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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 | 3월 방한 연주회 ‘엘 시스테마’의 영웅 구스타보 두다멜 - “한국 청중 음악적 열정 못 잊어,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 가득” 

2018년 이후 베를린필 음악감독 유력…세계 지휘계 세대교체 선도하는 젊은 거장에 ‘두다마니아’ 기대감 폭발 


▎오는 3월 LA 필하모닉을 이끌고 두 번째 내한 연주회를 갖는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 2018년 이후 베를린 필의 차기 음악감독설이 유력해지면서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 세계 클래식 팬들은 2018년을 주목한다. 사이먼 래틀이란 지휘계의 거장이 베를린필의 포디엄을 내려왔을 때, 과연 그 바톤을 누가 이어받을 것이냐에 대한 관심이다. 3월 25일 LA 필하모닉을 이끌고 내한 연주회를 갖는 구스타보 두다멜(34)이 그 유력한 후보 중의 하나다. 그러나 베를린필의 벽은 높고 두텁다. 카라얀 이후 두 명의 비(非) 독일인이 베를린필의 상임 지휘자를 맡았다. 카라얀의 직속 후임으로 1989년 56세의 이탈리아 출신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바톤을 이어받았고, 2002년 영국 출신 래틀이 뒤를 이었으니 차기 음악감독은 정통 독일인을 중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34세의 청년 두다멜이 강력히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주류 음악계의 시각으로 보건대 두다멜은 분명 ‘곁가지’에 불과한 인물일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두다멜의 탁월한 실력과 열정, 거대한 스토리로 점철된 그의 인생이 이 같은 ‘출신 성분’으로 더욱 빛을 발한 측면이 있다. 베네수엘라 출신이라 해서 꼭 불리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그가 청중을 몰고 다니는 ‘흥행의 보증수표’란 점을 베를린 필 재단이 모를 리 없고, 재단의 이사들은 밀실에 모여 흘린 군침을 서로 닦아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계 지휘계가 급격한 세대교체의 와중에 있다는 것도 두다멜에 방점을 찍게 되는 요인 중 하나다. 134년의 역사를 지닌 미국 명문 악단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2013년 새 음악감독으로 라트비아 출신의 안드리스 넬손스(당시 35세)를 임명했다. 극심한 운영난으로 2011년 파산보호 신청을 했던 또 다른 명문 악단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도 2012년 가을 위기 탈출을 책임질 구원투수로 야니크 네제세갱(당시 38세)을 내세웠다. “젊음이 돈을 번다”는 세태의 반영인지 모른다. 시애틀 심포니의 루도비크 모를로는 41세, 인디애나폴리스 심포니의 크시슈토프 우르반스키(당시 31세)는 이제 33세에 불과하다. 그 밖에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다니엘 하딩(39), 로테르담 필의 야니크 네제세갱(39) 등이 세대교체의 주역들이다.

두다멜은 1981년 베네수엘라 중서부 바르키시메토에서 태어났다. 각종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가난한 도시였다. 그 역시 음악을 통해 마약과 범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아버지는 트롬본 연주자였고, 어머니는 성악 교사였다. 10세 때 빈민층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를 통해 음악을 접했다. 엘 시스테마는 경제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동료들과 함께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 등에게 음악을 가르치면서 시작됐다. 1975년 11명에 불과했던 단원은 나중에 26만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악기가 부족해 처음 입단한 어린이들은 종이로 만든 악기로 기본기를 익힌다.

두다멜은 18세에 엘 시스테마 출신으로 구성된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2006년 스웨덴 예테보리 심포니의 수석지휘자로 발탁된 이후 베를린 필, 시카고 심포니, 뉴욕 필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특히 2004년 독일에서 개최된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데 이어 2009년 20대 나이로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해 주목을 받았다. LA 필하모닉은 주빈 메타,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등이 음악감독을 맡았던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다.

‘엘 시스테마’의 최대 수혜자


▎2010년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기적의 오케스트라–엘 시스테마>. 엘 시스테마의 정점에 위치한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끝나고 단원들이 환호하는 장면이다.
두다멜은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의 최대 수혜자다. 아니 거꾸로 ‘엘 시스테마’가 두다멜의 최대 수혜자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엘 시스테마는 두다멜의 성가에 힘입은 바 크다. 그는 제3세계 서민 가정에서 자랐지만 노력과 도전 끝에 클래식 음악가이면서 정상급 록스타에 못지 않은 인기를 구가한다.

