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강호의 생각여행 (62) 

모데나에서 만난 인류사의 천재들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감동적이고 풍요로운 역사와 문화의 보고다. 모데나를 찾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걸작인 대성당을, 또 페라리와 파바로티의 흔적을 만났다.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 천재들의 삶에서 깊은 감동을 느꼈다.

▎모데나 대성당 내부는 경건하고 아름답다. 천장에 설치된 14세기의 나무 십자가가 특별한 느낌을 준다.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여행 목적지를 찾는다. “해외여행지로 세계에서 어디를 제일 선호하세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각자 취향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특정인이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좋아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문화·역사·종교·음악·패션·아웃도어 스포츠·박물관·미술관·와인·휴식·관광, 시장 개척 같은 사업상 여행에 이르기까지 여행의 목적은 참으로 다양하다. 예를 들어 미주 지역은 방대한 공간이라서 주마다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동부·중부·서부·남부에 이르기까지 수십 개 주(State)를 방문해보았는데, 각 주에 사는 사람 대부분은 자신이 사는 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히 강했다. 동북부에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미국의 역사가 시작된 여러 주가 있다. 항상 더위가 기승인 동남부 지역의 플로리다주, 중북부의 보수적인 주들, 남부의 광활한 텍사스나 사막 지형의 애리조나주, 서부 로키산맥과 함께하는 주, 태평양 연안으로 서북부의 워싱턴주부터 오리건주를 거쳐 캘리포니아주에 이르기까지 너무나도 다른 지형·날씨·문화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각 주의 주민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자부심이 강하다. 참 신기할 정도다.

유럽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북부 유럽, 독일을 중심으로 한 중부 유럽,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을 포함하는 남부 유럽, 동구권의 여러 나라가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정말 각양각색의 감동과 차이를 보여준다. 특히 유럽은 역사와 전통을 배경으로 한 낭만적 분위기에 흠뻑 빠져볼 수 있는 지역이다.


▎그란데 광장의 시계탑과 건물 아치가 멋진 모습으로 모데나 대성당과 조화를 이루며 서 있다.
아시아에서는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과 일본에 관심을 갖고 역사적 배경을 반추하며 깊은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서쪽의 거대한 중국 대륙을 자주 찾아 그들의 문화와 역사, 경제 환경을 심도 있게 이해해야 한다. 지난 40년 동안 중국의 발전 속도는 놀라울 정도라서 특히 자주 방문해 깊이 살펴야 한다. 동쪽의 일본도 아직은 세계 무대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는 강대국이다. 그들의 역사·문화· 전통과 경제활동에 관한 깊은 이해와 관계 유지 또한 필수적이다.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리면 아직은 개발도상국이 많다. 하지만 풍부한 천연자원과 인력이 있어 미래에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대개는 단순한 관광지로 많이 찾지만, 앞으로는 미래를 위한 소중한 국가와 이웃으로, 또 기업과 민간 차원의 깊은 관계를 발전시켜 나아가야 한다. 이와 같이 세계에는 다양한 나라가 있어 어느 대륙, 어느 나라를 방문해도 흥미진진한 신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인류 역사와 문화의 보고, 이탈리아


▎파바로티가 살았던 박물관 건물에 들어서면 그랜드피아노가 위대했던 성악가를 대변하는 듯 관람객을 맞는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욕구를 가장 많이 충족할 수 있는 이탈리아 여행을 선호한다. 특히 그곳의 작은 도시와 마을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실제로도 이탈리아는 정말 여러 차례 방문한 나라다. 인류 역사의 한 자락을 장식한 도시마다 로마시대부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감동적이고 풍요로운 역사와 문화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미술·패션·와인·음식, 이탈리안 알프스의 겨울 스키와 여름 트레킹에 이르기까지 너무나도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렵다.

이번 여행에는 이탈리아 북부의 베로나에서 남쪽으로 약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자리한 모데나(Modena)로 향했다. 모데나는 기원전에 건설된 오래된 도시다. 중세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해 오래된 옛 건물이 많다. 1175년에는 모데나대학교가 설립돼 중세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최근에는 도로와 철도가 연결된 교통의 중심지로서 페라리, 마세라티 등 고급 자동차 기업이 있어서 차량 생산과 관련한 공업이 발달했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나 마을을 방문할 때는 그 중심에 자리 잡은 대성당을 찾아 여행을 시작하는 게 순서다. 베로나에서도 대성당을 찾아서 시내를 걸어가는데, 건물 사이의 높은 공간에 각양각색의 우산을 여럿 매달아서 장식해놓았다. 우산 색상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평범한 골목마저 멋들어진 공간예술로 바꾼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모데나 중심에는 아주 특이한 건축양식으로 유명한 모데나 대성당(Cathedral)이 아름답게 자리한다. 그 옆에는 우뚝 솟은 종탑(Torre Civica), 앞쪽에는 매우 넓은 그란데 광장(Piazza Grande)이 있다. 이 역사적 건축물들은 1997년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유네스코가 밝힌 등재 기준을 살펴봤다.

