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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낙하산’의 대공습, 이번 정권이 마지막? 

 

최고 권력의 운명공동체로 정권 바뀔 때마다 논란 반복…“낙하산 근절” 대통령 엄명에도 불구하고 측근 내려꽂기 여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박근혜 정부 1년을 맞아 개최한 집회에서 공공기관 임원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고 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캠프에 합류했던 박기만(가명)씨는 1년째 백수 신세다. 캠프 안에서 나름의 역할에 충실했던 그는 때가 되면 자신의 ‘노고’를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 아무도 그를 건사하는 이가 없었다. 함께 일했던 이들 중 누구는 어느 기관의 감사로 가고, 누구는 상임이사로 갔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조바심이 커졌다. 기다리다 못해 그는 올 초에 임원 공모를 하는 공기업 세 군데에 상임이사와 감사로 지원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최종 면접까지 올랐다.

업무계획서를 꼼꼼히 작성하고 면접 준비도 착실히 했다. 면접 준비를 하는데 한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뜸 그는 “창피당할 게 뻔한데 왜 지원했느냐”고 했다. 이미 내정된 사람이 있으니 들러리 역할을 하지 말라는 충고였다. 박씨는 개의치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겠다고 엄명을 내린 터였다. 자신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승산 있다고 판단했다. 면접은 공격적이었다. 면접관들은 집요하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미리 예상질문에 대한 답변을 충분히 연습해 말문이 막히는 일은 없었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데 캠프에서 같이 활동했던 후배와 마주쳤다. 면접을 보러 온 그의 표정이 무척 여유로웠다. 순간 지인의 충고가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예상대로 내정설이 돌았던 그 후배가 선발된 것이다. 그렇게 내리 세 번이나 임원 공모에서 최종 면접까지 올랐다가 고배를 마셨다. 운과 실력이 없었다기보다 ‘줄’이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박씨는 “짜고 치는 고스톱 관행이 하나도 바뀐 게 없다”고 했다.

공공기관의 임원 낙하산 인사 관행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정권 창출에 기여한 측근들의 공로를 합법적으로 치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란과 관행이 되풀이됐다. 공공기관 임원 자리를 ‘전리품’으로 여기는 정치권의 인식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이런 논란은 1년째 끊이지 않고 있다. 여권의 인맥에 밝은 한 정치컨설턴트는 “이명박 전 대통령 때에는 선진국민연대가 낙하산의 산실이었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옛 친박연대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MB 정부 때에는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 추천한 인사들은 대부분 원하는 자리를 얻었다. 이 때문에 매관매직이 암암리에 성행했다고 한다. ‘자리당 2천만 원’이 공식처럼 회자됐고 월급의 절반을 상납하겠다는 암묵적 계약도 있었다고 한다. 정권 실세들에게 줄을 대려는 인사들의 물밑경쟁이 그만큼 치열했다. 그는 “MB 정부의 인사들은 정치적 운명공동체라는 인식보다 이해관계에 따른 이합집산의 성격이 강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공공기관 임원 인사가 서로 이익을 챙기는 거래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노·박 ‘동고동락형’… MB ‘이합집산형’

반면 노무현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동고동락한 인사들에 대한 보은 성격이 짙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386’으로 불린 친노 그룹에 의해 공공기관 임원 인사가 이뤄졌다. 당내에 있는 여러 계파에 지분을 배분하기보다 노 대통령과 뜻을 같이 해온 개혁 성향의 인물들이 주로 전면에 배치됐다. 정치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2004년 17대 총선과 2006년 5·31 지방선거에 나갔다가 낙선하고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가 많다.

이것이 구 민주당계 중진 그룹과 감정의 골을 깊게 했고, 분당과 탄핵까지 이어지는 사태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당시 한나라당 함진규 의원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때 낙하산 인사는 2002년 대통령 선대본부 관계자 32명, 17대 총선과 지방선거 낙선자 30명, 열린우리당 당료 출신 41명, 청와대 출신 32명, 친노 인사 14명 등이었다.

