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52) 

인생 | 모두에게 주어진 위대한 여정 

천상병 시인은 시 [귀천]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라고 썼다. 그에게 인생은 소풍이자 여행이었던 셈이다. 인생이란 여행길을 그린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자.

▎토마스 콜 [인생의 여정: 어린 시절] 1842 / 사진:내셔널 갤러리
인생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인류 역사가 시작된 순간부터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 인문학자들이 저마다 정의를 내려왔다. 다양한 관점의 해석이 존재하지만, 많은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한 것은 인생이 곧 하나의 커다란 여행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인생을 긴 여행으로 바라본 관점들을 자신의 문학이나 작품 속에 표현해왔다.

[율리시즈] 등으로 알려진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는 자신의 작품을 인생의 여행으로 비유하며, 인간의 내면과 외부 세계의 복잡성을 탐구하고 표현했고, [마르코 폴로의 기록]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13세기에 동양을 여행하며 담은 많은 이야기와 경험은 자주 삶의 여정에 비유된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인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여행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으며, 인생을 자기 책임과 선택의 여정으로 바라보았다. [데미안]으로 알려진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도 작품 안에서 자아 탐색과 내면의 여정을 다루며,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여 자기 발견과 성장을 강조했다.

인생이 여행에 자주 비유되는 이유는 이 둘이 다양한 면에서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삶과 여행 모두 목적지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살아가는 과정, 힘든 시기를 회복하는 과정 역시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탐색하는 여행의 과정이다.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를 알고, 어떻게 변하고 싶은지를 정확히 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인생에서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꿈이 설정되면서부터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

어린아이의 여정


▎토마스 콜 [인생의 여정: 청년 시절] 1842
영국 태생의 미국 작가 토마스 콜은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 [인생의 여정] 시리즈를 제작했다. 그는 삶에서 발견, 탐험, 정착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이 키워드들을 4개 작품으로 구성한 [인생의 여정] 시리즈로 표현했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은 [인생의 여정: 어린 시절]이다. 작고 약한 어린아이가 보트에 타고 양팔을 벌려 자신의 삶을 환영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모두에게 순수하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다. 성장하고 발전할 가능성이 있던 그 시절의 모두는 작은 성취에 축하를 받고 여러 시도를 하며 자라났다.

여행을 시작할 때는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아직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기대감이 있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 것이라는 설렘이 있다. 언제든 행선지를 바꿀 수 있고, 새로운 장소에서 또 다른 배움을 만날 것이란 기대도 있다. 보트 안에는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작고 약한 아이가 탔다. 아이의 수호신은 바로 뒤에서 아이를 안전하게 돌봐주고 있다. 해는 막 떠오르고 있고, 봄의 새싹들과 꽃이 피어나고 있다. 인생의 여정이 막 시작되었다.

청년 시절의 여정


▎토마스 콜 [인생의 여정: 중년 시절] 1842
두 번째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어느새 청년이 되었다. 열정 하나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듯한 꿈같은 시절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내 세상이 올 것 같고, 대학을 졸업하면 멋진 어른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청춘. 일을 시작하기만 하면 번듯한 어른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뜨거웠던 시기다.

하늘은 파랗고 곧게 자란 나무들의 녹음이 푸르르다. 인생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시기다. 저 멀리 하늘에 비치는 궁궐은 마음속으로 바라는 목표일 수도, 눈앞에 잡힐 듯 보이는 신기루 같은 대상일 수도 있다. 뜨거운 햇살을 맞이하여 무럭무럭 자라나는 나무와 풀들 사이로 힘찬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보트 머리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여신상이 손을 번쩍 들고 있다. 수호신은 물가에서 청년의 꿈을 응원하고 있다. 열정 하나로 고통을 마비시킬 수 있는 사랑과 꿈이 눈앞에서 넘실댄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이 생각보다 실망스럽고, 상처받는 일이 많다는 것을 이때는 몰랐다. 그런 상처도 추억이 될 거라 기대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중년 시절의 여정


▎토마스 콜 [인생의 여정: 노년 시절] 1942 / 사진:내셔널 갤러리
세 번째 작품 속 주인공은 삶의 거친 물살 속에서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젊은 시절에 비해 이룬 것이 많지만 그만큼 소중한 것이 많이 생겼다. 동료와 선후배,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이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어깨가 무겁다.

열심히 살았지만 좌절하기도 하고, 사람 때문에 상처도 받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기도 했다. 간절하게 지켜야 하는 것도 많아졌기에 치기 어렸던 청년 시절보다 매사에 조심스러워졌다. 최선을 다한 것 같지만, 문득 뒤돌아보니 어떻게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세월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생기 넘치던 청년 시절의 열정과 싱그러움은 사라지고,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하며 못내 씁쓸하기도 하다.

나무들은 잎들을 잃어버려 앙상해졌고 뒤편으로는 해가 지고 있다. 삶의 반 이상을 살아버린 시점에서, 어떻게 해야 남은 삶을 잘 살아갈지 고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여전히 뱃머리에는 금빛 여신상이 빛나고 있지만, 앞으로의 길이 마냥 꽃길만은 아닐 듯해 불안하다.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은 더는 가까이에 있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는 때가 왔다. 어쩌면 물살에 휘말릴 수도, 돌부리에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에 만나왔던 실패와 실수가 미래에 대한 불안을 키운다.

마지막 작품에서 주인공은 삶의 끝 단에 다다른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보트에 앉은 노인은 이제 생기를 잃은 듯하다. 노인이 된 주인공은 쇠약하고 피로해졌지만, 어두운 하늘을 가로지르는 빛처럼 다양한 성취와 단단한 지혜를 가지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어두움 속에 더는 나무와 같은 생명은 보이지 않아 이제 성장의 시기는 멈추었음을 알려준다. 시간이 흐르고 삶의 여정이 저물어가고 있다. 수호신은 이제 하늘로 날아가려 한다. 노인이 된 주인공은 이제 여정을 마치고, 떠나야 할 때임을 깨닫는다.

여행과 닮은 삶을 대하는 자세

토마스 콜은 인간의 삶을 네 단계로 나누어 표현했다. 이를 통해 삶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시간의 흐름은 피할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어떤 꿈을 찾아 나설지, 누구의 응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지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내가 손을 뻗어 잡는 기회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든 사람은 노화하고 변화하지만, 그 안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하며 삶을 기획해나간다.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 우리가 속한 시간이 귀하고, 그만큼 삶의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 모든 단계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공통의 경험이다. 우리 부모님이 살아낸 시간이며, 다음 세대가 겪어나갈 시간들이다. [인생의 여정] 시리즈는 삶의 여정이 선형적이고 연속적인 과정임을 보여준다. 각 단계는 이전 단계의 결과이며, 다음 단계로 향하는 준비를 갖추게 한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변화하며, 삶의 각 단계에서 경험하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결국 인생의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나’라는 자아를 그 과정 속에서 찾아내는 것, 삶의 의미를 발견하여 실천할 수 있는 요소들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인생의 여정] 시리즈는 큰 삶의 과정에서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나아가고 멈추는 이유는 무엇인지,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하게 한다. 결국 내면의 소리를 듣고 진정한 자아를 탐구하며 인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 김소울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다. [치유미술관] 외 19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406호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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