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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혜 헬로입주 대표 

대기업 오너가의 ‘스타트업 분투기’ 

조득진 선임기자
각오는 했지만 시장에 없던 비즈니스모델을 만드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반복되는 테스트·평가 과정에서 인턴이 할 만한 업무도 대표 몫이었다. 신축 아파트 입주자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 ‘헬로입주’ 서비스를 선보인 아이에스동서 오너 일가 권지혜 대표의 스타트업 분투기다.

▎권지혜 헬로입주 대표는 “데이터도, 벤치마킹할 대상도 없는 시장에서는 결국 직관이나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 열심히 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9년 권지혜 아이에스지주 전무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남편과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여정으로, 1년간 안식년을 택한 것이다. 여느 오너 일가처럼 미국 현지에 지사를 내고 직책을 유지할 수도 있었지만 ‘옳지 않은 일’ 같아 아예 퇴사를 선택했다. 그러자 건설업계에서는 ‘권 전무가 경영 일선에서 떠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1년 뒤 귀국한 그가 선택한 것은 창업이었다. 2021년 11월 ‘내일을사는사람들’ 법인을 설립하고, 이듬해 8월 중개플랫폼 ‘헬로입주’를 론칭했다.

헬로입주는 신축 아파트 입주를 준비 중인 고객과 시공 파트너를 연결해주는 입주 온라인 매칭 플랫폼이다. 아이에스동서에서 건설, 건자재, 리모델링 등 다양한 경험을 쌓은 권 대표에게 낯선 비즈니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뛰어든 ‘필드’는 예상보다 척박하고 힘겨웠다. 벤치마킹할 만한 모델은커녕 관련 시장의 데이터가 집계되지 않은 상황이라 사업의 방향과 속도, 반복되는 가설과 테스트 등 모든 것이 오롯이 신생 스타트업의 몫이었다. 10년 남짓 CEO로 일하면서 자신감이 있었지만 ‘제로 투 원(Zero to One)’의 길은 만만치 않았다.

창업 초기 사전점검, 입주청소, 탄성코트 등 8가지를 선보였던 헬로입주의 서비스 아이템은 현재 냉장고장리폼, 시스템에어컨, 중문, 붙박이장, 싱크볼까지 20개로 늘었다. 지난해 매출은 10억원 남짓. 거래액과 매출액이 100% 일치하는 구조라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지난해 1월 대비 12월 매출이 10배로 늘면서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기대했던 수준으로, 올해는 매출 80억원 정도는 무난하게 도달 가능’하다는 게 자체 분석이다. 사명 ‘내일을사는사람들’은 헬로입주가 제공하는 양질의 서비스를 사면(Buy), 오늘이 아닌 내일의 라이프스타일을 살게 된다(Live) 의미다.

지난 2월 중순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만난 권 대표는 “지인은 물론이고 가업승계 중인 2·3세 경영자 대부분이 지금도 ‘왜 창업을 선택했나’라고 묻는다. 나는 그동안 도전하지 못했던 진짜 높은 봉우리 정상에 올라보고 싶다”며 “2월 안으로 서울·경기·인천 모든 아파트 단지로 서비스를 확대하며, 신축 아파트 단지뿐 아니라 기존 아파트 리모델링 시장에도 뛰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통계 없어 발품 팔아 시장조사


▎입주 온라인 매칭 플랫폼 ‘헬로입주’ 메인 페이지 / 사진:헬로입주
처음부터 입주 시장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건설, 건자재 제조와 유통, 수출, 리모델링 서비스를 두루 경험했던 터라 창업 동료들과 1년에 걸쳐 관련 시장조사를 진행했다. 초기에 검토했던 4개 아이템을 버리고 다섯 번째로 택한 것이 입주 서비스다. 권 대표는 “처음엔 시공업체를 고객으로 지역거점 건자재 마트 네트워크를 고민했는데 매장 등 투자 리스크가 컸다. 초기 자본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아무래도 온라인 서비스가 적합했다”며 “새 아파트 입주 후 리모델링 니즈가 늘고 있어 우리가 경험했던 전국 시공망 네트워크, AS 등이 주효하게 먹힐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공장이나 창고가 필요 없고, 사무실에 타일 한 장 없어도 가능한 매칭 서비스를 선택한 것이다.

