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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書齋 - 우리는 늘 왜 이렇게 바쁠까 

쉼은 낙오자의 것이 아닌 느긋한 삶을 사는 승리자의 것… 가짜 욕망에서 벗어나 더 많은 생활의 여백을 누려라! 

장석주 전업작가

행복의 중심, 휴식 | 울리히 슈나벨 | 김희상 옮김 걷는나무 | 1만5천원 / 고독의 즐거움 |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양억관 옮김 에이지21 | 1만3천원
사람들이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바쁜 사람은 수족을 부지런히 놀려 이곳 저곳을 다녀야 하고, 이사람 저 사람을 만나야 하는 통에 정신은 산만해지고, 몸은 피로에 젖기 일쑤다. 바쁨은 대개 자신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바쁨을 위한 바쁨이다. 바쁨이 나쁜 것은 그것이 존재하는 것에 대한 지각조차 무디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휴식도 없이 바쁘게 사는 사람은 나중에는 제가 왜 바빠야 하는지 모르게 되고, 따라서 스스로의 시간을 통제하지 못하고, 외부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며, 제 삶을 속절없이 탕진한다. 참을 수 없는 디지털 세계의 분주함 속에서 자신을 방치하는 게 그 한 예다. 바쁜 것을 좋아한다는 사람은 드문데, 다들 바쁘게 산다는 사실이 놀랍다.

우리는 왜 바쁘게 사는 걸까? 점점 더 가속화하는 문명에 편승해서 일하는 기계, 혹은 성과 기계로 내몰리는 까닭이다. 현대사회는 가속화 사회이고, 성과에 치중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성과에만 치중하는 과정의 가속화는 현대적 사회를 이끄는 근본 원리다.”(<행복의 중심, 휴식> 185쪽)결국 ‘성과’와 ‘가속화’는 하나다. 과정의 가속화가 일상화된 사회 속에서 누구도 경쟁하고 일하고 소비하는 삶을 멈출 수 없다. 이런 삶이 타인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많은 사람이 성공이라는 ‘황금’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불철주야 스스로를 착취하고, 자기를 고갈시키는 대열에 뛰어든다. 백열전구가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아홉 시간가량을 잤다고 한다. 하지만 백열전구가 나온 뒤 사람들의 평균 수면시간은 일곱 시간 정도로 줄었다. 현대에 가까울수록 사람들의 수면시간은 더욱 줄어든다. 사람들은 잠을 줄이고, 감정과 본능을 유예시킨 채 번아웃 될 때까지 일에 몰두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

수면부족을 독려하는 사회

잠은 삶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다. 지칠 대로 지친 사람에게는 잠은 달콤한 휴식이고, 몸에서 빠져나간 기력을 충전하는 잠시 멈춤이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기쁨의 시간이다. “잠은 감미로운 꾸물거림이요 일시 정지이며, 매슈 드 아베튀아(Matthew De Abaitua)의 표현을 빌자면 ‘위대한 중단(Big Quit)’이다.”(<언제나 일요일처럼>, 톰 호지킨슨, 남문희 옮김, 필로소피) 현대가 분주함과 속도의 시대라면, 잠은 “행동을 우위에 두는 이 세상에 맞서는 저항의 한 방법”(<언제나 일요일처럼> 275쪽)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건강에도 좋은 잠을 줄이는 대신 고된 노동의 속박에 자신을 내맡긴다. 가속화된 문명에 탑승한 사람들은 늘 수면부족에 시달린다. 수면부족은 끔찍한 사고와 참사와 재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흔한 고속도로에서의 차량 충돌사고들은 말할 것도 없고 체르노빌 같은 대형 참사도 수면부족이 원인이었다. 노동자들에게 더 많이 일을 시키려는 탐욕스러운 기업가나, 경직된 도덕주의자들이 잠을 낙오자의 표상으로 낙인 찍었다. 그들은 부자가 되려면 잠을 줄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잠을 많이 자는 건 게으름뱅이들의 습관이라고 선전한다. 잠은 낙오자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낮의 노동, 낮의 욕망들에 초연한, 느긋한 삶을 살려는 승리자의 것이다. 잠을 충분히 자는 사람은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 미국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20대 청년기에 남태평양의 푸카푸카섬에 정착해 살았던 로버트 진 프리스비라는 사람이 1929년에 쓴 <푸카푸카>라는 책에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야 할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고, 대부분 일어나지도 않았다. 하루 종일 잠만 자다가 밤에 일어나서 바닷가 모래밭에 횃불을 밝혀놓고 낚시를 한다. 그리고 식사를 하고 춤을 추고 사랑을 나눈다. 푸카푸카에 대해 잘 모르는 교역선 선장들은 그 섬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주민들이 배에 짐 싣는 일을 하려고 들지 않기 때문이다.”(<언제나 일요일처럼> 110쪽)

푸카푸카의 원주민들은 잠을 충분히 잔다. 그들은 가속화된 문명 따위가 만들어낸 관습에 휘둘리지 않은 채 충분히 휴식하면서 자기들만의 리듬으로 살아간다. 휴식은 단순한 빈둥거림이 아니다. 휴식은 수단과 목적의 일체감 속에서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밀도 있게 보내는 순간을 뜻한다.

