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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 저인망식 ‘묻지마 세무조사’에 중소기업들이 운다!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정부의 복지공약 재원 채워줄 ‘돈사냥’에 힘없는 기업들만 동네북 신세…세정당국 또한 정권 교체기마다 정책 목표 관철하는 수단으로 동원돼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자리한 국세청. 박근혜 정부 들어 세수 추가 발굴이라는 과제를 떠안았다.



지난 4월 22일 김덕중 국세청장과의 중소기업인 간담회를 준비하던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는 평소 보지 못하던 진풍경이 연출됐다. 예전 같으면 중기중앙회 주최 행사에 무덤덤하게 대하던 중기중앙회 회원사들이 너도나도 참가하겠다는 의향을 밝혀온 것이다. 그대로 뒀다가는 수용능력이 40여 명에 불과한 중기중앙회 회의실이 몰려드는 인파로 미어터질 판이었다. 부득불 중기중앙회는 참가자들을 업종별로 추려내는 등 교통정리에 나섰다.

기업경영에 여념이 없을 중소기업인들이 왜 국세청장과의 간담회에 몰려들었을까? 간담회의 제목이 그 질문에 대답해준다. 바로 ‘국세행정 운영방향 관련 간담회’였기 때문이다. 이때는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으로 업계에는 국세청이 세수확보 차원에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실시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최복희 중기중앙회 정책총괄실장은 “당시만 해도 회원사 중에서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이 그리 많진 않았다”고 돌이키면서 “그럼에도 전방위 세무조사설(說) 등 온갖 흉흉한 소문이 나돌아 불안하고 궁금해진 회원사들의 발길을 행사장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노이로제, 기업은 공포에 떨어

실제로 중소기업인들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말기로 오면서 세수 확보에 혈안이 돼 쥐어짜기식 세무조사에 나섰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박근혜 정부는 국정과제 이행에 드는 세금을 더 걷겠다고 선언했다. 국세청장과의 간담회 불과 10여 일 전인 4월 3일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관세청 등은 2013년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5년간 약 30조 원의 세수를 추가로 발굴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이를 위해 국세청은 고소득 전문직과 자영업자, 가짜석유 판매상·불법사채업 등 세법·경제질서 문란자, 비자금 조성 혐의가 있는 대기업 및 대재산가 등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세무조사 때 장부를 숨기다 들키는 개인과 기업에 수억~수십억 원의 과태료를 물리기로 했다.

특히 납세자들이 자발적으로 신고·납부한 세수 외에 세무조사, 체납징수 자료처리 등 세무행정력으로 거둬들이는 이른바 ‘노력세수’의 비중을 한층 끌어올린다는 방침도 세웠다. 박 대통령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국세청·관세청도 지하경제 양성화나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위해 보유 중인 소득파악 자료를 다른 기관과 적극 공유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중소기업인들로서는 하나같이 섬뜩한 내용들이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음성소득 과세 및 탈루재원 발굴이라는 명목으로 한바탕 세무조사 열풍이 불었던 기억을 떠올렸을 법하다. 더구나 사회간접자본(SOC) 분야도 아닌 복지공약 이행에 쓰일 더 많은 세금을 거둘게 자명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류를 의식한 듯 중기중앙회 간담회에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무리한 세무조사로 중소기업의 경영활동에 부담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문했고, 김덕중 국세청장도 “세무조사는 누구나 공감하는 탈세혐의가 큰 분야에 집중할 것이고 중소기업과 지방기업에 대해서는 조사비율을 최소화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로부터 반년 남짓이 지난 요즘 국회의원들에게 김 청장의 약속은 공허하게만 와닿는다. 새 정부 들어 첫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은 국세청은 세수확보 노이로제에 걸렸고, 기업들은 공포에 떤다고 이른바 저인망식 세무행정을 질타했다. 심지어 여당인 새누리당의 이한구 의원조차 10월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의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지금 업계에서는 현금이 도는 업종 위주로 세무조사가 진행 중이며, 기업 규모나 개인, 법인 여부를 가리지 않는 ‘기획 세무조사’를 하소연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조각 과정에서 경제부총리 물망에 오르기도 했던 그는 나아가 “비정기 세무조사에서 목표 금액을 정해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세무조사를 계속하겠다는 식의 압박을 하고 있다는 제보도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현재 검찰·공정위·국세청·관세청 등이 무차별적으로 기업 길들이기를 하고 있으며, 이게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국세청·금감원·한은·관세청이 탈세혐의 기업에 대한 공동 대응 작업에 나서는 등 집권 초기 충성경쟁이 심화된다는 게 이 의원의 진단이다.

