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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구 | ‘레고’와 ‘유적’이 만나 살아있는 박물관 꿈꾼다 

레고랜드 예정지 춘천 중도(中島)에 대규모 선사유적지 발굴… 관광객 유인효과와 역사적 가치 조화 이룰 묘수 될까 


▎강원도 춘천시 의암호 내에 위치한 중도는 1980년대부터 선사시대 유적의 ‘성지’로 불렸다. 레고랜드가 들어설 중도 전경. / 사진·중앙포토
지난해 7월 29일 문화재청의 발표가 국내 고고학계를 흥분에 빠뜨렸다. 강원도 춘천 의암호의 인공섬인 중도에서 한반도 최대 규모의 선사시대 유적지가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단 9개월 만에 1412기의 유적이 쏟아졌다. 학계는 환호했다. 중도는 섬 전체가 선사시대 유적이라고 짐작될 만큼 학계에서는 유적의 보고로 평가했다. 중도 유적을 체계적으로 조사해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레고 팬클럽에는 전 세계 300만 명의 회원이 소속돼 있다. 레고랜드 플로리다를 찾은 관광객들. / 사진·중앙포토
그러나 중도 유적 발굴 성과를 발표한 지 두 달 후, 학계의 환호성은 분노로 바뀌었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서 강원도가 신청한 중도 레고랜드 조성사업 심의를 조건부 승인해줬기 때문이다. 레고랜드 조성사업은 강원도가 심혈을 기울이는 외자유치 사업이다. 강원도와 레고랜드 조성사업을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법인(SPC) 엘엘개발은 2014년 11월 28일 기공식을 갖고 사업의 첫 삽을 떴다. 고고학계와 시민사회는 즉각 반발했다. ‘춘천 중도 고조선 유적지 보존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을 결성하고 보존 캠페인에 나섰다. 1월 5일에는 춘천지방법원에 공사중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미래 먹거리’ 레고랜드에 사활 건 강원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중도 유적의 고인돌무덤 중 36기의 이전 복원을 결정했다. 열을 맞춰 축조된 고인돌무덤군. / 사진제공·한강문화재연구원
9800여 명의 일자리 창출, 5조원의 생산유발효과, 연간 200만 명의 관광객 유치, 연평균 44억원의 세수효과를 가져다줄 레고랜드 사업은 시작부터 팽팽한 긴장이 감돌고 있다. 지역경제 기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강원도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태세다. 보존가치가 높은 대형 유적지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는 학계와 개발 반대진영의 요구도 만만치 않다. 문화재 보존과 지역 개발의 해묵은 갈등은 정녕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일 수밖에 없을까?

레고랜드를 국내에 유치하려는 시도는 김영삼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덴마크 레고그룹은 1996년 경기도 이천시에 레고랜드를 만들겠다고 한국 정부에 제안했다. 케엘커스 크리스천 센 레고그룹 회장이 직접 내한해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 2억 달러 투자 의지를 피력하고 우리 정부는 다양한 지원을 약속하는 등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듯했다. 그러나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개장될 예정이었던 한국의 레고랜드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이하 수정법)에 발목을 잡혔다. 수정법상 관광지 조성면적은 최대 6만㎡ 미만으로 제한되는데, 이는 레고랜드 부지로 계획됐던 60만㎡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레고랜드 조성이 불가능해지자 레고그룹은 발길을 독일로 돌렸다. 당시 레고랜드 유치 실패는 과도한 규제가 외자 유치를 막은 대표적 사례로 두고두고 회자됐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2008년, 레고랜드 라이선스를 보유한 멀린엔터테인먼트그룹(이하 멀린사)은 강원도에 러브콜을 보내 왔다. 멀린사가 지목한 레고랜드 조성지는 춘천시에 위치한 중도였다. 서울춘천고속도로, 경춘선 전철의 개통으로 수도권과 가까워졌고 섬이라는 매력적인 입지를 지녀 레고랜드를 설립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멀린사와 강원도가 투자합의각서(MOA)를 체결한 이후 양측의 협상은 물 흐르듯 순조롭게 이어졌다. 2013년 10월 29일, 본계약이 체결되며 드디어 사업이 가시권에 접어들었다.


▎둘레가 400m에 달하는 방형 환호는 중도 유적 발굴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환호와 그 안의 주거지 모습. / 사진제공·문화재청
강원도는 레고랜드 유치 의지가 높다. 재정을 충당할 자체 수입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강원도의 재정자립도는 22.2%로 전국 평균(44.8%)의 절반 수준이다. 자체 재정만으로는 공무원 인건비조차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레고랜드가 조성되면 호텔과 명품아울렛, 워터파크 등 부대시설이 함께 들어서 종합 관광타운으로 꾸밀 수 있게 된다. 방문자가 연간 200만 명에 이르고, 5조원의 생산유발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강원도 관계자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레고랜드를 중심으로 한 관광 인프라를 확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숫자로 드러난 것 이상의 경제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에 완공되면 이듬해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국제적으로 높은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도 레고랜드 개발을 서두르는 이유다.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사업이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중도 선사유적은 고고학계가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과제였다. 1977년 북한강 고대 생활유적을 조사하던 국립중앙박물관이 다수의 선사시대 매장문화재를 발견한 이래 중도에서는 1980년대에만 5차례의 발굴이 진행됐다. 중도 유적을 오랫동안 연구한 김권중 중부고고학연구소 소장은 “2000년대 중반 이후에도 강원문화재연구소 등 지역 기관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발굴조사가 진행돼왔다”며 “고고학자 대부분이 중도 전체가 유적이라고 짐작할 정도로 가치가 높은 곳”이라고 전했다.

