낙 잘 그리는 사람이 많다 보니 화가로는 특별히 성공할 것 같지가 않더라.(웃음)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미학을 전공했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재미를 느꼈다. 정준모, 김찬동 작가를 비롯한 미술작가들과 같이 학교를 다니고 어울리며 전시를 기획하고, 글도 쓰고, 특강도 하며 미술비평을 시작하게 됐다.
20대 후반에 현대아트갤러리 관장에 취임해 미술계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대학원을 마치고 압구정 현대백화점 미술관의 관장을 1986년부터 1990년까지 딱 5년간 했다. 현대아트갤러리는 1985년에 개관했는데 당시에는 백화점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것이 트렌드였다. 29세에 관장이 됐는데 갤러리에 젊은 감각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덕분에 천경자, 김기창, 장욱진, 유영국, 권옥연, 이대원, 박서보, 김흥수 등 당대 화단을 평정하던 작가들부터 막 주목받던 젊은 작가들까지 전시를 기획하고 교류하며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미술 관련 잡지사도 운영했었다.미술계에 몸담고 있다 보니 좋은 작가들을 찾아내고 발굴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직원 10명 정도와 함께 ‘아트 앤 컬렉터’라는 잡지사를 만들었고, 몇 년 동안 운영했다. 그때 좋은 작가들을 많이 만났고, 또 지금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핫한 작가들도 발굴했으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여러 미술상과 공모전에서 심사위원장을 포함하여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확고한 심사 기준이 있나.일단 작가의 작품을 볼 때 울림이 있어야 한다. 그다음으로는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그 메시지가 개인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삶이나 사회에서 가치 있는 것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설령 작가의 작품이 사회적인 가치를 갖거나, 인간의 감정을 어루만져주는 예술적인 차원이 아니더라도 기존에 없던 새로운 미술 형식으로 작품을 표현해 신선한 느낌을 주는 작품을 선호한다.예를 들면 그림을 그릴 때 바닥에 캔버스를 펼쳐 놓고 물감 통을 가지고 다니면서 뿌리는 잭슨 폴록이나 화면 뒤에서, 또는 화면을 등지고 닿는 데까지 선을 긋는 이건용 작가의 작품 말이다.이들은 상업적이지도 않고, 굳이 사람들의 구미에 맞추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예술가 자신의 세계관이 작품에 명확하고 신선하게 담겨 있기에 주목을 받는 거다.
오랜 시간 평론가로 활동하며 보람을 느꼈는 순간은.우리 시대의 훌륭한 예술가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들의 예술 작품을 소개하고 알리는 데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낀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 미술계의 변화가 있다면.코로나 이후 온라인 미술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온라인 옥션뿐 아니라 MZ 세대들 사이에서는 SNS에서 미술작품을 거래하는 것도 자연스런 현상이 됐다.아트페어의 성황으로 온라인 화랑도 늘어났다. 이전에는 갤러리가 전시와 거래를 위한 장소를 꼭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면, 이제는 굳이 비싸게 화랑을 임대하지 않아도 아트페어를 통해 얼마든지 전시와 거래가 가능해졌다.
연예인들이 작가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실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연예인들이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그림을 홍보하는 것은 분명 부정적인 부분이다. 평생 한길만 걸어온 전업 작가들에게 위축감을 줄 우려도 있다.
하지만 연예인 중에도 작가로서의 철학이나 실력을 갖춘 이도 많다. 하정우씨나 구혜선씨는 꽤 오래전부터 미술작업을 해오며 작가로서 자기 영역을 확립해나가고 있다. 미술품 컬렉터로 알려진 이광기씨는 갤러리 두 곳을 운영하며 전시기획자로도 활동하고 있다.간혹 일부 연예인이 겸손하지 못한 언행으로 빈축을 사는 경우가 있지만, 연예인 작가들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미술계에 친근감을 갖게 되고 미술시장 대중화에 기여하는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
유명한 작가가 되는 비결이 있을까.지금 쓰고 있는 책 속에 스타 작가가 되는 노하우를 담아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를 꼽자면 ‘브랜드를 가진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브랜드는 작가 자신만의 철학이나 스타일을 아우르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다. 이우환 하면 ‘점’, 박서보 하면 ‘선’, 로버트 인디애나 하면 ‘LOVE’, 쿠사마 야오이 하면 ‘호박’, 그것도 노란 호박이 떠오른다. 이렇듯 컬렉터들은 작가의 그림을 사는 게 아니라 브랜드를 사는 것이다.얼마 전에 이제는 스타 작가가 된 여성 작가 H가 전화를 걸어 고민을 털어놨다. 사람들이 “매번 똑같은 것만 그린다”, “자꾸 자기 작품을 복제한다”라며 평가했다는 것이다. 나는 “김창열 선생님께 어떻게 50년 동안 물방울만 그릴 수 있었는지 물어보고 답해주겠다”라고 대답하라고 조언했다.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 자신만의 브랜드를 확립해야 하고 또 그것을 오랫동안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김창열 화백이 50년 동안 ‘물방울 작가’로 알려진 것처럼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지킬 수 있어야만 작가로 대성할 수 있다.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하다.앞서 언급한 전시 기획들과 스타 작가가 되는 비결을 담은 책을 출간하고 칼럼 등을 통해 연재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매릴린 먼로 컬렉션부터 아내 몰래 틈틈이 모아온 작품들까지 한데 모아 작은 미술관을 여는 것이 꿈이다.
※ 정승우 -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