이 의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수입 기준 10억원 이하 개인사업자에 대한 세무조사에서 1인당 부과액이 1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8000만원, 2011·2012년 9000만원이던 부과액이 올 상반기에는 1억4000만원으로 훌쩍 뛰었다. 반면, 정부가 세무조사에 심혈을 기울이는 고소득 자영업자·민생 침해 사업자·역외탈세자의 징수비율은 66% 선으로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1년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은 역외탈세 세무조사에서 4101억원을 추징받았지만 국내 재산 부재 등의 이유로 국세청이 징수한 돈은 고작 2억원에 그쳤다. 이른바 ‘구리왕’ 차용규 전 카작무스 대표도 2011년 역외 탈세혐의로 1600억원을 추징받았으나 2012년 과세적부심에서 국세청이 지는 바람에 김이 빠졌다. 최재성 민주당 의원은 “국세청이 지하경제 양성화로 대기업, 고소득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한다지만 이들보다는 중소·중견 사업자들의 부담이 늘어났을 뿐”이라고 세정당국을 겨냥했다.


▎10월 11일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 주도로 열린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국세청을 비난하는 피켓시위를 벌였다.



만만한 기업일수록 고강도 세무조사?

현장의 기업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실태는 어떠할까?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4월(국세청장 간담회), 6월(서울지방국세청장 간담회) 두 차례에 걸친 국세청 수뇌부와의 만남에서 지속적으로 중소기업 세무조사 완화를 건의했다. 국세청은 올해 국세행정 운용의 초점을 지하경제 양성화와 조세정의 확립에 두고 있다.

이를 위해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조사국의 인원을 2012년 말 1932명에서 올 9월 말 현재 2357명으로 크게 늘렸다. 전체 세무공무원에서 조사국 직원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2년 10.1%에서 올 9월 12.4%로 늘어났다. 그러면서 일자리 창출 우수기업과 매출 1000억원 미만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정기 세무조사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중소기업중앙회에서는 처음부터 우려가 팽배했다. 당시 중앙회는 “국세청 본청의 방침이 그렇더라도 일선 세무서에서는 세원 발굴이나 세무조사 실적 건수 경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두려움이 여전하다”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런 우려는 곧 현실로 나타났다.

현정부 출범 초기 매출 1500억원이 넘는 기업들이 세무조사를 받더니 이제는 연매출 500억~1000억원 안팎의 중견기업들로까지 세무조사 대상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기중앙회 측은 최근 “탈세수법이 지능적인 고액자산가들이나 대기업보다는 상대적으로 세금 추징이 쉬운 중소기업·중견기업을 대상으로 고강도 세무조사가 진행된다는 우려가 회원사들 사이에서 제기된다”고 전했다.

특히 일정한 권역 내에 있는 특정 업종을 뭉텅이로 세무조사 하는 경우도 있어 ‘표적수사’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선에서는 “국세청이 추징액을 정해놓고 조사한다”, “자료 요구나 조사기간, 법 해석 방식도 과거와 판이하게 무리수를 동원한다”, “세무조사 자체가 공포다” 등의 괴담 아닌 괴담이 난무한다는 것이다.

묻지마·줄다리기식 세무조사에 지쳤다

<월간중앙> 취재에 따르면 충청권에서는 특정 지역의 건설업체들이 ‘릴레이 세무조사’ 공포에 휩싸여 있다. 이를 테면 세무당국이 A라는 시에 있는 건설업체를 하나씩 돌아가며 세무조사를 벌인다는 것이다. 현지의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원래 건설업계란 복마전처럼 파면 팔수록 고구마 줄기 엮이듯이 비리가 나올 것 같은 업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국세청도 작심하고 세무조사에 임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게다가 이 지역 중소 건설업체를 상대로 하는 세무조사가 마치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단속과 같은 범주에서 진행된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건설업체들은 입을 모은다. 세무당국이 원도급업체와 하도급업체를 함께 운영하는 건설업체라면 일단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단속 대상으로 보고 세무조사를 벌인다는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 과세란 특수관계법인으로부터 연 매출의 30%를 초과하는 일감을 받은 기업에 총수일가가 3% 이상의 지분을 가지는 경우 매기는 증여세다.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과세는 매출 규모를 떠나 일정한 요건에 적용되는 만큼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에도 적용된다. 국세청이 2012년 분 법인세 신고 내역을 전산으로 분석한 결과, 일감 몰아주기 수혜 법인은 6200곳, 증여세 신고 대상자는 1만 명으로 추산됐다.

