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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 요우커(遊客) 한국러시… 웃는 사람 따로 있었네! - 재주도 왕서방이 부리고 돈도 왕서방이 번다 

인바운드 관광 국내 여행업계 “노 투어피 중국 관광객 남는 것 없는 장사” 하소연… 조선족·화교 여행사, 판매점, 가이드들은 ‘대박’ 

허균 월간중앙 인턴기자

10월 초 중국 국경절 연휴를 맞아 한국을 대거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서울 종로구 경복궁 경내를 둘러보고 있다.
“이 바닥에선 한국사람 찾아보기 어렵죠.” 서울 경복궁 주차장에서 만난 조선족 가이드 이모(34·여) 씨가 말했다. 그는 마포구 소재 모 여행사 소속의 관광가이드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한 조선족 언니가 지난해 여행사 문을 열어 함께 일하고 있다. 이씨는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여행사에서 일하거나 가이드 일을 하는 조선족도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인 관광객 40여 명을 인솔해서 경복궁 관광을 마친 후 버스에 막 오르던 참이었다. 그가 뒤따라오는 관광객들을 향해 중국어로 다음 일정을 설명했다. “저녁식사 하기 전에 잠깐 인삼판매점을 들르겠습니다. (…)중국에서 사는 한국 인삼은 다 가짜예요. 한국 인삼은 꼭 한국에서 사는 게 좋습니다.” 관광객들이 모두 버스에 오른 것을 확인하고 나서 이씨가 기자에게 말했다. “중국어 가이드들은 관광 안내뿐 아니라 기념품 판매까지 책임져야 하거든요.”

버스를 타고 10여 분 거리인 마포구의 한 인삼판매점에 도착했다. 판매점 안에 들어서자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는 온통 중국말이다. 제품 판매원 중에 중국어가 조금 서툴러 보이는 한국인이 몇 있을 뿐이다. 쇼핑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중국인 관광객들이 이렇게 말한다. “한국으로 여행 온 건지 중국으로 여행 온 건지 잘 모르겠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중국인 관광객 약 468만 명이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5% 증가한 수다. 이 추세라면 올해 말에는 사상 처음으로 중국인 관광객 수가 6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관광객인 요우커(旅客)들이 돈보따리를 들고 쏟아져 들어오는데도 국내 여행업계와 종사자들의 표정은 잔뜩 흐려 있다.

정모(66·마포구) 씨는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는 인바운드 여행사를 10년 넘게 운영해오고 있다. 그는 주변에서 ‘중국 관광객들 덕분에 재미 좀 보겠다’는 인사말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화가 날 지경이다. 늘어난 조선족 여행사들과 경쟁에서 밀려 결국 중국인 관광사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중국인 송출여행사들이 여행경비는 주지 않고 관광객만 보내주는 이른바 ‘노 투어피’(관광객을 모객한 중국 여행사로부터 국내 여행경비를 받지 않는 거래 형태) 관행이 굳어지면서 중국인 인바운드 관광업은 속 빈 강정이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2년 전까지 중국인 관광객을 받아 영업을 했지만 지금은 깨끗이 손 털고 동남아 지역 관광객들로 눈을 돌렸다. 그는 “몇번 노 투어 피로 단체 관광객을 받아보았지만 결국 손해만 보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조선족과 화교들 얼굴만 희색?


서울 창천동 외국인전용 기념품판매점 앞에 버스가 줄지어 서 있다. 서대문구와 마포구 두 지역에 60여 곳의 기념품판매점이 몰려 있다.
실제로 중국 인바운드 관광(국내 여행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관광)업계에서 내국인이 경영하는 여행업체들은 큰 재미를 못 본다. 한국여행업협회(KATA)에 따르면 국내에서 중국 관광객 유치 인원이 가장 많은 10개 여행사 중에 내국인이 대표인 곳은 대형 여행사인 하나투어·모두투어·롯데관광개발의 자회사 세 곳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화교·조선족이 운영하는 여행사로 나타났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중국인 관광객 유치 분야 우수 여행사 3곳도 모두 중국계가 차지했다.

