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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성공하는 기업가정신 5단계론’ 

청년 CEO 멘토링 

노유선 기자
환자를 살리는 제약·바이오 기업의 창업주에게도 ‘죽음’을 떠올릴 만큼 고통스런 나날이 있었다. 그만큼 생존이 절박하고 성공이 절실했기에 오늘날 이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닐까. 한국의 바이오 벤처 신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젊은 스타트업 CEO들과 창업을 준비 중인 청년들을 직접 만났다.

▎ 사진:한국경제인협회
회사에 사표를 던졌지만 막상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진 몰랐다. 다음 발걸음을 계획하지 않은 채 무작정 퇴사한 탓이었다. 2000년 새해 첫날, 아내가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 물었다. 그 답을 찾고자 미국 팰로앨토로 건너갔다. 사업 아이템을 찾아서 돌아오겠노라 선언했지만 사실 ‘도망’에 가까웠다. 저렴한 숙소를 찾아 샌프란시스코의 후미진 동네를 찾았다. 기찻길 바로 옆에 작은 모텔이 보였다. 그는 2년 동안 이 모텔에 머물며 사업 아이템에 몰두하고 이를 구체화했다. 이후 바이오 불모지인 한국에 돌아와 벤처 1세대로서 창업에 성공했다.

도대체 2년간 모텔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정진(66) 셀트리온 회장은 창업 스토리를 솔직담백하게 전했다. 그의 생생한 경험담에 좌중은 진한 감동과 함께 놀란 표정을 금치 못했다.

지난 1월 14일 강원도 강릉의 한 리조트에서 2030세대 젊은 창업가 200여 명을 대상으로 ‘퓨처 리더스 캠프(Future Leaders Camp)’가 열렸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탈바꿈한 이후 유망한 청년 창업가를 위해 마련한 첫 행사다. 2박 3일간 진행된 행사의 포문은 서 회장이 열었다. 그는 ‘CEO가 들려주는 기업가정신 이야기’라는 주제로 첫 번째 토크 콘서트를 맡았다.

2002년 셀트리온 설립 후 20여 년간 수많은 강단에 올라 기업가정신을 역설한 그에게 자식뻘인 청년을 향한 스피치는 소위 ‘몸풀기’가 아닐까. 하지만 다른 때와 비교해 이날따라 서 회장이 유난히 긴장했다는 것이 셀트리온 관계자의 귀띔이다. 서 회장은 강단에 오르기 전에 “가장 어려운 자리”라며 “나만큼 고생하라고 말할 수 없지 않느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강연과 질의응답이 끝난 이후에도 서 회장은 미래 CEO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멘토링을 이어갔다.

세계적 석학 집 앞에서 일주일간 ‘버티기’

검정 피케 셔츠에 남색 재킷을 입은 서 회장은 “복장이 잘 어울리냐”며 말문을 열었다. “차 안에 셔츠와 정장 몇벌이 준비돼 있는데 여러분에게 꼰대처럼 보일까 봐 이렇게 입었다”며 솔직함을 드러냈다. 전날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장에서 돌아왔다는 그는 지나가던 노숙자가 먼저 자신을 알아보고 “JJ, 오랜만이야”라며 인사를 건넸다고 했다. JJ는 서 회장의 별칭이다. 서 회장에게 친근감을 표현하는 노숙자는 또 있었다고 한다. 노숙자들이 뉴스에서 서 회장을 보기라도 한 걸까.

“제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경영 인사이트를 얻는 동안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습니다. 석 달가량은 일반 식당에 갈 수 없을 정도였죠. 노숙자가 주 고객인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다 보니 어느새 그들과 친해졌어요. 20여년이 지났어도 그곳에 남아 있는 노숙자가 저를 알아본거죠.”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공부한 서 회장이 제약·바이오 분야에 도전한 계기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모텔이 기찻길 옆에 있어 숙면이 어려웠는데, 어느 날 창밖을 내다보니 반짝이는 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바이오 클러스터인 샌프란시스코의 대표적 제약사 제넨텍(Genentech) 본사였다. 이튿날 아침 서 회장은 견학 차원에서 그곳을 찾아갔지만 1층에서 경비원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다. 생명공학 산업에 대한 호기심은 바로 이때 시작됐다.