박근혜 정부도 정치 역정을 함께해온 인사들에 대한 배려 성격이 짙다. 취임 초에는 주로 당직자와 대선캠프 관련 인사들 위주였다. 당직자는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캠프는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직능총괄본부장)과 이정현 홍보수석(국민소통본부)이 창구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공공기관 개혁과 낙하산 근절을 천명하면서 이런 방식의 임원 선임이 중단됐다. 그러자 엉뚱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가 주춤하는 사이 빈자리를 관료 출신의 낙하산 부대가 독식한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사실 정치권 낙하산은 10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대부분 관료 출신이다. 관료 집단과 산하 공공기관의 밀월 관계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급기야 청와대는 올해 들어 공공기관 임원 인사를 거의 중단시켰다. 적당한 기준이 마련될 때까지 낙하산 투하를 막겠다는 것이다. 3월 들어서부터 공공기관 임원 공개모집 공고가 나오지 않고 있다. 공석이거나 임기가 만료된 임원들은 후임자 인선이 늦어져 계속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경우가 숱하다.

임기가 지난 사람들은 일할 사람으로 바꿔줘야 하는데 늦어지니 정책 추진의 동력이 떨어진다. 대선에서 함께 뛰고도 자리를 받지 못한 이들의 허탈감과 불만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집토끼를 다 잃을 수 있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친박 진영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공사에 이력서 내봐” 지난 해 한 공기업 비상임이사로 선임된 A씨는 여권의 한 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임원 공개모집 절차를 진행하는 한 공기업에 지원하라는 내용이었다. 기다리던 전화였다. 그 기관 업무와 관련된 이력을 내세울 게 없었지만 지원 서류를 제출했다. 일사천리로 절차가 진행됐다. 면접 분위기는 부드러웠다. 업무와 관련된 전문적인 질문이 나올까 봐 내심 걱정했던 게 기우였다. 면접을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가 하는 일은 한 달에 한두 번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하는 게 전부였다.

직무수당과 회의 참석수당 등 매달 수백만 원씩이 입금됐다. 하는 일에 비해 적지 않은 보수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생업을 뒤로하고 사재를 털어 조직을 관리했던 공적에 비하면 ‘위로금’ 수준이었다. A씨는 “1년 넘게 ‘연락’이 오기만 기다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 정부와 비교하면(낙하산이) 눈에 띄게 줄었다. 선거캠프에서 나름의 조직을 움직였던 핵심 참모들이 알아서 자기 사람들을 챙겨줘야 하는데 BH(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논란은 여전하다. 사진은 전·현 정권의 대표적인 낙하산 인사로 지목받고 있는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가운데)과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오른쪽).



1년 새 MB 낙하산 3분의 1 친박인사로 교체

박 대통령이 나서서 연일 공공기관 낙하산 근절을 천명하고 있지만 변화는 미미하다. 정권이 바뀐 지 1년 만에 지난 정권인사들이 차지했던 공공기관의 임원 자리 3분의 1이 현 정권인사로 교체됐다. 기관 고유업무와 관련이 없는 경력을 가진 인사들이 한 자리씩 꿰차는 병폐도 여전했다. 본지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경영정보를 공개한 178개 공공기관의 임원 성향을 분석한 결과다.

알리오에 공개된 임원 명단을 토대로 과거 경력과 활동내역을 추적했다. 논란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 기관 업무와 관련된 경력이 있는 관료나 관련 지식이 있는 학자 출신은 가능한 배제했다. 정권 창출에 기여한 경력이 뚜렷한 인사들로 폭을 좁혔다. 범위를 최대한 좁혀 분석한 결과, 106개 기관의 193명이 낙하산 인사로 분류됐다. 이들 중 130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운 이들, 즉 MB계열로 분류된다.

나머지는 박근혜 정부와 관계된 인사다. 범위를 넓히면 실제로는 100여 명이 넘는 인사가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공공기관 임원으로 선임됐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이 최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87개 공공기관 임원들 중 새누리당 출신이 55명이고, 박근혜 대선 캠프 출신이 40명, 박근혜 지지단체 출신이 32명으로 조사됐다. 민 의원은 3월 현재까지 친박 인사를 84개 기관 114명으로 분류했다.

MB계 인사들과 친박 인사들의 경력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이명박 정부 때 선임된 임원들은 대체로 청와대에서 비서관·행정관이나 경호처 등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한 이들이 많다. 또 정부의 핵심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들에 대한 보상적 차원의 인사도 병행됐다. 언론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런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박연석 전 공군15혼성비행단장은 2011년 7월 대한석탄공사 비상임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박 이사는 비행단장으로 있을 때인 2009년 제2롯데월드 신축 허가에 관여했었다. 롯데에 대한 특혜 논란이 일자 그는 해당 부대 책임자로서 비행안전구역을 조정하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펴 정부 방침에 힘을 실었다.

