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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저출산 노령화 대책 전도사’ 이계안 전 국회의원 - “2018년부터 인구 감소 시작, 경제성장률도 제로로 수렴된다” 

세계사의 본질 바꿀 3가지 ‘전환(transition)’에 주목… 인구문제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 시급하다 

한기홍 월간중앙 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이계안 전 국회의원은 “저출산 대책을 위해 임계점을 넘는 과감한 예산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계안 전 의원(옛 열린우리당)은 오래전부터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품고 있었다. 아직 정치인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에게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그의 정책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는 테마다. 그가 2009년 인구문제를 다루는 2.1연구소를 만든 것도 이 같은 문제의식의 소산이다.

2.1이란 숫자는 우리나라 인구가 현재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는 합계출산율이다. 한 사회의 가임 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들의 평균 수치다. 지난해 국내 합계 출산율은 고작 1.19명, 서울은 1.09명에 불과했다. 결국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는 점점 인구가 줄어들어 일본형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을 부르는 고령화사회로 진입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 전 의원이 현대자동차 CEO에 발탁된 해는 1998년이다. 외환위기의 골이 이미 깊어졌을 때다. 엄청난 중압감을 느끼며 CEO 자리에 올랐지만 당시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어깨를 두드리며 해줬던 그 말, “책상머리에는 답이 없어. 현장에 가봐”란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관념적인 발상이나 이론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2001년엔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회장에 올랐다.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회장 자리에 오른 것은 흔치 않은 일로, 샐러리맨으로서 ‘커리어 하이’를 찍은 일이기도 했다. 그가 현대카드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회사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 카피로 큰 화제의 중심이 됐다. 다이너스 카드 시절(현대 카드 전신) 만년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던 현대카드의 대변신을 예고한 신호탄이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재벌에게 큰돈을 벌어다 준 대기업의 CEO”라는 표현을 자조적으로 쓰지만 유연한 발상의 CEO출신이란 자부심은 여전하다.

이후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제17대(2004~2008년)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2010년에는 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로도 나선 바 있다. 서울시장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그는 아직도 “서울시장이야말로 정치인이 아니라 CEO가 필요한 자리”라는 소신을 버리지 않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는 유망 중소기업 동양피엔에프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회사는 이 전 의원을 대표로 영입한 후 주가가 오르고 실적도 개선되는 등 ‘이계안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는 업계의 평가가 있다.

오랜 기간 저출산 노령화 문제를 연구한 터라 관련된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막힘이 없었다. 적절하고 요령 있게 통계를 인용하는 솜씨도 탁월했다. 절실한 관심 없이는 결코 구축할 수 없는 지식과 통찰이다. 이 전 의원에게 한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인구정책의 중요성과 정책 실천의 방법론, 심각한 현실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들어봤다.

지금 출산율로는 군대, 건강보험, 국민보험 구조 붕괴


▎2000년 새해 첫날 자연분만으로 탄생한 ‘밀레니엄 베이비’ 14명과 산모를 축하하는 행사가 서울 관악구청에서 열렸다.
한국 사회의 근본적 전환 요인에 깊이 천착해왔다. 어떤 것들이 있었나?

“세계사의 본질을 바꾸는 세 가지 ‘전환(transition)’에 주목한다. 기후변화, 인구변화, 남북관계의 변화다. 기후 변화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인류 공통의 문제다. 인구 변화는 현재 세계 인구가 과잉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나 일본같이 인구가 줄어들 것을 걱정하는 나라가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남북관계의 변화는 우리민족의 문제이지만 세계사의 성격을 바꿀 중대한 전환인 측면이 있다.”

인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00년대 초반 현대자동차 CEO를 할 때 스페인에 유럽 현지 공장을 지으려 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한 컨설턴트가 와서 스페인은 절대로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 근거가 합계출산율이었다. 당시는 그 의미를 알 턱이 없었다. 한 여성이 가임 기간인 14세에서 49세까지 기간 중 낳는 자녀수를 말하는 것이다. 한 사회가 인구로 현상유지를 하려면 2.1명을 낳아야 하는데, 그때 스페인은 고작 1.3명 정도를 유지했다. 공장을 짓고 본격적으로 운영할 때 근로자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란 말이었다. 한국은 이미 1982년에 합계출산율 2.1명이 깨졌다. 그런데도 2000년대 초반까지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정관 수술을 무료로 해주고 훈련을 면제해줬다. 2004년 국회에 진출하고 이듬해인 2005년 충격적인 통계가 나왔다. 그해 우리 합계출산율이 1.08명까지 떨어진 것이다. 그때부터 저출산 노령화 사회에 대해 굉장히 우려하면서 이후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구 감소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직도 미성숙한 상태다. 인구 감소사회의 비관적 현실은 어떤 모습인가?