서 회장은 모텔로 돌아와 이 분야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져들었다. 기초 지식을 온라인 강의로 빠르게 습득한 그는 “제약·바이오 분야에 목숨을 바치고 열정을 다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에 열정을 다 태우라”며 “그러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내가 입증하지 않았느냐”고 덧붙였다.

“한 분야를 미친 듯이 좋아하게 되면 못할 게 없어요. 독학하면 됩니다. 온라인 강의 이후에는 생명공학전공 서적을 읽기 시작했어요. 약의 메커니즘과 효능, 부작용 등을 샅샅이 공부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현재까지 인류가 개발한 약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약명만 다양할 뿐이지, 기본이 되는 물질은 400여 개에 불과했어요. 게다가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제약·바이오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이 분명했죠. 특히 201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 특허가 만료되는 약이 꽤 많았어요.”

서 회장은 특허 만료 시점이 다가오기 전, 제약·바이오 산업을 새롭게 일으킬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모텔 벽 곳곳에 전 세계 제약사 현황 자료와 함께 산업 전망 리포트를 세계지도처럼 빼곡하게 붙여 두었다. 사업 아이템을 구체화한 뒤 무작정 스탠퍼드대로 향했다. 아무도 만나주지 않자 그는 당시 에이즈연구소장이었던 토마스 메리건 교수 집 앞에서 일주일간 버티기 작전에 들어갔다.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됐다.

메리건 교수도 서 회장이 제안한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사업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러면서 197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루크 새뮤얼 블럼버그 박사를 비롯한 노벨상 수상자 네 명을 서 회장에게 소개했다. 서 회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이제는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도 인더스트리와 R&D(연구개발)을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며 “신흥시장으로 떠오르는 한국에 주목해달라”고 열띠게 설득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었다. 그들의 추천서가 있어도 서 회장의 사업 아이템을 받아주는 국내 기업은 전무했다. 심지어 그는 “대우그룹을 망가뜨린 사람이 이제 여기를 괴롭히려 하는가”라는 호통도 들었다. 그의 진솔한 고백에 안타까워하며 탄성을 내뱉는 청년도 여럿 있었다. 그의 근성은 위기의 순간 빛을 발했다. 그는 수많은 기업을 찾아가 설득을 거듭한 끝에 KT&G로부터 약 200억원을 투자받았다. 그중 일부로 인천 송도의 땅을 샀는데 경제특구로 지정되면서 땅을 담보로 800억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셀트리온은 CMO(위탁생산·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 사업의 첫 삽을 떴다. 하지만 역시 성공은 쉽지 않았다. 제품을 생산했지만 유럽이란 큰 산이 버티고 있었다. 서 회장은 유럽의약품청(EMA) 허가를 받기 위해 6년간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동분서주했다. 그는 “성취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졸릴 때까지 일했고 꿈속에서도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성공 단계별 기업가정신 5가지


▎ 사진:한국경제인협회
“고마움을 표현하세요.”
“고마움과 기업가정신은 다르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고맙다’ , ‘미안하다’는 말을 꼭 전하세요.”


서 회장이 강단에 올라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고마움’이었다. 그는 혼자만의 성공과 성취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기업은 직원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주주가 동업자라면 직원은 동지”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업가는 주변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야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고 힘주어 말했다.