물론 재능이 출중하다. 거의 모든 음악을 악보를 보지 않고 암보로 지휘한다. 끊임없이 악보를 분석한 뒤 거기에 자기 특유의 색을 입힌다는 평가다. 독창적 해석가로서의 지휘자의 모습이다. 지휘할 때 그의 모습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차르트, 즉 과장된 듯한 천재의 제스처와 자기 몰입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음악적 흐름과 치밀하게 맞물려 기능하면서 공허함이나 허세, 경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두다멜은 엘 시스테마와 2013년 3월 사망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합작품이랄 수도 있다. 두다멜이 엘 시스테마의 영웅이라면 차베스는 엘 시스테마의 가장 열렬한 후원자였다. 2013년 3월 8일 엄수된 차베스의 장례식은 베네수엘라 국가 연주로 시작됐다. 두다멜이 그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음은 물론이다. 존 애덤스의 신작 오라토리오를 세계 초연하는 LA 필의 공연 중 하루를 다른 지휘자에게 맡기고, 전날 밤 그는 조국으로 날아왔다.

엘 시스테마는 차베스가 집권하기 훨씬 전인 1975년 시작됐다. 운영은 민간재단이 한다. 악기를 잡을 수 있는 나이만 되면 아이에게 악기를 쥐어주고, 엘 시스테마의 앙상블에서 연주하겠다는 약속만 하면 수업료와 외출비 등을 공급하는 제도다.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10대가 되면 유럽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수준의 성취를 이룬다고 한다. 시몬 보르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도 이 제도의 혜택을 입은 젊은이들로 구성됐다.

베네수엘라 역대 정부는 모두 엘 시스테마를 후원했지만, 차베스만큼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차베스는 집권 14년 동안 엘 시스테마 운영 예산의 거의 전부를 아무런 조건 없이 지원했다. 집권 초기에는 클래식음악에 대한 민족주의적 반감으로 지원을 꺼리기도 했지만, 이 프로그램이 가난한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사회를 바꾸는 혁명임을 곧 알아챘다.

2007년 차베스 정부는 엘 시스테마에 참가하는 아이들에게 악기를 무상 지급하고 학비를 보조해주는 ‘음악의 임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0년에는 정부 여러 부처에 나눠져 있던 엘 시스테마 지원 업무를 대통령부로 통합해 더욱 강화했다. 엘 시스테마는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기적의 프로젝트다. 한국을 포함해 세계 25개국에서 엘 시스테마를 도입했다.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을 거쳐간 아이들은 약 35만 명. 현재 베네수엘라에는 어린이, 청소년 오케스트라만 150개가 넘고, 앙상블과 합창단은 수백 개를 헤아린다. 차베스가 특권층이 아닌 모두의 세상을 꿈꿨듯, 엘 시스테마는 음악을 소수의 특권이 아닌 모든 사람이 누리는 권리로 바꾸는 혁명을 일으켰다. 차베스가 남긴 위대한 유산이다.

2005년 23세의 두다멜은 말러콩쿠르에서 말러 5번 교향곡 아다지에토를 연주, 우승을 차지해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운도 따랐다. 한 해 전 베토벤 국제페스티벌 폐막 콘서트에서 프란츠 브뤼겐이 병이 나는 바람에 대타로 런던필하모닉을 지휘해 여러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는 행운이 작용했다. 2005년엔 런던 프롬스 축제 때 몸이 아픈 네메 예르비 대타로 스웨덴 예테보리 심포니를 지휘한 뒤 곧바로 상임지휘자로 발탁됐다. 오페라단 오케스트라의 첼로주자였던 토스카니니(1867∼1957)의 경우가 떠오른다. 그는 오페라 <아이다>의 브라질 투어에서 지휘자가 흥행 실패로 사임하자, 악보를 전부 외우고 있는 덕에 19세에 성공적으로 지휘 데뷔식을 치렀다. 역시 노력하는 천재에겐 운도 따른다는 것을 토스카니니와 두다멜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클래식의 아카데미즘과 록 음악의 파격

15세 때부터 지휘를 배우기 시작한 두다멜은 3년 뒤 엘 시스테마 출신으로 구성된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됐다. 2008년 방한 연주회 때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170여 명으로 짜인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에 깜짝 놀랐다. 팜플렛에 나와 있는 정식 연주자는 정확히 199명. 여기에 지휘자 두다멜을 합하면 200명 편성이다. 많아야 5명에 불과한 콘트라베이스 주자는 모두 10명, 첼로는 20명이며 현악을 연주하는 주자만 100명에 이르렀다. 더 많은 청소년에게 연주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두다멜이 이끌었던 베네수엘라 어린이 오케스트라는 연주자 500명과 합창단 900명, 모두 1400명이 연주를 펼치기도 했다.

