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바이오에서 신흥부자 속속
권혁빈·이중근 재산 줄고, 정용지·조영식은 순위 밖지난 1년 동안 국내 주식시장에서 AI와 바이오 관련 상장사 주가가 급등하면서 국내 상장사 주식 부호 상위권에 새로운 이름이 잇달아 등장했다. 곽동신 한미반도체 부회장(8위), 이채윤 리노공업 사장(35위), 정지완 솔브레인 회장(48위)이 주인공이다. 한미반도체는 AI 컴퓨팅에 사용되는 고대역폭 메모리칩을 조립하는 데 필요한 반도체 패키징 장비를 만든다. ‘비전플레이스먼트’ 장비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보이며 국내 대표 반도체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리노공업은 반도체 테스트에 쓰이는 프로브핀(탐침)과 소켓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테스프 핀인 ‘리노핀’을 국내외 1020여 개 회사에 납품하고 있다. AI가 탑재된 스마트폰과 노트북 출시가 이어지면서 올해 업황이 더 좋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필요한 화학물질을 만드는 솔브레인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기업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제품을 공급한다.바이오 분야의 신흥 부자인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생화학자다. 알테오젠 주가는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 2월 미국 머크(MSD)와 맺은 ‘ALT-B4’(알테오젠의 SC제형 기술)에 대한 공급계약을 비독점에서 독점으로 전환했다는 소식이 발표되면서다. 9만원대를 횡보하던 알테오젠의 주가는 한 달 만에 21만원대까지 폭등했고, 시가총액은 10조원을 돌파했다. 이 독점계약으로 연간 1조원 이상의 현금 흐름을 얻을 것이라는 게 증권사 분석이다.여전히 부자지만 자산이 줄어든 경우도 있다. 스마일게이트 창업자인 권혁빈 최고비전제시책임자(CVO)는 자산가치가 지난해 51억 달러에서 올해 35억 달러로 약 30% 떨어졌다. 우리 돈으로 약 2조2000억원이다. 2022년 7월 카카오로부터 9억2500만 달러 투자를 받아 일약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던 온라인게임 개발업체 라이언하트스튜디오의 창업자 김재영 대표도 재산이 1년 만에 15억5000만 달러에서 10억7000만 달러로 급격히 줄었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도 재산이 11억5000만 달러에서 10억1000만 달러로 10% 넘게 감소했다. 최근 실적이 주춤하면서 20만원도 넘었던 주가가 지난해 10월 3만6750원까지 떨어진 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전통적인 업종에서도 부침이 강했다. 영업손실을 내고 있는 기존 임대주택 사업 외에 별다른 사업다각화 계획이 없는 부영은 이중근 회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적자기업이 됐고, 시공능력평가액과 재계순위도 뚝뚝 떨어졌다. 핵심 계열사인 부영주택이 물적분할 이후 14년 만에 최악의 경영실적을 내면서 이 회장의 자산가치는 지난해 11억2000만 달러에서 올해 9억1000만 달러로 줄었다. 내수경기 부진에 따른 실적 악화 탓에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한 F&F의 김창수 회장도 순자산이 16억 달러에서 9억 달러로 40% 이상 줄었다.올해 순위에 재진입한 인물은 온라인게임 회사 크래프톤의 창업자 장병규를 포함해 4명이다. 크래프톤의 주가는 팬데믹으로 인한 고점에서 하락한 후 히트 비디오게임 ‘펍지: 배틀그라운드’의 인도 버전의 인기에 힘입어 작년에 30% 이상 반등했다. 덕분에 장 이사회 의장의 순자산도 지난해 8억2500만 달러로 늘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도 순위권 재진입에 성공했다. 이에 반해 체중감량 물결을 탔지만 제품 지연으로 주가가 급락하면서 활력을 잃은 케어젠의 정용지 대표와 조영식 에스디바이오센서 의장, 이상렬 천보 회장, 송치형 두나무 회장 등 8명은 리스트 밖으로 밀렸다.‘돈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은 억만장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수조원을 가졌지만 수백억, 수십억을 두고도 부모 자식 사이, 형제간에 분쟁이 늘고 있다. 창업자 구인회 회장의 유언에 따라 ‘형제의 난’이나 ‘가족 분쟁’ 없이 경영권 승계가 이뤄져왔던 LG그룹은 지난해 초부터 구광모 회장과 어머니·여동생들 사이에서 상속회복청구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핵심은 유언장 인지 시점과 재산 분할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로, 결국 ‘법정상속 비율로 재산을 다시 나눠야 한다’는 주장과 반박이다.
상속·이혼 과정에서 ‘돈’ 놓고 갈등도한미약품에서도 상속세 문제가 경영권 분쟁으로 번진, 이른바 ‘모녀의 난’이 진행됐다. 지난 1월 모녀 측인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은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화학기업인 OCI그룹과 현물출자 및 신주발행 취득을 통한 통합 계약을 맺었는데, 임종윤·종훈 형제 측이 이에 반발하면서 법적 공방과 이사회 표 대결 등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됐다. 2014년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맏형인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을 횡령, 배임 혐의로 고발하면서 시작된 효성그룹 ‘형제의 난’은 아직까지도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태광그룹 창업주 고 이임용 선대 회장에 대한 유족들의 상속 분쟁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차명재산’을 둘러싼 이른바 ‘남매 분쟁’이다.최근엔 재벌가의 이혼 과정에서 재산분할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4년 6개월 동안 끌어왔던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은 곧 결말이 날 것으로 보인다. 수조원에 달하는 재산분할 결과가 주목되는데, 2심 항소심에서 노 관장은 재산분할로 현금 2조원을 요구했다. 앞선 1심 선고에서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로 665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진 바 있는데, 자산 형성 과정에 기여한 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권혁빈 CVO도 배우자 이모씨와 이혼소송 중이다. 권 CVO 부부의 이혼소송은 재판부 판단에 따라 역대급 재산 분할액이 결정될 수 있어 법조계 안팎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씨는 2022년 소송을 제기하면서 권 CVO가 100% 지분을 보유한 비상장 지주회사 스마일게이트홀딩스 주식 절반을 달라고 요구했다. 권 CVO 부부는 2002년 회사를 함께 창업했고 이씨가 지분을 보유한 채 일정 기간 경영에 참여해 주식이 분할 대상에 포함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