미국행을 택하기 전, 그에게도 흑역사가 있었다.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자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했다. 명동 사채시장에서 장기 포기 각서를 써가며 돈을 끌어다 모아도 사업이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갚아야 할 돈이 워낙 많았기에 은행 문 닫는 날이 가장 행복했고 은행 문 여는 시간이 가장 괴로웠다. 서 회장은 “사업을 포기하는 꿈을 꾸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제 장기 개수보다 장기 포기 각서의 숫자가 더 많았어요. 날로 채무가 늘어나니 결국엔 손들고 싶더라고요. 자살 동호회 사이트에 들어가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웠습니다. 경기도 양수리에서 자동차를 타고 달렸는 데 난간을 들이박고서 저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았어요. 보름 뒤 재시도를 기약하고 집에 돌아왔죠.”

그런데 계획에도 없던 15일이란 기간이 서 회장을 살렸다. 갑자기 거래처에서 연락이 와 숨통이 트인 것이다. 그는 “신기하게도 15일 사이에 죽을 이유가 사라졌다”며 “주변 사람들이 도와줘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가족의 얼굴을 보니 미안함이 복받쳐 오르고 나를 응원해주는 직원들에게 고마움이 밀려왔다”고 털어놨다.

“여러분, 절대 잘난 척하지 마세요. 여러분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여러분을 도와줘야 합니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세요. 보답하지 못했다면 미안함을 표현하세요. 기업가는 고마워할 줄도, 미안해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기업가가 직원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예요. 저는 직원이 제게 웃어줄 때 이루어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낍니다. 이때 느끼는 희열은 겪어봐야 알아요.”

그러면서 서 회장은 “기업가정신은 변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성공에는 단계가 있고 단계에 따라 필요한 기업가정신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단계에 적합한 기업가정신은 기업이 망하지 않는데 전념하는 것이다. 둘째는 재투자가 가능할 만큼의 수익을 창출하는 것, 셋째는 협력사와의 상생에 힘쓰고, 넷째는 사회와 국가에 공헌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서 회장은 “그다음 단계는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라며 “내가 떠났을 때 사람들 기억 속에 어떻게 남아 있을지 생각하며 더 열심히 살아가려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업가정신 5가지는 모두 세상에 필요한 요소”라며 “어디 하나 쏠림현상 없이 골고루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책상은 장식용… 현장에 답이 있다

그러면서 서 회장은 7년 후 은퇴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그때쯤이면 지금처럼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아 현재 셀트리온을 ‘뿌리 깊은 나무’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물론 그가 예정대로 7년 후 경영에서 손을 뗄지는 미지수다. 그는 앞서 2021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글로벌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서 회장은 셀트리온의 구원투수로 복귀했다. 이에 대해 한 셀트리온 관계자는 “아직도 직접 현장에 나가 일일이 경영 상황을 살펴보신다”며 “열정이 넘치시는 분”이라고 덧붙였다. 서 회장은 “올해 계획된 의학계 종사자 미팅만 1만 건이 넘는다”며 “전 세계 곳곳에 있는 병원에 찾아가 의사를 일대일로 만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게 책상은 장식용이다”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은 정답이에요. 현장에서는 영업만 하는 게 아니라 현장의 문제를 발견하고 향후 경영 계획에 필요한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습니다.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지 마세요. 기업가가 있어야 할 곳은 현장입니다. 현장이 익숙하도록 지금부터 몸에 습관을 들이세요.”

강연 말미, 서 회장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기업가정신을 다시 한번 언급했다. 그는 “성공하는 날까지 주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절대 잊지 않길 바란다”며 “타인에 대한 고마움이 담긴 기업가정신이 살아 있을 때 경제가 발전하고 국가가 행복해진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미래 CEO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실패’라는 단어를 남발하지 않길 바랍니다. 실패는 기업가가 쓰는 단어가 아니에요. 아직 성공하지 않았을 뿐이지 실패한 게 아닙니다. 성공하는 날까지 계속 시도하면 됩니다.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 서정진 회장이 꼽는 기업가정신 5
1. 기업의 생존에 전념하는 끈기
2. 재투자가 가능할 만큼의 수익 창출
3. 협력사와의 상생을 위한 노력
4. 사회와 국가에 대한 공헌 활동
5.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202402호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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