국내 업체가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고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언어 장벽 때문이다. 조선족 여행사 대표 이모(40·마포구)씨는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중국 현지에서 여행사들과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거래처 사람들과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친밀하게 소통해야 하는데 한국인들이 하는 중국어로는 쉬운 일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조선족 여행사 대표 안모(38·인천 연수구) 씨는 “한국인들이 중국에 갖고 있는 모종의 우월감이 비즈니스의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했다. 그는 “중국 여행사는 현지에서 관광객을 직접 모객하기 때문에 갑의 입장인데도, 한국 사람들은 중국인을 깔 보고 웬만해선 자기를 낮추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화교보다 조선족 출신이 여행사를 더 많이 차리는 추세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화교보다 중국에서 20~30년 간 살다 온 조선족들은 넓은 현지 인맥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중국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이른바 ‘ 꽌시(關係)’ 때문이다. 구로구에서 10년째 여행사를 운영해온 조선족 박모(48·여) 씨는 “중국 인바운드 관광업은 인맥싸움”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현지에 인맥이 있으면 직원 두세 명을 둔 소규모 여행사로도 한 달에 1천 명 정도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 중국에 친척이나 아는 사람이 있는 조선족들 중에 여행사를 차리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반면 외국인전용 기념품판매업은 화교들이 앞선다. 기념품 판매점은 여행사에 비하면 초기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많게는 수억 원에 달하는 큰돈이 들기 때문에 조선족보다 자금 사정이 나은 화교들이 운영하는 곳이 많다. 외국인전용 기념품판매점은 여행사와 연계돼 관광객들이 관광 일정에서 꼭 들러가는 곳이다. 주로 요우커들이 많이 찾는 인삼이나 화장품, 건강기능 개선 식품 등을 판매한다. 주변에 관광지가 없는데도 관광버스가 줄지어 서 있다면, 십중팔구 요우커들이 근처 기념품판매점에서 쇼핑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중국어 관광가이드 시장은 조선족들이 ‘대세’

C인삼판매점 대표 이모(59) 씨는 20여 년 전부터 외국인전용 기념품판매점을 운영해왔다. 그는 “중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기념품판매점이 많이 문을 열었다. 새로 개업한 곳을 보면 십중팔구가 화교나 조선족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2014년 2분기 기준 서울 시내에는 100개가량의 기념품판매점이 있다. 요우커들이 가장 많이 찾는 연남동 화교타운을 포함해 서대문구와 마포구 두 지역에 60여 곳의 기념품판매점이 몰려 있다.

요우커들이 붐비는 곳에는 어김없이 중국계 자본이 몰려든다. 요우커들이 점령하다시피 한 제주시 ‘바오젠 거리’가 대표적이다. 원래 이곳은 근처의 오래된 아파트 이름을 따서 ‘제원아파트’라고 불리던 동네 상권이었다. 하지만 2011년에 중국 기업 바오젠 그룹의 대규모 관광단이 이곳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중국인 특화거리로 거듭났다. 지금은 요우커를 대상으로 한 화장품 가게가 20곳 이상 생겼고, 주변의 음식점·옷가게들 대부분 중국인을 상대로 장사한다.

중국인이 몰리자 중국 자본이 부동산 투자에 나섰다. 제주도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 내 외국인 취득 토지의 면적은 1373만8천㎡에 달했다. 이 중 43%(592만2천㎡)가 중국인 소유다. 공시지가로 따지면 2009년 4억원에서 올해 5807억원으로 5년 새 무려 1450배나 올랐다. 바오젠 거리의 건물값도 2년 전 4억~5억원 하던 게 요즘은 15억원을 호가하고, 상가 권리금도 2년 전 보다 두 배 이상 올라 2억원을 넘어섰다. 건물 소유주가 중국인으로 바뀌어 권리금을 한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난 상인도 적지 않다고 한다.

서울의 중국인 상권도 마찬가지다. 중국인을 상대하는 기념품판매점이 몰려 있는 마포구의 예를 보자. 서울시에 따르면 마포구 중국인 토지 취득 현황은 2012년 3월 2410㎡에서 올 3월엔 5789㎡로 2년 새 갑절 이상 늘었다. 서울 시내 중국인 토지 거래 건수도 2012년 187건에서 지난해 463건으로 두 배 이상 늘더니, 올해엔 상반기에만 벌써 352건을 기록했다.

중국어 관광가이드 시장은 조선족들이 점령했다. 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 합격인원은 2011년 370명에서 2013년 1160명으로 2년 새 3배 이상으로 늘었는데, 이 중에 상당수가 조선족들 차지로 짐작된다. 종로구 인사동의 H어학원 관계자는 “조선족 학생들이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 시험에 관심이 많다”며 “우리 학원의 경우 조선족과 한국인 학생이 7대 3 비율로 조선족이 오히려 많다”고 말했다.

