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People

Home>포브스>CEO&People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 

100달러 게놈 시대, 이날만 기다렸다 

신윤애 기자
자신의 유전체 정보가 기록된 ‘몸 설계도’가 있다면 어떤 점이 좋을까. 어느 부위가 약한지, 어떤 질환에 취약한지 미리 알고 조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병에 걸렸을 땐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치료제와 치료법을 찾을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불로장생까진 아니어도 무병장수에 한 발짝 다가서는 셈이다. 유전체분석 시장이 일반인에게도 활짝 열렸다. 그 중심엔 세계적인 기술력을 지닌 한국의 바이오기업 마크로젠이 있다.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은 연구자이자 기업가로서 한국의 유전체분석 검사 시장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2011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는 2010년 MIT와 하버드의 공동연구기관인 브로드연구소를 찾아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췌장암 세포의 유전자를 분석해 맞춤형 치료법 혹은 치료제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가 유전체검사를 받으려고 지불한 돈은 무려 10만 달러(약 1억2000만원)라고 알려져 있다.

2024년 현재는 어떨까. 놀랍게도 우리는 스티브 잡스가 받은 유전체분석 검사를 100달러(약 12만원)에 받아볼 수 있다. 검사 항목을 간소화하면 10만원 내에서도 가능하다. ‘억’ 소리 날 만큼 비쌌던 검사 비용이 14년 만에 100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진입장벽이 낮아지자 유전체분석 시장은 본격적인 대중화 시대를 맞았다. 누구나 유전체분석을 의뢰해 자신의 ‘몸 설계도’를 지닐 수 있는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이는 전 세계 연구자들이 끊임없이 연구해 분석 장비와 기술을 발전시켜온 덕분일 것이다.

유전체분석 시장의 성장을 이끈 주역으로 한국의 유전체분석 기업 마크로젠이 꼽힌다. 마크로젠은 서울대 의대 교수였던 서정선 회장이 1997년 실험실 한쪽에서 시작한 회사다. 게놈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시절이었다. 창업 이후 27년이 지난 마크로젠은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내는 건 물론 기술력과 아이디어로 전 세계 생명공학 연구자를 고객으로 확보한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다. 2004년 미국 법인을 설립하며 시작한 해외 진출은 일본 법인, 네덜란드 지사(현재는 유럽법인), 싱가포르 법인, 스페인 지사까지 확대됐다. 현재 마크로젠은 기술력과 네트워크를 갖춘 ‘세계 상위 10대 유전체분석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국내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2000년 2월)한 1호 바이오 벤처 기업으로 오랫동안 후배 바이오사들에 귀감이 되고 있다.

기술 연구만큼 마크로젠이 공을 들인 일은 ‘DTC(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체검사 시대’를 앞당기는 것이었다. 맞춤형 의료, 정밀의료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유전체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서 회장은 결국 DTC가 활성화돼야 가능한 일이라고 내다봤다. 이를 위해 글로벌 유전체분석 장비 회사인 일루미나의 아시아 파트너사로서 오랜 기간 기술 협업을 하며 검사 비용을 낮추는 데 일조했다. 또 규제를 완화해 개인이 의뢰할 수 있는 유전체검사의 범위를 넓혀달라며 정부를 끈질기게 설득해왔다.

그 결과 유전체검사 비용은 2~4년 주기로 1000달러에서 200달러로 또 100달러로 점차 낮아졌다. 2019년엔 제1호 규제 샌드박스 안건으로 ‘유전체분석을 통한 맞춤형 건강증진 서비스’가 통과되기도 했다. 서 회장은 “이런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회를 포착한 마크로젠은 B2B 중심으로 제공하던 유전체분석 서비스 대상을 개인으로 확대하며 B2C 기업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연구소와 기업은 물론 개인에게도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자 마크로젠의 매출도 크게 늘었다. 마크로젠은 2021년 매출액 1292억원, 2022년 매출액 1386억원을 올리며 2년 연속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비록 2023년엔 주춤해 매출액 1301억원에 그쳤지만, 업계에선 지난해 출시한 B2C 플랫폼 ‘젠톡’으로 2024년엔 매출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1990년 진행된 ‘게놈 프로젝트’를 기억하시나요. 13년간 30억 달러(3조원)를 들여 개인 유전체분석을 완성한 프로젝트입니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중국 등 8개국 연구원들이 참여했고 민간 법인 셀레라 지노믹스(Celera Genomics)가 후원했죠. 여기에 우리나라는 참여하지 못했어요.”

마크로젠이 시작된 배경을 묻자 서 회장은 게놈 프로젝트 이야기부터 꺼냈다. 당시 서 회장은 네이처지 게재를 목표로 단클론성 항체 치료제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아 답답해하던 서 회장은 한국제학회에서 유전자 이식 기술을 접했다. ‘이 기술이야말로 생명공학을 다음 단계로 인도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를 설득해 연구비를 지원받아 유전자 이식 연구에 뛰어들었다. 이때 서 회장에게 셀레라 지노믹스 관계자가 찾아왔다. ‘게놈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하며 한국도 연구에 참여해달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정부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끝내 프로젝트 참여를 승인하지 않았다.

