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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동차업계 인재 줄줄 샌다 - 中, 한국 자동차 기술인력 지구촌 단위로 싹쓸이 

 

최근 들어 자동차관련 연구원·교수도 스카우트 목록 올라…“한국 출신 500명 넘었지만 대부분 ‘팽’ 당했다”는 주장도

▎산업스파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합법적인’ 인력 유출일지도 모른다. 사진은 기아차 광주2공장 조립라인에서 차량을 조립하고 있는 작업자들.(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로 인한 국가 경쟁력 저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찌 보면 적발됐을 경우 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산업스파이보다 더 심각한 게 ‘합법적’인 인력 유출이다. 모 자동차회사 퇴직 고위임원이 얼마 전 중국업체에 스카우트됐다는 말이 업계에 확산되면서 다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국내 굴지의 자동차회사 고위임원 출신 A씨가 지난해 중국 자동차 부품회사에 스카우트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퇴사했으니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지만 고위직 출신인 만큼 기술 유출 가능성은 있지 않겠어요?” 국내 자동차업계에서 20년 넘게 몸 담고 있는 김모(48) 씨의 전언이다. 김씨는 A씨와 같은 사례는 업계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 했다.

A씨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최신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퇴직한 임직원의 동종업계 이직금지기간(2~3년)을 두고 있긴 하지만, A씨의 30년 노하우가 고스란히 중국업체에 전수된다면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된다.

중국 자동차업체들의 한국기술자 빼가기가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국내 자동차업계 등에 따르면 중국이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일체 부품의 ‘중국산화’를 추진하면서 한국 전문가 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굴지의 자동차회사 고위임원 출신이라면 경우에 따라 국내에서보다 연봉을 두세 배는 더 받을 수 있을뿐 아니라 가사도우미·비서 등 다양한 부


가혜택도 제공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국내에서보다 훨씬 많은 연봉에다 비서에 가사도우미까지, 퇴직임원들에게는 귀가 솔깃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겠죠. 인생 100세 시대에 ‘이모작’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중국업체들의 제안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 될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두세 배 연봉에 비서·가사도우미까지 제공

중국기업들의 국내 자동차 관련 고위임원·기술자의 스카우트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점점 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2007년에는 국내 모 자동차회사 기획실과 생산기술본부에서 요직을 거친 B 전 부사장이 중국기업의 고문으로 스카우트돼 파문이 일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친정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B씨가 중국기업으로 간 뒤 적잖은 노하우가 전수됐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퇴사 후 합법적으로 재취업한 것을 막을 방법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중국 브랜드들은 생산·품질·연구개발 분야의 인력에 관심이 많다. 특히 생산 분야의 경우 고위임원 출신이 아니더라도 스카우트 대상이 되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몇 해 전 국내 자동차회사에서 퇴사한 C씨는 지난해 10월 중국 자동차회사에 입사했다. 퇴직 후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던 C씨는 헤드헌팅 업체의 제의를 받고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중국 자동차업계 상위 10위 내에 들어가는 회사라면 회사당 최소 5~6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씩 한국인이 있다. 주로 중국 토종기업들이 한국인 전문가를 선호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중국업체들이 한국 고위임원 출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러브콜을 보내는 건 아니다. 기술 분야에 특화된, 즉 이공계 출신들이 주로 공략 대상이 된다. 경영·관리 분야 인력에게는 그런 제의가 거의 없다고 한다. 지난해 퇴사한 국내 자동차회사 고위임원 출신 D씨는 “(회사에 재직 중이던) 2년 전쯤 기술 분야에서 부사장급으로 퇴직한 인사 두 명이 중국 회사에 취직했다. 한 사람은 얼마 전 국내로 돌아와 부품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지금도 중국에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처럼 중국 자동차업체가 한국인력 영입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선진기술 습득을 위해서다. 중국보다 여러 면에서 한 수 위인 한국기업들의 경영·관리·기술 노하우를 배워서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자동차업체에 입사한 한국인이 적지 않지만 통계 자체가 없기 때문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나 관련 업계로서도 정확한 수는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스마트카 분야 고급 인력에도 눈독

중국 자동차업체는 최근 들어 국내 스마트카 고급인력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국내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국 자동차회사의 의뢰를 받은 글로벌 헤드헌팅 업체들의 관련 인력 접촉이 부쩍 늘어났다. 파워트레인(동력을 전달하는 기구), 새시(자동차의 기본뼈대) 등 전통 자동차 기술력을 확보한 중국은 스마트카 기술까지 더해 선진시장에 진입하겠다는 복안이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의 전망을 보면 전 세계 스마트카 시장규모는 연평균 7.4% 성장해 2012년 1900억 달러, 2013년 2000억 달러, 2014년 2180억 달러, 2015년 2390억 달러, 2016년 2590억 달러, 2017년 2740억 달러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업계 기술인력은 물론이고 유명 대학에서 스마트카 관련 강의·연구를 맡고 있는 ‘전문교수’들도 스카우트 표적이 되고 있다. 이들 교수의 경우 억대 연봉에, 중국 대학의 교수직까지 제의받기도 한다. 헤드헌팅 업계에서는 이 같은 ‘은밀한 제의’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 헤드헌팅 업체 관계자는 “유럽이나 미국에 본사가 있는 헤드헌팅 업체들이 한국에 지사를 두고 중국 자동차업체에 인력을 공급한다”면서 “완성차업체나 부품기업 직원, 산학연구소 연구원, 교수 등이 모두 스카우트 대상”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헤드헌팅 업체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노하우나 기술을 가진 사람을 원하는데 교수들에게까지 제의가 갔다는 것은 그만큼 스마트카 기술이 절실하다는 증거”라며 “중국 자동차산업이 한국을 빠르게 추격하는 상황에서 인력이 유출되면 안 되기 때문에 국내 자동차업계에서도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자동차업계와 KOTRA 등에 따르면 몇 년 전부터 상하이자동차(上海汽車), 둥펑(東風), 이치(一汽), 창안(長安), 베이징자동차(北京汽車), 광저우자동차(廣州汽車), 화천(華晨), 창청(長城), 장준(江准), 지리(吉利), 화타이(華泰) 등 중국의 토종 대기업들이 한국인력을 확충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지리나 화타이 등에는 100명이 넘는 한국인 직원이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지리는 유명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한국인 자동차 전문가 모시기에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한다.

