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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이슈 | 개헌론 둘러싼 동상이몽(同床異夢) - 차기주자 뜨기 전에 권력 나누자? 

국민여론 설득 가능한 차기 유력주자들은 개헌을 원치 않는다… 여야 다수 구성원은 권력 분점하는 분권형 개헌에 목말라 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0월 중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제를 거론했다가 청와대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이후 개헌 문제에 대해 “그 자체에 대답을 안 하겠다”며 함구로 일관했다.
“헌법 때문에 우리나라가 잘못되는 게 도대체 뭔가?”

지난 2010년 친박계의 한 핵심 인사가 사석에서 언급한 개헌 불가론은 지금도 그 울림이 생생하다. 그는 ‘당장’ 헌법을 바꾸지 않아도 정치·경제·사회 등 우리나라의 주요 기능은 탈없이 돌아간다고 힘줘 말했다.

“그것 때문에 실업자가 생기나? 외국과의 동반자 관계 구축이 안 되나? 김정일이 대화를 망설이나? 잘못된 것도 없는데 급한 현안 놔두고 개헌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불순하고 불명확한 의도다.”

이 인사는 당시 한나라당 내 비주류 수장이던 박근혜 의원의 최측근이자 좌장 반열에 있었기에 박 의원의 의중을 가늠해보는 잣대가 됐다. 이때는 박 의원이 세종시 수정안 처리를 놓고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정치생명을 건 파워게임에 나설때다. 친박계는 그 와중에 제기된 개헌론을 청와대의 ‘박근혜 죽이기’로 간주했다. 그래서 결사반대의 항전 태세를 취했다.

4년이 지난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취지는 다르지만 기조는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2014년 1월 7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이라는 것은 워낙 큰 이슈이기 때문에 한번 시작되면 블랙홀같이 모두 빠져들어 이것저것 할 그것(엄두)을 못 낸다”고 말했다. “경제회복의 불씨가 조금 살아나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갖고 국민과 힘을 합해 민생을 안정시키고 경제가 궤도에 딱 오르게 해야 할 시점에 나라가 막 다른 생각 없이 여기에 빨려들면 경제회복의 불씨도 꺼지고 경제회복도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현 시점에서의 개헌 논의 반대입장은 거의 1년이 지나도록 변함없이 이어졌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내놓은 ‘4년중임제’ 공약이 무색할 정도다. 경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박 대통령의 개헌 논의 유보입장에 변화가 없을 것이다. 덩달아 여권 내 친박계 인사들도 개헌 논의 불가 쪽으로 확 돌아선 상태다.

국무위원도 학자 시절에는 개헌론자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들이 11월 10일 여야 의원들로 구성된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의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대표적 개헌론자다. 그 역시도 10월 16일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가 봇물이 터질 것”이라고 말했다가 하루 만에 사과와 함께 자신의 발언을 주워담았다. 본전도 못 건졌다. 청와대와 친박계의 날 선 비판 기류에 굴복했다. 그럼에도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당 대표 되시는 분이 실수로 (개헌을) 언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김 대표를 거듭 때렸다. 이 관계자는 “지금 국가가 장기적으로 보다 나은 상태로 가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 그게 과연 개헌 이야기냐, 저희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말로 개헌론 저지에 쐐기를 박고자 했다.

여권발 개헌론은 늦가을에 벌써 동면기에 접어드는 양상이다. 권력 핵심부가 일제히 나서 개헌론에 냉기를 불어넣은 결과다.

이와는 반대로, 여론과 정치권은 개헌에 무게를 실어준다. 11월 7~8일 실시된 <중앙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행 5년 단임제를 바꾸는 개헌에 대해 57.3%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필요 없다는 입장은 40.3%에 그쳤다. 국회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에 150여 명의 국회의원이 참여하고, 언론사 설문조사에서는 국회의원 230여 명이 개헌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개헌안의 국회 통과 기준인 재적의원 3분의 2를 채우고도 남는다. 이런 환경에서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10월 20일 “제왕적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국회 개헌 논의를 틀어막을 순 없다”고 박 대통령을 비난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사실상 개헌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것으로 간주, “의회주의를 위협하는 위험한 처사”라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현행 헌법은 1987년 체제의 상징이다. 지식정보사회로 급진전한 한국 사회의 현실에 맞게 손봐야 한다는 연구와 논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국회만 해도 18대 국회의장 직속 ‘헌법연구자문위원회’, 19대 국회의장 직속의 ‘헌법개정자문위원회’가 가동됐다. 학계에서는 경제 조항을 비롯해 영토 조항, 통일 조항, 평화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했다. 국회의원들의 관심사는 권력구조로 압축됐다.