두다멜과 단원들은 연주 중 끊임없이 교감했다. 당시 청중들은 지금도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1번 4악장 피날레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두다멜은 지휘봉을 치켜들고 현악기 주자는 활을 켜는 상태, 목관주자들도 마우스피스를 떼지 않은 상태에서 흐른 3분간의 정적…. 이 순간에는 지휘자와 단원은 물론 관객들까지 모두 하나가 됐다. 두다멜은 청중에 대한 서비스 측면에서도 남달랐다. ‘브라보’ 탄성이 이어진 커튼콜 사이 1분여 암흑…. 조명이 들어오자 단원들은 모두 베네수엘라 국기가 그려진 점퍼로 갈아입고 ‘만보’와 ‘말란보’를 앵콜곡으로 선사했다.

유튜브 사이트에서 ‘Dudamel’을 쳐보면 두다멜이 2007년 여름 시몬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영국 BBC 프롬스에서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가운데 ‘맘보’를 연주하는 장면을 찾을 수 있다. 활기찬 지휘에 맞춰 젊은 연주자들은 연주 도중 악기를 돌리고, 춤을 추거나 파도타기까지 하면서 관객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간다. 아나운서의 “놀랍다(amazing)”는 코멘트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2008년 한국 공연 때도 비슷했다. 자유롭게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금관 주자들, 악기를 연신 돌려대는 콘트라베이스 주자들, 스틱을 하늘로 집어 던지는 타악기주자들…. 축제와 다름없다. 입었던 옷을 관객들에게 던져줘 깜짝 즐거움을 선사했고, 두다멜은 직접 객석으로 내려가 60대 관객에게 손수 그 점퍼를 입혀줘 감동을 선물했다. 클래식의 아카데미즘과 록 음악의 파격이 조화를 이뤄낸 것이다.

음악이 없었으면 마약을 하거나 매춘 소굴로 빠져들었을지 모르는 단원들은 국가가 이들에게 선물한 음악을 보답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가득 차 있다. 베네수엘라 국기가 그려진 옷을 매번 공연마다 반드시 입고 앵콜에 임하는 자세. 해외 연주단체에 발탁되더라도 일정 기간을 국내로 돌아와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노력. 200명의 단원은 이미 베네수엘라 최고의 외교사절이었다.

내한 공연 다음 해인 2009년, 28세의 두다멜은 LA 필의 음악감독에 선임됐다. 비슷한 시기에 LA 필과 함께 미국 오케스트라의 양대 산맥인 동부의 뉴욕필은 엘리트 지휘자 앨런 길버트를 선임했다. 역시 흥행 면에서는 두다멜이 앞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두다멜에게 쏟아진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두다마니아(Dudamania)’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두다멜은 오는 3월 25~26일 LA 필과 함께 첫 내한 공연을 갖는다. 두다멜로서는 두 번째 방한 공연이고 LA 필과는 처음이다. 연주프로그램은 3월 25일 말러 교향곡 제6번 ‘비극적’, 26일 존 아담스 ‘시티 누아르’와 드보르자크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다.

곽승 교수와 두다멜의 인연


▎두다멜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를 통해 “배제된 사람에게 가장 영예로운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엘 시스테마의 정신”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곽승 계명대 음대 교수(73·전 대구시향 상임지휘자)가 두다멜의 내한 공연을 바라보는 감회는 남다르다. 곽 교수는 1992년부터 매년 베네수엘라로 날아가 현지 청소년 교향악단에게 지휘를 가르쳤다. 2002년 무렵 두다멜도 곽 교수의 지휘교실 수강생이었다. 곽 교수는 “당시 엘 시스테마의 창시자 아브레우 박사로부터 지휘를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받고 베네수엘라를 방문하게 됐다. 사실 두다멜을 내 제자라고 하긴 좀 그렇다. 2주 동안 하루 8시간씩 가르친 게 전부인데 이렇게 성장해 감회가 새롭다. 그때에도 이미 두다멜은 가르칠것이 없는 천재”였다고 회상했다. 곽 교수는 엘 시스테마를 ‘기적의 사회운동’이라고 정의하며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일궈냈다고 강조했다.

