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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비통, 여행 가방 안에 담은 혁신 

 

정소나 기자
명품은 몰라도 모노그램 패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진한 브라운 색상 위에 반복되는 꽃과 별무늬에 브랜드의 머리글자인 LV가 겹쳐 있는 모노그램 캔버스로 만들어진 백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며 루이 비통을 명품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했다. 170년 전 여행용 가방으로 시작한 루이 비통이 지금까지 전 세계 여성들과 스타들이 환호하는 명품 자리를 지키는 비결이 뭘까.

▎루이 비통 하우스 앰배서더이자 테니스 남자 세계 랭킹 1위인 카를로스 알카라스가 참여한 남성복 2024 봄-여름 포멀 웨어 캠페인(왼쪽 페이지).
2000년대 중반, 길거리에서 3초에 한 번씩 볼 수 있다고 해서 일명 ‘3초백’으로 불렸던 모노그램 패턴의 ‘스피디’와 ‘네버풀’. 루이 비통의 상징적인 모노그램을 앞세워 명품의 대중화를 이끈 아이템이다. 여성들이 나와 같은 아이템을 소유한 누군가와 마주쳤을 때 느낄 법한 불쾌한 감정을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갖고 싶은 ‘머스트 바이’ 백으로 인식되며 브랜드의 명성을 널리 알렸다.

영국의 마케팅 조사기관인 브랜드 파이낸스(Brand Finance)가 조사한 2024년 상반기 럭셔리 패션 브랜드 순위에서 루이 비통은 브랜드 가치 322억35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지난 2023년에 이어 정상을 지키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70년 전 브랜드를 만든 창립자 루이 비통의 노하우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의 후손들은 19세기 중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루이 비통이라는 브랜드를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뛰어난 장인정신으로 현재까지 그 전통을 계승해오며,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타일리시한 여행 가방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루이 비통만의 특별한 스토리를 들여다봤다.

혁신으로 일군 트렁크 제국


▎남성용 모노그램 마카사 여름 에디션 컬렉션(왼쪽)과 토뤼옹 모노그램. 일렉트릭 레이싱 블루 컬러로 청량함을, 시그니처 모노그램 캔버스 가죽에 사프란 가죽을 더해 활기찬 에너지를 발산한다.
1821년 스위스 인근 프랑슈콩테(Franche-Comté)의 목공 집안에서 태어난 루이 비통은 어릴 때부터 목수였던 아버지에게 목공 기술을 배웠다. 14살 되던 해 동경하던 파리에 가기 위해 무려 400km를 걸어갔는데, 운 좋게도 여행 가방을 만드는 제조업자의 견습생으로 들어가 일을 배울 수 있었다. 꼼꼼하게 짐을 싸고 관리하는 능력이 뛰어난 데다 섬세한 목공 기술을 연마한 덕분에 금세 일을 익힌 그는 1852년 나폴레옹 3세 황후이자 프랑스 마지막 황후인 유제니(Eugene de Montijo)의 전담 패커가 됐다.

루이 비통의 재능을 높이 산 황후의 후원으로 그는 1854년 파리 카퓌신 거리(Rue Neuve-des-Capucines)에 자신의 이름을 건 첫 매장을 열었다. 황후의 트렁크를 만드는 곳으로 입소문이 난 루이 비통의 가게는 귀족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며 널리 알려졌다.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는 기차 여행이 유행처럼 번졌다. 트렁크는 기차 여행 필수품 중 하나였는데, 당시 트렁크는 빗물이 고이지 않고 흘러내리게 만든 둥근 돔 형태였다. 그는 비에 젖지 않으면서도 가벼운 트렁크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고 겉면에 방수가공한 캔버스를 댄 트렁크를 고안했다. 뚜껑은 평평하게 보완해 짐을 쌓기 편리한 직사각형 모양의 여행 가방을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된 트렁크는 파리 상류층의 인기 제품으로 떠올랐고 그의 가게는 사세를 키워나갔다.

루이 비통의 트렁크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이를 모방한 제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빠르게 유통되던 모조품을 막기 위해 1872년, 루이 비통 최초로 디자인 패턴을 적용한 ‘레드 스트라이프 캔버스 트렁크’를 선보였다. 이후에도 모조품이 나오자 1888년 규칙적인 간격으로 루이 비통 등록상표와 바둑판 무늬가 교차하는 ‘다미에(Damier)’ 패턴을 내놓으며 브랜드의 희소가치를 이어갔다.