“우선 군대를 유지할 수 없다. 현재 우리 군은 70만 명이 채 못 되는 병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복무 기간 단축 논의가 계속 이뤄진다. 현재의 군 규모를 유지하려면 1년에 약 32만 명을 징집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3년간의 신생아 통계는 매년 43만 5천 명 수준에 불과하다. 남녀 비율을 반반씩 봤을 때 남아 모두를 징집한다 해도 22만 명 정도밖에 안 된다. 대학도 상당수가 사라져야 한다. 건강보험, 국민보험이 성립하려면 피라미드형 인구구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두 개의 국민 기축보험이 깨지는 사태가 온다. 부담률을 높인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많은 경제학자는 장기 경제성장률은 인구증가율에 수렴된다고 말한다. 1.2명 정도의 합계출산율이 계속되면 2018년부터는 인구 감소가 시작된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도 제로로 수렴된다는 이야기다.”

일본 디플레 경제도 결국 저출산을 가장 큰 배경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렇다. 저출산노령화다. 일본 단카이 세대 노인들은 돈이 많지만 함부로 쓰지 못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어떤 정책을 펴야 할까?

“어떤 정책이 효과가 있는지 전혀 검증이 되어 있지 않고, 출산율 증대 예산도 국내총생산(GDP)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임계점을 넘는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데 찔끔찔끔 돈을 쓴다.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1.0 정도에서 2.0까지 회복한 나라가 프랑스, 덴마크 등인데 이들 나라는 GDP의 3∼4%를 아이를 낳고 기르고 교육하는 데 쓴다.”

“순혈주의 편견 깨뜨려야”


▎1. 북한 개성시 봉동리 개성공단 J&J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특구 설치를 여러 개 설치하면 남한의 부족한 경제활동 인구를 상쇄할 길이 열린다. / 2. 2014년 설날 직전 부산시 한 여성회관에서 열린 설맞이 결혼 이민자 예절 프로그램. 순혈주의란 편견을 깨는 것이 이민자 정책 정립의 첫 단계다.
단지 예산의 문제만은 아닌, 다른 요인은 없을까?

“정책에 신뢰성이 없는 것도 문제다. 의사결정의 객관적 자료와 근거가 매번 무너진다. 무상급식 문제만 해도 일개 도지사가 근간을 무너뜨린다. 무상급식은 선거를 통해 국민 의사가 수렴돼 결정된 것 아닌가? 젊은 세대가 정책에 대한 신뢰를 갖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나? 여차하면 밥그릇을 또 빼앗기는 게 아닌가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인구절벽’ 문제가 코앞에 닥쳤는데도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인구절벽’ 문제의 해소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방법, 또 우리 사회의 경우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북한의 근로자를 우리 생산능력 인구에 포함시킬 수도 있지 않은가?

“이민 정책을 쓰는 방법은 ‘사회적 이동(Social Movement)’이란 용어를 쓴다. 한국엔 이미 전 인구의 3%에 달하는 이민자가 들어와 있는데, 이들의 문화와 가치관을 우리와 동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잡종강세’라는 믿음도 있지 않은가? 우리가 이들을 대범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순혈주의란 편견을 깨뜨리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이민정책의 현재를 평가한다면?

“우리나라의 이민정책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산업연수생을 받아들이는 제도가 있지만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정착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고, 돌아간 후에는 한국이란 나라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결혼 이민자의 경우도 브로커의 사기 행각 등으로 얼룩진 상황이다. 좋은 신붓감을 많이 모셔올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가 전혀 구축돼 있지 않다. 우리도 미국의 이민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이민 비자를 발급하고 필요한 분야의 인재를 전 세계에서 뽑아오고 있다. 우리가 미국에게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단연코 이민정책을 꼽겠다. 인종의 용광로라는 표현대로 미국은 이 용광로에서 나오는 무한한 힘으로 아직도 경제 발전의 동력을 이어가고 패권국의 지위도 굳건히 지켜내고 있다.”

공적인 영역에서 그들을 차별하지 않으면서 이민자의 문화적,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지켜주는 노력이 필요한 것 아닌가?

“그 점도 미국사회가 모범적인 사례다. 세계 각국의 민족공동체가 미국 사회 안에 비교적 튼실하게 착근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이민자에 대한 시각이 보수적으로 경직돼 있고,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도 많은 편이다. 우리나라는 심지어 난민조차도 잘 받아주지 않는다. 한국인 중에도 외국으로 간 디아스포라가 참 많다. 역지사지로 결혼 이민으로 온 이민자에게 정말 극진하게 대해줄 필요가 있다. 그들 한 명한 명이 대한민국을 구한다.”