여행사들도 한국인 가이드보다 조선족을 더 선호한다. 중국어에 능통하고 중국인과 친화력이 좋아서다. 물건 잘 팔기로 소문난 일부 조선족 가이드는 월 1천만원이 넘는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한국인 가이드는 역사 유적이나 관광지를 해설하는 안내자로선 손색이 없지만 쇼핑을 부추겨 수익을 올리는 수완이 뒤쳐진다. 조선족 여행사 대표 안모(38·인천 연수구) 씨는 “한국인 가이드는 중국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중국 사정을 잘 모르다 보니 인간적인 소통이 안 된다”며 “일부 한국인 가이드는 중국인 관광객이 욕을 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럴 경우 관광객들이 가이드를 얕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쇼핑 영업에 치중하다 보니 일부 여행사가 무자격 가이드를 고용하는 일도 벌어진다. 한국인 가이드 전모(37·강서구) 씨는 행사가 없어 쉬고 있다가 한 기념품판매점으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내일 단체 관광객을 인솔하고 방문하느냐”고 묻는 전화였다. 내일은 일정이 없는 날이었다. 알고 보니 한 여행사에서 전씨가 과거에 제출했던 통역안내사 자격증 사본으로 무자격 가이드에게 전씨 행세를 하도록 한 것이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들 무자격 가이드는 대부분 조선족들이다. 중국어가 유창하고 쇼핑 실적을 올리는 데 뛰어나지만 한국의 역사와 문화·유적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얻지 못한 경우가 많다.

한국관광 얼굴에 먹칠하는 ‘쇼핑수수료’


지난 4월 10일 오후 제주시 바오젠 거리에서 상가 세입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바오젠 거리 내 상가 세입자의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쇼핑 수입에 의존하는 여행업계의 병폐는 가이드의 자질 저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부 관광가이드는 쇼핑 수입이 시원치 않으면 태업을 벌여 관광객들의 불만을 사기도 한다. 중국인 C씨는 지난해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을 여행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관광객들이 인삼을 적게 산다며 가이드가 안내를 거부한 채 버스에서 내리지 않은 것이다. 귀국 후 C씨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다”며 한국관광공사에 신고했다. 결국 해당 가이드는 징계처분을 받았지만 관계자들은 이런 해프닝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통역안내사협회 남완우 사무국장은 “급증하는 중국인 관광객 수에 맞춰 가이드 수를 조급하게 늘리다 보니 자격증이 있는 가이드들의 자질까지 떨어진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11월 6일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열린 ‘서울관광설명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중국여행사 관계자에게 서울관광을 홍보하고 있다.
무자격 가이드에 대한 관광당국의 대처는 미온적이다. 지난해 출범한 서울시 관광경찰은 작년 10월부터 올해 10월까지 무자격 가이드를 368건 단속하는 데 그쳤다. 통역안내사협회도 올 들어 세 차례 지자체와 합동단속을 벌였지만 적발 건수는 29건에 불과했다. 남 사무국장은 “10월 단속에서 임의로 선택한 가이드 34명 중 12명이 무자격 가이드일 정도로 무자격자의 비율이 높다”며 “무자격 가이드를 근절하기가 버거울 만큼 넓게 퍼져 있다”고 말했다.

중국 인바운드 관광 시장은 애당초 한국 여행업자들이 주도하던 시장은 아니었다. 처음엔 화교 여행사들이 주축이었다. 이들은 1990년대 이전부터 대만 관광객을 유치해온 터라 중화권 고객을 상대하는 노하우가 남달랐다. 중국어 관광가이드나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기념품판매점 등도 원래는 화교들이 장악했던 사업이다. 그래도 국내 여행사가 어느 정도 시장을 나눌 암묵적인 룰은 있었다. 그런데 요우커 러시와 함께 조선족들의 시장진출이 늘어나면서 혼탁한 경쟁이 벌어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C여행사 정모(66·마포구) 대표는 “중국 여행사들이 여행경비를 정상적으로 보내줬을 때만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최근 3~4년 새 조선족 여행사가 크게 늘어나면서 출혈을 무릅쓴 유치 경쟁이 심화했다”며 “여행경비를 아예 받지 않는 덤핑경쟁이 벌어지면서 쇼핑 수수료 관행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가이드 정모(60) 씨도 “모르는 사람들은 제 밥그릇 뺏기니까 하는 소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인바운드 관광 산업은 한국의 맨 얼굴을 외국인들에게 보여주는 중요한 일”이라며 “여행사든 가이드든 최소한 한국을 내 나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일해야 할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업계에서는 조선족 대표가 운영하는 H여행사를 중국인 관광 인바운드 시장을 어지럽힌 주범으로 지목한다. H여행사는 사실상 ‘마이너스 투어피의 원조’이며 파격적 계약 조건을 바탕으로 2년 전쯤부터 요우커들을 독점하다시피 해왔다고 알려졌다.