국내 자동차업계도 인력과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퇴직임직원들에게 일정기간 일감을 주거나 자회사에 재취업을 알선하는 등 나름대로 다양한 ‘해법’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를 떠난 사람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터라 가슴앓이만 하는 경우가 많다.

한 자동차회사 홍보팀 관계자는 “수많은 퇴직자가 회사를 떠난 후 뭘 하는지 일일이 파악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퇴직자가 이직한 회사에 ‘친정’의 기술을 유출했다고 판별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애매모호하다”며 “하물며 그 기술 유출로 인해 발생하는 파급효과까지 계산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며 난감해 했다.




평생직장? 자칫하면 내쳐질 수도

그렇다고 중국기업이 평생직장이 될 거라는 생각하면 오산일지도 모른다. 주변관리를 잘 못해서 신세를 망치기도 하고, 쓰임새가 다됐다고 판단돼 내쳐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다 해도 경우에 따라 국내로 송금하는 데 여러 가지 제약이 있어요. 뿐만 아니라 가사도우미와 비서는 단순한 ‘도우미’가 아니라 감시자 역할을 겸하기도 합니다. 자칫하면 기술만 내주고 빈손으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의 우려 섞인 얘기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 재취업한 사람들 중 일부는 현지에서 여자 문제를 일으키거나 ‘밑천’이 드러나는 바람에 조용히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격’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실제로 그런 사례가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유명 자동차회사에 다니던 E씨가 이에 해당한다. E씨는 A씨와는 다른 경우로, 고위임원이 아닌 현장 기술인력 출신이다. 10여 년 전 회사를 나온 E씨는 인력을 전문적으로 해외에 알선해주는 ‘스카우트’에게 제의를 받았다. ‘기술을 썩히기 아까우니 중국업체에 전수해주면 좋은 대우로 취업할 수 있다’는 스카우트의 달콤한 제안을 듣게 됐다.

그는 고민 끝에 2006년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국내 업체에서 차량 펜더 제작을 담당했던 그는 중국에서도 같은 일을 하게 됐다. E씨는 ‘베낀다고 설마 베껴질까’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각 분야에서 전문가를 데려왔기 때문에 ‘짝퉁차’는 외형적으로는 국내 유명차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회사 상표와 차량의 성능뿐이었다. 자신이 갖고 있던 기술이 바닥을 드러낼 무렵, E씨는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 당시에도 저처럼 중국으로 건너온 한국 자동차회사 출신 인력이 어림잡아 500명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쫓겨났을 겁니다.”

중국기업들은 인력 영입과 기업 인수, 크게 두 가지 방법을 통해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쌍용차가 기업 인수를 통한 기술 확보의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 상하이자동차는 5909억 원에 쌍용차를 인수한 뒤 5년여 만에 인도 기업에 되팔았다. ‘기술 먹튀’가 된 셈이다. 매각 과정에서 쌍용차 노조가 반대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법적으로는 문제될 게 없었기 때문에 딱히 항변할 데도 없었다.


중국기업들은 쌍용뿐만 아니라 볼보 등 외국 자동차기업들도 마구 사들이고 있다. 2010년 18억 달러(약 1조9300억 원)에 볼보를 인수한 지리(吉利)자동차는 아우디, BMW 등과 한판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2017년 스웨덴에서 무인자동차를 내놓을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중국업체들이 주로 한국공장 출신의 고급인력 사냥에 나섰지만 앞으로는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국내 완성차업체들이 중국·미국 등 해외에 생산기지를 늘리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현지에서도 얼마든지 우수 인력을 조달할 수 있다.

해외 생산라인은 안녕할까

지난해 창사 이후 최대치인 410만8055대를 해외에서 생산한 현대·기아자동차는 중국 베이징·장쑤성·옌청, 미국 앨라배마·조지아, 인도 첸나이, 터키 이즈미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브라질 상파울루, 슬로바키아 질리나에서 공장을 운영한다.

수요 급증과 판매 호조를 보인 중국공장의 물량 증가가 눈에 띄었다. 현대차는 베이징공장에서 104만18대, 기아차는 옌청공장에서 55만1006대를 생산했다. 2012년보다 각각 21.5%, 13.0% 늘어난 수치다.

국내업체의 중국 내 생산이 늘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인재 유출 가능성 측면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11.4다. 중국은 ‘천인(千人) 계획’을 통해 국가차원에서 1천 명의 산업우수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국가외국전문가국’까지 설치했다.

2012년부터는 10년간 채용한 외국 전문가에게 생활보조금으로 1억7700만 원씩 지급하고 있다. 미국공영방송 NPR은 중국의 첫 스텔스 전투기(젠-20) 개발이 해외 두뇌 유치로 가능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국내 자동차회사 홍보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나름대로 방비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인재·기술 유출 우려 때문에 해외에 공장을 세우지 못한다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격’ 아니겠느냐”며 “중국에서 외국 자동차기업이 공장을 세울 때는 주로 합작 형식을 택한다. 보통 중국공장은 조립 위주이고, 엔진 등 핵심기술은 국내에서 생산함으로써 보안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201404호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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