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한국에서는 운양호사건이다 뭐다 해서 쇄국 정책이 한창일 때였습니다만, 일본에서는 이미 북해도 개척사(北海道 開拓使)로 미국의 과학자요, 교육장인 윌리엄 클라크를 초청해 서양 문물을 습득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클라크는 삿포로농학교, 지금의 북해도대학에서 농업을 지도하는 한편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청년 교육에 정성을 쏟아 개화기 일본에 큰 정신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1년 동안의 개척사 생활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그는 젊은이들에게 “Boys! Be ambitious”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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