일반적으로는 해외에서 국내로 단체 여행객이 오면, 여행객을 모객해 보내는 송출여행사가 현지 국내 여행사에게 숙박비·식비·관광지입장료 등 여행 경비를 지불하게 된다. 그러면 현지 여행사는 이 돈을 이용해 호텔과 식당을 예약한 뒤 나중에 관광객을 인솔해 관광지를 안내한다. 헌데 ‘마이너스 투어피’가 되면 인두세격으로 송출여행사가 도리어 현지 여행사로부터 돈을 받게 되는 왜곡된 구조가 나타난다. 현지 여행사는 자기 돈으로 호텔과 식당을 예약하는 대신 쇼핑 수수료로 이 손해를 메우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중국 송출여행사 입장에서는 여행 경비를 보내주기는커녕 오히려 추가로 수입을 얻으니 상품 가격 자체를 낮춰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저가 덤핑 관광은 백약이 무효?

국내 대형여행사의 한 관계자는 “당시 국내 여행사들 사이에서는 경쟁을 하더라도 여행경비를 받지 않는 것까지가 마지노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H여행사가 거꾸로 관광객 1인당 500위안씩을 주겠다고 덤핑을 쳐서 중국인 관광객을 싹쓸이 해갔다”고 주장했다. H여행사가 한창 물량을 확보할 무렵엔 4박5일 제주도 여행상품이 중국에서 30만원대에 팔리기도 했다. 제주관광공사 부설연구소에 따르면 2013년 10월 기준 북경·제주 여행상품의 평균 가격은 75만원이었다.

결국 H여행사는 지난 8월 중국 단체관광객 유치 전담여행사(이하 중국전담여행사) 지정이 취소됐다. 현재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원칙적으로 H여행사는 앞으로는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수 없는 처지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H여행사가 중국 관광객 유치 업무를 포기하고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 이라는 의견이 많다. 여행사들 사이에서는 중국전담여행사 명의를 빌려주는 일이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담여행사 제도는 잘 유지되면 여행사 간 과도한 경쟁을 방지하면서 관광상품의 질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서로 명의를 빌려주거나 빌리게 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검증되지 않은 여행사들이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년 전부터 여행업을 시작했다는 김모(42·중구) 씨는 “어떤 여행사는 사무실에 사장 한 명만 있는데 중국전담여행사 명의를 여러 개 갖고 필요한 여행사에게 대여해주기도 한다” 면서 “H여행사의 경우도 다른 중국전담여행사가 행사를 유치한 것처럼 꾸민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내부고발자가 없는 이상 적발이 어렵다. 누가 여행경비를 부담했으며 누가 쇼핑수수료를 챙겼는지 자금 흐름을 추적해야 하는데, 여행사들 규모가 대부분 영세해 현금 거래가 이뤄지면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중국 정부 차원에서도 저가 덤핑 관광 관행을 근절하려는 시도가 있기는 했다. 자국의 관광객이 돈을 들이면서도 한국에서 푸대접을 받는 꼴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중국 정부는 관광객과 관광사업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관광산업 전반을 체계화한다는 취지로 중화인민공화국여유법(이하 여유법)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쇼핑 강요가 금지되고, 중국여행사가 여행경비를 정상적으로 지급하도록 했다. 덕분에 저가 관광상품이 잠깐 동안 자취를 감췄지만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못 했다.

한국관광문화연구원 최경은 연구원이 펴낸 ‘중국 여유법 시행 이후 관광 동향 분석 및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여유법 시행 이전 평균 75만원이던 방한 여행상품 가격이 시행 직후 91만원으로 올랐다. 대부분의 상품에서 쇼핑 일정도 사라졌다. 여유법 시행 이전 인삼판매점을 거쳐가는 여행 상품 비율이 88%였는데 이 법이 시행된 뒤에는 3%로 급감했다.하지만 12월 중국 정부가 쇼핑과 옵션 투어를 여행자가 별도 계약으로 선택할 수 있게 허용하자 시장은 다시 원래의 저가 관광구조로 돌아갔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전년 동기보다 감소했는데 여유법 시행 직후인 같은 해 4분기에는 2012년 동기 대비 83%나 증가했다. 최 연구원은 당시 여유법 시행으로 한국·태국·홍콩·대만 여행상품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일본이 반사이익을 얻은 것으로 해석했다. 일본은 애초에 저가 관광 행태가 만연하지 않아 여유법 시행 후에도 가격 오름폭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요우커들을 모객한 중국여행사들은 국내 여행사의 입장에선 ‘수퍼 갑’이다. 한 여행사 대표가 전하는 중국 여행사와 거래 방법의 실상이다.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와 ‘언제쯤 500명 단체가 가는데 노 투어피로 행사하겠느냐?’고 대뜸 묻습니다. 우리가 ‘여행경비를 1박당 1만∼2만원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면 두말 않고 전화를 끊어요. 결정권은 중국 여행사 손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협상할 여지조차 없는 겁니다.”