“향후 경쟁자가 될 만한 오프라인 비즈니스도 분석하고, 전국을 다니며 시공팀도 다양하게 만나 시장을 들여다봤다. 정량화·표준화·디지털화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또 시공팀 사이에서 무자료 거래, 높은 수수료율이 고착화돼 있고 고객 입장에서는 퀄리티와 AS를 보장받지 못하는 등 전형적인 레몬마켓이었다.”

권 대표의 분석처럼 입주 아파트 리모델링 시장은 시공 기간과 난이도는 물론이고 요금 체계가 모두 다르고 시공 후 AS에 대한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 게다가 전형적인 로테크(low-tech) 산업이다. 권 대표는 “전혀 정리되지 않은 거대한 복잡계라고 파악했고, 그래서 이를 간편하고 명확하게 정리해주는 플랫폼의 가능성을 봤다”며 “입주 관련 서비스를 온라인화하고, 표준화하고, 정량화하는 것이 우리의 1차 미션”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 데이터나 통계가 거의 존재하지 않고 변변한 벤치마킹 대상도 없던 상황이라 입주 단지 주민을 대상으로 시공 아이템 선택 비율 등을 설문조사하거나 그룹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수없이 발품을 팔아야 했다. 기존 기업이라면 인턴이나 신입사원에게 시킬 법한 ‘월별 입주 단지’ 데이터 등 각종 자료도 권 대표가 직접 찾아 정리했다. 그는 “온라인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개발자도, 기획자도 없이 시작하는 등 좌충우돌도 많았다”며 “탄탄한 기획서 없이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낼 수 없다는 생각에 직접 기획서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AS는 플랫폼 책임’ 차별화로 시장 신뢰 얻어


▎헬로입주 사전점검 서비스 모습. / 사진:헬로입주
창업 후 층간소음 매트, 단열필름, 중문, 시스템에어컨, 인테리어 필름, 커튼·블라인드, 인덕션, 싱크볼 등을 추가하면서 2월 중순 기준 서비스 아이템은 20가지에 달한다. 서비스 아이템이 13개를 넘어서면서 고객의 이탈이 줄기 시작했다는 게 자체 분석이다. 권 대표는 “서비스를 오래 준비해서 여는 것보다 검증된 시공팀이 있으면 우선 서비스를 열어 소비자의 니즈를 확보하는 전략”이라며 “모든 고객의 관심사가 다르지만 ‘내게 필요한 서비스가 여기 다 있네’라고 느끼게 한 덕분에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헬로입주 플랫폼 사용자들의 서비스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고 강조했다. 우선 깐깐한 시공팀 선발 기준 덕분이다. 헬로입주는 소비자 입장에서 상담, 현장 미팅과 시공 검증, 테스트 시공 등 7단계를 거쳐 정식 파트너를 선정한다. 그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아무리 좋아도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바로 입점을 보류하는 시스템으로, 플랫폼 사업자가 치밀하게 관리하고 새 파트너를 개척해야 해서 품이 많이 든다”며 “흥미로운 점은 많은 시공팀이 우리 같은 플랫폼의 등장을 기대하고 있었으며, ‘1등 벤더가 되겠다’고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200여 개 시공팀이 헬로입주와 협업 중이다.

동일 아이템 내에서 평균가보다 다소 낮은 가격으로 설정한 ‘표준단가’도 서비스 만족에 한몫한다. 시공팀마다 차이를 보였던 추가 옵션 비용에도 기준을 제시했다. 권 대표는 “처음에 설득이 어려웠지만 가격보다는 다른 요소 때문에 저희와 호흡을 맞추게 됐다. 헬로입주 고객들은 이미 플랫폼 서비스를 통해서 궁금증을 해소한 상태여서 시공팀이 따로 영업을 할 필요가 없고, 최소한의 상담만으로 일이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타 매칭 플랫폼과 헬로입주의 큰 차별점은 바로 ‘AS는 플랫폼이 책임진다’는 전략이다. 보통 시공 연결은 해주고 이후 AS는 책임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헬로입주는 이와 다르다. 권 대표는 “입주 관련 시장은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지만 퀄리티와 AS 문제가 여전한 상황”이라며 “결국 자재를 수급할 있는 힘, AS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AS를 플랫폼에서 해결하고 나서자 선결제에 대한 고객의 거부감도 상당히 줄었다고 한다.