인생의 참 의미 찾는 쉼의 정적

삶이 바빠진 것은 우리의 물건들에 대한 소유욕망과 소비욕망 때문이다. 집·자동차·냉장고·텔레비전·세탁기·그 밖의 갖가지 물건을 향한 욕망! 우리는 그것들을 사들이기 위해 빚을 지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그래서 바빠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 물건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 이 물건들은 소유하고 소비하는 동안 약간의 행복감과 재미와 위안을 주기는 한다. 하지만 그 행복, 재미, 위안은 항구적이지 않다. 그 대신에 물건들은 우리의 돈과 시간, 자유와 인간관계와 창의성을 앗아간다. 삶의 지혜는 덜 중요한 것들을 버려서 비우기, 그리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으니 할 수 없는 일들을 포기하는 데서 나타난다. 그러게 하면 빡빡하던 생활에 여백들이 생겨나고, 육체적 실존의 유동성을 크게 낮춘다. 고독과 정적이 깃든 여백의 시간들에 우리는 낮잠도 잘 수 있고, 호젓하게 공상에 빠지고, 평소에 못 읽던 책도 읽을 수 있고,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여행을 할 수도 있다.

휴식의 시간은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다. 휴식의 시간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잡음과 내재적 잡음에서 홀연히 자유롭게 되어 몸과 마음에 두루 편안함이라는 선물을 준다. 휴식은 취향을 꽃 피우고, 재능을 만개할 수 있는 인생의 소중한 여백이다. 바쁜 문명 세계를 등지고 숲 속에서 2년여 동안 호젓한 삶을 살았던 현자는 이렇게 말한다.

“머리를 쓰는 일이건 손을 쓰는 일이건 어떤 일을 위해서건 지금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몇 번이고 마음에 새긴다. 여름 아침이면 늘 하듯 해가 떠서 점심때까지 소나무, 호두나무, 옻나무에 둘러싸인 채 흔들림 없는 고독과 정적 속에서 햇빛 잘 드는 문 앞에 앉아 공상에 젖어 든다. 새들이 노래하면 소리도 없이 집 안을 빠져 나갔다.”(<고독의 즐거움>)

소로는 소나무, 호두나무, 옻나무로 둘러싸인 숲 속 생활에서 고독과 정적이 깃든 시간들을 온전하게 누렸다. 그는 햇볕을 쬐며 공상을 하고 숲 속의 새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찾아 누린 것은 소박한 삶이고, 그 안에 깃든 삶의 정수(精髓)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바쁘게 사느라 잃어버린 가치, 의미 있는 인생이다.

왜 우리는 푸카푸카의 원주민들이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이 살 수 없을까? 그것은 돈과 권력과 지위를 향한 넘치는 욕망 때문이다. 그러나 고액 연봉, 더 좋은 집, 최신 전자제품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소유욕망과 소비욕망에 들린 삶은 우리를 번아웃과 죽음으로 내몬다. 행복하고, 자유롭고, 열정적인 삶을 원한다면 그것을 당장에 멈춰야 한다. 더 적게 소유하는 것에 만족한다면 그토록 많은 시간을 일에 매쳐 보낼 필요가 사라진다.

우리를 옥죄는 가짜 욕망, 가짜 필요에서 자유롭게 되면 더 많은 생활의 여백과 휴식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물건에 대한 애착을 버리면 그것에서 해방된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치워보라! 뜻밖에 많은 자유시간이 생긴다. 인터넷을 끊어보라! 훨씬 더 자유로워진다. 더 많은 시간을 읽고 쓰고 생각에 잠길 수 있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더 많은 시간을 햇볕을 쬐며 걸을 수 있고, 좋은 벗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다. 더 많은 시간을 자기를 돌보는 데 쓸 수 있고,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장석주 전업작가. 충남 논산 출생. 1979년 조선일보·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문학평론 당선으로 등단했다. <월간문학> 신인상(1975년)과 해양문학상(1976)을 수상했다. ‘고려원’ 편집장을 거쳐 청하출판사를 운영했다. 지금까지 시집, 비평집, 인문서 등 70여 권을 펴냈다. 대표 저서로 <일상의 인문학> <마흔의 서재> <철학자의 사물들> 등이 있다.

201412호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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