“엘 시스테마는 음악을 통해 어린 아이들의 미래를 바꾼 기적적인 사회운동이 아닌가 한다. 엘 시스테마 출신으로 23세 때 베를린필의 최연소 더블베이스 연주자로 입단한 에딕슨 루이즈(30)의 홀어머니는 알코올중독자였다. 그는 엘 시스테마덕에 훌륭히 성장할 수 있었다. 엘 시스테마를 거친 아이들은 음악가뿐만 아니라 변호사, 의사, 엔지니어로 훌륭히 성장했다. 음악의 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선다.”

두다멜은 <월간중앙>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음악이 나의 삶을 바꾸었다. 어릴 적 음악을 하지 않았던 내 주변 남자 아이들은 결국 범죄와 마약에 빠져들었다”고 회상했다. 두다멜은 “베네수엘라에서는 오케스트라 음악이 연주자뿐 아니라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준다”며 “마치 다른 나라에서 ‘로큰롤’과 같은 문화를 즐기듯이, 우리도 라틴 특유의 정체성이 담긴 우리만의 문화를 형성해왔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1문1답이다.

3월말 내한 공연에서 말러 교향곡 6번이란 대작이 청중을 기다리고 있다. 이 곡의 매력을 설명한다면?

“말러 교향곡 6번은 엄청나게 거대한 곡이다. 큰 페스티벌 같은 곡, 그러나 비극적이고 복잡 다양한 음악이다. 교향곡 제6번을 완성하던 1904년, 그는 당대 최고의 지휘자로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부인 알마와 사랑하는 두 딸과 단란한 가정의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가장 행복한 시기에 비극적인 교향곡 6번을 작곡한 말러는 그로부터 3년 뒤인 1907년 사랑하는 장녀 마리아를 잃는 비극을 겪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심각한 심장병 진단을 받았으며 10년간 몸담았던 빈 오페라 극장에서 사임했다. 말러는 그에게 닥쳐올 비극을 예감하며 비극적인 교향곡을 작곡했던 것일까? 어둡고 비극적이기도 하지만 말러 6번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기에 매우 멋진 곡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마다 비극에 대한 생각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것이 이 곡의 갖는 매력포인트다. 이 곡을 연주할 때 느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이 이 음악에 압도되면 될수록 더 행복해 했다. 이 음악이 가진 모순적인 성격 때문이다.”

존 애덤스의 ‘시티 누아르’, 드보르작 9번 교향곡도 포함돼 있다. 미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곡인데, 선곡의 배경을 설명한다면?

“LA 필과 6년간 함께한 여정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시티 누아르’는 내가 LA 필 음악감독 취임연주회에서 초연한 특별한 곡이다. 드보르작의 9번 ‘신세계’ 교향곡과 함께 ‘신세계’, 곧 미국을 상징한다. 체코인이었던 드보르작은 미국에 온 직후부터 흑인 영가나 인디언 민요를 스케치하며 신작 준비를 했을 것이다. 이러한 소박한 가락은 뉴욕의 대도시에 내버려진 보헤미아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스스로 ‘민요의 정신’에 입각하여 썼다고 했다. 작곡자 자신이 ‘신세계로부터’라고 이름붙인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과의 인연을 회상한다면?

“한국 방문은 2008년 이후 두 번째다. 아, 벌써 7년이 지났나! 강렬한 기억이 남아 있어 마치 어제 일처럼 회상된다. 그때가 나에게는 첫 아시아 투어였다. 당시 한국에서 두 번의 콘서트를 열었는데 연주자도 관객도 열정이 정말 대단했다. 아주 아주 멋진 경험으로 남아 있다. 한국을 방문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빨리 다시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다. 나는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을 느낀다. 알다시피 한국에서 온 마에스트로 곽승 선생님은 엘 시스테마에서 나의 첫 지휘 선생님 중 한 명이었고,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를 많이 도와준 특별한 은사로 기억한다. 나와 한국의 인연은 아주 오래전에 시작되었던 셈이다.”

LA 필은 큰 목표를 함께하는 가족 같은 존재


▎두다멜은 지난 6년간 음악감독을 맡은 LA 필에 대해 “새로운 작품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LA 필과 지난 5∼6년간 함께한 음악적 성취를 평가한다면?