“과학계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독립적으로라도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부를 설득해 지원금을 받아 유전자이식연구소를 만들고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인간과 게놈이 가장 비슷하면서도 다루기 쉬운 동물 ‘마우스(쥐)’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죠. 1992년 한국 최초로 ‘암 유발 유전자 이식 마우스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유전자 이식 마우스는 특정 질병에 대한 약효 평가를 용이하게 해주는 기술로, 제약업계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어요.”

연구에는 상당히 많은 돈이 투입된다. 성과가 수익이 되기까진 오랜 기간이 걸리기에 결국엔 지원금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서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에서 적은 지원금을 받아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발발했다. 정부는 그동안 연구비를 지원받은 교수들에게 수익사업에 뛰어들어 국가경제에 이바지해달라고 요청했다. 게다가 앞으로는 연구 지원금을 ‘회사’에 지급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서 회장은 “반강제적인 요청이었지만 그동안 축적한 마우스 관련 기술을 상업화할 수 있었기에 기꺼이 회사를 창업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마크로젠이 탄생했다.

마크로젠이 개발한 특수 질환이 있는 실험용 마우스는 꽤 전도유망한 사업 아이템이었다. 건강한 마우스 가격의 수십배 수준이라 부가가치가 높았다. 게다가 제약회사나 대학 연구소에서 점점 수요가 늘고 있었다. 서 회장은 “유전자이식연구소는 당뇨병, 흉선암, 스트레스와 관련된 유전자를 쥐에 이식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면서 “특정 질환에 걸린 마우스를 생산해달라는 의뢰를 받아 납품했고, 한편으론 연구를 지속해 적용할 수 있는 질환의 범위를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는 도약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마크로젠은 기술, 인지도, 규모 면에서 큰 성장을 이뤄냈다. 그 시작은 코스닥 상장이었다. 서 회장은 “처음 심사를 받으러 갔을 땐 ‘연구실과 미래 기술밖에 없는 회사’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면서 “그러던 중 미국의 셀레라가 소위 대박이 났고, 주가가 수직 상승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다음 심사에서 ‘우리와 비슷한 일을 하는 셀레라가 코스닥에 상장을 신청하면 받아들여 줄지’ 반문하자 심사위원들이 생각을 바꿨고, 마침내 심사에 통과할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미래 기술을 지닌 회사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상장 직후 500원대였던 주식이 단숨에 18만원을 넘어섰고, 마크로젠은 매일 뉴스에 주가 소식이 전해지는 유명 회사가 되었다.

본격적인 게놈 연구의 시작


상장해 500억원 정도의 자금을 축적한 마크로젠은 그 돈으로 게놈 연구를 위한 최첨단 장비들을 구매했다. 장비를 활용해 연구를 거듭한 마크로젠은 이후 세계를 놀라게 할 연구 성과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국인 게놈 지도 초안(2002년)’, ‘개인 유전체의 염기서열 분석(2009년)’, ‘한국인 표준 게놈 지도(2016년)’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한국인 표준 게놈 지도’ 논문은 네이처지에 게재됐는데, ‘세계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지도’라는 극찬을 받을 정도로 수준 높은 연구였다. 이 외에도 서 교수는 네이처지에만 논문 3편을 실었고, 자매지까지 합하면 총 18편을 게재했다. 이로써 한국인을 위한 ‘개인 맞춤 의학’은 점점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인간의 게놈 지도를 보면 그 사람이 특정 암에 걸릴 확률이 어느 정도인지, 치매에 걸릴 확률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병에 걸린 환자의 게놈 지도를 활용하면 그 환자에게 가장 잘 듣는 맞춤형 약을 찾아낼 수가 있다. 인간 게놈 지도를 의료에 적용하면 향후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해 선진국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은 1990년 시작된 국제 게놈 프로젝트에는 참가하지 못해 해독 경쟁에서는 다소 뒤떨어졌지만, 마크로젠의 끊임없는 연구 덕분에 ‘개인 게놈 시대’에서는 학계의 선구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아무리 기술력이 있어도, 회사란 자고로 돈을 잘 벌어야 한다. 학자인 동시에 기업가인 서 회장은 수익화에 대한 고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 시장은 너무 작다고 판단해 일찌감치 해외 진출을 감행했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네이처지 등 세계 유수의 잡지에 논문을 실어 기술력을 입증해온 덕분에 마크로젠을 소개하고 어필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여기에 ‘빠르고, 싸게’라는 매력적인 요소를 덧붙여 고객 유치에 나섰다. 마크로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5달러면 충분합니다’ 광고가 이때 탄생했다.