이명박 정부 말 내곡동 사저 부지매입 논란의 중심에 있던 안종하 대통령실 경호처 차장은 2012년 12월 이 대통령 퇴임과 함께 청와대를 나와 한국기술교육대학교와 한국 폴리텍대학, 산업인력공단 감사로 선임됐다. 경호처 경호부장을 지낸 진태화 씨는 중소기업유통센터 관리이사로 선임됐다. 진씨는 영남대 식품공학과를 나왔다는 것 외에 유통관련 경력이 전무하다.

김대희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전무이사는 4대강사업 공로를 인정받아 공기업에 취직했다. 그는 MB정부 때 4대강사업 지지단체인 ‘(사)강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사장을 맡았다. 이 단체에서 함께 활동한 김진홍 목사는 4대강사업의 공로자로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다. 대구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고, 삼일학교 교장을 지낸 것 외에 원자력문화재단의 업무와 관련된 경력이 전혀 없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비상임이사로 재직 중인 이명원 씨는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할 당시(2006년) 서울시체육회 상임부회장으로 재직했다. 이때 ‘황제테니스’ 논란이 일자 이 대통령을 대신해 테니스장 사용료 600만 원을 지불했던 인사다. 그도 콘텐츠진흥원 업무와 무관한 국민생활체육회 사무총장, 한나라당 지구당 사무국장 출신 모임인 ‘한국회’ 초대 회장 등을 지냈다.

‘일간베스트(일베)’와 함께 극우성향 인터넷 사이트로 꼽히는 ‘수컷닷컴’의 대표 김지용 씨는 한국잡월드 비상임이사를 겸하고 있다. 구미고등학교 교감을 지낸 김정수 씨(자유교육연합 공동대표)는 엉뚱하게도 지역난방공사 비상임이사 자리를 얻었다. 17대 대선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상임특보를 지낸 이택관 씨는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와 한국철도시설공단 감사로 있다.

그는 ㈔건강사회운동본부 이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부이사장 등 전혀 관련 없는 경력의 소유자다. 한 여권 관계자는 “MB는 측근들이 천거한 인사들은 대부분 자리를 줬다. 이 때문에 측근들 사이에서 자기 라인 챙기기 경쟁이 치열했다. 학연(고려대-동지상고)과 지연(영남)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 구조의 낙하산 인사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 심했다”고 말했다.

반면 친박 인사들은 대체로 오랜 기간 동안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온 인사가 많다. MB계 인사들에게 밀려 당 외곽을 겉돌았던 친박연대 출신과 학자 출신들이 대거 중용됐다. 2007년 한 차례 당내 경선에서 낙선한 뒤 재기에 성공한 박 대통령의 걸어온 길과 일맥상통한다. 오랜 친분 속에서 쌓인 신뢰를 중요하게 여기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이 공공기관 임원인사에서도 드러난다.

친박연대 소속으로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대해 씨는 올 1월 기술신용복지기금 감사로 선임됐다. 박 감사는 18대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선대위 연제구본부장으로 활약했다. 송석형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비상임이사는 SBS보도본부장을 거쳐 2007년 박근혜 외곽 조직인 ‘한강포럼’에서 활동한 것을 시작으로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경선 캠프의 커뮤니케이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육군 예비역 소장인 김문범 씨도 2007년 박근혜 캠프 국방안보특보단과 2012년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상임특보를 지낸 뒤 대한지적공사 감사로 자리를 옮겼다. 도로교통공단의 오준기 감사는 2007년 박근혜 캠프 강원도 상황실장을 맡았고, 친박연대 마포을지구당 위원장을 지냈던 서준영 씨(극단 목화 기획팀장)는 그랜드코리아레저㈜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미래희망연대(전 친박연대) 정책기획국장과 17대 대선 박근혜 경선 캠프 서울유세지원단장을 지내고 2012년 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류중하 새누리당 부대변인은 근로복지공단 감사로 요직을 맡았다.


