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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 동해바다의 위험한 포식자들 

 

최재필 월간중앙 기자 사진·박동훈 스쿠버다이버, 디자인중앙 실장
바닷속 온난화로 수중 생태계 대혼란… 해파리와 불가사리 개체군 급증, 백화현상 확산으로 어획량도 급감

▎해파리와 불가사리 떼가 동해바다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 수온 상승에 따른 영향이 크지만, 결국 인간이 만든 재앙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지난 8월 경북 울진 앞바다에서 해파리 떼 사이를 스쿠버다이버가 헤엄치고 있다.



동해 바다가 해파리와 불가사리 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어장들이 망가지고, 사람의 생명까지도 위협한다. <월간중앙>은 해파리·불가사리 등 바다 생태계 교란종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동해 바닷속을 들여다보았다.

10월 5일 경북 울진군 죽변항. 날씨가 서늘해지면서 가자미 등 가을철 어종을 잡는 어선들이 한창 분주하게 드나들어야 할 포구가 웬일인지 썰렁하다. 출어를 하지 않고 포구에 묶인 배들이 어림잡아 수십여 척에 이른다. 포구에서 만난 한 어부는 “바다에 나가봤자 고기가 안 잡힌다”고 퉁명하게 말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재차 묻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여름 무더위 때문에 해파리 떼가 극성을 부려 바닷속에 먹이가 없어요. 그러니 물고기가 꼬이질 않죠. 게다가 적조까지 와서 바다가 텅비어 있어요.”

해파리 떼의 습격과 적조 현상 등으로 어장이 텅 비어 출어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10년 전 만해도 10~11월 죽변항에는 동해에서 잡아 올린 꽁치·가자미·대게·오징어·대구 등이 흔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바다 가뭄에 시달린다.

어민 김준호(62) 씨는 “어황이 좋지 않은 것이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수년 새 해파리 떼가 급격히 늘어 물고기들의 씨가 말랐다”고 했다. 그는 “대게를 잡기 위해 설치한 자망 그물에 해파리 떼가 하얗게 달라 붙어 조업에 애를 먹는다”며 “양식 어장에도 물고기가 없긴 마찬가지”라고 푸념했다.

울진 앞바다뿐만이 아니다. 부산 기장군에서부터 울산, 경북 영덕, 강원 동해·속초항에 이르는 동해바다가 온통 해파리 떼의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날씨가 싸늘해지면서 울진 위쪽으로는 사정이 좀 나아지긴 했지만 울진~부산 기장군까지는 여전히 해파리 떼의 피해를 입는다. 어민들은 오히려 심해졌다고도 말한다.

부산 기장군 용성호 박윤봉 선장의 말이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해파리가 단단해져 그물에 20~30t씩 올라온다. 해파리 독 때문에 그 많던 멸치가 씨가 말랐다. 멸치 씨가 마르니까 먹이사슬이 무너져 큰 생선도 안 잡힌다. 해파리 독 때문에 조업도 헬멧에 고무장갑까지 끼고 하는 실정이다.”

울산시 북구 정자항의 한 어민은 “수온이 많이 떨어졌는데도 해파리가 득실거린다. 바다에 내린 그물에 해파리만 가득해 끌어올리지도 못하고 수백만 원짜리 그물을 잘라내기도 했다”고 하소연했다. 해파리 떼의 습격은 이곳 어민들에게는 연례행사가 됐다. 봄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해 8월이면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9월 말쯤이면 사라진다. 그러나 올여름에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어민들이 체감하기로는 개체수가 예년에 비해 10배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출몰하는 해파리는 ‘보름달물해파리’와 ‘노무라입깃해파리’다. 보름달물해파리는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종이다. 무색 또는 유백색 몸의 갓 부분 중앙에 클로버 또는 말발굽 모양의 생식선 4개가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갓의 지름은 최대 30㎝ 정도이다. 연안 어장에 대거 유입돼 어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종이기도 하다.


▎해파리와 불가사리의 급증에는 무분별한 해양 구조물의 설치도 한몫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공 구조물이 이들의 기생 환경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반면 독성이 강한 노무라입깃해파리는 인명에도 피해를 줄 수 있다. 이 해파리는 갓의 지름이 1m가 넘는 초대형으로 국내 연안에 출현하는 해파리 가운데 가장 크다. 무게가 최대 200㎏을 넘어 어장 그물 파손의 주범으로도 꼽힌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노무라입깃해파리는 2005년 처음 서해에서 발견됐다. 이듬해인 2006년 개체수가 ㎢당 1341마리이던 것이 2007년에는 4505마리로 3배가량으로 급증한 데 이어 올해는 10배 넘게 늘어났다.

