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대니얼 데닛과 바흐 

지난 4월 19일,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 1942~2024)이 영면했다. 외계인과 대화할 경우 인간을 대표할 토론자로 추천될 만한 현인이었고 철학 강국 미국이 자랑하는 현대철학자였다.

▎2012년의 대니얼 데닛. / 사진:위키피디아
데닛은 하버드대학교와 옥스퍼드대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터프츠대학교에서 인지연구센터 소장과 철학 교수를 겸임했다.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했던 정통(?) 철학자이지만 최신 자연과학의 성과와 관련된 가장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춘 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진화생물학과 뇌과학 등에 관한 그의 탁견은 그 분야 과학자들도 인정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최고 수준의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전문적 철학자였다.

과학철학자로도 평가받은 그는 과학자들과의 교류가 매우 많았다. 그를 자신의 지적 영웅이라고 평가했던 -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로 유명한 - 리처드 도킨스와 함께 전투적 무신론자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런 데닛은 논객과 싸움닭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과도한 환원주의와 단순화를 경계하는, 좋은 의미에서 사변적이며 신중한 형이상학자다. 그런 그가 보기에 많은 과학자가 너무 단순한 가설에 끌리고, 단순한 사고를 보인다. 이런 과학자들에게 그는 철학 공부를 권유해왔다. 어떤 이미지인지를 떠나 그는 자신의 분야와 인접 학문 분야에서 학자들에 의한 인용 횟수가 매우 많은, 즉 영향력이 매우 큰 학자였다.

여러 대중적 저서를 집필했는데, 모두 꽤 어렵다. 그의 마지막 저작은 음악가인 필자의 관심을 끌 만한 이름이었다. 『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그리고 다시 박테리아로 - 무생물에서 마음의 출현까지』(바다출판사). 평생에 걸쳐 인간의 마음을 연구했던 심리철학자인 그가 박테리아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사실 그는 박테리아가 등장하기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한다. “우리 역사에 대한 건전한 관점을 가지려면, 우리는 박테리아 전으로, 그러니까 어떤 생명도 존재하기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가보아야만 한다. 생명의 시작에 요구되는 것 중 몇몇이, 오늘날의 우리 마음이 지닌 특성을 설명할 중요한 메아리를 수 이언(Aeon)에 걸친 시간을 관통하여 들려주기 때문이다”(위 책, 66쪽). ‘누대(累代)’라고도 번역되는 이언은 지질시대의 구분에서 가장 큰 범위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여러 개의 대로 이루어진다.

마음과 생명의 탄생 및 진화는 큰 의미가 있는 변화를 보였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어떻게 해서에서 출발하여 무엇을 위해에 이른다. 우리는 어떠한 이유도 어떠한 목적도 전혀 없는 무생명의 세계에서 출발하지만, 거기에도 벌어지는 과정들이 있다. 그 과정 중 어떤 것들은 다른 과정들을 생성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생성된 과정들도 또 다른 과정을 생성하며, 이런 일들이 계속되면 마침내 어떤 사물들이 지금의 상태처럼 배열된 이유들을 기술하기에 적절한 때라고 생각되는 모종의 지점에 이르게 된다”(90~91쪽).

이 지점에서 ‘이유’를 찾고 묻는 인간이 등장해 활동한다는 것이다. “우리 종에게만 고유한 특성 중 하나는, 상대에게 스스로 설명할 것을, 그리고 선택과 행동을 정당화할 것을 요구하며, 그렇게 얻은 설명과 정당화를 바탕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보증하고 반박하는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 활동은 순환적인 ‘왜’ 게임 안에서 이루어진다”(91쪽). 영국 철학자 앤스콤(E. Anscombe)에 따르면 이 게임 안에서 적절히 대응하는 우리의 능력은 책임의 뿌리다. 인간이 서로의 이유를 추론하는 이 행위를 미국 철학자 셀러스(W. Sellars)는 ‘이유의 논리적 공간’을 창조하거나 구성하는 것이라고 묘사했다(데닛의 인용, 91~92쪽). 이 공간은 규범에 의해 제약되며(92쪽), 거기에 참여하는 인간들은 ‘이유 이해력(reasonappreciation)’을 가진다. 이것은 “이유보다 늦게 출현한, 그리고 더 발달한 진화의 산물이다”(94쪽). 이 능력을 갖춘 인간은 ‘이유 표상자(reason-representer)’다(104쪽).

이유들은 이유 추론자(reasoner), 즉 이유를 생각하는 존재들보다 먼저 존재해왔다(104쪽). 생명 활동과 함께 “왜 생물체의 각 부분이 그렇게 생기고 조직되었는가에 대한 이유들이 존재한다”(101쪽). 무생물 세계에서도 이유들은 존재한다. 모종의 화학적 순환들이 등장하고 그럼으로써 세계의 조건들이 점진적으로 변화되고, 무언가 새로운 일이 벌어질 확률이 높아지며, 이 과정에서 화학계의 차등 존속과 차등 재생산이 생물계의 차등적 생존 및 반복 생산/복제 과정으로 바뀐다(96~101쪽). 차등 존속과 차등 재생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다이아몬드처럼 특정 환경에서 더 잘 존속된 것들을 볼 수 있다. 생명으로서의 “유능한 번식자가 생기려면, 그전에 유능한 존속자, 즉 개정 대상으로 선발될 때까지 충분히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101쪽). 유능한 존속자가 유능한 번식자로 대체 혹은 변화 혹은 선택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비기능적인 것들이 자동으로 벗겨져 나가고 세계가 기능적인 것들로 가득 차는 것을 목격”(101쪽)한다. 이유가 많아진다!

