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지상전시 | ‘저널리즘의 결정체’ 퓰리처상 사진전 - 현대사를 꿰뚫는 234개의 시선 

 

6월 24일~9월 14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당신을 웃거나, 울거나 가슴 아프게 한다면 제대로 된 사진이다”(AP통신 종군기자 에드워드 T. 애덤스)

▎언론인 윤리 논쟁을 일으켰던 1994년 퓰리처상 수상작 ‘굶주린 소녀와 독수리’. 이 사진을 찍은 프리랜서 사진기자 케빈 카터는 죄책감과 취재 현장의 잔혹한 모습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다가 끝내 자살했다.

▎2006년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 정착촌에서 강제 철거에 나선 이스라엘 군인들을 유대인 여성이 몸으로 막고 있다. 오데드 밸리티 기자가 촬영해 이듬해 긴급뉴스 사진부문상을 수상했다.



“그래, 나는 생생한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 살인, 시체, 분노, 고통, 굶주림, 상처투성이 아이들, 히히거리면서 방아쇠를 당기는 정신 나간 무리들. 그 대다수는 경찰관이나 킬러, 처형자… 그 같은 지독한 기억이 나를 괴롭힌다.”

1994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기자 케빈 카터(1960~94)가 자살하기 전 남긴 유서의 내용이다. 1993년 3월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린 한 장의 사진(‘굶주린 소녀와 독수리’)으로 굶주린 아프리카의 참상을 고발한 그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지 한 달 만에 서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소녀를 구하지 않은 죄책감 때문에 자살을 택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유서는 전쟁과 기근, 참사의 현장에서 ‘역사의 목격자’로 살아가는 사진기자들이 겪는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들이 트라우마를 무릅쓰고 렌즈에 담은 장면은 전인류에게 감동과 교훈을 준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한 장의 사진. 퓰리처상은 목숨을 걸고 역사의 목격자를 자처한 이에게 인류가 선사하는 최고의 예우다.

‘언론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퓰리처상 수상작이 다시 한국을 찾는다. 22만 명의 관람객이 찾았던 2010년 전시 이후 4년 만이다. 1942년부터 72년간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사진 234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지난 전시회에서 볼 수 없었던 미공개작을 비롯해 100점 이상 늘었다.


▎1972년 6월 8일 베트남 남부지방에서 미군의 네이팜탄 폭격에 화상을 입은 소녀가 도망치는 모습을 후잉 콩 우트 기자가 포착했다. 베트남전쟁을 끝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진으로 유명하다. 소녀는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었지만 목숨을 구해 현재 화상환자들을 상대로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1969년 베트남전쟁 종군기자였던 에드워드 애덤스 기자가 촬영한 베트콩 즉결처형 장면. 보도 당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는 것으로 오해를 사 반전 여론에 불을 붙였다.
영화보다도 더 극적인 현실 담아

퓰리처상 사진전은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할 수 없는 전시회다. 들어갈 때보다 나올 때 더 큰 고민을 품게 된다. ‘슬픈 진실을 슬프게, 오직 진실만을(<르몽드>지 창간자 위베르 뵈브메리의 창간사 중)’ 담담하게 기록한 사진에는 ‘보편적 인류애와 정의’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단지 화려하고 아름다운 사진과 촬영기술을 보고 싶은 거라면 근사한 사진전은 얼마든지 있다.

퓰리처상은 미국의 신문왕 조지프 퓰리처(1847~1911)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산 50만 달러를 기금 삼아 1917년에 제정됐다. 언론·문학·음악 3개 분야에 걸쳐 매년 시상한다. 보도사진 부문은 1942년에 시작됐다. 퓰리처상 수상은 미국 언론인에게 가장 큰 영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퓰리처가 창간한 석간신문 <이브닝월드>는 옐로저널리즘의 대명사로 꼽힌다. 평화를 염원한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살상무기의 개발을 가속화했듯이 말이다.