▎친박계 중진 서청원 의원(가운데)은 지난해 10월 경기 화성 갑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재입성했다. 자신의 지역구를 서 의원에게 양보한 김성회 전 의원(오른쪽)은 두 달 뒤(12월)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에 임명됐다.



투명경영 감시자 ‘감사’에 얼룩진 과거 수두룩

2012년 8월 대선을 4개월 앞두고 ‘박근혜, 한국 최초 여성 대통령’이란 책을 쓴 강요식 새누리당 구로을 당협위원장은 한국동서발전㈜ 상임감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한국소셜경영 연구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쓴 저서에서 SNS 선거전략에 대해 소개했다. 중앙선대위 SNS소통자문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과 중앙 선관위 인터넷 선거보도심의위 상임위원을 지낸 안병도 씨는 대선이 끝난 뒤 자취를 감췄다가 올해 1월 한국산업단지공단 부이사장으로 이름을 드러냈다. 안 부이사장은 김무성 의원의 천거로 대선 직전 새누리당 선대위에서 비공식적으로 활동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인물이다.

낙하산 인사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전문성과 도덕성을 무기로 삼고 정권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면 느슨해진 조직 개혁을 주도할 수 있다. 이른바 ‘모피아(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재무부 출신 인사들을 지칭하는 말)’로 대변되는 관료집단과 공공기관의 결탁을 견제할 수 있는 건 정치권력뿐이다. 그러나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기관 업무와 관련된 전문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인사들이 권력만 등에 업고 자리를 차지하는 게 문제다.

특히 기관의 방만경영을 감시하고 조직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임무를 진 감사의 자질이 부족하다면 기관의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다. 감사는 기관장에 버금가는 권한과 대우를 받는다. 낙하산 인사로 분류된 감사들의 이력을 추적해보니 자질이 부족한 인사가 상당수였다. 전문성이 부족한 것은 물론 과거 각종 탈·불법 행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2011년 12월 선임된 공호식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감사는 한나라당 재정부국장으로 재직하던 2002년 16대 대선 당시 이른바 ‘차떼기’ 불법 대선자금 모집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가 2005년 광복60주년 기념 특별사면을 통해 복권됐다. 한국 광해관리공단의 김인배 감사는 서울시의원이던 2008년 4·9총선을 앞두고 김귀환 서울시의회 의장으로부터 돈봉투를 받아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17대 대선 이명박 후보 서울선대본부 청년위원장을 지낸 뒤 광해공단 감사로 취임했다. 김광헌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감사도 서울시의원 시절 김귀환 의장으로부터 100만 원을 받았다가 적발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80만 원과 추징금 100만 원의 처벌을 받았다.

김충식 한국가스안전공사 감사는 미주직업전문학교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9월 이명박 후보를 지원하는 불법선거조직 ‘풀빵사랑회(이 후보가 풀빵을 팔아 공부했다는 점에서 착안)’를 만들어 이듬해 1~7월 이 후보쪽 행사에 교직원과 학생을 동원하고 경비를 학교 법인카드로 결제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그는 이명박 후보 당선 뒤 제17대 대통령 취임준비위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인천의 대표적인 친박인사로 꼽히는 윤태진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감사는 인천 남동구청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8월 민간단체 행사에 기부금을 불법 제공한 혐의로 인천지법으로부터 벌금 50만 원을 선고 받았다. 88관광개발㈜의 김부광 감사는 2007년 3월 한나라당 안양동안갑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벌금 150만 원형을 받은 적이 있다.


외유성 해외 출장으로 곳간만 축내는 감사도 여럿이다. 지난해 7월 미국 올랜도에서 세계 감사인대회가 개최됐다. 행사에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의 강연을 비롯해 3일 간 76개의 강연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국내에서는 한국감사협회가 주관해 6박8일 일정으로 강원랜드를 비롯해 50개 기관의 감사와 실무자 75명이 참석했다. 기관 당 1천만~2천여만 원의 경비가 들어갔다.

‘방만경영 주범’ 낙하산 근절대책 효과 볼까

행사에 참석했던 기관들이 공개한 국외여행 보고서는 대부분 형식은 물론 토씨까지 판에 박은 듯 똑같았다. 보고서를 공개조차 안 한 기관도 있었다.