“란프랑코와 빌리겔무스의 합동 작업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건축과 조각의 새로운 변증법적 관계가 로마네스크 예술로 창조된 걸작이다. 모데나의 건축물은 12세기 문화적 전통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으며, 중세 기독교 도시에서 종교적·시민적 가치가 결합된 건축물 가운데 최고 사례 중 하나이다.”


▎건물 사이에 각양각색의 우산을 장식해놓아 멋들어진 공간예술을 펼친 모데나 거리.
란프랑코는 대성당에 고대 신전의 장려함을 드러내기 위해 외부 벽을 이스트리아산 흰 석재로 마감했다고 한다. 그란데 광장에서 바라본 흰 석재의 대성당과 종탑의 아치 디자인은 너무 신비하게 보였다. 모데나 대성당은 1184년 7월 12일에 교황 루시우스 3세(Pope Lucius III)에 의해 봉헌되었다. 대성당 내부를 돌아보기 위해 정문에 들어서는데, 입구에 로마시대 유물로 보이는 사자상 두 개가 앉아 대성당을 지키는 듯 보였다.

대성당 내부는 웅장하면서도 경건하고 아름다웠다. 13세기에 추가된 웅장한 장미창을 통해 은은한 빛이 내려오고, 돔 아래 천장에 설치된 14세기의 나무 십자가가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모데나 대성당과 관련된 역사는 많은 교훈을 주기에 충분했다. 11~12세기의 베네딕트회 수도원과 모데나의 주교관, 당대 이탈리아 북부 중앙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 가문이었던 카노사 가문을 중심으로 한 역사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또 11세기 말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로마 교황의 서임권 분쟁기에 카노사의 역할과 교황 편에 선 후의 부침 등 굵직한 역사의 장면들을 들으며 중세시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았다. 모데나 대성당은 이곳 출신의 세계적인 테너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장례식이 거행된 곳이기도 하다.

천재가 나고 자랄 토양


▎파바로티를 추억할 수 있는 사진과 소품들이 세계 최고의 성악가였던 그를 그리워하게 한다.
모데나는 최고급 자동차로도 유명하다. 젊은 시절에 아마도 한 번쯤 운전해보고 싶거나 소유하고 싶었던 페라리를 만날 수 있는 자동차 박물관으로 향했다. 모데나 시내에서 약 25분 정도 외곽으로 이동하니 무척이나 특이한 디자인의 예쁜 노란색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활짝 열린 공간의 전시장에 들어서니 각양각색 조그만 자동차 모형을 벽면에 전시해놓았다. 관람객의 흥미를 돋우기에 그만이다.

전시장에는 정말 멋진 디자인의 페라리 자동차가 여럿 전시돼 있었다. 직접 타보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하면서 자동차가 주는 감흥을 더욱 생생하게 느껴보도록 조성해놓았다. 매우 넓은 전시장에는 미니카나 페라리 디자인 용품을 파는 상점도 있다. 관람객들은 값비싼 페라리 자동차를 사진 못하더라도 굿즈를 구매해서 대리만족을 하는 듯했다. 전시장 건너편에 있는 박물관으로 이동하니 그동안 발전을 거듭해온 페라리 자동차의 역대급 모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전설적인 기업인이고 페라리 창업자이자 F1 자동차 경주팀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창설자인 엔초 안셀모 페라리(Enzo Anselmo Ferrari, 1898년 2월 20일~1988년 8월 14일)에 관한 사진과 기록을 볼 수 있었다.