지난 8월 초순께 동해 바닷속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월간중앙>이 전문 스쿠버다이버들과 함께 울진 앞바다 속을 탐조했다. 잠수 후, 해파리 떼를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심 5~8m쯤 내려가자 수백 마리의 해파리가 떼를 지어 유영하는 모습이 보였다. 바닷속은 말 그대로 ‘물반, 해파리 반’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해파리가 많았다.

국립수산과학원 해파리대책반 윤원득 박사는 해파리 급증 원인에 대해 “해파리의 내성이 강해진 탓도 있지만 서해로 연결된 중국 양쯔강의 오염, 유생이 서식하기 좋은 방파제 등 시멘트 구조물 증가 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 박사는 또 “지구온난화에서 비롯된 해수온도 상승으로 해파리 서식공간이 넓어지고, 연중 출현 시기도 점점 길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많은 해파리 떼가 바닷속의 동물성 플랑크톤을 포식하면서 동해바다에서 서식하는 다른 어류의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해파리 떼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더 이상 물고기가 살 수 있는 여건이 안 될 정도다. 동해 어장들은 점점 황폐화돼 어획량은 급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어획량 급감뿐만 아니라 근해 양식어장들의 피해도 엄청나다. 해파리 떼의 침투로 어장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강원도 묵호 앞바다에서 정치망(그물을 일정기간 내려두었다가 건져 올리는 어법) 어장을 하는 김성대(58) 씨는 “올여름 해파리 떼로 인해 입은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해파리가 생선에다 자포(해파리 촉수에서 떨어져 나온 자세포)를 마구 쏘아대어 상품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동해안을 따라 건설돼 가동 중인 국내 원자력발전소들도 해파리 떼의 출몰로 몸살을 앓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력발전소의 냉각수 공급용 취수구를 막아 원전 가동을 중단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에는 원자로의 열을 식히는 냉각수로 하루에만 3000만t의 해수를 이용한다.

문제는 이물질 유입을 막기 위해 취수로에 쳐놓은 망에 해파리 떼가 달라붙어 냉각수 유입을 가로막게 된다. 원자력발전소 측은 매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10여 명의 직업 잠수부들을 불러 취수구에 달라붙어 있는 해파리 떼 제거작업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취수구로 냉각수가 원활히 유입되지 못하면 원전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다.




불가사리·성게 늘어나 바닷속 백화현상 심각

10월 다시 속초와 동해를 찾았을 때도 어민들은 수온 상승으로 12월까지 해파리가 극성을 부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태풍 다나스의 영향으로 해파리 떼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해파리의 감소로 어부들은 근심을 덜게 됐을까? 그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해파리가 줄어든 자리를 불가사리가 차지해 여전히 어장에 피해를 입힌다는 설명이다.

불가사리들은 못 먹는 게 없을 정도로 잡식성이다. 오죽하면 불가사리를 두고 ‘바다의 하이에나’라고 할까. 혹자는 무차별적인 포식으로 수산자원이 황폐화되는 점을 들어 불가사리를 두고 반드시 없어져야 할 백해무익한 존재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해저에 쌓여 있는 유기물과 죽은 바다동물까지 먹어치우기 때문에 오염원을 줄여주는 순기능도 한다.

다시 동해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8월의 바다보다 더욱 섬뜩한 느낌이었다. 바닥에는 그 흔한 미역이나 다시마 등 해초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육지의 사막처럼 바위와 주변 해조류가 온통 하얗게 변하는 ‘백화현상’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닥에는 불가사리가 수북했고, 성게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얼마 전까지 미역과 다시마로 가득한 곳이라고 했다.

백화현상을 학자들은 ‘갯녹음’이라고도 부른다.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곳을 ‘개’라고, 바닷가를 ‘갯가’라고 하는데, 갯녹음은 백화현상으로 해조류가 사라진 것을 말한다. 백화현상이 발생하면 바다는 사막화가 진행된다. 하얀 바닥에 생물이 거의 보이지 않고, 생물이 없으니 더 이상 어부들의 조업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녹색에너지포럼의 황인석 사무국장은 백화현상의 원인에 대해 또 다른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 “사실 백화현상은 불가사리와 큰 연관성은 없다. 지구온난화의 영향도 있지만 오히려 육지에서 쏟아지는 오염물질이나 전복이나 성게 양식의 증가가 가장 큰 원인이다.” 결국 바다의 사막화는 사람들의 탐욕 때문에 벌어진다는 설명이다.