정치권에서는 5년단임제의 모든 대통령이 실패로 끝났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승자독식 구조가 무한대결 의식을 부추겼다. 단임제는 조기 레임덕을 부르고 책임정치의 실종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분권형 권력구조를 말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만해도 입각 전 서울대 교수 시절에는 대표적인 분권적 개헌론자였다. 그는 우리 헌법이 승자독식 구조여서 갈등이 양산되는 상황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의 분산이 필요하다고 했다. 올 4월만 해도 국회 개헌 연구모임에서도 강연하는 등 개헌론 전파에 열심이었다. 이제 박근혜 정부의 일원이 됨으로써 학자로서의 소신을 잠시 유보한 상태일 뿐이다.

과거 개헌의 최대 걸림돌의 하나였던 강력한 차기 대선 주자군이 아직 형성되기 전이다. 이명박 정부의 박근혜 의원같이 독주 체제를 갖춘 후보군이 없다는 점도 개헌론에 힘을 보탠다. 대중의 높은 지지를 받는 유력주자가 대통령제를 선호하면 권력독점에 비판적인 유권자도 그 주자에 동조하는 현상도 나타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론을 반전시킬 그런 인물이 없다.

개헌 불가론과 개헌론이 팽팽히 맞서는 게 2014년 한국 정치권의 자화상이다. 이와 관련해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개헌이 성공하기 위한 요건으로 대통령의 의지, 여론의 지지, 야당의 호응도 등 3가지 요소를 든다. 그는 “현상을 놓고 볼 때 여론의 지지와 야당의 호응에도 불구하고 개헌 논의가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는 것은 대통령의 반대 의사가 워낙 확고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통령의 스탠스와는 별개로 개헌 논의가 실질적인 진전을 보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개헌론자들 사이에서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의견이 제각각인 점을 들 수 있다.

대통령 직선제를 향한 뜨거운 열망


10월 29일 국회 시정연설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와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 등과 회동했다. 박 대통령은 현 시점에서의 개헌 논의에 부정적이다.
개헌에 동의하든 말든 권력구조와 관련해서는 두 갈래로 나뉜다. 권력 집중을 선호하는 쪽과 권력 분산을 선호하는 쪽이다. 집중을 선호하는 이들은 순수 대통령제를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새누리당에서는 김문수 보수혁신특위 위원장(현행 헌법은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위대한 헌법)이 대표적이다. 야당에서는 문재인 의원(2012년 대선 당시 4년 중임제와 정부통령제 공약), 박원순 서울시장(4년 중임제),안철수 의원(우리나라는 대통령제가 기반이 돼야) 등을 들 수 있다.

정치권의 다수는 권력 분산을 선호한다.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제), 정몽준 전 의원, 이재오 의원, 정의화 국회의장, 김태호 최고위원, 남경필 경기지사 등이 분권 지지자로 분류된다. 김 대표는 10월 16일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제를 대안으로 언급한 바 있다. 정 전 의원은 지난 2월 “경제에 어려움이 있으니 이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지만 국회가 개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게 경제를 살리는 데 부담되는 일은 아니다”며 개헌 논의 불가론을 반박했다. 이재오 의원과 김태호 최고위원은 공히 분권형 대통령제를 말한다.새정치민주연합도 정세균 의원, 박지원 의원, 우윤근 원내대표 등 당 중진 인사들이 권력 분산론에 대거 합류한 상태다.

정치권과 국민여론이 꼭 동행하는 것만은 아니다. 국민들은 대통령 중심제를 압도적으로 지지한다. 앞서의 〈중앙일보〉 조사결과에 따르면 개헌 시 바람직한 권력구조 형태로는 4년중임제가 44.7%로 가장 많았다. 김무성 대표가 언급한 이원집정부제는 9.7%, 또 내각책임제는 9.3%에 머물렀다.반면 현행 5년단임 대통령제를 33.8%가 지지하는 등 다수의 국민은 대통령에게 권한을 부여되기를 바란다.

