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Home>포브스>Management

안선주 센터장의 메타버스 로드맵 짚어보기 

메타버스 놀이를 통한 세계관 확장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생들과 교수들이 학교로 돌아오기 시작하는 시즌이다. 새로 들어오는 학생들과 스태프들이 우리 센터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워하는 부분이 있다. 딱딱하다고만 생각했던 일반적인 연구소의 분위기와 달리 자유로우면서도 센터 멤버들끼리 응집력이 강하다는 점이다. 한 집단에 소속된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단단하게 결속해가는 역동적 과정을 학술 용어로 사회적 응집력(social cohesion)이라고 한다.

▎가상환경에서 친구들과 노래방을 즐길 수 있는 VR 소셜 노래방 앱 ‘싱룸’ 영상 캡처
어떤 조직이든 사회적 응집력이 중요하다는 걸 경험적으로 체감하며, 이를 높이고자 다양한 시도를 한다. 우리가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흔히 경험했던 소풍, 견학, OT, MT, 워크숍 등을 떠올려보면 이런 이벤트들이 그 집단의 결속력과 사회적 응집력을 빠르게 올리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집단의 결속력을 올리는 행위를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유니폼, 구호, 마스코트 등 의례나 의식(ritual)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응집력의 핵심에는 의외로 ‘놀이,’ 특히 함께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노는 행위가 있을 수 있다.

어릴 적 친구들과 같이 했던 고무줄, 땅따먹기, 술래잡기 같은 아날로그 게임, 요즘에 와서는 비디오나 메타버스에서 할 수 있는 게임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게임 환경 내에서의 질서를 잡아주는 규칙이 있고, 팀 전원이 하나가 되어 달성해야 할 공동의 목표가 있고, 높은 결속력으로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 주어지는 상(예: 우승)이 있다. 흔히 아이들끼리 하는 장난이라고 여기는 게임이 사실은 사회적 응집력을 키우기 위한 훌륭한 도구인 셈이다.

발달심리학 교과서에는 놀이를 통한 학습의 광범위한 효과가 성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기술되어 있다. 어린이들이 자주 하는 소꿉놀이는 현실에 기반해 상상을 가미한 역할놀이(아빠·엄마 놀이, 경찰·범인 놀이 등)인데, 어린이들은 다양한 역할놀이를 하면서 직간접적으로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고 협의점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른들도 사실 게임과 놀이 문화를 즐기지만, 대부분 어른이 된 후에는 생계에 치여 혹은 체면 때문에 게임과 놀이는 어린애들이나 하는 것으로 치부한다.

요즘은 어린아이들의 놀이조차 메타버스로 많이 이동한 상태다. 또 미국 미식축구리그나(NFL) 메이저리그베이스볼(MLB)보다 e스포츠 관객의 증가율이 높아, 미국 대학에서는 e스포츠 관련 학과를 늘리는 추세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해 아바타끼리 화면을 오가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메타버스상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놀이가 흥미로운 부분은 사실 아바타를 이용해 게임을 한다는 점이 아니라,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지리적인 범위가 유저가 사는 동네에서 전 세계로 넓어졌다는 점이다.