중국인 인바운드 관광시장에서의 경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국내 대형여행사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조선족 업자들을 중심으로 영세 여행사들이 난립하는 게 문제였다면 앞으로는 중국계 대형 여행사의 국내 진출이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씨트립, CTS(China Travel Service), CITS(China International Travel Service) 등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메이저 여행사들이 한국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더 ‘센 놈’들이 몰려온다!

그는 “중국의 메이저 여행사들이 직접 한국에 진출해 국내 현지 여행사의 역할까지 빼앗는다면 기존의 국내 여행사들의 파이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우려감을 나타냈다. 더구나 이들 여행사는 국내 여행사들이 그동안 쇼핑 수수료에 목매지 않고 중국 관광객들을 받을 수 있었던 모범 파트너들이었던 터라 아쉬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중국 대형여행사들의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국내 여행업계로서는 요우커 열풍 속에서 더 혹독한 추위를 만나야 할지도 모른다. 하나투어, 모두투어, 롯데관광개발 등 국내의 대형여행사들도 중국 대형여행사들의 자본과 규모를 따라가지 못한다.

중국 국영 여행사인 CTS는 오래전에 한국시장에 진출했다. 2003년에 자회사인 CTS코리아가 중국전담여행사 지정까지 받아 중국 관광객을 직접 받고 있다. 씨트립은 중국 내 최대 온라인 여행사로, 나스닥에도 상장된 거물이다. 올해 7월 한국에 씨트립코리아를 설립하면서 국내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업계에선 씨트립코리아도 2~3년 안에 중국전담여행사 지정을 받아 본사에서 송출하는 요우커들을 스스로 소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씨트립은 온라인 여행사인 탓에 FIT(개별관광)나 에어텔(항공기와 호텔만 예약해주는 여행상품) 등에 강점이 있는데, 최근엔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도 단체 패키지보다는 개별관광으로 돌아서는 추세라서 전도가 유망하다.

중국 최대 부동산 재벌인 다롄 완다(大連萬達) 그룹도 지난해부터 여행사를 잇달아 사들이고, 알리바바는 올해 10월 온라인 여행사 브랜드 ‘알리트립’을 새로 론칭했다. 다롄 완다는 한 해 영업이익이 26조원에 달한다. 알리바바의 주가 총액은 287조원으로 미국 나스닥 시총 순위 11위에 올라 있다. 이들이 해외 여행업계 진출을 모색하면서 한국 여행업체도 위기감이 감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의 지역 여행사들이 가세해 국내에 지사를 설치하면서 한국 관광시장의 틈새를 노리고 있다. 국내 여행사와 협상 우위를 점하는 게 이들의 목적이다.

모든 상황이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중국인들의 한국 관광에는 작지만 의미 있는 분위기 변화도 감지된다. 개별 여행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한두 번 한국을 다녀간 관광객들이 다소 비싸지만 잘 기획된 여행 상품을 찾아 한국을 다시 찾는 사례도 늘어간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2년 개별관광비자로 한국을 찾은 중국인은 60만259명으로 전체의 39.2%에 그쳤지만 이듬해엔 77만1364명으로 전체의 42%를 차지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덤핑 관광의 폐해도 크게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도 여행사들의 시장교란 행위나 무자격 가이드 사용 등의 단속을 강화할 방침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국제관광과 왕기영 사무관은 “중국에서 30만원대 저가 여행상품이 버젓이 팔리는 상황에서 단속으론 한계가 있다”며 “저가 관광 구조를 바꾸기 위해 중국 측과 지속적으로 협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관광문화연구원 김현주 박사는 “중국의 잠재적인 관광 소비자는 관광 상품의 질과 가격에 대한 정보와 경험이 부족하다”며 “아직은 가격에 민감해 저가 상품을 선호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여행 상품에 대한 수요가 다양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412호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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