현실적으로는 한국 사회 곳곳에 불법 체류자가 존재한다. 이들을 제도와 법령 안으로 어떻게 편입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우리나라에 있는 걸 없는 척하는 게 두 가지다. 보신탕 문화와 불법체류자의 존재다. 사실은 구제역의 전파도 불법체류자의 존재와 관계가 깊다고 한다. 구제역이 발생한 농장을 검역당국이 조사할 때 불법체류 신분인 사람들이 야반도주해서 구제역을 퍼뜨리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걸 막으려고 해도 불법체류가 기본적으로 용인이 안 되는 시스템하에서는 필사적인 야반도주자를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개고기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버젓이 먹는 음식이지만 식품으로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도살과 가공부터 유통·조리 등의 방법을 명문화 한 규정이 없다.”

어린이집 CCTV 설치는 근본 해결책 아냐

그렇다면 불법 체류자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은가?

“그들이 없으면 우리 사회가 유지되지 않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우선 인정해야 한다. 이를테면 불법체류자라도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에 대한 것은 상호주의에 입각해 충분히 보장해줘야 한다. 그래야 돌아간 후에도 한국이란 나라를 인정한다. 미국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사회에 호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에서 충분한 돈을 벌어 돌아간 사람들 상당수는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하다. 우리가 혜택을 주고서도 욕을 먹는 경우다. 이민정책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출산율을 높이는 일과 병행해야 한다.”

정부의 저출산 대책을 평가한다면?

“노무현 대통령 들어 처음 저출산 대책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당초 보육예산을 3천억원 정도 책정했는데 노 대통령이 퇴임 무렵 1조원으로 늘었다. 지금 보면 아주 작은 액수였지만 1조원으로 늘리면서 노 대통령이 벌벌 떨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떤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임계점을 넘는 재원이 투여돼야 하는데, 그런 수준까지는 전혀 미치지 못했다. 예산이 없으니까 차등지급밖에 방법이 없었다. 차등지급하게 되니 행정비도 많이 들었고, 계층적 위화감도 막지 못했다. 정책 일관성도 없었고 예산도 충분하지 못했던 것은 저출산 대책이 정책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었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무수한 공약이 쏟아졌지만 그 같은 공약을 믿고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부부가 얼마나 되었겠나?”

‘신뢰할 수 있는 보육기관이 없다’는 것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했다. 최근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에 관한 의견은 무엇인가?

“CCTV 논의가 나오는 것을 보고 정말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돌봐주는 보육교사도 결국 아이들의 스승 아닌가? 스승을 부모가 감시하자는 발상인 것이다. 보육 대상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시설이나 운영 시스템, 보육 종사자에 대한 교육 등에 준비가 부족했다. 보육교사에 대한 처우도 매우 열악한 것으로 파악된다. 최저임금 수준이다. 내가 행복하지 않고 만족하지 않는데 내 자식이 아닌 남의 자식에 대한 책임과 애정이 과연 샘솟겠느냐 하는 것이다. 부모는 보육교사들이 자신들과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봐달라는 것인데, 노예가 주인처럼 일하는 것을 우리가 기대할 수 있겠는가? 부모가 CCTV만을 지켜볼 수 있겠는가? 애타는 부모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오죽하면 그럴까? 그러나 CCTV를 통한 실시간 감시는 성숙한 사회의 문제 해결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지 첩첩이 감시 기능을 강화한다는 것은 비극이다. 아이들을 키워주는 선생님을 감시하는 일은 특히 그렇다.”

결혼 기피현상도 심각하다.

“자연 수명이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과거에는 25세 전후로 사회에 나왔지만 취업난에 각종 스펙 쌓기 등으로 사회 진출 시기가 늦춰졌다. 우리 세대만 해도 방 한 칸만으로도 결혼했다. 지금 젊은이는 그렇지 않다. 물리적, 경제적으로 결혼시기가 늦춰졌고 ‘화려한 싱글’ 등의 치장된 이데올로기가 퍼진 탓도 있다. 결혼을 한다 해도 아기를 갖지 않겠다는 커플, 낳아도 한 명만 낳겠다는 커플도 많아졌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하등 불편을 느끼지 않고, 또 작심하고 결혼하려면 주택 문제 등 준비해야 할 비용과 과정이 너무 커지고 복잡해졌다. 이렇게 해서 OECD 국가 중 출산율은 최저이고, 자살률은 최고인 국가가 되었다. 이 나라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정치 리더십이 선거 때만 공허한 공약 남발하지 말고 심각한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의 출산율 동향은 어떤가? 남북관계 개선을 전제로 북한 주민과 우리가 협력할 수 있는 저출산 해법은 없을까?

