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가 독식하던 반도체 전공정 검사장비 시장에 뛰어든 한국 기업 넥스틴의 성장세가 심상찮다. 넥스틴의 제품은 기술경쟁력과 가격경쟁력을 두루 갖춘 덕에 미중 무역 갈등 상황에서 미국 장비를 대체할 장비로 각광받고 있다.

▎넥스틴은 미중 무역 갈등 시기에 장비를 중국에 대거 수출하며 미국이 독점하던 반도체 검사장비 시장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 장비 개발에 뛰어들어 기술 격차를 줄이고 가격경쟁력을 확보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도체 제조업에서 제조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건 ‘수율(정상품의 비율)’이다. 기업 간 기술격차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투입한 비용 대비 산출량이 많아야 수주가 유리하고, 결국 시장점유율을 높여 패권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도체 강자로 꼽히는 TSMC나 삼성전자도 수율 개선에는 난항을 겪을 만큼 불량률을 줄이는 건 쉽지 않다. 미세회로로 구성된 반도체는 공정 중 어느 한 부분에 사소한 결함이나 아주 미세한 티끌이라도 생기면 제품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예방하기도 발견하기도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술의 발전으로 반도체는 더욱더 미세해지고 있다.

반도체 제조의 핵심 공정은 웨이퍼 제조, 산화, 포토(photolithography), 식각, 증착, 도핑(확산, 이온 주입), 금속 배선, 웨이퍼 자동 선별(Electrical Die Sorting), 패키징이다. 산화 공정부터 웨이퍼 자동 선별 공정까지가 전공정이고, 그 이후가 후공정이다. 전공정은 실리콘으로 웨이퍼 위에 회로를 새겨 칩을 완성하는 공정을 말하고, 후공정은 전공정에서 만들어진 웨이퍼를 다이아몬드 칼로 칩을 분리해 패키징하고 테스트하는 것을 뜻한다.

중요한 건 웨이퍼는 패턴 결함이나 불순물을 사전에 예방할 수 없어 실시간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모든 제조공정에서 불량 여부를 철저히 검사하고 발견하는 일이 수율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평균적으로 웨이퍼 1개에서 반도체 칩 500개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불량 웨이퍼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반도체 수천 개를 한꺼번에 폐기해야 한다. 결국 제조공정의 결함을 검사하는 장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박태훈 대표가 2010년 설립한 넥스틴은 반도체 제조 전공정의 결함을 검사하는 장비를 생산한다. 넥스틴은 광학기술 기반의 반도체 전공정 웨이퍼 미소 패턴 결함 검사장비로 시작해 초고성능 카메라에 인공지능을 결합한 AEGIS(이지스) 장비를 시리즈(2020년 AEGIS2, 2022년 AEGIS3)로 개발해 사세를 확장 중이다.

이지스는 반도체 제조의 전공정에서 웨이퍼 위에 인쇄된 회로도의 사진을 찍어 정상품과 비교해 잘못 인쇄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한다. 무엇보다 이지스는 브라이트 필드와 다크 필드를 모두 지원한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웨이퍼 검사장비는 빛을 조사하는 방식에 따라 브라이트 필드와 다크 필드로 나뉜다. 브라이트 필드는 극자외선(EUV) 광원과 반사광을 이용하고, 다크 필드는 자외선 광원과 산란광을 사용해 결함을 검사한다. 검출 가능한 결함의 크기는 브라이트 필드가 15㎚ 수준, 다크 필드가 30㎚ 수준이다. 박 대표는 “2년마다 신제품을 출시하며 성능을 개선하고 있다”면서 “이지스3는 전작인 이지스2 대비 검사 속도가 30% 정도 빨라졌다”면서 “더불어 200㎜와 300㎜ 웨이퍼를 모두 지원함으로써 다양한 고객사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으로 기회 잡아

넥스틴의 고객사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국내 파운드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전체 매출의 80%가량이 해외에서 발생할 만큼 해외 고객사를 다수 확보하고 있다. 특히 수년간 중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한 덕분에 SMIC, YTMC, CXMT, PXW 등에 제품을 납품한다. 최근 개발한 이지스3 또한 지난해 중국 고객사에 처음으로 공급한 바 있다.