점점 브랜드가 알려지면서 문의도 많다. 권 대표는 “아직 입주 시기가 많이 남은 신규 단지에서도 ‘우리 단지도 플랫폼에 연결해달라’는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단지를 열어드리면 단톡방에 공유하면서 입주예정자들이 대거 유입된다”며 “파트너로 보면 대기업이 많은 이사, 렌털 등 아이템에서 컬래버 이벤트 제안이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특히 사전점검 서비스를 신청한 고객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무료 실측·상담 서비스’, 이웃을 추천할 때 양측에 포인트를 주는 ‘이웃 추천 캠페인’도 반응이 뜨겁다.

성과는 수치로 나타났다. 지난해 MAU(월간 활성화 이용자 수) 1만 명을 달성한 이후 연말을 지나면서 하루 평균 플랫폼 사용자가 700~800명에 이르고 있다. 신축아파트 단지 역시 월평균 100개 정도가 꾸준히 유입 중이다. 그는 “아이템이 확장되고, 신규 입주 단지 수요가 늘고, 시스템에어컨 등 중량감 있는 서비스 니즈가 증가하는 등 희망적 지표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빠르면 연내 첫 투자 라운드 계획


▎권지혜 헬로입주 대표는 “10년 남짓 CEO로 일하면서 자신감이 있었지만 ‘제로 투 원(Zero to One)’의 길은 만만치 않았다”고 말했다.
헬로입주는 우상향 곡선을 지속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 그중 한 축이 구축 아파트 리뉴얼 사업이다.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새로 분양, 입주하는 세대가 줄 것이라는 전망도 사업 이유다. 권 대표는 “신축 입주 시장보다 구축 이사 시장이 훨씬 사이즈가 크다”며 “준공 10~15년 정도 된 아파트 단지에서 리모델링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어 이 시장에 진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한 축은 사업다각화다. 렌털, 이사 등의 아이템을 상반기에 론칭할 예정이고 이후 금융 서비스 등도 준비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부분 또는 전체 리모델링은 물론이고 청소·유지보수에 대한 장기계약(구독)까지 이어지는 라이프스타일 케어 서비스로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다. 권 대표는 “중소형 건설사들과 협업해 모델하우스 세팅 단계에서부터 인테리어 소품이나 가구 구성에 대한 사업을 하는 것도 고민 중”이라며 “또 소모품은 단품 구매뿐 아니라 청소와 유지보수(maintenance) 아이템을 묶어 구독 서비스로 준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유지보수’ 시장 또한 공식 자료에서는 ‘규모가 큰 것으로 파악되나 별도의 시장 통계는 없는 것’으로 언급할 정도다. 권 대표는 “결국 직관이나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 열심히 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헬로입주는 현재 앱(App) 서비스로 확장 중이다. 권 대표는 “우리 서비스를 앱이 아닌 웹으로만 제공한 점은 서비스를 빨리 준비하고자 했던 부분이 크다. 서비스 자체가 입주 기간에만 한동안 쓰고 이후 리텐션(고객이 자사 브랜드의 제품 혹은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많지 않다는 특성도 고려했던 것”이라며 “앱 서비스를 4월이면 안드로이드에서, 5월이면 iOS 체계에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권 대표는 아이에스동서의 지주사인 아이에스 지주 전무 직책도 맡고 있다. 홍보, 사회공헌, ESG 경영 등 기업 전반적인 이미지를 관리한다. 그러나 ‘내일을사는사람들’은 아이에스동서나 아이에스지주와 지분 관계는 없는 상황. 권 대표는 “창업 초기 ‘망할 것 같다’던 회장님(권혁운 아이에스동서 창업자)도 최근엔 격려를 해주신다”며 “우리 기업의 가치를 더 높이고, 투자금으로 확고한 변화를 이룰 수 있는 시점에 외부 투자를 받으려 한다. 빠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초에 첫 투자 라운드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비즈니스모델이 갖고 있는 힘은 지난해 동안 확인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벤치마킹할 정확한 모델이 없다 보니 우리는 앞으로도 시장에서 테스트하고 수정해가는 과정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이 방향키를 잡고 가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기존에 올랐던 산이 아닌 에베레스트 같은 진짜 높은 봉우리 정상에 오르고 싶다.”

- 조득진 선임기자 chodj21@joongang.co.kr _ 사진 임익순 객원기자

202403호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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