기존 문헌을 보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교육, 경제력, 건강 등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의외로 본인이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의 우편번호라고 한다. 과거에는 사는 지역에 따라 서비스나 시설물 등 인프라가 제한되어 있고, 만날 수 있는 인적자원까지 결정됐기 때문이다. 좁은 지역에만 국한된 삶은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자원이나 혜택 등에도 영향을 끼치지만, 사회문화적으로 그 사람의 세계관까지 좁힐 수 있다. 평생 같은 장소만 다니고 소수의 같은 사람들에게만 노출되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난 넓은 세계와 타인의 다양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교통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현재에는 과거에 비해 여행이나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시각과 문화에 노출되는 빈도가 잦아지고 덕분에 세계관도 진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태어나면서부터 여러 종류의 혼합현실과 함께 자란 후속 세대의 세계관은 어떨까? 일단 메타버스에서 다양한 형태의 아바타와 그보다 더 다양한 형태의 가상 환경들에 노출되면서 기존 세대들이 만들어놓은 절차와 격식들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믿음이 퇴색될 가능성이 높다. 또 물리적 거리에 상관없이 아바타를 통한 동시적(synchronous) 커뮤니케이션을 활용하는 메타버스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반드시 같은 공간에 모여서 대면하며 일을 하고 공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없어질 수 있다. 이는 일부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대면 환경 혹은 사람과의 만남이 불편하다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다. 본인이 살고 있다고 인식하는 현실 세상의 세계관에 가상 환경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가상 환경에서 만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확률이 크다. 이는 좋다 나쁘다의 가치판단보다 그저 한 세대의 세계관이 변하고 있다고 이해하는 게 더 적절할 듯싶지만, 빠른 기술 변화가 가져오는 세대 격차는 사회적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

어른들도 놀이하며 하나 되는 메타버스 공간

이런 세대 간 격차, 또 남녀 간 격차, 빈부격차 등 불신과 분열의 시대라 사회적 응집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과거 세컨드 라이프나 심즈, 싸이월드 같은 서비스들의 성공에 비추어보았을 때, 메타버스에 기업과 정부 부처를 홍보하는 공간만 만들 게 아니라 어른들도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잔뜩 만들어두면 메타버스 활용 사례도 늘뿐더러, 같이 놀면서 서로를 더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메타버스는 게임만 하며 노는 공간이기 때문에 어린아이들 전용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어른들도 신나게 놀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하려면 여행, 낚시, 등산, 패션, 쇼핑, 라운지 등 어른들을 위한 유흥 문화 콘텐트가 훨씬 다양해져야 한다.

OpenAI의 CEO가 챗GPT 같은 대화형 AI의 활용이 더 빈번해질수록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AI에 의존하게 되면서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을 걱정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메타버스를 장시간 사용해도 현실 회피로 이어져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런데 기술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다고 보는 기술결정론(technological determinism)을 적용하기엔 사람들은 제법 능동적으로 미디어 콘텐트를 소비하는 편이다. 특히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아무리 현존감이 높은 가상 환경이라도 유저들은 가상(fantasy)과 현실(reality) 사이의 세밀한 차이를 인지하는 능력이 높다. 물론, 엔터테인먼트 콘텐트를 즐기려고 기꺼이 이야기에 빠져들어 몰입감을 경험하지만 그것 역시 관객의 의도적인 선택이지, 일방적으로 기술에 노출되고 끌려가면서 일어나는 원치 않는 현상이라 보기 어렵다.

15년간 조지아대학에서 센터를 운영해온 우리 조직은 학부 학생들부터 고등학생들까지 인턴으로 일하며, 술을 아예 안 마시는 스태프도 많아 단합대회 차원에서 할 만한 여러 활동을 모색해왔다. 그 결과, 문화권 불문, 남녀노소 모두 동등하게 즐기면서 사회적 응집력을 단번에 올릴 수 있는 항목 중 메타버스 게임만 한 것이 없었다. 원래 게임을 잘 못하던 사람들도 팔과 다리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만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어 5~10분만 투자하면 바로 팀원으로 투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사용에 익숙한 파워 유저와 처음 사용하는 초보 유저가 서로 돕는 사이에 유대감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며,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팀원들끼리 의논하고 몸을 움직여가며 참여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서먹했던 이들도 빠른 속도로 통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 안선주 - 조지아대 첨단 컴퓨터-인간 생태계 센터(Center for Advanced Computer-Human ecosystems) 센터장이며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뉴미디어와 이용자 행동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의료, 소비자심리학, 교육과 연계한 가상현실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대화형 디지털 미디어에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2022년 초 TED talks에서 ‘일상생활에 가상현실 통합’이란 주제로 발표한 바 있다.

202409호 (2024.08.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