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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석학 집 앞에서 일주일간 ‘버티기’검정 피케 셔츠에 남색 재킷을 입은 서 회장은 “복장이 잘 어울리냐”며 말문을 열었다. “차 안에 셔츠와 정장 몇벌이 준비돼 있는데 여러분에게 꼰대처럼 보일까 봐 이렇게 입었다”며 솔직함을 드러냈다. 전날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장에서 돌아왔다는 그는 지나가던 노숙자가 먼저 자신을 알아보고 “JJ, 오랜만이야”라며 인사를 건넸다고 했다. JJ는 서 회장의 별칭이다. 서 회장에게 친근감을 표현하는 노숙자는 또 있었다고 한다. 노숙자들이 뉴스에서 서 회장을 보기라도 한 걸까.“제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경영 인사이트를 얻는 동안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습니다. 석 달가량은 일반 식당에 갈 수 없을 정도였죠. 노숙자가 주 고객인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다 보니 어느새 그들과 친해졌어요. 20여년이 지났어도 그곳에 남아 있는 노숙자가 저를 알아본거죠.”대학에서 산업공학을 공부한 서 회장이 제약·바이오 분야에 도전한 계기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모텔이 기찻길 옆에 있어 숙면이 어려웠는데, 어느 날 창밖을 내다보니 반짝이는 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바이오 클러스터인 샌프란시스코의 대표적 제약사 제넨텍(Genentech) 본사였다. 이튿날 아침 서 회장은 견학 차원에서 그곳을 찾아갔지만 1층에서 경비원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다. 생명공학 산업에 대한 호기심은 바로 이때 시작됐다.서 회장은 모텔로 돌아와 이 분야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져들었다. 기초 지식을 온라인 강의로 빠르게 습득한 그는 “제약·바이오 분야에 목숨을 바치고 열정을 다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에 열정을 다 태우라”며 “그러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내가 입증하지 않았느냐”고 덧붙였다.“한 분야를 미친 듯이 좋아하게 되면 못할 게 없어요. 독학하면 됩니다. 온라인 강의 이후에는 생명공학전공 서적을 읽기 시작했어요. 약의 메커니즘과 효능, 부작용 등을 샅샅이 공부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현재까지 인류가 개발한 약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약명만 다양할 뿐이지, 기본이 되는 물질은 400여 개에 불과했어요. 게다가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제약·바이오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이 분명했죠. 특히 201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 특허가 만료되는 약이 꽤 많았어요.”서 회장은 특허 만료 시점이 다가오기 전, 제약·바이오 산업을 새롭게 일으킬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모텔 벽 곳곳에 전 세계 제약사 현황 자료와 함께 산업 전망 리포트를 세계지도처럼 빼곡하게 붙여 두었다. 사업 아이템을 구체화한 뒤 무작정 스탠퍼드대로 향했다. 아무도 만나주지 않자 그는 당시 에이즈연구소장이었던 토마스 메리건 교수 집 앞에서 일주일간 버티기 작전에 들어갔다.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됐다.메리건 교수도 서 회장이 제안한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사업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러면서 197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루크 새뮤얼 블럼버그 박사를 비롯한 노벨상 수상자 네 명을 서 회장에게 소개했다. 서 회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이제는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도 인더스트리와 R&D(연구개발)을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며 “신흥시장으로 떠오르는 한국에 주목해달라”고 열띠게 설득했다.하지만 산 넘어 산이었다. 그들의 추천서가 있어도 서 회장의 사업 아이템을 받아주는 국내 기업은 전무했다. 심지어 그는 “대우그룹을 망가뜨린 사람이 이제 여기를 괴롭히려 하는가”라는 호통도 들었다. 그의 진솔한 고백에 안타까워하며 탄성을 내뱉는 청년도 여럿 있었다. 그의 근성은 위기의 순간 빛을 발했다. 그는 수많은 기업을 찾아가 설득을 거듭한 끝에 KT&G로부터 약 200억원을 투자받았다. 그중 일부로 인천 송도의 땅을 샀는데 경제특구로 지정되면서 땅을 담보로 800억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그 결과 셀트리온은 CMO(위탁생산·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 사업의 첫 삽을 떴다. 하지만 역시 성공은 쉽지 않았다. 제품을 생산했지만 유럽이란 큰 산이 버티고 있었다. 서 회장은 유럽의약품청(EMA) 허가를 받기 위해 6년간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동분서주했다. 그는 “성취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졸릴 때까지 일했고 꿈속에서도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성공 단계별 기업가정신 5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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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장식용… 현장에 답이 있다그러면서 서 회장은 7년 후 은퇴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그때쯤이면 지금처럼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아 현재 셀트리온을 ‘뿌리 깊은 나무’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물론 그가 예정대로 7년 후 경영에서 손을 뗄지는 미지수다. 그는 앞서 2021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바 있다.하지만 지난해 글로벌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서 회장은 셀트리온의 구원투수로 복귀했다. 이에 대해 한 셀트리온 관계자는 “아직도 직접 현장에 나가 일일이 경영 상황을 살펴보신다”며 “열정이 넘치시는 분”이라고 덧붙였다. 서 회장은 “올해 계획된 의학계 종사자 미팅만 1만 건이 넘는다”며 “전 세계 곳곳에 있는 병원에 찾아가 의사를 일대일로 만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게 책상은 장식용이다”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은 정답이에요. 현장에서는 영업만 하는 게 아니라 현장의 문제를 발견하고 향후 경영 계획에 필요한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습니다.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지 마세요. 기업가가 있어야 할 곳은 현장입니다. 현장이 익숙하도록 지금부터 몸에 습관을 들이세요.”강연 말미, 서 회장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기업가정신을 다시 한번 언급했다. 그는 “성공하는 날까지 주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절대 잊지 않길 바란다”며 “타인에 대한 고마움이 담긴 기업가정신이 살아 있을 때 경제가 발전하고 국가가 행복해진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미래 CEO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실패’라는 단어를 남발하지 않길 바랍니다. 실패는 기업가가 쓰는 단어가 아니에요. 아직 성공하지 않았을 뿐이지 실패한 게 아닙니다. 성공하는 날까지 계속 시도하면 됩니다.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 서정진 회장이 꼽는 기업가정신 51. 기업의 생존에 전념하는 끈기2. 재투자가 가능할 만큼의 수익 창출3. 협력사와의 상생을 위한 노력4. 사회와 국가에 대한 공헌 활동5.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