이 지역의 또 다른 건설업체 대표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 차원의 세무조사는 꼭 필요한 조치라고 하겠지만 이를 무분별하게 중소건설업체로까지 확대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대한상의도 이와 관련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상자의 대부분이 중소·중견기업인데 기술경쟁력 제고나 원가절감을 위한 계열사 간 거래에 대해서도 증여세를 물리다 보니 이들 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된다”고 항변했다.

기업들을 골병 들게 하는 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줄다리기식 세무조사다. 통상적인 세무조사는 그 기간의 추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요즘의 세무조사는 밑도 끝도 없이 진행되다 보니 기업 경영에도 지장을 주는 것은 물론, 기업의 대외 평판을 떨어뜨린다고 한다.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에 쏠리는 외부 시선이 고울 리 없기 때문이다.

수도권에 위치한 한 중소 제조업체 경영자는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세무조사를 받았다”면서 “다섯 달에 걸쳐 회사를 이 잡듯 뒤지는 통에 경영에 심대한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내가 마치 죄인 취급을 당하는 것 같은 모멸감에 시달렸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털어서 먼지 나오지 않는 기업이 없다는 표정으로 건수를 잡을 때까지 파헤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무조사가 처음부터 추징 목표를 정해놓고 시작된다고 보는 기업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 딱히 관련성이 없는 자료까지 이것저것 요구한다. 의류를 수출하는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세무당국이 기업을 상대로 추징액을 미리 정해놓고 조사에 들어오면 버텨낼 재간이 없다”고 했다. 기업으로서는 결국 없는 탈세도 만들어서 세금을 납부하는 ‘자진 납세’ 방식으로 타협을 보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이슈로 떠올랐다. 새누리당 나성린 의원, 민주당 조정식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은 10월 21일 기획재정위의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시중에서는 기업체별로 걷어야 할 목표액을 정해놓고 세무조사가 실시된다는 시선이 팽배하다”고 추궁했다.

이에 국세청은 “조사를 하면서 일정한 목표를 가지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부인했다. 김덕중 국세청장은 “기업들이 세무조사에서 느끼는 부담은 사후검증이 과거보다 증가하고 소명 요구를 세무조사로 인식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저돌적인 과세 행정은 엉뚱한 곳에서 피해자를 양산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재활용 폐자원 등에 대한 의제매입세액 공제율을 줄이는 세법개정안이다. 그간 정부는 재활용이 가능한 폐자원을 수집·판매하는 사업자(고물상)에게 매입가액 중 일정금액(106분의 6)을 부가가치세 매입세액으로 공제해줬다. 세원 발굴이 시급한 정부는 세법개정을 통해 공제 규모를 앞으로는 103분의 3으로 줄이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고물상뿐만 아니라 폐지·플라스틱·고철 등 재활용품을 공급하는 생계형 폐지수거 노인들의 수입도 줄어들게 된다. 고물상이 매입금액을 kg당 20원 정도 낮출 수밖에 없어 궁극적으로 노인들이 고생한다는 게 조정식 의원의 분석이다. 조 의원은 “현장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한 달 20일을 폐지를 주워 월 26만원 정도를 번 폐지 수거 노인에게 월 4만5000원 정도의 소득감소가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대략 10만 명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진 폐지수거 노인들의 생계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조 의원은 “불법·탈법적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전제, “하지만 충분한 논의와 소통 없이 경기침체로 고통 받는 중소자영업자나 개인에게 세부담을 떠넘기는 입법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누가 얼마나 추가적인 세부담을 떠안는가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은 채 제도를 밀어붙이는 것은 애꿎은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4월 11일 서울 수송동 국세청에서 열린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에서 김덕중 국세청장(앞줄 왼쪽에서 셋째)을 비롯한 관서장들이 청렴서약식을 가졌다.



“박근혜를 찍었는데 이럴 수 있느냐…”

지난 7월 국세청은 중소기업·영세사업자에 대한 세무조사 건수를 대폭 줄인다고 밝혔다. 세수 확보 차원에서 공격적 징세에 나섰던 국세청이 저인망식 세무조사가 기업경영을 멍들게 한다는 반발에 한발 물러서는 입장을 취한 셈이다.