“북한의 합계출산율은 1.7에 이르고, 평균연령도 우리보다 낮다. 지금의 개성공단 같은 경제특구를 북한에 여러 곳 만들면 부족한 산업 인력(15∼65세)을 확보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통일의 준비이면서 통일의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체력을 어느 정도 키워주지 않고 갑자기 통일이 다가오면 아주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렇게 긴장이 완화되면 남북의 군대를 축소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 남북한 모두 가장 왕성하고 질이 높은 노동력을 모두 군대에 매어놓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일을 가장 많이 해야 할 사람들 아닌가. 정치가 아니라 경제를 통해 남과 북이 협력하면서 남북 모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우리 경제가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는 희망도 북한이라는 광활한 대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북한이라는 엄청난 인재풀의 존재다. 인구문제 해결의 가장 긴요한 자산이 북한이다.”

박 대통령은 아직도 남북관계 개선 최적임자

그런 측면에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견인돼야 한다고 보는가?

“여러 가지 차원의 말을 할 수 있지만 요즘 통일준비위 정종욱 위원장의 발언을 보면서 참으로 미숙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흡수통일을 일부러 시도할 필요는 없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를 대비해 준비하고 연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절대 해선 안 될 말을 어수룩하게 공개했다. 말을 흘려놓고 그런 일이 없다고 하면 누가 믿겠나?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을 읽어보면 ‘뱀뱀이 없는 놈’이란 표현이 나온다. ‘뱀을 꼭 뱀이라 말해야 알아듣느냐’는 뜻이다. 이번 경우가 꼭 그렇지 않은가? 현 정부 대북정책의 실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만 더하겠다. 예로부터 재산이 없는 사람은 자존심으로 버텼다. 북한의 자존심을 일부러 긁는 듯한 일은 이제 그만하자는 것이다. 주는 사람은 오만하지 말고, 받는 사람은 비굴해선 안 된다. 남북관계의 어느 국면에서는 주는 사람이 비굴하고 받는 사람이 오만하게 굴었던 적도 있었다. 이것도 물론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진보진영의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 진보정권보다 남북관계를 잘 풀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었다. 본인도 통일을 ‘대박’이라 했듯, 한국 경제의 활로 찾기 일환으로 정면승부를 걸을 수도 있다고 본다.

“박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가장 잘 컨트롤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보수진영을 설득할 힘이 그에게 있다. 진보진영 출신 대통령은 그렇게 못한다. 박 대통령이 선거 때 참 잘했다. 진보의 모든 의제를 선점하지 않았나? 경제민주화, 복지 등이다. 그런데 공약을 실천하지 않았다. 이제 일을 해야 한다. 금년이 큰일을 할 수 있는 마지막 해라고 생각한다. 경제면 경제, 남북관계면 남북관계, 또 2개 의제의 토대가 되는 인구문제면 인구문제, 그런 일 중의 하나를 확고히 잡고 무섭게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노병과 함께 대한민국도 사라진다


▎이계안 전 의원은 “인구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임계점을 넘는 재원이 과감하게 투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산율을 반등시킨 유럽의 몇몇 국가가 있다. 그런 나라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나?

“2006년과 2010년에 프랑스·독일·스웨덴·영국·노르웨이를 방문했다. 나라마다 사정이 조금씩 달랐지만 그들 나라는 여성이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점을 확인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산을 임계점 이상으로 썼다는 것이다. 돈을 많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반전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꼭 돈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문화적인 배경도 작용한다. 선진국 방문을 통해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그들은 다양한 방식의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는 꼭 결혼을 통해 낳는다는 편견이 상당부분 깨진 사회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조심스럽지만, 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변화해야 한다고 본다. 예컨대 우리 사회에서 미혼모가 되면 동시에 고아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호적에서 파가라는 것이다.

결혼은 하고 싶지 않지만 아이는 낳고 싶은 여성이 있다고 할 때 선진국의 정부는 이 여성을 어떻게 보호하는가?

“그 여성은 철저하게 법적 보호를 받는다. 정상적인 결혼관계를 통해 아이를 낳은 사람들과 추호도 다르지 않은 권리를 보장받는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상적인 혼인관계 밖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비율이 너무도 높아진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2010년 통계로 50%가 넘는다는 말을 들었다. 심지어 노르웨이는 70%에 육박했다. 그런 상황을 보고 국내에 와서 보고서에 쓰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국회의원들은 과감하게 그런 실태를 보고서에 넣더라. 미혼모 정책을 전향적으로 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생겼다는 의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육아의 문제를 여성의 문제로만 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남성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각 기업도 ‘베이비 프렌들리’ 정책을 통해 남녀 직원의 출산을 지원해야 한다. 아이를 낳은 직원의 경력 단절, 출산 후 대부분 파트타이머로 전락하는 여성의 현실이 상존하는 한 출산율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 인구구조문제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말석을 차지하게 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노병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 사라지는 것이다.”

- 글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201504호 (201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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