청동기 역사 다시 쓸 유적의 보고


▎대형 주거지인 285호 집터에서는 서까래와 도리, 벽체로 추정되는 목탄흔이 나와 고고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 사진제공·문화재청
강원도와 엘엘개발도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2011년 8월 문화재청에 시굴허가 신청서를 냈고 그해 10월부터 시굴 조사에 착수했다. 시굴조사 결과 잔존상태가 좋은 매장문화재가 밀집된 것으로 판단되는 곳은 유적박물관과 야외전시 공간을 마련하고, 그 외 지역에 레고랜드를 조성하겠다는 대안도 마련했다. 김권중 소장은 “정밀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날 매장문화재의 수습방안과 그에 따른 비용까지 감안해 사업을 진행한 셈”이라며 “개발사업자로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꼼꼼히 챙겼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밀발굴조사를 통해 공개된 중도 유적은 강원도· 엘엘개발·고고학계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고인돌무덤(支石墓) 101기와 주거지 917기, 구덩이(竪穴) 355기, 고상가옥 9기, 경작유구, 환호 등 단일 유적지 중 역대 최대 규모였다. 학계에선 이를 고조선시대 ‘도시국가’ 규모의 유적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형구 선문대 고고학과 교수는 “900기가 넘는 주거지가 발견됐으니 가구당 최소 7~8명이 살았다고 가정하면 6천~7천 명의 주민이 거주한 대단위 취락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의 주장은 여러 견해 중 하나일 뿐이다. 일각에서는 중도의 주거지가 오랜 세월에 걸쳐 중첩된 점을 감안해 한 시기의 마을 규모는 100가구 정도에 불과했을 것으로도 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만한 규모의 선사 유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방대한 양뿐만이 아니었다. 발굴된 매장문화재의 가치도 여타 선사시대 유적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특히 중도 유적에서 나온 매장문화재 중 고고학계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둘레가 400m(내부 면적 1만㎡)에 달하는 대형 방형 환호(環濠: 마을 주변에 도랑을 파서 돌리는 시설물)의 존재다.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방형 환호는 중심 취락을 에워싸고 있으며, 그 안에는 지도자급의 주거지를 비롯해 창고, 공방, 제의장소, 경작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지도자의 주거지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형성된 청동기시대 마을의 구조와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이다.

강원도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된 대규모 고인돌무덤군도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남-북 방향으로 열을 맞춰 축조된 데다 크기별로 나란히 자리 잡고 있어 매장 당사자들의 신분을 알려주는 고인돌무덤군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고인돌무덤 중에는 한반도 중남부에서 자주 보이는 개석식뿐만 아니라 최근 진주 등 영남지역에서 나오는 묘역식이 함께 나타나 남만주와 한반도에서 발전한 고인돌 연구에도 중요한 가교역할을 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중도 유적의 평점을 91.77점으로 평가했다. 이는 원형보존 기준 평점(74.31점)을 훌쩍 넘는 것이다.

“유적 가치 무시한 조건부 승인” 비판


▎일반적으로 무덤에서 발굴되는 비파형동검이 처음으로 주거지에서 출토돼 고고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비파형 동검과 청동도끼. / 사진제공·문화재청
예상보다 높은 가치의 유물이 쏟아지자 강원도와 엘엘개발은 다급해졌다.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10조(보존 조치에 따른 건설공사 시행자의 의무 등)에 따르면 건설공사의 시행자는 문화재 보존에 필요한 조치를 통보받은 경우 그 조치를 완료하기 전에는 해당 지역에서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 공사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사업중단까지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벼랑끝에 몰린 엘엘개발은 서둘러 작성한 중도 유적 보존방안을 문화재위원회에 제출했다. 수차례 반려와 보완을 거듭한 끝에 지난해 9월 26일 조건부 승인이 떨어졌다.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위원회 제10차 회의록에 따르면 중도 유적에서 발굴된 환호와 주거지는 복토보존(원형 그대로 화학·경화 처리해 비닐로 덮은 뒤 해당 지역의 흙으로 다시 덮어놓는 것)하되 주요 매장문화재는 흙을 덮은 장소 바로 위에 재현해놓도록 했다. 또 묘역식 고인돌무덤 중 유의미한 36기는 레고랜드 확장 부지로 옮겨 복원하도록 했다.