유능한 존속자는 진화를 거듭하며 이유를 ‘인지’하는 인간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흰개미가 만든 성과 가우디가 건축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놀랍도록 비슷한 구조를 떠올려보라. 흰개미 성의 구조와 형태에는 이유들이 있지만, 성을 건축한 그 어떤 흰개미도 그 이유를 표상하지는 않는다. 그 구조를 계획한 건축가 흰개미는 없으며, 자신들이 왜 그런 방식으로 성을 짓고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눈치채는 흰개미 개체 또한 없다. 이것은 이해력 없는 능력(competence without comprehension)”(104~105쪽)이다. “가우디가 남긴 걸작의 형태와 구조에도 물론 이유가 있는데, 이것들은 주로 가우디의 이유다. 그에게는 자신이 창조하기로 마음먹은 형태에 대한 이유가 있다. 반면에, 흰개미의 구조물은 그런 모양을 할 이유가 있지만, 흰개미에게 그 이유는 없다. 나무가 가지를 뻗는 데는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는 어떻게 보아도 나무의 이유는 아니다. 해면도, 박테리아도 바이러스도 이유 있는 행동을 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 이유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 이유를 가질 필요가 없다”(105쪽).


▎여전히 건축 중인 안토니 가우디 (Antoni Gaudí, 1852~1926)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 사진:위키피디아
이해력 없는 능력은 그러나 위대하다. 성과를 보이는 컴퓨터나 현재의 인공지능이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며, 바이러스의 이 능력이 진화를 거듭하면 인간의 이해력 있는 능력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에게도 이해력 없이 무언가를 해내는 능력이 있다. 오히려 그런 능력을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런 사실들을 모르는 이들은 분노한다. ‘어떻게 위대한 인간에게서 지능 없이 창조적 기술이 갖춰질 수 있단 말인가(112쪽 참조)’라면서. 그들의 분노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자동차나 핵발전소를 만들 때, 아파트를 지을 때 모든 작업자가 자동차나 핵발전소, 아파트의 모든 제작 관련 지식을 갖춘 것은 아니다(116쪽 참조). 이 사실을 모르거나 애써 부정한다면 그것은 상기한 분노의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노동자가 자신이 하는 일을 포함한 전체적 과업에 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하까?

데닛은 바흐를 인간 종의 가장 대표적인 설계자, 즉 이해력 있는 능력자로 보는 듯하다. 그런데 모든 음악가가 바흐 같지는 않다. 필자는 음악가로서, 예술가로서, 이유를 의식하지 못하면서 이유 있는 예술적 행동을 하는 예술가를 많이 본다. 많은 K-pop 그룹의 구성원들이 자신이 부르는 노래나 추는 춤 등의 예술적 이유를 의식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그들의 이른바 콘셉트에서부터 그들이 부르는 노래와 안무 중에서 그들 스스로 만든 게 거의 없다. 이런 이야기가 K-pop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서양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다. 데닛에 따르면 비틀스 구성원들은 악보도 읽지 못했다(491쪽). 비틀스에게도 매니저이자 사업가였던 이언 앱스타인과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였던 조지 마틴이 있었다. 이들이 비틀스의 초기 콘셉트를 창조한 진정한 능력자 혹은 설계자였다. 중기 비틀스 이후에 가야 자기들 스스로 고안한 콘셉트와 그에 따른 작곡·작사가 세상에 빛을 보았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연주자는 어떤가. 그 곡의 각 연주자는 그 곡의 전체적 설계와 관련한 지식이 없는 것은 물론 다른 연주자가 내는 음들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그런 지식이 그들의 연주 능력과 유관한 것도 아닌 듯하다. 베토벤이나 바흐 자신은 어땠을까? 그들은 자신이 창조한 어떤 작품의 모든 음에 대해 이유를 추론했던가?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이 그들에게 있었던가? 그들을 몹시 존경하는 음악가로서 감히 말하건대, 그들에게도 그 능력이 온전하게 존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모든 위대한 고전음악가는 자기 작품의 구성 요소들의 이유들을 잘 추론하지 못했다. 말 많이 했고 글 많이 썼던 리하르트 바그너도 작곡을 어떻게 했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잘 못 했다. 물론 그들의 이해력 없는 능력이 컴퓨터나 바이러스의 그것과 전적으로 같지도 않다.

인간에게는 다양한 능력이 있고, 각 능력은 다른 이들의 능력과 적재적소에서 결합해 성과를 낼 수 있다. 모든 인간이 모든 분야에서 이해력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가우디도 벽돌을 구성하는 원자 수준의 이해력은 없었다. 뛰어난 오르간 곡을 작곡했던 바흐에게는 오르간 제작 능력은 없었다. 데닛은 바흐가 대위법과 화성의 전문가였다고 했는데(490쪽), 바흐가 이 분야들의 전문가라는 명제가 그가 이 분야와 관련된 지식을 의식했고 이해했다는 건 아닐 수도 있다. 어느 분야든 무의식적 전문가가 많은 법이며 바흐도 그랬을 수 있다.

우리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다는 표현을 자주 본다. 이것은 우리가 누군가의 다양한 능력 위에 서 있다는 말과 다름없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 하지만 우리를 구성하는 그 어떤 것들 사이에도 근본적 균열은 없다. 연속성의 스펙트럼은 있다. 이것이 데닛 철학의 기조인 것 같다. 나와 상대를 모두 이해하고 적을 양해할 수 있는 토대가 이 스펙트럼이 아닐까.

※ 김진호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406호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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