“LA 필은 큰 목표를 함께 만들어가는 가족과 같은 존재다. 내게는 이점이 가장 크게 부각된다. 베를린 필, 빈 필,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등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지만, 장기적 목표를 함께할 수 있는 가족과 같은 오케스트라가 있다는 것은 매우 큰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 모차르트-다 폰테 오페라, 슈베르트 연주를 함께 해오고 있다. 베토벤 전곡도 예정 돼 있다. 그동안 LA 필과 현대 작곡가의 곡을 여러 번 초연했고, 사회공헌 측면에서도 아주 깊은 교감 속에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물론 그 다양한 성취에 대해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다른 오케스트라가 갖지 못한 강점과 매력을 설명한다면?

“음악적으로 LA 필은 새롭고 다양한 레퍼토리를 접했을 때 진가가 드러난다. 작품을 해석하고 익히는 능력이 정말 대단하다. 함께 음악을 하는 일에 행복을 느끼고, 그 행복이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지난해 11월 마지막 주에는 슈베르트 교향곡 6번을 연주했는데 그때 느낀 단원들의 반응은 아주 특별했다. 그들은 이제 매우 자연스럽다. 예전에는 내가 생각하는 많은 것을 설명해야 했지만 이제는 굳이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오케스트라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 이것이 바로 좋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LA 필은 그들만의 색깔이 분명하면서도 매우 개방적이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오케스트라다. 새로운 작품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 새 곡을 익히는 능력이 놀랍다.”

LA 필에 처음 부임했을 때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젊디 젊은’ 지휘자였다. 단원들과 어떻게 조화했나?

“처음 부임했을 때 내가 대부분의 단원보다 나이가 어렸다. 지금은 좀 다르다. 이제 스물한 살짜리 단원도 있다. 마치 내가 아빠가 된 기분이다. 그래도 젊은 지휘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연주석에 앉아 있는 단원들이 가진 경험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물론 지휘자는 그들보다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경험에 귀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그들이기 때문이다. 지휘자는 단원들이 하는 일에 존경심을 보여주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 점을 잊으면 안 된다.”

LA 필과 2018∼2019시즌까지 계약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단원들과 무엇을 창조할 것인가?

“앞으로 5년이 남았지만 무엇을 만들어낼지 아무도 모른다. 물론 프로젝트로 말하자면 수도 없이 열거할 수 있다.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도 다시 하고 싶고, 베토벤 사이클도 있다. 바그너의 ‘반지’도 하고 싶다. 계획이야 많다. 하지만 봐라. 나는 그냥 여기서 LA 필과 행복하다. 그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계획 그 이상을 만들 것이다. 나중에 무슨 일을 하건 그들은 영원히 나의 가족이다. 그래서 임기 내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은 그렇게 중요치 않다.”

베토벤은 분노에서 시작해 희망으로 끝나


▎공연 직전 LA 필 단원들과 최종 리허설을 하고 있는 두다멜. 거의 모든 곡을 암보해 지휘하며, 독창적인 곡 해석으로 청중을 사로잡는다.
베토벤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 같다. 청년 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은데…. 당신에게 베토벤과 그의 음악은 무엇인가?

“스물다섯 살 때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베토벤 5번, 7번 교향곡을 녹음했다.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나온 그 음반이 나의 데뷔 앨범이었다. 베네수엘라에 베토벤 만큼 잘 어울리는 음악가는 없다. 베토벤은 말하자면 베네수엘라 젊은이들의 상징이다. 베토벤 교향곡은 분노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연주를 계속해 전개 부분을 거쳐 결론부에 다다르면 그의 음악은 희망을 들려준다. 온갖 범죄와 마약, 가정문제의 끔찍한 경험을 갖고 거리에 모인 아이들이 베토벤의 음악을 연주할 때 그들은 강렬한 희망을 느끼게 된다. 베토벤은 그래서 내 음악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것이다.”

이른 나이에 지휘자로서 큰 성공을 일궜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매일매일 더 사랑한다. 그리고 그 사랑을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그리고 항상 단원이 하는 일을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음악이 우리와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이해하려고 한다. 성공 비결은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 다른 것이 혹시 있다면,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당신과 LA 필이 펼치는 사회공헌 활동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면?

“나는 엘 시스테마라는 멋진 시스템 속에서 성장했다. 엘 시스테마는 사회적인 포용이라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엘시스테마는 배제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그것도 영예스러운 자리를. 왜냐하면 예술은 영예스러운 것이니까. 이게 중요하다. 그래서 LA 필의 음악 감독으로 와서도 YOLA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최근 벌써 세 번째 YOLA가 만들어졌다. 베네수엘라에서 내가 받은 것처럼 LA에서도 역시 많은 청소년에게 악기를 무상으로 주고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이 같은 음악운동이 전 세계 더 많은 지역으로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201502호 (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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