넥스틴의 해외시장 개척은 국가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반도체 전공정에 활용되는 검사장비 시장은 오랫동안 미국 기업 KLA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KLA는 이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할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다. 나머지는 일본 히타치가 차지하고 있었다. 박 대표는 “반도체 제조 전공정 검사장비를 생산하는 회사는 넥스틴을 포함해 전 세계에 단 3개뿐”이라면서 “영업이익률이 50%가 훌쩍 넘는 매력적인 업종이지만 기술장벽이 높아 플레이어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세 회사 중 세 번째 주자인 넥스틴에 기회가 열린 건 4년 전이다. 2020년부터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심화되며 미국은 반도체 장비 수출에 규제를 강화하고, 중국 또한 미국 반도체 장비의 의존도를 낮추려는 상황이 넥스틴에는 호재가 됐다. 넥스틴은 KLA 장비와 비슷한 기술력의 제품을 3분의 1 수준의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전략으로 중국을 공략했고, 결국 넥스틴의 시장점유율이 조금씩 높아지며 미국이 독점하던 시장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중국 외에도 미국, 일본, 유럽 고객사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면서 “아직은 글로벌 시장에서 넥스틴의 점유율이 5% 수준이지만 꾸준히 영향력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회는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는 법. 넥스틴은 꾸준히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KLA와의 기술격차를 줄이기 위해 R&D에 매진해온 덕에 기회의 순간, 중국 시장을 잡을 수 있었다. 그 시작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 화학과 출신으로 1991년 삼성에서 반도체 사업을 처음 경험한 박 대표는 미국으로 건너가 KLA에서 근무하며 5년간 선진 기술을 익혔다. 이후 2002년 이스라엘의 반도체 검사장비 신생 업체인 네게브텍의 주요 멤버로 합류했지만 회사의 1대주주였던 리먼브라더스가 리먼사태로 파산하며 회사가 없어지고 말았다. 이후 한국으로 건너온 그는 넥스틴을 세우고 네게브텍에서 함께했던 이스라엘 멤버 4명과 함께 기술개발을 이어갔다. 미국이 독점하는 반도체 장비의 국산화를 이루겠다는 목표였다. 그의 뜻에 동참한 산업은행, 한국투자파트너스 등 5개 벤처캐피털에서 투자금 50억원을 받아 연구에 힘썼고, 2014년 장비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넥스틴의 기술력은 여러 방면에서 입증되고 있다. 넥스틴은 2014년 삼성 혁신기술협의회 회원사로 선정됐고, 2014년과 2017년에 장영실상을 수상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2020년 기술특례 방식으로 코스닥에 상장했는데, 이후 기술특례 상장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코스닥 시총 100위권 안에 진입하는 기록을 세웠다. 2024년 3월 16일 기준 넥스틴의 시총은 7277억원대다. 특히 2022년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 업계를 놀라게 했다. 넥스틴은 2022년 매출 1149억원, 영업이익 571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101.3%, 156.1%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영업이익률도 49.2%에 달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지난해 한국거래소는 넥스틴을 2023년 유일의 글로벌 신규 기업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EUV 분야에서 세계 최초 장비 개발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는 넥스틴은 다음 행보를 위한 준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규 장비를 개발해 시장과 고객을 다변화하겠다는 목표다. 박 대표는 “시장과 고객사가 한정돼 있다는 우리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넥스틴은 EUV용 장비인 ‘레스큐’와 HBM용 장비인 ‘크로키’ 등의 개발을 마치고 고객사에서 데모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레스큐는 웨이퍼상의 미세 정전기를 제거하는 장비입니다. EUV에 주로 적용되는 7㎚ 이하의 미세한 공정에서는 반도체 회로 위에 정전기가 남아 있을 경우 순간적인 전압으로 반도체가 망가질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문제가 되지 않던 수준의 정전기도 위험성이 높아집니다. 레스큐는 웨이퍼 표면의 정전기 제거에 그치는 다른 제품들과 달리 안쪽의 정전기까지 제거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장비로 경쟁자가 없는 만큼 시장 선점에 유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 다른 신제품 크로키는 HBM(High Bandwidth Memory, 고대역폭 메모리)의 불량 여부를 검사하는 장비다. HBM은 D램을 여러 층으로 쌓고 각 층을 TSV 관통전극으로 연결한 구조의 메모리다. 칩 간 거리가 획기적으로 줄어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전송할 수 있게 돼 차세대 메모리로 불린다. 최근 AI 열풍으로 HBM 시장을 잡기 위한 글로벌기업들의 총력전이 뜨거운데, 그 이유는 AI의 필수 요소로 여겨지는 그래픽처리장치(GPU)에 고성능 메모리 HBM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HBM은 제조 과정에서 웨이퍼가 틀어지는데 칩이 수평으로 놓여 있다는 가정하에 검사하는 기존 장비로는 결함을 평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넥스틴의 크로키는 2D로 검사하기 때문에 웨이퍼가 틀어져 있어도 정확하게 검사할 수 있다.

하지만 반도체업계 자체의 상황은 그리 좋지만은 않다. 지난해 사상 최악의 혹한기를 보냈고, 올해 들어서야 AI 시장의 확대 등으로 조금씩 회복 조짐이 보이고 있다. 넥스틴도 지난해에는 2022년에 비해 실적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박 대표는 “선방했다고는 하지만 매출이 2022년에 비해 30%가량 줄었다”며 “특히 국내 반도체 회사들의 실적이 특히 좋지 않았는데 넥스틴은 수출을 많이 하는 회사라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박 대표는 반도체업계의 미래는 화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쌀은 점점 안 먹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반도체를 ‘산업의 석유’라고 생각합니다. 석유는 점점 쓰임새가 많아지거든요. 어린 시절엔 30년만 지나면 석유가 동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시절에 비해 훨씬 많은 석유를 소비하는데도 아직 석유는 마르지 않았죠. 반도체 또한 석유처럼 점점 쓰임새가 많아질 것이고 산업 전반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것입니다. 지금 세계 패권 경쟁이 반도체 경쟁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죠. 반도체 시장 자체는 업앤다운이 있을지라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난해에는 반도체 시장이 많이 어려워 시장 규모가 전 세계적으로 4% 정도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반도체 노광장비 1위 기업 ASML의 매출은 30%가 늘었고, KLA도 매출이 12% 늘었죠. 어려운 시기에 진짜 실력이 나온 겁니다. 우리도 글로벌 톱 기업들처럼 실력을 키우고 입지를 단단히 하여 반도체 시장 안에서 흔들림 없이 중요한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