엔초 페라리의 생애가 흥미롭다. “10살에 자동차 레이스를 보았으며 13살에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고 20세에 레이서 펠리체 나차로의 소개로 레이싱에 데뷔한다. 1920년에 알파 로메오 팀에 입단하여 두각을 나타내며, 알파 로메오 P1 차량을 개조한 P2로 많은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이탈리아의 명문인 피아트사까지 누르면서 엔초는 마침내 1인자 자리에 서게 된다. 1929년에는 마구간을 뜻하는 ‘스쿠데리아 페라리’라는 자신의 공장을 차려 페라리의 역사가 시작됐다. 페라리 엠블럼에는 말 그림과 함께 ‘SF’라는 영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약자다. 1939년에는 스쿠데리아 팀을 흡수하면서 자신을 내쫓으려는 알파 로메오에서 나와 본격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40년에는 첫 생산 차량인 Tipo 815를 만들었지만,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알파 로메오와의 계약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싱카를 생산할 수 없었다. 1947년에 페라리의 진가가 그랑프리와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했고, 1988년까지 무려 5000번이나 우승 타이틀을 차지할 정도로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막강한 팀으로 성장하게 된다.”

전시장과 박물관을 돌아보며 페라리의 역사를 창출하고 멋진 현대적 디자인의 자동차들을 만들어낸 카레이서이자 기업가인 엔초 페라리의 인생을 엿볼 수 있었다. 그의 삶이 멋진 자동차 그 자체이고 자동차 분야에서 독보적인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라리 박물관에서 다시 30분을 이동해 모데나가 낳은 또 다른 천재를 만날 수 있는 파바로티 박물관을 찾았다. 이탈리아 성악가인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년 10월 12일~2007년 9월 6일)는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세계 3대 테너로 불린다. 그는 천상의 목소리로 ‘하이 C’의 제왕이라고도 불렸다. 탁 트인 시골 들판에 외로운 듯 독채로 서 있는 박물관 정문에 들어서니 건물로 향하는 도로가 마치 높은음자리표와 유사한 곡선으로 초콜릿색과 베이지색으로 그려져 인상적이었다. 파바로티가 살았다는 박물관 건물은 외벽이 아름다운 복숭아색 바탕에 여러 개의 초록색 창문이 장식된 3층 건물이다. 왼쪽에 붙어 있는 노란색 벽의 단층 사무실과도 잘 어우러져 서 있다.


▎천장과 앞의 창문을 배경으로 전시된 파바로티의 대형 그림들이 아직도 그가 관객과 함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벽에는 파바로티가 직접 그린 강력한 원색의 마을 그림이 붙어 있고, 마루 넓은 곳에는 그랜드피아노가 위대했던 성악가를 대변하는 듯 놓여 있다. 건물 벽에는 파바로티가 그린 많은 그림, 또 그가 출연했던 오페라 포스터가 걸려 있고, 공간 곳곳에는 그가 공연했을 때 입었던 많은 의상이 전시돼 있다. 지하에는 아주 많은 그림이 전시돼 있는데, 성악가로서 뿐 아니라 미술가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지닌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층의 탁 트이고 높은 유리 천장이 있는 공간은 마치 조그만 오페라 공연장 같은 느낌을 준다. 파바로티를 추억할 수 있는 사진, 의상, 소품들이 세계 최고의 성악가였던 그를 그리워하게 했다.

예전 뉴욕 현지 법인장으로 일하던 시절, 파바로티에 관한 특별한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같은 회사 런던 지사에서 근무하던 김성옥 지사장은 연극인 손숙씨의 남편이자 영화배우였다. 그를 방문했을 때다. 그때도 워낙 유명했던 파바로티의 엘피(LP)를 뉴욕에서 사서 런던에서 만난 김 지사장께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시며, 후일에도 ‘달랑 파바로티의 LP판 한 장’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중세 역사를 안고 있는 모데나 대성당과 자동차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엔초 페라리, 오페라 무대에서 세계인들을 감동하고 열광하게 했던 파바로티 박물관을 방문하며 ‘천재’에 대해 생각해봤다. 한 사람의 천재는 자기가 태어난 마을이나 나라를 넘어서서 인류를 감동시키고 영향력을 발휘한다. 또한 수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우리나라에도 조선·자동차·반도체 등을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린 천재 엔지니어와 경영자들이 있었다. 미켈란젤로라는 천재가 메디치 가문의 도움으로 인류사에 남는 걸작을 남겼듯이, 우리나라에서도 대한민국의 미래와 인류 역사에 기여할 더 많은 천재가 탄생할 토양을 만들어나가길 소망한다.

※ 이강호 -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세계 최대 펌프 제조기업인 덴마크 그런포스그룹의 한국 법인 창립 CEO 등 33년간 글로벌 기업 및 한국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고, 2014년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협회(KCMC) 회장 및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와 2세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을 컨설팅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502호 (202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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