퓰리처상 수상 사진은 영화보다 더 극적인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언론조차 보도를 꺼릴 정도의 참혹함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땅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인정하라고 보채듯 말이다. AP통신의 종군사진기자로 베트남전쟁을 취재했던 에드워드 T. 애덤스(1933~2004)의 사진 ‘베트콩 즉결심판’과 후잉 콩 우트(63)의 ‘전쟁의 테러’가 세상에 나오게 된 일화가 대표적이다.

애덤스와 우트는 길거리에서 베트남 경찰이 베트콩장교를 권총으로 처형하는 장면과 미군의 네이팜탄 공습으로 화상을 입은 소녀가 벌거벗은 채 도망치는 모습을 각각 찍어 AP본사로 송고했다. AP측은 지나치게 선정적이란 이유로 보도를 꺼렸다. 그러나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던 베테랑 사진기자 호스트 파스(당시 사이공AP 사진부장)의 강력한 요구로 세상에 알려졌고, 반전 여론의 기폭제가 됐다.


▎2002년 수상작 제임스 힐 기자의 ‘아프가니스탄의 전쟁과 평화’. 사진 속 노인은 ‘비둘기들은 전쟁이 있을 때 떠나고, 평화로울 때 되돌아온다’는 믿음으로 매일 비둘기가 떠나지 않도록 먹이를 줬다고 한다.

▎2000년 코소보 난민들의 모습을 담은 <워싱턴포스트> 기자 루시안 퍼킨스의 2000년 수상 사진.

▎1973년 미국 캘리포니아 트라비스 공군기지에서 베트남 전쟁포로였던 로버트 스텀이 가족과 상봉하는 장면을 잡았다. 슬라바 베더 기자 촬영.
베트콩 장교 처형 사진은 보도 당시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는 장면으로 오해를 샀지만 이 사진들은 퓰리처상 사진 콜렉션 중 20세기를 바꾼 가장 유명한 사진으로 평가받는다.

퓰리처상 수상작에 절망만 있는 건 아니다. 최초로 퓰리처상을 4회 수상한 여성 사진가 캐롤 구지(현재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사진에는 좌절과 고통의 현장에서 발견한 희망과 용기가 깃들어있다. 그가 콜롬비아 화산폭발, 코소보 내전, 아이티 대지진의 현에서 찍은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사진들도 이번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다.


▎2001년 9·11 테러 때 세계무역센터의 붕괴 장면을 포착한 사진. <뉴욕타임스>의 이장욱 기자가 촬영해 그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950년 12월 4일 폭파된 대동강철교를 넘어 남하하는 피난민들의 행렬. 종군기자 맥스 1 데스포가 촬영해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한국인 출신 수상자 작품도 여럿

퓰리처상 수상자 중에는 한국인 기자도 여럿 있다. AP통신 한국특파원이었던 최상훈(51·현재 <뉴욕타임스> 한국특파원) 기자가 첫 한국인 수상자다. 그는 2000년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서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피난민을 무차별 학살한 사실을 고발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밖에 1999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성추문을 추적 보도해 기획사진 부문을 수상한 강형원(당시 기자) <로이터통신> 수석사진부장, 미국 9·11테러와 2002년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보도한 기획사진으로 두 차례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장욱 <뉴욕타임스> 기자, 2011년 시카고 총기사건을 취재한 존 김(한국명 김주호) <시카고 선타임스> 기자 등 교포 언론인들이 있다. 국내 언론사 소속 수상자가 없는 이유는 미국 언론만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한국기자협회와 사진기자협회가 한국기자상 시상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사진전은 6월 24일부터 9월 14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1층에서 열린다. 한국전쟁을 기록한 사진을 따로 모은 특별전도 함께 진행된다. 9세 이상 관람 가능하니 자녀 교육용으로도 좋다. 잠자는 당신의 양심을 깨워줄 것이다.

201407호 (2014.06.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