권력이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쏠림으로써 여러 부작용을 야기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하지만 그런 부작용과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은 권력의 분산에 거부반응을 보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의회가 지금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갖는 구조(이원집정제, 내각제)에 대해서는 국민들은 아직 생소하고 못 미더워한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결여된 결과”라며 이렇게 진단했다. “이원집정부제는 국정을 의회 다수파의 대표인 총리가 관장하는 체제다. 내각제는 아예 총리가 전권을 행사한다. 결국 국회의원들이 행정을 책임진다는 말이다. 현재 국회에서 제기되는 개헌론은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 극복을 명분으로 하지만 국민의 눈에는 의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권력구조를 만들려는 의도로 와 닿는다. 국회의 권한 강화는 정당의 정파적 이익에 기여한다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국민은 대통령제를 선호한다.”

국민들이 개헌이나 권력구조에 대해 전문적인 판단을 하고서 여론조사에 응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선험적으로 행정 수반은 직접 뽑아야 한다는 열망이 한국사회에 내재돼 있다. 이런 요인들까지 겹쳐져 권력집중을 뜻하는 대통령중심제가 더 광범위한 지지층을 형성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국민 다수는 개헌에 찬성하면서도 대통령중심제의 근간을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헌론이 국민의 피부 속과 뼛속까지 스며드는 철저한 단계로 진입을 못했다는 말과도 같다.

분권형 대통령제와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이 의회에서 선출하는 총리와 권력을 나눠가진다는 데서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하지만 외부에 비치는 이미지는 확연히 구분된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권한의 집중을 완화하는 제도라는 느낌을 준다. 반면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과 총리로 권력이 양분된다는 인상이 강하다. 앞서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제 지지율이 높게 나왔듯이 분권형 대통령제로 물을 때와 이원집정부제로 묻는 경우의 지지율은 달라진다.

비박계, 의회 장악하면 총리 먹는다


6월 12일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4주년 기념식’에서 안철수·김한길·문재인 의원이 한 테이블에 앉아 있다. 뒤편 테이블엔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희호 여사 옆에 자리 잡았다. 야당도 개헌에 대한 생각이 제각각이다.
각 주체의 소신을 이해득실의 잣대로 다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유형별 공통점을 분류해보면 집단으로서의 성향과 계산은 짚어볼 수 있다.

청와대와 친박계에 기본적으로 권력구조의 변화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미래권력에 대한 얘기다. 결국 현재권력인 대통령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알기에 개헌론을 배격한다.

개헌은 통상 현상타파를 통해 새 기회를 잡으려는 쪽에서 제기한다. 지금 당장 개헌론에 불이 붙는다면 정치의 중심축은 권력구조를 논의하는 국회로 옮겨가고 청와대는 국민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다. 또 온갖 분야의 이익당사자들이 개헌 논의 과정에서 민원을 제기하는 등 들고일어날 개연성이 다분하다. 결국 조기 레임덕을 유발할 수 있기에 집권 초인 2년 차에 개헌론에 흔쾌히 동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역사적으로도 개헌은 주장하는 쪽의 요구가 좌절되는 경우가 많았다. 1990년 3당 합당,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 연대 공히 내각제를 공통분모로 성사됐지만. 결국 약속파기와 함께 개헌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개헌에는 소극적이면서도 집권의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지적에 시달려야 했다.

새누리당 내의 비박계는 딱히 압도적인 후보라 할 인물이 없다. 여당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김무성 대표도 경쟁자들에 견줘 월등한 우위를 점한 정도는 아니다. 먼저 정치를 오래 해온 김 대표 등 당 중진들은 87년 헌법 이후 권력을 독점한 대통령의 말로를 줄곧 봐왔기에 대통령중심제에 넌더리가 났을 수도 있다. 비박계 입장에서는 권력 획득 측면에서 보자면 의회만 장악하면 총리를 가져올 수 있어 분권형 대통령제가 매력적일 수 있다. 민 정치컨설팅의 윤희웅 여론분석센터장은 “친박계도 당을 접수한 비박계가 총리 등 권력을 독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권형 개헌에 호응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권에 실패한 야당은 명분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개헌 쪽으로 큰 흐름이 잡히는 상황이라면 명분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개헌 논의에 반기를 들지 못한다. 대선 잠룡들도 개헌 지지 여론이 우세한 요즘 자칫 잘못 말했다가는 권력을 독식하려는 욕심쟁이로 몰릴 수도 있다.