이런 결정에 고고학계 일각에서 불만이 쏟아졌다. 이 정도의 가치를 지닌 유적이라면 나온 그대로 원형보존하는 동시에 기념관, 문화공원 등을 조성해 널리 알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은 “중도 유적은 선사시대 유적 중 유일하게 경주 왕릉에 비견될 만한 규모와 중요성을 지닌다고 본다”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충분히 등재될 만한 유적인데 복토보존과 이전복원에 그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양학과 교수도 “중국 흥산문화 우하량 유적지의 경우 100m가 넘는 유적지를 돔으로 덮어 보존하는 전시관을 만들었다”며 “가치를 따져봤을 때 중도 유적에는 레고랜드가 아니라 역사문화공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고 동조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문화재위원회 측은 억울함을 토로한다.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심정보 한밭대 교양학부 교수는 “이미 발굴된 이상 원형보존해서 기념관이나 문화공원을 만들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노출된 유적을 활용할 수 없다면 더 이상 훼손되기 전에 복토보존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강원도의 개발 의지가 반영돼 있다. 예전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아온 유적인 만큼 사적(史蹟)으로 지정해 보존했다면 지금과 같은 논란에 휘말리지 않았으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문화재심의위원은 “원형보존을 하려 했으면 애초에 국가사적으로 지정했어야 한다”며 “학계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 발굴을 시작한 1980년대부터 사적 지정을 강원도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적으로 지정될 경우 해당 유적은 물론, 인근 500m 이내에서 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

문화재 보존과 지역 개발의 갈등은 해묵은 딜레마다. 대규모 개발사업에는 대개 크고 작은 유물과 유적이 나오기 마련인데, 이를 두고 개발론자와 보존론자 진영 사이에 갈등과 소송이 마치 통과의례처럼 이어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업 자체가 무산되는 경우도 있고, 무기한 연기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시행하는 화성 태안3택지개발사업의 경우 조선 정조시대 유적이 발견돼 사업이 10년째 답보상태에 머물러 금융비용만 1500억원에 이르고 사업 예정지 일대가 슬럼화되는 등 보존으로 인한 부작용을 겪고 있다. 신라시대 고분군을 훼손하고 아파트를 건설한 경주 황성동 유적처럼 개발 압력에 밀려 문화재가 훼손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개발·보존 양립의 역사 새로 쓸까


▎강원도는 레고랜드가 완공되면 연간 200만 명의 관광객이 춘천시를 찾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레고랜드 조감도. / 사진제공·엘엘개발
개발과 보존이 대립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둘 사이에도 접점은 있다. 개발이 있기에 비로소 보존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매장문화재는 대부분 개발을 위한 지표조사를 통해 실체가 드러난다. 개발이 문화재를 훼손하는 면을 지나치게 부각한 나머지 ‘잠들어있던’ 문화재를 깨우는 역할을 간과한 것이다. 춘천 중도 유적도 레고랜드 개발을 위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조사를 벌이기 전까진 어마어마한 유적이 묻혀 있을 거라고 짐작만 했을 뿐 이를 발굴할 엄두를 내지 못한 게 사실이다. 순기능을 인정하는 것은 개발과 보존의 양립을 고민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심정보 교수는 “무언가 묻혀 있을 것이라 짐작만 할 때와 그것들이 실제로 나왔을 때의 차이는 크다”며 “중도 개발로 인해 묻혀 있던 매장문화재의 활용방안이 높아지고 다양해 졌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매장문화재 원형을 3D 스캔해 연구자료로 이용하거나 이전 복원한 고인돌 무덤들을 중심으로 유적공원을 만들어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등 오히려 쓰임새가 커졌다는 얘기다. 관광객 유인 효과가 큰 레고랜드와 함께 엮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 교육적 가치는 물론 경제적 가치까지 얻을 수 있어 살아있는 박물관의 기능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이런 성공사례가 서울시 종로 탑골공원 옆의 ‘육의전빌딩’ 이다. 공사 전 지표조사를 통해 발굴된 시전 행랑터를 지하 1층 ‘육의전박물관’에 보존·전시하고 빌딩의 이름도 그에 맞게 바꿨다. 건축주와 문화재 전문가가 머리를 맞댄 결과였다. 개발과 보존이 조화된 사례로 꼽힌다. 레고랜드가 ‘제2의 육의전빌딩’이 되려면 일방의 계획을 강요하거나 밀어붙여선 안된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실용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관람객이 찾지 않는 죽은 박물관이 되어선 보존의 의미가 없다. 역사의 흔적을 모두 지운 인공 관광지로는 관광객에게 깊은 의미를 각인하기 어렵다.

중도는 문화재의 보고인 동시에 오래전부터 천혜의 관광지로 각광받아왔다. 레고랜드 건설은 그 연장선에 있다. 개발과 보존의 딜레마를 해결할 논의의 실험은 이미 시작됐다.

- 김현준 월간중앙 기자

201502호 (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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