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경애왕이 포석정에 간 것은 잔치를 하며 놀러간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국가적 위기에 처한 신라의 왕과 그를 둘러싼 일족 그리고 최고의 지배세력들은 누란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자료만으로는 당시 신라의 국왕을 비롯한 지배세력이 왜 포석정에 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기록대로 잔치를 하며 놀았다는 생각 정도를 넘어서기 어려웠던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포석사’(鮑石祠)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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