야권의 선두주자격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4년중임제를 거론했다. 11월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5년단임제는 레임덕이 빨리 오고 지속적인 정책추진도 어렵다”면서 “4년중임제로 바꾸자는 게 국민 다수의 생각”이라고 개헌론에 가세했다. 안철수 의원은 “국회 신뢰가 바닥인데 내각제를 한다면 국민이 얼마나 받아들이겠냐”며 현행 대통령 중심제에 방점을 뒀다.

박 시장이나 안 의원은 국민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기성정당과는 차별화된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으로서의 강점이있다. 대통령제를 고수하는 것도 본인들이 꼭 대선 주자로서의 가능성을 의식했다기 보다는 분권형 권력구조에 시큰둥한 국민을 고려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여와 야를 막론하고 특정 주자와 긴밀히 연계되지 않은 의원들은 분권형에 호감을 갖게 마련이다. 분권형 권력구조는 대통령의 권한 축소를 전제로 한다. 대통령의 공천 개입이나 검찰의 사정 등 권력기관의 정치화를 막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현역 의원의 재선 가능성을 높이는 데도 분권형 권력구조가 유리하기에 많은 의원들이 분권형 개헌 대열에 속속 합류한다.

여야 모두 다음 대선의 향배를 점치기 어려운 상황에서 권력을 공유하고픈 유혹을 받는다. 최근 두 번의 대선에서 승리한 새누리당은 2017년 대선마저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야당도 대선을 포함해 주요 선거에서 연패를 당함으로써 단독집권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다. 한쪽에 가혹한 패배를 강요하는 5년단임제보다는 대통령과 총리가 행정권을 공동 행사하는 분권형 권력구조가 여야에 더 만족스러운 제도임에 분명하다.

국익 위한 결단 내리기엔 대통령제가 낫다


1987년 6월 29일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오후 이 내용을 보도한 중앙일보(당시 석간)를 시민들이 읽고 있다.
반면, 각종 단점에도 불구하고 현행 5년단임제가 한국의 현실에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2006년 장문의 연설에서 “헌법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며 개헌불가론을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제기된 개헌론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온 주장이지만 대법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그가 사법과 행정을 두루 경험한 뒤 내련 결론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이 전 총재는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국정의 어려움은 헌법이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국정운용이 미숙하거나 정치를 잘못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했다. 특히 “제도 운용의 문제를 제도 자체의 탓으로 돌리고 너무 쉽게 제도만 고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국은 1948년 헌법을 제정한 뒤로 1987년 개헌에 이르기까지 모두 8차례 헌법을 고치는 등 정치적 후진성을 보여왔다. 하지만 1987년 개헌 이후에는 개정 없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왔으며, 이는 정치적으로 민주화 이후의 시기와 겹친다는 게 이 전 총재의 믿음이었다. 그는 현행 대통령제의 장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국회의원과 정당은 지역구의 여론과 압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일부 여론이나 이익단체 등의 압력에 구애받지 않고 국가이익과 국민복리를 위한 정책과 국가방향을 결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제가 더 낫다.”

요즘 현실정치인 중에서 이런 주장을 내놓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김문수 위원장 등 손에 꼽을 정도다. 대중의 지지를 먹고 사는 입장에서 자칫 시대 요구에 둔감하다는 역공을 받기 십상이다. ‘분권형 개헌’에 반대하는 정치인은 심지어 권력을 독점적으로 행사하고 싶어하는 대권욕에 물든 사람쯤으로 매도당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원 다수가 이원집정제를 선호하는 마당에 대통령중심제를 주장하는 대선 주자는 자기 이해득실을 따진다는 비판에 노출될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재단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국민은 아직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행정수반을 직접 뽑겠다는 열망이 강하다. 이는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같은 헌법학자인 정종섭 안행부 장관은 교수시절 줄기차게 개헌을 강조했다. 그는 2009년 발표문에서 “국가의 중요한 자리에 자신을 추종하는 이너서클의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하여 대통령의 독주에 대해서는 견제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대안으로 정부 운영에서는 행정수반이 실권을 가지고 대통령은 상징적인 권한을 가지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제시했다. 이런 류의 주장이 나오자 친박계의 핵심인사는 “헌법 때문에 우리나라가 잘못되는 게 도대체 뭔가”라며 따져 물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 두 사람이 박근혜 정부라는 한배를 탔다. 대한민국에서 개헌 논의가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한가를 잘 보여준다.

201412호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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