“해외 경쟁업체들의 서비스 가격은 20달러 수준, 결과를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7일 이상이었습니다. 후발 주자인 우리는 5달러, 48시간이라는 도전적인 메시지를 내걸었습니다. 분석 시간을 줄이고 원가를 낮출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했기에 가능한 도전이었죠. 고객의 검체를 FedEX, DHL, TNT 같은 국제 특송 서비스를 통해 전달받은 후 결과를 이메일로 보내주는 방식이면 실현 가능했습니다. 네이처지에 광고를 냈고 고객들에게 연락해 20개를 무료로 해줄 테니 시험 삼아 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대부분이 반신반의하는 반응이었지만 조금씩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차 문의가 많아졌고 매출이 첫 달에 10억~20억원, 그다음 달엔 40억원이 될 정도로 수직 상승했다.

B2C 시대의 개막

2020년대, 서 회장은 마크로젠 2.0 시대를 선포했다. 그간 B2B에 국한돼 있던 사업 영역을 B2C로 확장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이 시장은 크게 3개로 나뉜다”면서 “연구자에게 염색체분석 정보를 제공하는 것, 건강한 사람들의 염색체분석 정보를 제공하는 것, 질병이 있는 사람들(혹은 병원)의 염색체분석 정보를 제공하는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B2C 대응을 위해 마크로젠은 지난해 6월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젠톡’을 출시했다. 한마디로 DTC 유전체분석 검사를 서비스하는 애플리케이션이다. 피부·모발, 운동, 영양소, 식습관, 건강관리, 개인 특성 등 6개 카테고리에서 최대 129개 항목의 유전체분석 검사를 의뢰하면 결과를 직접 받아볼 수 있다.

“MBTI처럼, ‘몸BTI’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마케팅하고 있습니다. 최소 10개부터 최대 129개까지 검사를 받아볼 수 있고 비용은 9900원부터 시작합니다. 현재는 정부의 규제 때문에 항목이 129개로 제한돼 있지만 점점 더 늘어날 것입니다. 일반인 버전 이외에도 의사가 환자의 유전체분석을 의뢰할 수 있는 병원용 질병예측서비스도 론칭했는데 여기선 치매, 유방암 등 질병 관련 검사까지 가능합니다.”

3~5년 후엔 전 세계 1000만 명에게 서비스하고, ChatGPT 같은 신기술을 적용해 카운슬링을 제공하는 등 기능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서 회장은 “코로나19 이후 질병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건강관리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이가 늘어난 만큼 젠톡은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마크로젠은 장내미생물을 뜻하는 마이크로바이옴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장과 뇌는 축(Gut·brain axis)으로 연결돼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장이 망가지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자칫하면 질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서 회장은 “항생제를 사용하고 식습관이 서구화된 현대인은 장 건강이 그리 좋지 못하다”면서 “이는 결국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때 장의 건강지표가 돼주는 것이 바로 장내미생물이다. 마크로젠은 변을 통해 장내미생물을 분석하고 장의 건강상태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최근 세계 최대 수준의 기술력과 자원을 가진 미국의 마이크로바이옴 회사인 유바이옴을 인수했습니다. 이로써 마크로젠은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특허 포트폴리오 246건과 데이터 약 30만 건을 확보했죠. 개인의 건강상태를 알려주고, 이를 주기적으로 카운셀링해주는 서비스로 연결할 계획입니다. 건강기능식품 시장과의 시너지효과도 기대합니다.”

정밀의료가 필수인 초고령화 사회

전 세계 국가들은 하나둘 고령화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어느 국가보다 빠르게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서 회장은 “결국 의료비 상승으로 재정 문제에 부딪힐 것”이라면서 “미국의 경우 2018년 의료비 지출이 GDP의 18.2%인데, 2050년엔 35%, 2060년엔 50%로 껑충 뛸 것이란 연구 결과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정밀의료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100만 명 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가 바로 의료비 상승을 막으려는 작업이었다”고 덧붙였다.

“정밀의료는 개인의 유전체 정보를 바탕으로 질병을 예방, 관리하고 최적의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실현된다면 의료비를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출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초고령사회에는 정밀의료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정밀의료’, ‘정보의학’으로 가는 여정. 서 회장은 마크로젠이 가장 앞장서서 그 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80억 인구 중 5억 명에게 몸 설계도를 쥐여주고, 그들의 건강관리 파트너가 되고 싶다는 세부적인 목표도 밝혔다.

“질병과 관련한 유전적인 요소를 더욱 정확하게 읽어내고 결괏값을 빅데이터로 관리하게 된다면 ‘어떤 질병의 위험도가 높아지고 낮아졌는지’를 트래킹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은 의료 정보가 병원에만 머물러 있지만 언젠가 개인이 자신의 의료 정보와 유전체 정보를 관리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또 모바일을 통해 의사와 함께 질병을 관리하고 치료하는 형태로 나아갈 것입니다. 마크로젠은 돈을 벌기에 급급한, 큰 기업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기업이 아니라 우리의 선진기술을 활용해 인류를 이롭게 하는 책임을 실현하기 위해 늘 그 곁에 존재할 것입니다.”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_ 사진 최기웅 기자

202404호 (2024.03.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