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황금기가 지나면, 혹한기는 반드시 찾아온다. ‘더, 더, 더’를 외치며 확장만을 위해 달리는 전사와 같던 대표들. 이젠 앞이 아닌 주위를 둘러보고 외과의사가 되어 스스로의 상처를 도려내는 고통을 마주해야 한다.
‘시리즈 B 200억 투자!’, ‘유니콘 등극’… 스타트업에 돈뭉치가 몰리며 투자 관련 뉴스가 끊이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2~3년 전이다. 개발자의 연봉은 두 배 가까이 상승했고, TV 화면에서는 투자받은 스타트업들의 광고가 줄을 이었다. 강남 주요 빌딩에는 매월 수천만원을 지불하는 스타트업으로 북적이고 외곽에는 대형 물류센터가 끊임없이 지어졌다.당시에는 회사의 크기가 크든 작든 ‘확장’과 ‘성장’에 목을 매었다. 수익은커녕, 적자가 크더라도 많은 유저를 모으거나, 더 좋은 C레벨급 인재를 확보하거나, 열매 없는 매출이라도 키워야 했다. 그것이 맞다 틀리다를 떠나 대다수가 따라야 하는 생존 규칙과 같았다.플라워 브랜드 꾸까도 마찬가지였다. 흑자 경영을 지속해오며 자생했던 꾸까의 성장에 박차를 가했다. 회사의 매출 외연을 높이기 위해 유상 광고를 처음 시작했고, 실력 있는 개발 인력을 대거 채용해 기술력을 강화했다. C레벨을 5명이나 영입하고 서초동에 1983㎡(600평) 규모의 꽃 생산 시설을 열었다.당시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폭발적인 성장을 만드는 전사’였다. 더 큰 성장을 달성한 회사엔 1000억원이 넘는 투자금도 쏟아졌다. 하지만 2021년이 지나며 급격히 ‘혹한기’가 찾아왔다. 투자 유치에 실패한 회사들이 하루아침에 파산하는 경우도 보도되기 시작했다. 3년이 지났지만 그 흐름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2021년 12월, 꾸까도 성장을 위한 확장과 투자에 급제동을 걸어야 했다. 회사에 현금은 상당히 남아 있지만, 이미 비대해진 조직과 시설 장치는 미래를 불투명하게 했다.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바꿔야 했다.그리고 그날 자신에게 메일을 하나 보냈다. “오늘부터 넌 스타트업 대표가 아니라, 외과의사가 되어야 한다.”분명했다. 회사의 존망은 더는 ‘성장’에 있지 않았다. 비대해져 걷지도 못하는 초고도 비만 환자의 모습에 꾸까를 날카로운 가위와 칼로 도려내어 살리는 데 집중했다. 대표의 위치에서 내려와 실무를 챙기고, 인력을 대폭 조정하고, 광고를 모두 OFF하면서 회사의 체질을 바꾸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현재 여전히 꾸까와 스타트업 업계 모두 위기에서 벗어나진 못했지만, 적어도 ‘전사’의 모습에서 회사의 건전성을 추구하는 ‘외과의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성공한 사업가의 자질은 무엇일까? 답을 쉽게 내놓기 어렵다. 하지만 1년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끊임없이 변화해 자신의 역할을 바꿔나가는 역량은 적어도 정답 중 하나는 될 것이다. 2~3년 후, 혹한기가 끝나면 꾸까가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두려움보다는 변화를 즐기는 사업가로서의 자세를 터득해가고자 한다.- 박춘화 꾸까(kukka)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