모조품과의 전쟁으로 탄생된 브랜드의 상징, 모노그램


▎1,6 퍼렐 윌리엄스가 디자인한 2024 가을-겨울 남성 컬렉션. 장인정신이 깃든 컬렉션으로 미국 서부 워드로브의 본질을 조명한다. / 2 루이 비통 하우스의 역사적인 트렁크 컬렉션. / 3 100% 수작업으로 완성하는 루이 비통의 트렁크 제작 과정.
1892년 창업주인 루이 비통이 세상을 떠난 뒤 루이 비통의 기술과 명성은 아들 조르주 비통에게 이어졌다. 제품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기세였지만, 다미에 패턴도 소용없을 만큼 인기와 비례하게 모조품은 계속 늘었다. 1896년, 조르주 비통은 모조품을 근절하기 위해 아버지의 이름 루이 비통(LOUIS VUITTON)에서 ‘L’과 ‘V’를 따고 꽃과 별을 형상화한 문양이 조화를 이루는 모노그램을 만들어냈다. 조르주 비통은 모노그램을 모조할 수 없도록 상표등록 절차를 밟았다. 이후 다른 브랜드들에서 더는 루이 비통을 따라 하지 않았고, 모노그램 패턴은 루이 비통의 상징이자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았다.

트렁크만 만들던 루이 비통은 핸드백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이 점점 모던화되고 자동차 시대가 열리자 루이 비통은 트렁크 위주의 제품 라인에서 변화를 모색했다. 하지만 방수 코팅을 해 너무 딱딱한 캔버스는 트렁크 이외의 가방을 만들기에는 부적합했다. 조르주 비통의 아들, 가스통 루이 비통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부드러운 모노그램 캔버스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1932년 출시한 ‘노에’ 가방은 루이 비통의 첫 번째 소프트 백이다.

1959년에 이르러 가스통 루이 비통의 아들인 4대 클로드 루이 비통은 리넨과 면을 부드러운 소재로 코팅해 다양한 형태와 사이즈, 기능을 가지고 있는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소프트 백의 새로운 라인들을 선보였다. 면처럼 부드러운 모노그램 캔버스는 지금까지도 다양한 디자인으로 선보이며 전 세계 마니아층을 거느리는 가방 제국의 명징한 상징이 되었다.

명품의 대중화 시대를 열다

가족경영의 한계에 부딪히며 올드한 이미지로 전락한 루이 비통은 1987년, 샴페인&코냑 회사인 모에 헤네시와 합병으로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그룹을 설립했다. 1989년부터는 ‘명품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베르나르 아르노가 LVMH 수장으로서 브랜드를 이끌며 세계 최대의 패션 제국으로 거듭났다.

1997년 루이 비통은 뉴욕 출신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를 영입하며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로 변신했다. 그는 가방뿐 아니라 여성복, 남성복, 슈즈와 액세서리 라인, 주얼리 컬렉션을 총망라하며 토털 패션 브랜드로 영역을 넓혀나갔다.

특히 2001년 스티븐 스프라우스와 함께 모노그램 캔버스 위에 강렬한 그라피티를 그려 넣은 ‘모노그램 그라피티’는 트렌디한 젊은 고객들을 사로잡아 매출을 기하급수적으로 끌어올리고, 루이 비통을 ‘패셔너블한 명품 브랜드’로 각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예술가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다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박서보 화백 등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 6인의 시선이 담긴 아티카퓌신 컬렉션.
루이 비통은 1988년 아티스트와 텍스타일 협업을 선보인 이래 솔 르윗, 제임스 로젠퀴스트, 세자르, 올라푸르 엘리아슨 등 현대미술과 디자인 분야의 대가들과 함께 새롭고 독창적인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또 소피 칼, 댄플래빈 프란체스카 우드먼 등 여러 예술가의 전시를 개최하며 문화예술 지원을 위한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2014년에는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을 파리에 개관하며 현대미술과 예술가, 동시대 미술 작가에게 영감을 준 20세기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더 많은 대중이 예술과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루이 비통은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해 제품에 과감한 개성을 덧입히고 있다. 무라카미 7 타카시, 리처드 프린스, 쿠사마 야요이 등 예술계 거장들과 페럴 윌리엄스, 마돈나, 카니예웨스트 등 팝스타들과도 손잡았다. 하우스 앰배서더이자 윔블던 우승자 카를로스 알카라스, 럭비선수 댄 카터 등 전설적인 스포츠 스타들과 함께한 협업도 선보이고 있다. 지난 2022년에는 한국인 아티스트 최초로 루이 비통 제품과 협업을 선보인 박서보 화백을 비롯해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 6인의 시선 담긴 아티카퓌신(ArtyCapucines)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아티스트의 고유한 스타일로 재탄생한 개성 넘치는 컬렉션으로 젊은 세대에게 힙하고 신선한 루이 비통을 알리고 있다.

2024 파리 올림픽과 함께한 루이 비통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됐던 2024 파리 올림픽과 페럴림픽을 위해 ‘파리 태생’ 루이 비통은 두 개의 메달 트렁크와 토치 트렁크로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모노그램 캔버스로 덮인 메달 트렁크는 날개 2개와 메달 총 468개를 담을 수 있는 서랍으로 구성되었다. 프랑스 디자이너 마티외 르아뇌르가 디자인한 토치 트렁크는 다미에 캔버스를 사용했으며, 내부에 연결된 소켓을 뒤집으면 양각 처리된 2024 파리 올림픽 로고가 나타나며 성화봉을 전시하는 케이스로 변신한다.