각 기관의 보고서에는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강연 내용과 6개 공통강좌에 대한 요약만 있을 뿐 선택과목(9개 강좌)에 대한 언급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 공통 내용의 보고서를 대신 작성해 참가자들에게 제공했다는 얘기다.(표1 참조)

일부 기관의 감사는 이와 비슷한 국제 세미나를 연간 2~3차례 참가하기도 했다. 매번 수백만 원의 경비가 들어가는데 모두 기관 운영비로 부담한다. 감사에게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항공기 비즈니스석을 이코노미석으로 바꾸는 등 나름대로 경비 절감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해외 출장 경험이 내부 감사 업무 향상에 제대로 활용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경영평가단이 지난해 8월 발표한 2012년도 공공기관 감사 직무수행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평가 대상 58개 기관 중 절반 가량(27개 기관)이 ‘보통’ 또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진 감사기법을 배우겠다며 수천만 원의 해외 출장을 다녀온 기관들 중 상당수가 보통 이하의 평가를 받았다. 평가단은 감사 업무가 미흡한 주된 원인으로 감사의 전문성 부족을 꼽았다. 주요 경영 현안에 대한 자문은 대체로 충실했지만 회계 등 재무관련 전문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낙하산 인사를 공공기관 부채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지난 2월 개최한 토론회에서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낙하산 인사들은 노동조합의 반발을 무마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위로금, 정년연장 등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기도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공공기관 최고경영자 중 정치권과 감독당국에서 내려온 인사가 80%에 달하고 감사는 거의 100%”라며 “비전문가가 경영을 장악하면서 효율성이 떨어지고, 감독기관과 유착해 지배구조도 불투명해졌다”고 지적했다.

정권에서 내려 보낸 인사에 의해 무리하게 정부 정책을 따르는 사업을 벌였다가 경영 악화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표3 참조)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해 12월 펴낸 ‘공공기관 부채의 성격과 원인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수자원공사는 2007년 부채가 1조5756억 원이었으나 이명박 정부가 끝나는 2012년 말에는 13조7779억 원으로 874% 증가했다. 4대강사업과 경인 아라뱃길 사업을 맡은 게 원인이었다.

2008~2012년 연평균 부채 증가율이 62.4%에 달했다. 한국광물자원공사는 2007년 4341억 원에서 2012년에 2조3766억 원으로 부채가 급증했다. 정부의 해외자원개발기본계획에 따른 해외 광산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시기였다. 이명박 정부의 역점사업인 해외 석유개발사업을 떠맡은 한국석유공사는 같은 기간 3조6830억 원에서 17조9831억 원(증가율 488%)으로 급증했다.

조세재정연구원 허경선 연구위원은 공기업들이 경영 악화의 원인으로 둘러대는 낮은 공공요금과 높은 원가에 대해 “부채 증가의 책임 비중을 밝히는 것은 어렵다”며 “그보다 사업이 기관의 책임하에 자발적으로 추진됐는지, 정부 요청에 의해 타율적으로 밝히기 위해 사업 관련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사업별로 회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개혁의 일환으로 낙하산 근절대책을 내놨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 산하에 임원 자격기준 소위원회를 만들어 직위별로 자세한 자격 요건을 마련하기로 했다. ‘5년 이상 관련 업무 경력자’ 등과 같은 계량화된 기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기준이 나오진 않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커리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유사 경력을 높이 평가하겠다는 것”이라며 “직무와 연관이 적은 인사는 부임하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기재부가 내놓은 대책에 대해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공공기관의 임원 선임권을 가진 공운위가 그동안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다. 박 대통령이 낙하산 근절 방침을 밝힌 뒤에도 친박 중진 서청원 의원에게 지역구를 양보한 김성회 전 의원이 관련 경력이 없는 대한석탄공사 사장으로 선임된 것을 비롯해 여러 명의 낙하산 인사가 이뤄졌지만 공운위는 별다른 이견 없이 해당 인사들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또 공공기관의 낙하산 관행이 사라지더라도 정권 창출 공신들에 대한 논공행상이 다른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임원자격기준소위의 구체적인 기준이 법률이 아닌 지침일 뿐이란 점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정부의 낙하산인사가 과거 기관장, 상임감사에서 이제는 사외이사 자리로 확대되고 있다”며 “공공기관 개혁은 인사로 요약되는 지배구조 개혁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404호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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