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책갈피 - 편집은 마술에 가까운 창조다 

‘세계 재구성’은 역사상 모든 천재의 야망… 즐거운 창조’ 편집의 구체적 방법론 제시한 역작 


에디톨로지 김정운 지음 21세기북스┃1만8000원
세계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역사상 모든 천재의 야망이었다. 바그너는 자신의 오페라 안에 당대 서양음악의 모든 형식을 포괄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음악 형식의 재구성을 통해 모든 장르의 음악을 자신의 블랙홀 안으로 빨아들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 야욕은 온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니체는 어떤가. 그리스 고전 문헌학으로 학문을 시작한 니체의 야망은 기독교의 사상과 철학을 해체하는 것이었다.기독교란 약자의 가치에 불과하며, 고통스러운 현실을 인정 못 하는 비겁한 인간의 가치체계로 봤다. 신도 없고, 궁극적인 목적도 없는 이 세계를 긍정할 것을 설파했다. 대담한 ‘세계 재구성’이다. 육체적 고통마저도 창조의 자양분으로 삼았는데, 세계 재구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거의 전복에 이르는 수준으로 나아갔다.

조선 후기의 학자 홍대용도 세계 재구성의 야심으로 동서양의 학문을 섭렵한 인물이다. 수학에 관한 한 그는 지금 기준으로 봐도 대단한 경지에 올랐다는 것인데, 그가 중국 방문을 배경으로 쓴 <의산문답>에서는 인식론·과학사상·화이관(華夷觀) 등이 종합적으로 서술돼 있다. 요컨대 그의 사상에서는 서양과학과 동양의 전통적 자연관, 합리주의와 도교의 신비사상, 지구 중심의 세계관과 우주무한론 등이 두루 섞여 나타난다. 결국 그가 제시한 세계의 재구성은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당대로서는 놀라운 전복적 정치사상의 제시로 나타났다.(하지만 그의 사상은 불행히도 우리의 근대사상으로 계승, 발전되지 못했다.

<에디톨로지>를 쓴 김정운에게도 세계를 재구성하려는 야망이 깃들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은 끊임 없이 구성되고, 해체되고, 재구성된다고 보았다. 세상만사를 결국 편집의 결과로 보는 시각이다. 여기까지는 새로운 얘기라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만들어낸 ‘에디톨로지(편집학)’란 신조어를 통해 편집이야말로 중대한 ‘창조 행위’라는 점을 밝히고 주장했다. 이 점이 새롭다.

세 가지 관점에서 그는 편집, 즉 창조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다. 기발하다. 그는 마우스의 발명을 중심으로 하이퍼텍스트를 말한다. 도구의 발명이 인간 의식에 가져온 변화를 논하면서 지식과 문화가 어떻게 편집되는가를 통찰했다. 공간 편집과 인간 의식의 상관관계는 원근법을 중심으로 풀었다. 베르사이유 궁전은 원근법적 원리에 의해 건축됐는데, 대칭과 균형의 정점에 프랑스 왕의 시점을 위치시켰다. 자신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자기 권력 안에 있음을 확인하려는 시도다.

마음도 편집되었다. 그 선구자는 프로이트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이드’, ‘자아’, ‘초자아’로 나누고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마음의 현상학을 이들의 역동적 관계로 설명했다. 인간심리에 관한 ‘편집의 단위(unit of editing)’를 만든 것이다. <에디톨로지>는 이 자체로 훌륭한 편집학의 사례다. ‘편집학’이란 카테고리 안에 방대한 역사적 사실과 지식의 흐름을 편집했다. 유쾌하게 읽힌다. 그는 언젠가 이 세상을 편집하여 재구성하려 할 것이다. 모든 지식 천재의 야망이다.

201412호 (2014.1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