루이 비통은 1988년 아메리카 컵(America’s Cup)을 위한 트로피 트렁크를 시작으로 지난 35년 이상 FIFA 월드컵(World Cup)™, 발롱도르(Ballon d’Or)®, 포뮬러 1 그랑프리 드 모나코(Formula 1 Grand Prix de Monaco)™, 호주 오픈(Australian Open), 롤랑 가로스(Roland Garros), 데이비스 컵(Davis Cup),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 NBA 챔피언십, 럭비 월드컵 등 세계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를 위한 트렁크를 선보여왔다. 이렇게 다양한 스포츠 업계와 협업하며 ‘우승의 영광’을 전달하는 트로피 트래블 케이스를 제작해온 실력을 발휘한 메달 트렁크와 토치 트렁크를 통해 ‘우승의 영광은 루이 비통과 함께 여행한다(Victory travels in Louis Vuitton)’는 가치를 공유하고자 했다.


▎전설의 럭비선수 댄 카터와 협업해 출시한 워드로브 트렁크 ‘말 베스티에르’.


전통과 혁신의 조화


▎일본 출생의 셰계적인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와 협업한 컬렉션. 루이 비통 제품에 무한을 상징하는 도트 패턴의 핸드 페인팅을 더했다.
루이 비통은 1854년 이래 항상 최고의 품질을 지향하며 혁신과 스타일을 결합한 고유한 디자인을 전 세계에 소개해왔다. 루이 비통은 우아하고 실용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여행 가방, 핸드백, 액세서리를 통해 진정한 ‘여행 예술(Art of travel)’을 구현해낸 설립자 루이 비통의 정신을 오늘날까지 충실히 계승해오고 있다. 루이 비통의 역사는 대담함의 연속이다. 건축가, 아티스트, 디자이너 등과 다양한 협업을 통해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으며, 의류, 슈즈, 액세서리, 워치, 주얼리, 향수, 서적, 라이프스타일 제품까지 전문 분야를 확장해왔다.

루이 비통은 단순히 패션과 트렌드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오랜 시간 이어온 열정과 장인정신, 독특한 브랜드 철학이 녹아 있는 창조 정신으로 시간을 초월해 사랑받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특히 오랜 시간 이어온, 루이 비통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요소들과 함께 패션쇼에서 선보이는 트렌디한 요소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고 있다.

지금껏 쌓아온 전통의 가치를 잃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동시에 한결같음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170년을 이어온 루이 비통만의 큰 자산이다.

[박스기사] 루이 비통을 이끄는 사람들


루이 비통 남성 컬렉션 아티스틱 디렉터 | 퍼렐 윌리엄스

지난 2023년 2월 고 버질 아블로의 뒤를 이어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가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었다.

퍼렐 윌리엄스는 음악과 패션, 예술에 이르기까지 창작의 세계를 확장한 개척자적 인물로, 지난 20년 동안 글로벌 문화 아이콘으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히트곡 ‘해피’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윌리엄스는 그래미상을 13차례 수상한 가수 겸 프로듀서이지만, 패션계에서도 탄탄한 경력을 자랑한다. 2003년 패션 디자이너 니고와 함께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 ‘빌리어네어 보이즈 클럽(Billionaire Boys Club)’을 공동 설립했다. 2020년에는 웰빙 뷰티 브랜드 휴먼레이스(Humanrace)를 론칭하면서 영역을 확장했다. 이 외에도 샤넬, 루이 비통, 티파니앤코, 몽클레르, 나이키, 아디다스를 포함해 많은 명품 브랜드와 협업했다.

루이 비통과는 2004년 아이웨어 컬렉션 ‘밀리어네어 컬렉션’, 2008년에는 주얼리 컬렉션 ‘블라종 컬렉션’으로 협업하며 호흡을 맞췄다.

다양한 범주를 넘나들며 선보여온 그의 독창적인 행보는 혁신과 선구자적 가치관, 기업가정신의 가치를 강조해온 루이 비통과 닮아 있다.

루이 비통 여성 컬렉션 아티스틱 디렉터 | 니콜라 제스키에르


니콜라 제스키에르(Nicolas Ghesquière)는 2013년 11월 5일 LVMH 그룹에 합류하면서 루이 비통 여성 컬렉션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1971년 프랑스 북부의 코민(Comines)에서 태어난 그는 15세부터 다양한 인턴십에 참여해 패션 비즈니스에서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학업을 마치고 1991년에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의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95년 발렌시아가에 입사한 그는 이후 1997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어, 미래적이고 구조적인 실루엣과 파리지엔 시크를 담은 디자인으로 컬렉션을 선보이자마자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2001년 10월,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CFDA)가 선정하는 ‘세계 디자이너(International Designer)’ 상을 수상했으며, 2006년에는 타임스(Times)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2007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주는 문화예술 공로 훈장 기사장(Chevalier des Arts et des Lettres)을 받으며 동시대 디자이너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자 인기와 영향력을 가진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쌓고 있다.

-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 사진 제공 루이 비통

202409호 (20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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