극피동물의 하나인 불가사리는 세계적으로 1800여 종, 국내에는 100여 종이 서식한다. 동해바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은 토착종인 별불가사리와 러시아 캄차카와 일본 홋카이도 등 추운 지역에서 건너온 아무르 불가사리 두 종이다. 파란색 바탕에 붉은 점이 있는 것이 별불가사리고, 희거나 누르스름한 몸체 위에 얼룩덜룩한 푸른 점 무늬가 있는 것이 아무르 불가사리다.

육식성인 아무르 불가사리는 물속에서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크다. 큰 놈은 길이가 40㎝에 이르는데 물속에서는 빛의 굴절 현상으로 실제보다 25%가량 더 크게 보인다. 큰 몸집도 그러하지만 몸에 나 있는 얼룩덜룩한 무늬는 상당히 혐오스럽다.

토착종이 아닌 불가사리가 국내로 들어온 것은 선박들의 활발한 이동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선박은 자체 무게중심을 맞추기 위해 화물을 내리는 항구에서는 바닷물을 채우고, 화물을 싣는 항구에서는 바닷물을 버린다. 이때 바닷물과 함께 선박 밸러스트 탱크에 실린 아무르 불가사리 유생들이 국내 바다에 유포된 것이다.

아무르 불가사리들은 국내뿐 아니라 배가 옮겨 다니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유엔과 국제해양기구가 선박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심각한 생태계 파괴가 우려되는 것으로 지정한 유해 생물 10종에 적조, 콜레라 등과 함께 아무르 불가사리를 포함시킨 이유다.

바닷속 영양분 늘릴 방법 찾아야

그럼 불가사리가 백화현상의 주범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뭘까? 동해수산연구소 관계자는 “사냥감이 부족한 바다에서 불가사리들은 해조류까지 먹잇감으로 삼는다. 해조류를 덮친 불가사리는 위장을 내밀어 해조류 엽상체의 양분을 흡수한다. 불가사리가 지나가고 나면 해조류는 하얗게 탈색되어 죽는다”고 설명했다.

한반도 연근해에 해파리가 급증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국내 자생 해파리는 과거에는 대량 발생 주기가 50년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 크게 짧아졌다고 한다. 2000년, 2003년, 2007년, 2009년, 2012년 등 2~3년 주기로 해파리 개체군이 급증해왔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의 하나로 해양구조물의 급격한 증가를 꼽는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해파리 알은 고착 단계인 폴립 시기를 거친다. 폴립은 바위 등 딱딱한 곳에 잘 달라붙는다. 해안에 엄청나게 조성된 방파제 등 인공구조물이 해파리 폴립이 달라붙을 수 있는 보육실 역할을 해준다.” 산업화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이라는 의견도 있다. 각종 오폐수 등을 바다에 마구 버리다 보니 오염으로 인해 생태계 파괴가 진행됐다는 것이다. 그는 “환경오염에 따른 부영양화, 쥐치 등의 남획으로 인한 천적 생물 감소도 또 다른 요인으로 지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닷속 생태계 파괴는 무엇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부작용이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2010년 10월 14일 부산에서 열린 제32차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총회에서 발표된 한반도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한반도의 평균 기온은 2020년에 0.9도, 2100년엔 4.2도가 오를 전망이다. 지난 100년간의 평균기온 상승 폭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특히, 동해안은 2100년까지 해수면이 21㎝ 이상 높아져 연안침식이 더욱 가속화되리라는 예상도 나왔다. 해수면 온도는 3도 이상 올라 해파리·불가사리 등이 근해를 점령해 더 큰 피해를 불러올 것이라고 보고서는 경고했다. 황인석 사무국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구가 뜨거워지면 육지뿐만 아니라 바다의 온도도 천천히 올라간다. 그런데 공기와 달리 물의 온도는 쉽게 오르지 않지만 빨리 떨어지지도 않는다. 수온 상승이 지속되는 이유다.”

바다 생태계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정부는 10㎝ 크기의 해조류를 붙인 밧줄이나 콘크리트 인공어초를 바다에 넣어 해조류 숲을 늘리겠다고 한다. 또 선창가에 버리는 불가사리를 비료로 가공하거나 약품으로 개발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러 대안 중 하나는 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이 빠졌다고 비판한다.

황 사무국장은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계속 녹아 내리거나 육지에서 나무를 많이 베어내어 흘러 드는 강물이 부족하면 질소와 인과 같은 영양성분이 줄어든다. 결국 백화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바다의 영양성분을 늘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바다의 생태계가 풍요로울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바다 생태계의 균형이 유지되어야 사람도 부메랑을 피할 수 있다.”




201311호 (201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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