국세청의 공언대로 세무조사 빈도는 줄었을지 몰라도 각종 형태의 압력은 오히려 늘었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세무조사 아닌 세무조사로 기업을 옥죈다는 푸념이다. 통계에 잡히는 공식 세무조사는 줄었을지 몰라도 소득세 신고액이나 부가가치세 납부자료 검증과정이 더욱 정교하고 까다로워졌다는 것이다.

중기중앙회 측은 “세무조사를 나가는 횟수를 줄였지만 대신 제출한 자료와 관련해 이런저런 확인전화를 집요하게 돌리는 통에 중소기업들은 추징액을 알아서 더 내라는 압력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공식 세무조사는 줄었지만 기업이 느끼는 압박의 강도는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보는 기업인들의 속마음은 부글부글 끓는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지역구 내 기업인들과 전국에 산재한 지인들로부터 세무행정 관련 민원을 자주 접한다. 김 의원은 “세무당국에 대한 불만 사항이 엄청나게 들어온다”고 했다. 그는 “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장사가 안 되는 판국에 기업더러 막무가내로 세금을 내라고 족친다고 일이 해결되느냐”며 “일부 기업인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찍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냐’며 항의를 해온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국세청 나름대로 고충을 호소한다. 세무조사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법으로 묶어둔다면 갈수록 교묘해지는 탈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또 사전에 목표액을 정해놓고 세무조사에 뛰어든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손을 내저었다.

국세청 조사국의 이태훈 서기관은 “개별 업체마다 특성이 다르고, 탈루 협의도 제각각인데 어떻게 사전에 목표를 세우겠느냐”며 “설령 그렇게 접근하더라도 무리한 징세 행정은 행정소송에서 패소하기 일쑤”라며 단호하게 부인했다. 행정소송에서 패소하는 세무공무원은 부실과세로 납세자를 괴롭혔다는 사유로 인사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일부 세무전문가는 국세청의 과감한 변신에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세무행정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반응이다. 서울에서 개업한 한 세무사는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게 한 표를 줬다. 이 세무사는 그러나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됐으면 이처럼 대기업에 과감한 세무조사의 칼을 들이대지 못했으리라고 믿는다. 그는 “같은 보수진영인 박근혜 정부니까 저돌적인 세무조사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봐주지만 만약 문 후보가 그랬다면 당장 보복이라며 집단 반발로 나오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세금징수 활동의 사각지대에 있던 고소득 전문직종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가 이뤄지는 것도 색다른 풍경이다. 서울 서초동에서 중견 법무법인을 운영하는 K변호사는 지난 10월 국세청이 서초동의 여러 법무법인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10월 전후로 상당수 로펌은 일제히 세무조사를 받았다”면서 “세수확보 차원에서 진행되는 세무조사인지라 거의 한 달가량 업계가 몸살을 앓았다”고 했다. K변호사는 또 “세법을 곧이곧대로 준수하면 적어도 20%의 적자를 보게 되는 것이 한국의 법체계”라며 이렇게 볼멘소리를 했다.

“고객이 빈번히 방문하는 로펌에 세무 관료들이 진을 치고 설치면 영업에 지장을 받게 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기업이 있을 수 없느냐? 로펌도 결국 백기를 들고 변호사 한 명당 얼마씩 쳐서 적정액을 스스로 제시한다. 사실상 목표액을 채우는 세무조사인 셈이다.”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운명

대기업도 국세청의 세무조사 강화 움직임에 경영상의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 전경련이 지난 9월 매출 1000대 기업 16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세무조사 현황 및 개선과제’ 조사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28.1%가 최근의 세무조사 강화 움직임에 매우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61.9%의 기업은 다소간의 부담이 된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전경련 홍성일 팀장은 “많은 기업이 최근의 세무조사 강화 움직임에 대해 부담을 느낄 뿐만 아니라, 조사방식에 대해서도 과도한 부분을 호소하는 만큼, 세정당국은 기업들의 조사 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호주머니에서 돈을 채가는 세리(稅吏)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국정운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조직이 바로 국세청이다.

역대 정권은 출범 초기마다 부패와의 전쟁,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명분으로 국세청을 동원의 대상으로 활용했다. 박근혜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안종범 새누리당 의원은 올해 9월 25일 한국경제학회 주최로 열린 ‘세무조사 투명성 강화 방안’ 토론회에서 “세무조사는 다른 정책수행을 위한 정책 수단과 통치수단으로 활용된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시책을 따라주면 세무조사를 면해주고 시책을 따라주지 않으면 벌칙 비슷하게 세무조사를 하는 것을 빈번하게 목격했다”고 지적했다.

201312호 (201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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